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이 살아있다
도서관이 살아있다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2.09.0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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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와 함께 책을 가지고 뛰어노는 도서관
밝고 명랑한 색깔의 우리 동네 우리 도서관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도서관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물론 책이다. 이곳에 들어서면 발뒤꿈치를 들어야 할 것 같고, 숨소리마저도 조심스럽다. 도서관은 조용하다. 도서관은 조용해야 한다. 당연한 생각이 뒤집어지고 있다. 시끌벅적한 도서관. 책을 가지고 놀이를 하는 아이들.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는 엄마. 쉬지 않고 조잘거리는 아이들. 이름 모르던 풀에 이름을 찾아주고, 사라진 전통 놀이가 되살아나는 도서관.

도서관은 진화 중이다. 책을 중심으로 새로운 문화가 밀려온다. ‘우리 동네 우리 도서관’에는 고요에 울림과 떨림의 숨결을 더해 주민들을 홀리고 있다. 상계문화정보도서관을 찾았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색깔이 있는 도서관

경기도 양주 불곡산의 찬우물개골에서 시작한 중량천 물줄기를 따라 의정부를 지나 서울에 들어서면 천변에 푸른 강물이 물결치는 듯한 건물이 있다. 마을 도서관이라고 하기엔 웅장하고, 공공도서관이라 하기엔 자그마한 이곳이 오늘 찾은 상계문화정보도서관이다.

바깥에서 본 이 건물은 축소판 구청이나 시청 건물처럼 보인다. 출입문을 들어서는 순간 공공기관이 주는 선입견은 사라진다. 홍대 앞 카페와 같은 예쁜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 이를 만날 수 있다. 왼쪽에는 ‘모자 열람실’이라는 알쏭달쏭한 이름이 달려 있다.

모자 열람실은 엄마와 아이가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나지막한 책꽂이와 널찍한 사랑방이 있다.
아장아장 걸음을 걸으며 누나에게 책을 읽어주는 엄마 주위를 맴도는 아이가 있다. 자신과 놀아달라며 투정을 부리는 듯하다.

한쪽 구석에서는 그림책을 펼쳐들고 아들과 엄마가 함께 책을 보고 있다. 아홉 살 박하은이다. 다가갔더니 자신의 공책을 보여준다. 만화 주인공 이름을 대며 자신의 그림 솜씨를 뽐낸다. 하은이는 엄마가 할머니도 되었다가 손녀도 되었다 목소리를 바꿔가며 그림책을 읽어주건만 마음은 딴 데 있는 듯하다. 공책에 그림을 그리고 싶은 듯 연필을 매만지며 틈을 노린다.

한쪽에선 자원봉사자가 아이들이 어지러 둔 책들을 쉼 없이 챙겨 제자리에 꽂는다. 하지만 책을 정리하는 속도보다는 아이들이 책을 꺼내는 속도가 빠르다. 자원봉사자 이름표를 단 청소년이  열람실 이곳저곳을 쫓아다니며 챙기지만 아이들에게 지고 만다. 모자 열람실을 담당하는 사서도 대출이나 반납하는 이들이 없을 때는 책 정리에 뛰어들지만, 소용이 없다.

모자 열람실을 이용하는 이들은 마치 자신의 거실처럼 편안하게 책을 본다. 두 다리를 쭉 뻗고 등을 벽에 기대 책을 보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책상을 가슴께로 바짝 당기고 책을 직각으로 들고 앉아 보는 바른 자세 아이도 있다. 그런가 하면 친구가 함께 의자에 앉아 책읽기 내기라도 하는 양 옆구리에 책을 잔득 쌓아놓고 읽는 아이들도 있다.

무채색의 어두운 느낌이 깔린 머릿속의 도서관이 사라졌다. 노랑 빨강과 같은 원색을 과감히 쓴 모자 열람실은 쉼터나 놀이터처럼 밝고 경쾌하다. 그곳에서 책을 읽는 이들의 얼굴도 밝게 채색이 된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우리 동네 우리 도서관


상계문화정보도서관은 거창한 구호가 걸려 있지 않다. 지역 공동체를 꿈꾸는 ‘우리 동네 우리 도서관’이 모토다. 반짝반짝한 도서관 바닥처럼 개관을 지난 3월 29일에 했다. 아직 반 년도 지나지 않은 새내기 도서관이다. 소장하고 있는 도서는 19,411권. 아직 책꽂이 곳곳이 비어 있다. 책들은 신입생의 교복처럼 빳빳하게 날이 서 있다.

상계문화정보도서관에서 팀장을 맡고 있는 박인철 사서가 동행한다. 사소한 질문에도 살갑게, 그리고 꼼꼼하게 설명한다. 박인철 팀장은 ‘사서’스럽지가 않다. 무표정한 얼굴로 서고에 책을 꽂고 빼기만을 반복하리라는 사서의 선입견을 없앤다.

사서란 책을 마주하는 시간 이상으로 사람과 마주한다. 책만 마주한다면 애서가, 애독가일 뿐이다. 책을 통해 사람을 만나야 사서의 역할이 실현된다.

“사서가 먼저 사람을 찾아가 ‘이 분야에서는 이 책이 좋아요’라고 추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도서관을 찾는 사람에게 먼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죠. ‘이번에 이런 프로그램을 하는데 와 보세요.’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면 (사서 일이) 힘들어요.”

도서관이라는 곳은 책 이상으로 사람이 들끓는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당연히 책과 함께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다. 책이 좋아 사서가 된 이들 가운데 도서관에 쏟아지는 민원에 기가 질린 이들도 있다. 한쪽에서는 냉방기 바람이 세다고 하고, 한쪽에선 약하다고 항의를 한다. 열람실에서 노트북을 쓰지 못하게 하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보 도서관에서 노트북을 쓰지 못하는 게 맞느냐며 항의한다. 책꽂이를 없애고 개인 학습하는 공간을 늘리라는 수험생이 있는가 하면,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하는 게 옳으냐며 따진다.

박 팀장을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이곳엔 지하 서고와 함께 다용도실이 있다. 다용도실에서는 일요일마다 주민들을 상대로 영화를 상영한다. 이번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상영할 예정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도서관이 바뀌고 있다. 단순히 책을 빌리고 보는 곳을 떠나 책을 통한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자연 이야기를 책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체험한다. 책이 종이에 머물지 않고 생활에 살아있다. 숀 레비 감독의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가 떠올랐다.

“애들이 도서관에 가면 즐거울 수 있는 공간, 놀이터라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게 우리(사서)의 역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과 버스 하나 빌려가지고 물고기 잡으러 가고, 풀 뜯으러 가서 놀이에 그치는 게 아니라 책과 연계를 시키는 거죠. 요즘 아이들은 풀의 종류나 이런 거 잘 모르거든요. 대부분 아파트에 살고. 아이들 데리고 다니면서 이 풀은 뭐고, 이 풀은 먹어도 되고, 이 풀은 먹으면 안 되고, 풀에 담겨진 사연 이라든지 역사라든지 이야기 해주죠. 아이들이 몰랐던 내용이니까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도서관 뒤뜰에서는 옛날 놀이들, 망까기라든지 오징어라든지 해보는 거예요. 이런 책들이 있거든요. 큰 기대하지 않고 했는데 아이들도 부모들도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주민들 마음속에 들로 뛰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끄집어 내지 못했던 거죠. 그걸 도서관이 뛰어 들어 끄집어 낸 거죠.”

상계정보문화도서관에서는 매주 화, 목요일에 ‘글로벌 놀이 문화학교’를 열고 있었다. 한국 전통놀이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의 놀이문화를 어린이들에게 소개한다. 글자로만 읽고 마는 지식이 아니라 몸으로 체험을 하니 그 효과는 말할 필요가 없다.

2층에는 어린이 열람실이 있다. 모자 열람실과 다르게 조용하다. 공간이 있으면 어디든 비집고 앉아 책들을 읽고 있다. 밝게 꾸며진 이곳은 ‘책이 맛있다’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환한 조명과 예쁜 공간이 조화를 이뤄 맛있는 케이크을 맛볼 수 있는 카페처럼 여겨진다. 다만 케이크 대신 책이다. 이곳은 달콤한 어린이 문학 책들로 넘쳐난다.


도서관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 박인철 팀장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박 팀장에게 물었다. 도서관이 무엇이냐? 도서관을 취재 온 사람이 도서관이 뭐냐고 물으니, 황당해 한다.

“도서관은 민주주의의 근간이지요. 모든 사람에게 열려져 있는 공간. 그래서 학력이나 부가 있건 없건 간에, 가난한 사람이나 돈이 많은 사람이든 간에 도서관에 오면 차이가 없죠. 공정하죠. 누구에게나 같은 기회,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거든요. 돈이 많다고 해서 책을 더 많이 빌려본다거나 하지 않거든요. 도서관이 공평하고 공정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려면 어떤 힘이 있어야 하거든요. 이곳이 공공 도서관인데, 지자체장이나 이런 분들이 이곳의 민주주의의 근간을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이 도서관을 지키는 사람들은 상계문화정보도서관을 찾는 이용자들, 시민들이거든요.

도서관에 일하는 사서들이 이용자들에 대한 피해의식이 강해요. 민원에 시달려서. 이용자만 보면 살이 떨릴 정도로 어려워하는 이도 있어요. 정말 별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걸핏하면 ‘관장 나와라, 구청장 나와라’ 이런 부분이 있으니 움츠려 들고. 그런 때도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내가 미워하고, 내가 보기 싫어했던 저 사람들이 바로 이 도서관의 힘이구나! 저 사람들이 도서관을 올바르게 운영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뿌리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미련한 질문에 돌아온 답은 너무 진중했다. 어떤 특권도 허락되지 않는 곳이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만인이 평등함을 보여주는 민주주의 학교다. 어떤 이는 누군가에게 특별한 대우를 하지 않는가, 하는 불신의 눈초리로 사서들에게 따지기도 한다고 한다. 걱정 마시라. 도서관에는 어떤 누구에게만 주는 특권은 없다. 대신 모든 이용자에게 특권을 넉넉히 준다.

3층은 종합열람실이다. 책꽂이에 빈 공간이 많다. 이제 개관한지 반년도 안 됐으니 아직 비어 있는 공간이 많다. 빈 공간은 새롭게 채워질 미래를 꾸밀 수 있는 희망이 넉넉하다고 말하고 있다.

사서들이 책을 분류하고 책마다 고유 기호를 부여하는 작업을 한다. 하지만 시민들이 직접 도서관에서 마주하는 사서들은 이런 고유 업무를 하고 있지 않다.

“대한민국 도서관들은 대부분 외주를 줘서 하고 있어요. 과거에는 정리팀, 수서팀을 만들어서 자료를 선정하고, 분류하고 정리하는 데 인력이나 예산을 투입해서 하나의 팀으로 운영을 했거든요. 지금은 외주 업체에서 다해서 들어오거든요.”

도서관마다 따로 이 일을 하는 건 실리나 실용에서 뒤떨어진 일일수도 있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책을 읽는 사람이 한 권의 책을 똑같이 느낄 수 있을까?

“책의 주제가 대개 혼합적인 경우가 있거든요. A라는 도서관에서는 어떤 책을 사회과학으로 볼 수도 있고, B라는 도서관에서는 이 책을 역사라고 볼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도서관의 개성과 철학을 존중해서 도서관마다의 색깔이 필요하지 않는가 생각이 들죠. 목록을 하고 분류하는데 사서의 철학이 담겨 있는 어떤 결정으로 접근을 할 필요도 있는 거죠.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해주면 분류하는 거 따로 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 그러다 보니 점점 목록이나 분류에 대한 중요성 자체가 많이 사라져 가고 있어요.”

대신 도서관에 대한 문화의 중요성이 커지게 되었다. 다양한 도서관 문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실험 중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어떤 도서관은 지역 문화센터랑 다를 바가 없는 곳도 있어요. 문화센터 프로그램 그대로 가져와서 강사들 섭외하고 시간표대로 공간만 배분해주는 곳도 있어요. 반면에 도서관 사서들이 직접 뛰어 들어 행사도 진행하고 프로그램도 진행해 도서관만이 할 수 있는 내용을 만들어 가기도 하죠. 사실 아직은 서툰 부분이 많이 있지만요. 제가 보기에는 그 시도가 좋은 거 같아요.”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도서관 문화는 전쟁 중


상계문화정보도서관에는 사서와 책 놀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젠 책이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놀이가 되었다. 사실 삶과 노동과 놀이가 떨어져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책도 읽기로 머무는 게 아니라 놀이가 되는 게 당연한 일일 거다. 그래서 책을 놀이처럼 즐길 수 있게 안내하는 게 사서의 역할일수 있다. 그 시도가 성공할지 욕을 먹을 지는 실험 중이다.

도서관 사서가 앞장서서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에서 책을 들고 뛰어 다니는 건 누구나 공감하고 이해하기에는 힘든 일이다. 하지만 변화는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이 없이는 힘들다. 무수히 넘어져 상처가 나는 아픔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4층에 올라가니 갤러리가 눈앞에 있다. 주로 이곳은 그림책의 원화를 전시한다. 이번 주제는 ‘나는 기다립니다’다. 사랑을 하고, 군대에 가고, 전쟁을 치르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몇 번의 봄을 겪은 뒤 손자를 맞이할 때까지. 그 기다림의 시간이 프랑스 그림 작가의 손에 의해 그려졌다.

이 갤러리는 가장 조용한 곳이며 가장 시끄러운 곳이기도 하다. 부족한 일반 열람실 때문이다. 갤러리 옆에는 일반 열람실이 있다. 주로 자신의 책을 가져와 공부를 하는 곳이다. 누군가는 공무원 시험을 누군가는 대학 시험을, 누군가는 밀린 학교 교육을 보충하려 참고서와 문제지, 다양한 수험서를 가지고 씨름을 하는 곳이다. 126석이 있는 일반 열람실은 자리 차지하기 전쟁이다. 아침 7시에 도서관 문을 열건만 새벽 6시부터 줄을 선다. 도서관 이용객 중 많은 사람이 책이 있는 다른 공간보다 일반 열람실을 원한다. 공부할 곳도 없는데 도서관에 웬 갤러리냐며 원망을 터뜨리기도 한다.

“일반 열람실 이용자가 훨씬 많아요. 공부하러 오시는 분들이 서가 치우고 칸막이 책상 두어 독서실로 만들어 달라고 하죠. 이 패러다임을 바꿔야 도서관 문화가 자리를 잡을 수 있어요.”

더 다양한 책이 도서관에 있어야 한다는 요구보다 시험공부를 위한 더 많은 책상이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는 건 결코 ‘도서관스러운 모습’은 아닐 거다. 이걸 도서관 이용자의 문제로만 돌릴 수 없다. 경쟁으로 치닫는 사회, 점수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가 바뀌지 않고서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다.

어느덧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도서관은 사서의 삶의 현장이자 시험 준비생들의 치열한 경쟁 현장이기도 했다. 상계문화정보도서관은 새로운 도서관 문화를 움 틔우려고 노력 중이다. 도서관 관장의 힘이나 사서의 힘만으로 만들 수는 없다. 이곳을 이용하는 주민들의 힘이 절실하다. ‘우리 동네 우리 도서관’은 이곳에 무더위를 피하러 왔든, 책을 보러 왔든, 문화 프로그램에 참여하러 왔든, 시험 준비를 하러 왔든, 발걸음을 한 모든 이의 힘이 모아져야 가능하다.

“어떤 어린이가 여기 상계문화정보도서관에서 어려서부터 책도 읽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다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거나 외국에 나가서 성장해서, 어른이 되어 다시 자신의 동네를 찾아 왔을 때, 모든 건 변했는데 딱 하나 남아 있는 게 있다면 도서관이었으면 하는 거죠. 그래서 이 도서관을 다시 찾아 내가 어렸을 때 여기서 책을 읽고, 여기서 꿈을 키웠다는 기억을 남겨줄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상계문화정보도서관 사서 박인철 팀장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