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들고 걸으면 왜 쏟을까?
커피 들고 걸으면 왜 쏟을까?
  • 참여와혁신
  • 승인 2012.11.0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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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노벨상’ 수상한 커피의 물리학
일상의 호기심, 그 속에 과학의 재미가

동아사이언스 기자
산과 들이 울긋불긋 물드는 가을.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면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생각난다. ‘커피 한 잔’이라고 하면 흔히 그윽한 향기와 독서, 사색, 친구와의 대화 등이 떠오른다. 그런데 과학자들에게는 커피 한 잔마저도 연구 대상이 된다. 2012년 ‘이그노벨상(Ig Nobel Awards)’ 유체역학상에 선정된 ‘커피 들고 걸으면 왜 쏟아질까’와 1999년 이그노벨상 물리학상에 뽑힌 ‘비스킷을 커피에 찍어 먹는 것에 대한 최적의 연구’가 바로 그것이다.

커피 쏟는 현상도 연구의 대상이 된다

지난 9월 20일 미국 하버드대 샌더스 강당에서 2012년 이그노벨상 시상식이 열렸다. 올해의 수상 목록 역시 여전히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재미있고 기발한 연구 결과들로 채워졌다. 이그노벨상은 노벨상을 패러디해 매년 노벨상 수상자 발표 1~2주 전에 열린다. 미국 하버드대가 발간하는 과학유머잡지 ‘유별난 연구 연보(Annals of Improbable Research)’가 1991부터 선정하는 연구는 ‘기발하고 엉뚱하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들’이다.

이그노벨상 수상 분야는 노벨상과 같은 물리학상·화학상·문학상·의학상·평화상 외에도 심리학상·신경과학상·음향학상·유체역학상·해부학상 등이 포함된다. 10개 부문 모두 재미있는 연구들이 장식했지만 유체역학상을 받은 연구에 눈이 간다.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으며 가을과도 잘 어울리는 ‘커피’가 주제기 때문이다.

이 연구를 진행한 주인공은 미국 UC산타바바라 기계공학과의 루슬란 크레체트니코프 교수와 대학원생인 한스 매이어 박사다. 이들은 지난해 참석했던 한 학회에서 사람들이 커피 잔을 들고 움직이다가 커피를 엎지르는 장면을 보게 됐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짧은 순간이었지만 두 과학자는 이 현상을 그냥 스쳐보내지 않았다.

사람들의 움직임과 커피가 쏟아지는 현상에 대한 물리학적인 이유를 찾기로 한 것이다. 이들이 연구를 통해 쓴 논문은 지난 4월 26이라 ‘피지컬 리뷰 E’에 실렸는데 여기서 이들은 “바쁜 일상에서 우리는 누구나 커피 잔을 들고 걸을 때가 있고 종종 커피를 쏟는다. 하지만 이 흔한 현상이 체계적으로 연구된 적은 없다”고 쓰고 있다.

연구진은 커피를 담는 머그컵에 센서를 달고 실험을 했다. 실험 참가자가 걸을 때 움직이는 머그컵의 좌표 값과 커피가 쏟아지는 순간을 기록한 것이다. 실험에서는 머그컵의 지름과 커피가 담긴 정도, 사람이 걷는 속도, 걸을 때 머그컵에 주의를 기울이는지 여부 등을 몇 가지 변수로 뒀다.

연구 결과 자체는 조금 싱겁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머그컵에 커피가 많이 담겨있을수록, 주의하지 않고 걸을수록 더 빨리 커피를 쏟았던 것이다. 또 사람들은 평균 7~10발자국을 걸으면 커피를 흘리며, 커피를 흘리지 않고 끝까지 걸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이유는 걸음 속도에 따른 진동

사람들이 걸으면서 커피를 엎지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연구 결과에서 찬찬히 설명된다. 그것은 바로 걸음 속도에 따른 진동이다. 사람이 걷기 시작하면 속도가 빨라지다가 일정한 속도로 안정을 찾게 되지만, 실제로는 일정하게 걸을 때도 발걸음에 따라 속도가 미세하게 빨라지고 느려진다.

이렇게 조금씩 변하는 가속도를 표시하면 사인곡선처럼 진동한다. 이에 따라 손에 들고 있는 컵도 걸음 걷는 방향에 따라 앞뒤로 흔들리게 되고 컵 안의 커피도 앞뒤로 출렁거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커피 잔이 흔들거리면서 생기는 진동 때문에 커피가 바로 쏟아지는 건 아니다. 사람들이 발걸음을 옮기면서 커피 잔 속에 있는 커피의 출렁거림도 커져야 커피가 넘친다. 연구진은 에스프레소를 담는 작은 컵부터 큰 머그컵까지 다양한 크기의 컵에 담긴 액체의 고유진동수를 계산했고, 사람 걸음걸이와 머그컵 속에서 찰랑거리는 커피의 고유진동수가 같다는 것을 확인했다.

고유진동수가 같다는 의미는 사람이 걷는 박자와 커피 잔 속 커피가 출렁거리는 박자가 똑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걸음걸이와 커피 잔 속의 커피가 공명현상을 일으킨다. 그 결과 커피의 출렁거림은 더 커지고 사람들이 더 많이 걸을수록 커피를 쏟을 가능성은 더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컵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면 최대 가속도가 달라진다. 커피 잔을 신경 쓰면서 걷는 사람은 걸음 속도에 따른 움직임의 변화가 적다는 이야기다. 결국 부주의한 사람의 커피 잔이 흘러넘칠 위험이 훨씬 큰 것이다. 

연구진은 걸으면서 커피를 쏟지 않으려면 ‘천천히 걷고, 걸을 때 시선을 커피에 두며, 머그컵에 커피를 가득 채우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머그컵 높이의 8분의 1은 남겨두고, 위험하다 싶을 땐 집중하고, 너무 빨리 걸어서 걷는 박자와 커피 진동수를 맞추지 말라는 이야기다.

1999년 이그노벨상 물리학상을 수상한 영국 브리스톨대 물리학과 렌 피셔 교수는 ‘비스킷을 커피에 찍어 먹는 것에 대한 최적의 연구’를 1998년 발표했다. 비스킷을 커피에 담그면 얼마 가지 않아 부서지지만, 커피에 비스킷을 넣는 각도를 조절하면 비스킷이 부서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최대 4배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스킷에 커피가 스며드는 현상은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방향감각을 잃고 걸어가는 모습과 비슷하다. 술 취했을 때 앞뒤 혹은 옆으로 움직이듯 액체 분자도 비스킷 속의 미세한 통로를 지나 전후좌우로 움직이면서 스며드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술 취한 사람이 집까지 돌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거리가 늘어난 양의 제곱’에 비례해 늘어난다. 1km를 걸어 집으로 가는 데 1시간 걸렸다면, 3km를 가는 데 9시간이 걸리는 것. 피셔 교수는 실험으로 비스킷도 이런 확산 법칙을 따른다는 걸 증명했다. 결국 비스킷을 비스듬하게 커피에 담궈야 액체가 올라가는 시간을 늘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걸으면서 커피를 흘리는 이유나 커피에 비슷킷을 찍어 먹는 방법 등에 대한 연구는 지나치게 사소하게 또는 장난스럽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상 속의 호기심이 결국 세상에 대한 이해를 도우며 그 속에 진정한 과학의 재미가 들어있다. 평범한 일상에서 진리를 찾는 과학자들의 연구는 앞으로도 이그노벨상 등을 통해 주목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