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권 무시하는 일방적 지침 파업으로 넘는다
교섭권 무시하는 일방적 지침 파업으로 넘는다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2.09.2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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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한국인노조, 50년 만에 쟁의행위 돌입 앞둬
2년 연속 임금 동결, “차라리 PAY CAP대로 올려라”
[분석 1] 주한미군한국인노조 파업 수순 밟아

한국전쟁 종전 후 전국의 주한미군 주둔기지 내 한국인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설립된 전국주한미군한국인노조(위원장 류기현)가 50여 년 만에 파업을 앞두고 있다. 그간 안보상황의 특수성 등을 구실로 사실상 임금교섭이 유명무실했던 데다가 최근 지속적으로 감원이 발생했고, 더욱이 2년 연속 임금을 동결하겠다고 주한미군 측이 통보했기 때문이다.

ⓒ 한국노총

2년 연속 임금 동결? 해도 너무하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주한미군과 이들을 위한 미 정부와의 계약이행을 위해 미 법률에 따라 조직된 법인 등이 기지 내 한국인 노동자들의 고용주이다. 또한 군사상 필요에 반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고용조건이나 보상, 노동관계는 국내 노동법령의 제 규정에 따라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이 2년간 동결된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 대통령령에 의해서 임금이 동결된 것이다. 지난해부터 오바마 미 대통령은 미국 경제 악화를 이유로 연방 공무원 임금을 동결시켰으며, 미 국방성 예산으로 임금을 받는다는 이유로 한국인 노동자들 역시 임금이 동결된 것이다.

노동조합 입장에선 수용할 수 없는 통보였다. 지난 97년부터 시행된 임금상한정책(Pay Cap)으로 인해 누적된 불만이 폭발 직전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미군의 해외 주둔기지 감축과 축소화 정책으로 지속적으로 감원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노조는 주한미군 측에 임금인상을 촉구했으며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전했다. 주한미군은 국방성의 심사에서 임금인상 요구안이 통과됐으니 지켜보자고 설득했지만 최종적으로 미국 연방정부 내 인사관리국에서 동결로 결정했다.

노조는 이에 반발해 지난 8월 23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 신청을 접수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주둔군 내 한국인 노동자들에게는 국내 노동법령이 적용돼야 함에도 SOFA 제17조의 노무관계 조항에 따라 노조는 조정신청이 접수된 날부터 45일 간은 정상적인 업무요건을 방해하는 어떠한 행동에도 종사할 수 없다. 쟁의행위가 불가한 것이다. 2001년 이전에는 이보다 훨씬 긴 70일간의 조정기간을 가졌다.

주한미군한국인노조는 지난 7월 12일부터 매일 서울 용산 미군기지 앞에서 각 지부 간부들을 중심으로 규탄집회를 열었다. 7월 23일부터는 국회 앞에서 1인시위도 병행하고 있다. 이들은 조정기간이 끝나는 10월 8일부터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할 계획이다.

ⓒ 한국노총

97년부터 발목 잡아온 PAY CAP 정책

주한미군한국인노조는 한국노총 외기노련의 최대 조직이다. 13,000여 명의 연맹 조합원 중 11,000여 명이 주한미군한국인노조 소속이다. 만일 뚜렷한 상황 변화가 없다면 이들 중 소방, 응급의료 등 필수유지업무에 종사하는 인원과 한국인 노무단(KSC) 인원 등 20~30% 가량을 제외한 조합원이 10월 초 파업에 들어가게 된다.

파업이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일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앞서 말했듯이 50여 년간 쟁의행위가 한 차례도 없었기 때문이다. 노조는 “주한미군이 기지 내에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거의 모든 부문에 한국인 노동자가 고용돼 있으므로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군수지원을 비롯해 건설, 호텔, 식당, 병원, 은행, 신문사 등 200여 업종에 이른다.

고용안정 문제를 제외하면 그동안 주한미군한국인노조의 최대 현안은 임금문제였다. 지난해와 올해의 경우 임금 동결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봉착했지만, 그간 임금상한정책(Pay Cap)의 불합리함을 노조는 계속해서 주장해 왔다.

페이캡 정책은 해외 주둔 미군부대에 근무하는 해당국 노동자들에게 적용하고 있는 일종의 임금인상 상한 가이드라인으로서, 임금인상률이 당해년도 미 연방 공무원과 해당국 공무원의 임금인상률 중 높은 쪽의 임금인상률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올해 한국 공무원이 3%, 미 연방 공무원이 4%의 임금인상을 했으면 한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은 4%를 넘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해당 내용은 미국 정부가 의회법의 국방비 예산법 조문에 의거해 지난 1997년부터 적용하고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인상률은 지난 2005년부터 2%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전체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인상률보다 3~4% 뒤쳐지는 수준이며 이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간신히 상회하는 수준이다. 정책이 시행되기 이전에는 교섭을 통해 평균 10% 이상 인상해 왔다.

주한미군한국인노조는 “이미 SOFA 협정 조문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의 처우는 국내 노동법령의 제 규정에 따라야 한다고 규정한 만큼, 페이캡 정책의 강제 적용은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우리 근로기준법 상 근로조건의 결정은 사용자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의해 결정하도록 돼 있으며,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 취업규칙이 변경될 경우 노조의 동의가 필요함에도 이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조는 이 규정을 철폐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왔다. 미국 국방성과 의회를 직접 방문해 정책의 불합리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년 연속 임금이 동결된 노조는 “차라리 그동안 발목을 잡아 온 페이캡이라도 적용하라”고 울분을 터뜨리고 있다. 2009년과 2010년, 국제금융위기로 공무원 임금이 동결된 이후 보상 차원에서 지난해와 올해 각기 5.1%, 3.5%로 임금인상률이 결정된 것에 비하면 해도 너무한다는 의미다.

ⓒ 한국노총

천문학적 방위비 분담금, 다 어디로 가나?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이 사용하는 비용은 양국이 분담하고 있다. 본래 주둔지의 토지와 시설의 무상 공여, 각종 세금이나 공공요금의 감면 혜택 정도만이 주어졌으나, 지난 1991년부터 SOFA 협정을 피해갈 수 있는 방위비 분담금 특별 협정(SMA)을 맺으면서 한국은 상당 액수의 주둔비용을 부담하게 됐다.

현재 우리 정부가 보조하는 방위비 분담금은 크게 인건비, 군사건설비, 연합방위력증강사업, 군수지원 등 4개 항목에 쓰이게 된다. 방위비 분담금의 협상은 외교통상부가 맡아서 진행하며, 협정체결 이후 국회 비준을 거쳐 국방부가 이행약정을 체결하고 분담금을 집행하게 되는 구조다. 액수는 1991년에는 원화 기준으로 1,073억 원이었으나 2012년 현재 8,361억 원에 달한다. 특히 지난 2006년부터는 매년 약 200억 원씩 꾸준하게 인상되고 있다.

국방부는 방위비 분담금의 인건비 항목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금액은 주한미군이 고용한 한국인 직원들의 안정적인 고용조건을 보장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인건비 지원액은 2012년 기준으로 3,357억 원이며, 이 금액으로 한국인 노동자들의 임금 약 70%를 지원하도록 돼 있다.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를 대략 9천 명이라고 계산했을 때, 이 금액은 한 사람당 3,700만 원 정도씩 돌아가게 된다. 이 액수가 연봉의 70% 수준인 것이니 평균적으로 한 사람당 연봉은 5,300만 원 정도 되어야 하는데, 실제로 한국인 직원들이 받는 액수는 여기에 크게 못 미친다. 노조가 “방위비 분담금은 받아서 어디다 쓰는 건가”라며 반발하는 이유다.

쟁의행위 수순을 밟고 있는 주한미군한국인노조가 우려하고 있는 부분은 타 사업장과 비교해 보면 ‘냉각기간’이 45일로 길기 때문에 투쟁 동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규정에 명시된 45일이 경과한 이후라도, SOFA 합동위원회에서 노동조합의 쟁의행위가 한국의 공동 방위를 위한 미군의 군사 작전을 심히 방해한다고 결정하는 경우, 정상적인 업무 요건을 방해하는 어떠한 행동도 용인되지 않는다. 그간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다.

책임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 불명확한 부분도 노조의 부담이 되고 있다. 주한미군사령부는 군 조직의 특성상 상급 부대인 아시아태평양사령부, 미 국무성 등으로 책임을 넘기며 권한 밖의 사안이라고 일관하고 있다. 국내 담당부처 역시 앞서 언급한 대로 외통부와 국방부, 고용노동부로 역할이 나뉘어 있다. 노조는 고용노동부 국제기구담당관실에 외통부와 협의 하에 쟁의행위와 관련한 SOFA 규정의 명확한 해석을 주문한 상태다.

분단국가라는 특수성 때문에 안보 문제를 핑계로 도외시되고 있던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대해 노동조합이 50년 만에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