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의 삶의 애환, 보험설계사가 끌어 안아요
서민들의 삶의 애환, 보험설계사가 끌어 안아요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2.09.2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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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 명 규모 추산…최대 규모의 전문직
실적 위주의 경쟁은 치열…“10%만 살아남는다”
[삶의 현장] 보험설계사

“남편이 죽었습니다. 10억을 받았습니다.”

욕을 참 많이 들었던 한 보험업체의 광고 문안이다. 광고에 대해선 감정적인 비난을 쏟아낼 수도 있겠지만, 복잡다단하고 미래가 불투명한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각종 보험 상품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처럼 자리 잡았다.

보험시장도 대단히 커졌다. 과거와 비교해 보면 수많은 상품이 등장했다. 내 처지에 꼭 맞는 보험, 가려운 곳은 긁어주고 불안한 곳은 든든히 받쳐주는 상품을 소비자가 직접 고르기가 어려워졌다. 보험설계사의 맞춤형 상담이 절실해졌다. 단순히 종사자 수로만 따지자면 최대 규모의 전문직종이 아닐까 싶은 보험설계사의 하루를 살펴본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대략 30만 명…여성 인력이 대다수

보험설계사는 법조문에 명시된 호칭이다. 과거에는 주로 보험모집인이라고 불렸으나, 지난 2003년 개정된 보험업법에서 ‘보험계약의 체결을 중개하는 사람으로서 보험업법의 규정에 따라 등록된 사람’을 보험설계사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보험설계사를 부르는 이름은 제각각이다. 여전히 보험모집인, 심지어 보험아줌마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2007년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이후 보다 넓은 의미에서 자산관리사(FP, Financial Planner)로 부르는 경향도 늘어나고 있다.

순수하게 보험 부문만을 고려할 때 크게 생명보험설계사와 손해보험설계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내의 보험설계사 수는 양대 보험협회의 공시자료에 따르면 생명보험이 17만여 명, 손해보험이 14만여 명으로 30만 명을 훌쩍 넘는다.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여성 인력이다. 정확한 종사자 수는 실시간으로 바뀐다. 자격이 등록된 이들 중에 실제로 일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은 점을 감안할 때 변동이 심하다.

보험설계사가 되기 위해선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가 매달 주관하는 보험설계사 자격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그리고 금융위원회가 각 구분에 따라 정해 놓은 연수과정을 이수해야 하며, 관계 업무에서 1년 이상 근무해야 한다. 그리고 각 보험회사는 이러한 요건을 갖춘 소속 보험설계사를 필히 금융감독위원회에 등록해야만 한다.

보험설계사 자격을 획득하고 실무에 종사하고 있다고 해서 마냥 방심할 수는 없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보험 상품에 대해서 늘 교육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실적이 없으면 수입도 없다

지난 2001년부터 보험업계에 발을 담근 박순자 씨(58세), 13년차의 베테랑이다. 박 씨의 하루는 일찌감치 시작된다. 아침 8시 20분 경이면 사무실에 모여서 하루 일정과 주요 공지사항을 주고받는 미팅을 갖는다. 개별적인 성과나 목표량은 물론, 지점의 목표치도 확인하는 시간이다.

성과주의 문화가 도입되지 않은 일터가 요즘 어디있겠는가만, 보험업계는 그야말로 총탄 없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보험설계사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특수고용직 종사자이다. 근로기준법상 이들이 노동자인지 아닌지가 여전히 논란 중이지만, 법적으로 이들은 개인사업자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수입은 철저하게 실적과 연결돼 있다. 업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박 씨의 경우 기본급이 전혀 없다. 일정 수준의 계약 실적 한도를 채워야만 기본급 성격의 수당이 나온다. 만약 계약을 하나도 성사시키지 못했다면 한 푼도 가져가는 게 없다. 그밖에도 계약 건당 커미션이라든지, 성과 수당 등 이들이 받아가는 금전적인 보상은 철저하게 성과에 기초해 있다.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박 씨는 “한 해에 100명의 신입 인력이 들어온다면 그 중 10명만 살아남는다고 보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보험설계사로 사는 게 어렵다는 얘기다. 계약 건수를 채우지 못하면 자기 돈을 긁어서라도 넣어야 한다. 그나마 월급이라도 받기 위해서다. 이런 식의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누구나가 한계가 오기 마련이고 결국 일을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최근에는 은행이나 우체국 등 대부분의 금융기관에서 보험 상품을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경쟁은 치열해졌다. 물론 이들 기관에서도 보험 취급을 위해 보험설계사를 의무고용할 필요가 있다.

실적을 위한 경쟁만 치열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금융계통 종사자들처럼 보험설계사들도 업무상 사고가 생겼을 때 자비로 메워야 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박 씨는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업무 상 기본적인 수칙은 꼭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면 가입 당사자가 반드시 자필로 서명을 남겨야 한다는 점 등이 있다. 눈이 어두운 노인 가입자들의 경우 복잡한 약관과 청약 서류를 보고 대신 서명을 좀 해달라고 상담하던 보험설계사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무리 친절하게 한다고 해도 대리서명하는 경우는 금물이라고 한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고객을 알아야 고객이 는다?

간단한 아침 미팅을 마치면 보험설계사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업무를 시작한다. 고객들과 상담 약속을 잡고 만나는 일이 대부분이다. 보통 하루에 두세 건, 많게는 네다섯 건의 미팅 약속이 있다.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새로운 고객을 접하는 것만큼 기존 고객들과의 관계를 유지해 가는 것도 중요하다. 보통 보험 상품 몇 가지를 병행해서 가입하는 경우도 많으며, 설계사의 상담이 마음에 들거나 보험 상품이 만족스러운 경우 주변의 지인들에게 소개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박 씨의 경우엔 고객과 대면한 자리에서 보험 얘기부터 꺼내는 경우는 없다. 가족 이야기, 건강 이야기 등 우리네 흔한 사는 얘기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관계가 충분히 친밀해지고 고객이 필요로 하는 부분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이 갔을 때 적합한 보험 상품을 추천한다.

박 씨가 다니는 회사는 특정 보험업체의 상품만 전담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업체의 보험 상품들을 취급하고 있다. 마치 휴대폰 판매점에서 각 통신사별 모델을 전부 취급하는 것과 비슷한 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보험 상품에 대한 폭 넓은 지식이 필요하다. 새로운 상품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은 박 씨에게만 특수한 것이 아니다. 요새 보험 업계에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경기 변동이나 사회적 분위기 변화를 즉각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소비자들 역시 각종 통로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있으며, 대단히 유행에 민감하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 수집이 쉬워짐에 따라서 반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꿰고 있는 경우도 있다.

판매할 수 있는 보험 상품이 다양하고 과거와는 달리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보험에 대해서 꼭 필요하다는 인식이 강해졌기 때문에 고객층도 넓어졌다. 보험설계사들의 영업 방식이나 주요 활동 영역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역시 아직도 가장 보편적인 보험 영업 방식은 지인을 통해서 가입자를 늘려가는 방법이다. 박 씨도 주로 그런 방법으로 고객을 늘려 간다.

베테랑 보험설계사인 박 씨는 이미 충실한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는 상태다. 비슷한 또래의 중년 여성들이 주요 고객들이다. 박 씨의 상담을 만족스럽게 생각한 고객들은 본인이 가입하는 것뿐만 아니라, 가족, 친지, 친구 등 주변으로 ‘새끼’를 쳐 준다. 우수한(?) 고객 한 사람을 잘 붙잡으면 덩달아 뒤따라오는 가입 건수가 생긴다. 부러 시간을 들여 찾아가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살뜰히 고객의 사정을 챙겨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아무래도 고객과 대면하고 대화를 통해 이들의 아쉬운 사정을 살피고, 적절한 방법을 제시해 주는 일이 대부분이다 보니까 낯가림이 없고 적극적이며 활달한 성격이 보험설계사에게 잘 맞을 거라고 박순자 씨는 덧붙였다. 박 씨는 과거에 노동조합 위원장을 지낸 바 있기 때문에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 대해선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다고 한다.

일부 보험회사에서는 직원들의 정년을 정해 놓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보험설계사 일은 체력이 부치지만 않는다면 언제까지고 할 수 있는 일이다. 박 씨는 “7, 80대 연세에도 현역으로 활발히 뛰고 있는 보험설계사들이 종종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게 가능한 이유 중 하나가 비교적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보험설계사 일의 특성 때문에 그렇다. 박 씨의 경우에도 다른 중요한 일이 있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미팅 약속을 줄이기도 한다. 일하는 중간 중간 볼 일이 생기면 짬을 내기도 수월하다. 중년 여성들이 보험설계사로 많이 뛰는 것도 이와 같은 업무의 자유로움 때문이다. 보통 가사를 함께 챙겨야 하는 경우가 많은 여성들에게 일과가 꽉 짜인 일반 회사에 비해 업무 시간이 자율적이라는 점은 큰 매력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인터뷰에 응했던 박 씨가 고객과 미팅 약속이 있다고 해서 동행했다. 장소는 서울시 광진구 중곡동에 위치한 한 식당, 지하철을 타고 함께 이동했다. 마침 점심 영업이 끝나고 한가한 시간대이다. 주인과 안부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서 수다삼매경에 빠진다. 이런저런 애로사항도 어려운 점도 많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능력껏 일할 수 있어서 즐겁다고 말하는 박 씨의 발걸음이 기운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