노조 압박 수단으로 돌변한 복수노조
노조 압박 수단으로 돌변한 복수노조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2.07.30 17:53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리해고 위협에 권리 내주다
사과만 하면 용서할 수 있는데…
[현장 2] 상경 농성 시작한 유성기업지회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 7월 5일 오전, 삼성동에 소재한 유성기업 서울사무소 앞에서는 유성기업 해고자들이 모여 상경투쟁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유성기업 서울사무소로 통하는 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다. 이들은 심야노동 철폐와 민주노조 사수, 원청 기업의 지배개입 분쇄, 해고자 복직을 요구했다.

지난해 유성기업은 이슈의 중심이었다. ‘밤에는 잠 좀 자자’고 요구했다는 이유로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밀려나야만 했다. 이들이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기까지는 꼬박 석 달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공장으로 복귀하면서 유성기업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복귀 후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해고자’라는 이름을 달고 서울사무소 앞에서 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그 사이 유성기업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복귀했지만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

지난해 5월 18일, 금속노조 유성기업아산·영동지회는 노사 간에 합의한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 약속을 이행하라며 2시간 부분파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그 부분파업의 대가는 가혹했다. 사측은 2시간 부분파업에 대해 직장폐쇄로 화답했고, 조합원들은 그해 8월 말이 되어서야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것도 법원이 중재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복귀한 조합원들에게 공장은 낯선 환경으로 변모해 있었다. 자신들이 공장 밖으로 밀려나 있는 동안, 공장은 개별적으로 각서를 쓰고 복귀했던 선복귀자들이나 관리직, 용역 등에 의해 가동됐다. 노동강도는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화됐다. 직장폐쇄 전에 자신이 일했던 공정에 이처럼 다른 인력이 배치돼 있어서 조합원들은 자신의 공정으로 복귀할 수 없었다.

8월 22일부터 복귀가 시작됐지만, 사측은 복귀한 조합원들에게 ‘모든 것을 불법으로 인정하고 금속노조에서 탈퇴한다’는 각서를 쓰게 했다. 정문을 통과할 때는 용역 경비 앞에서 ‘나는 개다’라고 3번씩 외치게해 사회적 지탄을 받기도 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복귀자들을 기다리는 건 교육이었다. KEC에서는 인권침해 요소가 다분한 교육 프로그램 때문에 논란이 일기도 했던 터라 긴장되기도 했다. 그러나 우려했던 강압은 없었다. ‘회사를 위한 노래가사 바꿔 부르기’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가 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조합원들에게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고 래프팅이나 서바이벌게임 같은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다만 사측은 노조활동의 적극성에 따라 조합원들을 분류했고, 그에 따라 각기 다른 장소에서 교육을 진행했을 뿐이다.

사측은 유성기업사태의 모든 책임을 조합원들에게 물어 3차례에 걸쳐 조합원들을 징계했다. 1차 징계는 노조활동의 중심이 되는 활동가 등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1차 징계에서 아산공장과 영동공장을 합해 모두 23명이 해고됐다. 이어 노조활동에 적극적이었던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2차 징계에서는 4명의 해고자가 나왔다. 마지막으로 일반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3차 징계에서는 출근정지나 정직, 서면경고 등 비교적 낮은 수위의 징계가 내려졌다.

홍종인 유성기업 아산지회장도 “지난해 5월 18일 직장폐쇄가 된 후 5월 24일에 경찰에 끌려 나갔는데 그때 처음 분류가 이뤄졌다”며 “사측이 누구는 훈방, 누구는 철저하게 조사 하는 식으로 3단계로 분류한 명단을 경찰에 줬는데, 경찰이 떨어뜨린 명단을 조합원이 가져와서 어떻게 분류됐는지 알게 됐다”고 밝혔다.

다만 당시 경찰에 의해 공장 밖으로 밀려날 때는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연행되다 보니 그 분류대로 연행되지는 않았다. 사측의 분류가 다시 등장한 것은 조합원들이 복귀한 이후 징계 과정에서였다.
이렇게 발생한 해고자들은 공장으로 복귀하자마자 다시 공장 밖으로 밀려나는 처지가 됐다. 이들은 또다시 공장 밖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해고자라 하더라도 그 효력을 다투고 있는 동안은 조합원 자격이 유지되며, 그 기간에는 노조 사무실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는 법원의 판례는 유성기업의 담을 넘지 못했다.

불안감 부추기는 기업별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이 복귀했을 때 유성기업에는 기업별노조의 형태로 복수노조가 만들어져 있었다. 기업별노조에는 선복귀자들이 주로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었다. 유성기업지회장들은 기업별노조를 일컬어 ‘어용노조’라고 불렀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어용노조에서는 회의를 하거나 교섭을 해도 조합원들에게 내용 전달이 안 됩니다. 심지어 정문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하고 있는데 어용노조 조합원들이 찾아와서는 ‘상집회의를 하고 대의원회의를 했다는데 도대체 회의 내용을 모르겠다. 이러다 직권조인 하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합니다. 지금도 임·단협 교섭을 하고 있는데, 본교섭에 들어가는 어용노조 대의원이 실무교섭에서 무슨 이야기가 됐는지도 모른 채 본교섭에 들어가고 있어요.”

홍종인 지회장은 “어용노조에서 ‘상생의 길’이라는 선전물을 내는데, 노동자의 입장이 아니라 금속노조를 비방하고 사측 입장을 대변하는 선전물”이라면서 “어용노조 사무장이 처음에는 ‘고민해서 쓴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그래도 내용은 우리가 얘기해준 것에서 써온다’고 우리 조합원한테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홍완규 유성기업 영동 지회장은, “영동에서는 고용문제를 부각시켜 조합원들이 불안해하고 있는데, 어용노조는 조만간 정리해고가 있을 거라고 하면서 조합원들의 불안한 심리를 부추기고 있다”면서 “고용지원금을 받기 위해 훈련을 받는다고 포장해서 (기업별노조) 조합원들에게 동의서를 받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그 동의서가 직권조인을 할 때 위임장으로 변질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노동강도가 강화돼 UPH(단위시간당 생산량)가 상향됐기 때문에 현재 유성기업에는 2~3달 정도 납품할 수 있는 재고량이 쌓여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영동공장만 해도 40~50명 정도의 생산직 인력이 넘치는 상태다. 홍완규 지회장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사측이 정리해고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단기적으로는 지방고용노동센터가 진행하는 훈련에 참가해 고용지원금을 받는 방식으로 해소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같은 사측의 의도에 기업별노조가 편승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넘어올 조합원 많다

사실 기업별노조는 설립 때부터 논란이 많았다. 유성기업지회가 ‘어용노조’라고 비판하는 것은 현재 기업별노조가 보여주고 있는 행태 때문이기도 하지만, 설립 때부터 사측의 지원을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홍종인 지회장은 “조합원들이 자기가 선택해서 어용노조에 가입한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관리자들이 동원돼 금속노조에 있으면 징계 대상자가 되고 나중에 있을 구조조정 대상자가 된다고 협박해서 조합원들이 금속노조 탈퇴서를 쓴 것”이라고 말한다. “어용노조에 가입하면 대상자에서 빠질 수 있다”면서 “(금속노조) 탈퇴서와 (기업별노조) 가입원서를 들이밀었다”는 것이다.

홍종인 지회장은 “어용노조가 교섭대표노조로 결정되는 과정에서도 관리자를 동원한 협박이 있었다”면서 “사측은 지난해 우리가 다수일 때는 개별교섭을 하더니, 올해는 관리자 50명을 어용노조에 가입시켜 다수노조가 되자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올해 어용노조가 교섭대표노조가 되자 사측은 개악안을 내놨어요. 조합원 교육시간이나 총회, 회의시간을 모두 회수하겠다는 겁니다. 해고나 징계와 관련해서도 노조가 어렵게 따낸 권한을 사측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수정하겠다는 거예요. 심지어 여성 조합원에게는 월 1회 생리수당이 나오는데, 생리를 안 하는 임신한 기간이나 폐경기 이후에 대해서는 생리를 안 하니까 줄 필요가 없다는 내용도 있어요. 교섭에서 어용노조는 ‘그건 당연히 안 주는 거다, 생리를 안 하는데 무슨 생리수당을 주느냐’ 이렇게 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정리해고를 들이밀어 놓고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서는 개악안에 합의할 수밖에 없다고 정당화 하려는 거예요. 그래도 불안하니까 직권조인을 하려고 하는 거죠.”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홍완규 지회장은 “원청인 완성차에서 어용노조가 과반이 되지 않으면 물량을 줄 수 없다는 말을 했다”면서 “사측은 그것을 빌미로 조합원들이 어용노조로 넘어가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 조합원들과 어용노조 조합원들 간에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고도 했다.

사실 지난해 이후 기업별노조와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 사이의 감정의 골은 깊다. 서로의 집에 숟가락이몇 개인지 알 정도로 친하게 지냈던 사이인데, 지난해 사태를 거치면서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은 ‘배신당했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공정 안에서 충돌도 종종 일어난다. 서로 얼굴을 보면 울분을 참지 못하고 부딪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충돌이 일어나면 사측은 언제나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에게만 책임을 씌운다는 게 지회장들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지회장들은 조합원들과의 회식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기업별노조 조합원들도 결국 돌아올 것이고, 품어 안아야 할 조합원들이기 때문이다.

“저쪽(기업별노조)에서 직권조인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서, 어용노조가 조합원을 대변하지 못하는 상황을 깨닫고 다시 넘어오려는 조합원들이 많습니다. 다만 한 번 저쪽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다시 오면 욕먹을 게 빤한데 앞장서서 총대를 메기는 싫다는 겁니다. 지금도 저쪽 조합원들은 계속 불안감에 싸여 있고 이쪽으로 넘어오겠다는 러브콜이 계속 들어오고 있어요. 개별적으로 면담을 하고 있는데, 불안해하지 않도록 안심시키면 분위기는 더 좋아질 것 같습니다.”

이번 상경농성은 이 같은 사연을 안고 시작됐다. 하지만 전망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농성단이 내건 요구조건도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다. 지금까지 사측이 보여준 태도를 대변하듯 유성기업 서울사무소 입구의 내려진 셔터는 여전히 올라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농성단의 뒤에는 “현장은 아무리 탄압이 심해도 일만 하면 되는데 상경투쟁을 하는 사람들이 걱정”이라며 “상경투쟁이 해고자들만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 싸움이라는 걸 알고 있고 야간근무가 끝나면 농성단과 같이하기 위해 올라오는 조합원들”이 있다. 그래서 농성단은 “질 수 없는 싸움”이라며 “요구안이 관철될 때까지 흔들림 없이 싸우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