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정책은 없고 법과 원칙만 있었다
노동정책은 없고 법과 원칙만 있었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2.09.27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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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공약 앞세운 이명박 대통령, 결국 부도수표
일자리는 못 만들고 노사관계만 악화시켜
[특집 1] 18대 대선 노동정책 ① 17대 대선노동 분야 공약

올해 12월에는 18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통령선거가 치러진다. 우리나라처럼 대통령이 사회 모든 분야에 걸쳐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정치제도 아래서는 어떤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느냐에 따라 향후 5년의 삶이 달라진다. 노동정책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18대 대선을 2달여 앞둔 지금, 향후 5년간 노동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가늠해본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더 심화된 비정규직 문제

지난 2007년 치러진 17대 대선에서는 당시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17대 대선에서 노동정책 분야의 핵심쟁점은 비정규직 대책이었다. 민주세력이라던 구 민주당이 10년간 국정을 운영하는 동안, 신자유주의 정책이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시행되면서 비정규직이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다.

당시 노동계가 추산하는 비정규직은 861만 명 규모로,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 임금의 절반인 월 120만 원선이었고,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보험 적용률을 채 30%도 되지 않았다.

17대 대선으로부터 1년여 전인 2006년 12월 비정규직법이 제정된 이후, 비정규직에 대한 법의 보호보다는 법적 규제를 피하기 위한 외주화가 활성화되는 부작용도 이미 나타난 이후였다. 당시 대선에서는 이 같은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와 비정규직법 개정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대선에서 당선된 이명박 후보는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방안을 경제성장에서 찾았다. 이른바 747공약(연 평균 7%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달성, 경제규모 세계 7위)으로 대표되는 경제성장을 통해 일자리가 늘어나면 비정규직 문제도 해소된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후보는 비정규직법에 대한 일부 후속보완조치를 약속하기도 했지만, “기업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며 당시 노동계가 요구한 비정규직법의 개정과 특별법을 통한 정규직 전환에는 반대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 5년간 결과적으로 747공약은 실현되지 못했고,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되기는커녕 노동계가 현재의 비정규직 규모를 1천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을 정도로 더욱 확대됐다. 특히, 지난 2010년 11월에 진행된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의 25일간의 파업은 사내하도급 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하기도 했다.

일자리 300만 개 만든다더니

17대 대선에서 또 하나의 쟁점은 일자리 창출이었다. 당시 각 후보들은 일자리의 질보다는 일자리 개수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각 후보들은 5~8%의 연평균 경제성장을 통해 5년간 250만~5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이명박 후보는 연평균 7%의 경제성장으로 연간 60만 개씩 5년간 3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노동계는 날로 심화되는 비정규직 문제와 양극화 문제를 거론하며 일자리의 양보다는 일자리의 질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논의 구도에 묻혀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이후 4대강 사업 등을 통해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과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4대강 사업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일자리는 한시적인 일자리일 뿐이었다. 그 개수도 정부는 34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했지만 노동계에서는 허구라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 같은 대규모 토목사업 외에도 청년인턴제 실시 등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을 폈지만, 그 성과는 미미했다. 10개월짜리 단기 아르바이트에 불과했던 청년인턴제는 청년실업자들의 외면 속에 심화되는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되지는 못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노사관계 ‘선진화’됐나?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지난 5년 내내 논란의 중심이 됐던 문제는 노사관계 문제였다. 이 기간 동안 법과 원칙은 강조됐지만 노사간의 타협은 실종됐다. 특히 쌍용차, 한진중공업 등의 정리해고 문제는 개별기업을 넘어 사회 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이른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의 정책 아래 노동계는 극도로 위축됐고, KEC, 유성기업, SJM 등 노사관계로 갈등을 겪는 사업장이 해마다 끊이지 않고 있다.

그중 핵심은 타임오프와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를 둘러싼 논란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노조법이 개정돼 전임자임금 지급이 금지되는 대신 특정 업무에 대한 타임오프제가 실시됐고, 노동계가 오랫동안 요구해왔던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됐지만 교섭창구 단일화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정부는 지난 13년간 유예돼 왔던 제도가 시행된 것이므로 뿌리 내릴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이 같은 제도가 순조롭게 정착하고 있다는 통계도 내세운다. 노사간의 힘의 우열과 비제도적 관행에 의한 노사관계가 선진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노동계는 ‘강요된 굴종’에 불과하다며 정부의 주장을 일축한다. 정부는 경영계의 노조 탄압에는 수수방관하면서 노동계로부터는 이에 대항할 수단을 원천적으로 빼앗았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또 현행 노조법이 노사 자율의 원칙을 침해하고 있으므로 이를 재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이명박 정부의 노사관계 정책은 지난 17대 대선 당시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이 된다면 정치노조, 강성노조, 불법파업을 없애겠다” “자부심 없는 사람들이나 스스로를 노동자라 부르고 노조를 만든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를 두고 노동계에서는 ‘반노조 정서’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또 노사관계 안정을 위해 법·질서를 확립하겠다는 입장도 명확히 했다. 집권 후에도 이명박 대통령은 노조를 겨냥한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철도노조의 파업을 향한 불법파업 발언이 그랬고, 유성기업지회, 만도지부 등을 향해서는 고소득 노동자들의 파업이라고 비난했다.

17대 대선 당시부터 노동계로부터 ‘노동정책은 없고 법과 원칙만 강조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이명박 후보는 당선 이후 5년간의 국정운영 과정에서 그 같은 우려가 기우가 아니었음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이런 이유로 올해 치러질 18대 대선에서 각 후보들이 어떤 노동 분야 공약을 내놓을지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