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학교비정규직 가지고 장난 그만하세요’
[기고] ‘학교비정규직 가지고 장난 그만하세요’
  • 참여와혁신
  • 승인 2012.10.0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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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 치고 생색만 요란한 황당 교과부

이선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조직위원장
살다보면 황당한 일을 가끔 겪습니다.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어떤 사람한테 100만 원을 빌려줬는데 그 사람이 돈을 갚을 생각도 안 하고 있다가 10개월이 지나서 ‘앞으로 2년 내에 당신한테 100만 원을 주겠다’고 요란하게 떠듭니다.
100만 원을 빌렸고 당장 갚아야 한다는 사실은 숨긴 채…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와. 100만 원을 준다네. 너 좋겠다.’
얼마나 어이가 없는 일입니까?
이런 황당한 일을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이 10월2일 사용자인 교과부에게 당했습니다.

추석연휴가 끝나고 개천절이 징검다리 연휴로 끼어있는 10월2일 교과부는 보도자료를 통해「학교비정규직원 신분안정 및 처우개선 강화방안」을 기습적으로 발표했습니다.
그 발표내용이 온 나라의 언론을 장식했습니다.
그 내용인 즉, ‘2014년까지 비정규직 112,903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입니다.
마치 대단히 큰 결단을 한 것처럼…

그러나 이 인원은 이미 무기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71,953명과 상시지속적업무담당자 40,950명입니다.
올해 초 노동부가 계약기간과 상관없이 ‘상시지속적 업무 담당자는 계약만료시점에서 무기계약으로 전환한다’는 발표를 이미 한 적이 있습니다.
이미 전환이 되었어야 할 인원을 14년까지 전환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미 갚았어야 할 빚을 앞으로 갚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입니까?
지난 1월 노동부가 발표한 무기계약 방침보다 2년이나 늦게 무기계약전환을 완료한다는 계획을 자랑스레 발표하는 교과부의 무식함과 후안무치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더더욱 황당한 일이 있습니다.
앞으로 ‘학교비정규직’, ‘학교회계직’이란 말을 사용하지 말고, 초중등 교육법을 개정하여 ‘학교직원’을 둘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합니다. ‘학교직원’이라고 부르겠답니다.
“헐” 호박에 줄 그어 수박 만들겠다고 매직 들고 달려드는 격입니다.
고용이 불안하고 임금이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현실은 그대로 두고 ‘비’자를 떼고 명칭만 바꿔 부른다고 정규직이 된다?
정말 어이상실입니다.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해서 학교비정규직의 법적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습니다.
학교비정규직에 대한 법률적 근거가 부족하여 유령처럼 지내왔던 우리는 학교장에 의한 임의적 채용과 재계약/고용불안이 반복되고 예산집행의 근거가 부족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이를 위해 시도교육감 직접고용으로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인사관리를 할 것을 수없이 지적해 왔습니다.
이를 받아들여 진보교육감이 있는 지역에서는 ‘교육감 직접고용’을 조례로 제정하고, 노동조합은 ‘교육공무직 전환 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습니다.
그래 백 번을 좋게 보아 이제라도 우리 주장에 동의가 됐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여기까지 동의하는 데만 몇 년이 걸렸으니 말입니다.
더군다나 교과부가 개정하겠다는 개정안은 18대 국회에서 안민석의원이, 이번 19대 국회에서는 유은혜의원이 이미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교과부가 새로 개정안을 추진할 것이 아니라 이미 발의된 법안이 통과되도록 (훼방만 놓지 말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뿐입니까? 교과부의 황당쑈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시․도교육청의 재정여건을 고려하여 연봉체계를 이르면 ’14년부터 개편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2013년도 예산안에는 학교비정규직과 관련된 예산안은 0원이었습니다.
당장 내년도 예산안에도 처우개선에 대한 반영을 하지 않았는데 ’14년까지 개선안을 내놓겠다?
구체적인 계획도 없는 임기를 4개월 앞둔 정권의 발표를 누가 신뢰한단 말입니까? 하나마나한 립서비스도 유분수입니다.

교과부가 조금이라도 학교비정규직의 처우개선에 관심이 있다면 올해 당장 예산을 확보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교과부는 정부예산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생색내기로 일관해 왔으며 결국 이번 발표 역시 지금까지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기만입니다.

▲ 서울시교육감과 직접 교섭에 나선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이 11월3일,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 1만명이 서울시청에 모여 총궐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큰 분노를 가지고 있는지 서울시청에서 확실히 보여줄 것입니다.

교과부가 기습 발표한 것이 국정감사를 코앞에 두고 생색내기용이었고, 교육공무직 법안 발의시점에 맞춰 싸움을 무마시키려는 물타기를 하려는 의도이며, 끓어오르는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의 분노에 찬물을 끼얹기 위한 대국민 사기극임을 낱낱이 밝힐 것입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조직위원장 이선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