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꿈꾸고 싶은 청년들이여 오라!
다시 꿈꾸고 싶은 청년들이여 오라!
  • 김정경 기자
  • 승인 2012.09.2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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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재능 상호부조를 통한 청년협동조합의 탄생
대안적 사회안전망 넘어 신뢰와 협동의 가치 증명할 것
[현장 2] 청년연대은행의 탄생

ⓒ 청년연대은행

멀미나는 세상이다. 서점가를 점령한 베스트셀러의 제목처럼 오늘날의 청춘들은 마치 아픔을 숙명처럼 끌어안고, 천 번은 흔들려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세상을 살아간다.

한 해 1,000만 원에 가까운 등록금과 오르기만 하고 좀체 떨어질 줄은 모르는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생계형 알바에 내몰린다. 취업의 높은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학점과 영어성적, 자격증과 어학연수는 필수고, 인턴에 봉사활동 같은 사회경험도 필요하다. 사랑이라는 낭만적 감상은 사치가 된다.

이렇게 사회적 비용을 감내해가며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리지만 우승열패의 냉혹한 취업시장에서 살아남는 건 몇몇뿐. 다수의 청춘들은 취업재수생이라는 멍울을 지고 다시 경쟁의 트랙 위에 세워진다. 전쟁 같은 경쟁의 결과 이들이 얻은 건 빚과 불신이요, 잃은 건 피폐해진 몸과 마음 그리고 꿈이다.

이런 청년들이 소외됨 없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 만들어진다면. 더욱이 그 환경을 당사자인 청년들 스스로가 주체가 돼 함께 만들어 나간다면 어떨까.

신뢰와 협동의 가치를 믿으면 바보가 돼버리는 지금 여기, 연대의 힘을 믿는 우직한 청년들이 만들어가는 청년을 위한 은행 하나가 출범을 준비 중이다.     

ⓒ 청년연대은행

다양한 꿈과 재능이 모인 은행

청년연대은행(준)(이하 청년연대은행)은 지난 해 초 청년유니온 내 조합원을 위한 상호부조사업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출발했다. 그 무렵 최고은 시나리오 작가가 생활고와 지병에 혼자 힘들어하다 세상을 떠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청년유니온 1기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던 청년연대은행 조금득 상근활동가는 그녀의 죽음에서 소외된 청년들의 얼굴을 발견했다.

“그 사건이 있고 얼마 후 청년유니온 페이스 북에 한 조합원의 글이 올라왔어요. 쌀이 떨어지고 친구에게 빌린 라면도 다 떨어져 굶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었어요. 충격이었고 혹시 이 친구가 잘못된 선택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던 찰나, 조합원들이 자기가 가진 쌀과 생활비를 보태겠다는 댓글들이 막 달리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런 연대의 손길을 보면서 청년들끼리 서로 돕는 시스템이 필요하고 또 가능하겠구나, 한번 만들어보자는 확신을 가지게 됐던거죠.”

이후 함께일하는재단과 ‘불안정 노동 청년층의 대안적 사회안전망 모델 개발’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청년들의 생활전반에 대한 실태조사와 비슷한 활동을 하고 있는 조직을 견학하고 사례를 공부해나갔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동정에서 우러나오는 도움이나 무조건적인 호혜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현재 제 깜냥으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짐을 잠시 동안 조금만 나눠 져 주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 사회안전망에서 소외된 구직자, 실업자, 아르바이트생들도 이용할 수 있는 대안적 사회안전망으로서의 상호부조조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일본의 서로돕기 반빈곤네트워크와 쪽방촌 주민들이 공동출자를 통해 서로를 돕고 있는 동자동 사랑방마을공제조합의 사례는 청년연대은행을 준비하던 상근자들에게 의미있는 고민을 던져줬고, 조직을 협동조합의 형태로 가져가기로 결정한다.

ⓒ 청년연대은행

‘꿈꾸는 청년’이라는 자격

청년연대은행은 조합원들에게 출자금을 받아 기금을 마련하고 출자자들이 생활비 등 급전이필요하거나 자금이 필요할 때 대출을 지원한다. 출자금은 환급을 원할 때 다시 돌려받을 수 있다. 서유란 상근활동가는 청년연대은행이 비단 금융상호부조에 국한 돼 있지 않고 다양한 활동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말한다. 청년연대은행에서 ‘은행’은 금융활동의 창구라는 의미와 함께 다양한 청년들의 꿈과 재능이 모여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기도하다.

“저희가 궁극적으로 생각하는 건 청년들이 재정뿐만 아니라 생활적인 면에서도 서로 나눌 수 있는 공동체를 다시 세워보자는 거예요. 예를 들어 자취를 하는 청년들이 이사를 갈 때 일손 품앗이를 해준다든가 서로 안 쓰는 물건을 나누는 물품품앗이가 가능하죠. 또 요즘 최고의 스펙을 가지고 있는 세대이자 동시에 최저 취업률을 보이고 있는 세대기도 하잖아요. 그런 재능을 꼭 일터에서만이 아니더라도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고, 또 배우는 과정을 통해서 사교육 시장에 투입되는 비용도 줄일 수 있는 그런 다양한 생활상호부조의 형태를 생각하고 있어요.” 

청년연대은행 사업의 핵심 두 축은 앞서 말한 금융상호부조와 생활상호부조다. 여기에 조합원들의 요구가 있을 시에는 재무교육과 상담, 직업 상담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

금융권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을 기웃해봤던 사람들은 까다로운 신용 평가의 높은 벽을 한번쯤 경험해 봤을 것이다. 정작 돈이 필요한 사람은 가진 것 없는 그래서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이지만 상환 능력이 떨어질거라는 판단에서 대출을 받을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청년연대은행은 다르다. 누구나 인생을 살다보면 한번쯤은 거치는 귀속지위 그 이상의 의미가 없어 보이는 ‘청년’이란 타이틀도 청년연대은행에서는 중요한 가입 자격이 된다. 스스로 자립할 의지를 가진 꿈꾸는 청년이란 사실만 입증할 수 있으면 청년연대은행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기 때문이다.

ⓒ 청년연대은행

연대하는 꿈은 화수분이 된다

청년연대은행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있다. 처지가 비슷한 청년들이 출자하는 소액의 돈으로 운영되는 만큼, 안정적인 대출사업을 할 만큼의 기금이 모일 것이냐 하는 문제와 어떻게 믿고 빌려줄 것인가,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리스크에 대한 부담 등이 바로 그것이다.

“정부에서 진행하는 사회안전망은 접근성이 떨어지고, 너무 관료적으로 운영된다는 게 문제라면 민간차원에서 하는 건 아무래도 전문성이 떨어지다보니까 참여하시는 분들이 ‘어떻게 믿지’, ‘망하는 거 아냐’ 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죠. 하지만 협동조합이라고 하는 건 같이 협동해서 상생해나가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없으면 안되는 거니까요.”

청년연대은행은 재정적 문제로 이미 힘들어봤던 경험이 있는 청춘들에게 혹여 청년연대은행이 다시 추심단이되어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염려해 기본적인 상호 신뢰를 전제로 하되,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상환금 리스크까지 생각해서 제도를 설계하고 운영할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건 무엇보다 출자금 확보다. 활발한 홍보활동을 통해 조합원을 최대한 많이 늘리는 한편, 보다 안정적인 자금 확보를 위해 청년을 넘어 세대 간 출자도 고민 중이다. 하지만 대기업의 후원에 의한 출자는 은행의 설립목적에 부합하지 않아 배제했다. 출자금은 순수하게 조합원들이 십시일반 출자한 자금으로 운영하고, 다만 청년연대은행 사무국의 운영비를 비롯한 기본적인 활동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후원의 판로를 열 생각이다.

청년연대은행은 추진위원 총회 등을 시작으로 실질적인 은행 설립 초읽기에 들어갔으며 내년 1월 공식적인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조금득, 서유란 두 상근 활동가에게 앞으로의 포부를 들어봤다.

“청년연대은행을 통해서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포기)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하나 둘 꿈을 잃었던 친구들이 다시 꿈을 꿀 수 있었으면 하고, 더 나아가 함께 꾸는 꿈으로 크게 자리잡아갔으면 합니다. 자문을 하며 만났던 주위 선생님들이 그러시더라고요. 한국사회에서 는 처음 시도되는 사업이니만큼 많이 실험하고, 많이 도전하고, 또 많이 깨져라. 그 말이 정말 도움이 됐어요. 청년연대은행은 그런 가치를 실현해나가는 과정이었으면 좋겠어요.”  _금득

“저야말로 정말 불안정 노동청년의 대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청년연대은행 상근 활동가로 일하면서 배워나가는 게 참 많아요. 저처럼 앞으로 함께 할 많은 분들에게 청년연대은행은 학교 같은 역할이 됐으면 좋겠어요. 세상에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가치들이 교과서의 정답이 아니라,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하구나!’ 이런 걸 배우는 학교 말이에요.” _유란

하지만 두 상근 활동가의 궁극적인 바람은 단 하나, “망하지 않고(?) 오래오래 지속가능한 은행”을 만드는 것이다. 불신에 대한 제도적 안전장치를 만드는데 소모되는 에너지를 온전히 사람을 믿는 데 쏟아 붓겠다는 청년연대은행, 비록 아직까지 재정은 바닥일지라도, 연대하는 꿈만큼은 재물이 계속 생겨나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 화수분이 된다. 청년연대은행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