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팡이 내가 사는 세상을 도둑질 할 수도
애니팡이 내가 사는 세상을 도둑질 할 수도
  • 참여와혁신
  • 승인 2012.11.0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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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휙휙 돌아갑니다. 끝을 알 수 없는 빠름의 경쟁에 정신이 없습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사람의 불필요한 시간을 줄여주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을 가려면 다섯 시간이 걸렸는데, 이제 두 시간 반이면 충분합니다.

그럼 내 삶에서 두 시간 삼십 분의 여유가 생긴 걸까요? 인터넷 속도가 서너 배 이상 빨라졌으니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었을까요?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에게 쉴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더 많은 시간을 일에 매달리기 ‘편하게’ 만들어주었을 뿐입니다.

여러 사람이 시간을 맞춰 한 공간에 모여 하는 회의는 줄었습니다. 대신 카카오톡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고하고 의견을 내고 일정을 공유합니다. 회의가 줄었는데, 쉼 없이 ‘카톡 카톡’하며 떠드는 바람에 스물네 시간 회의를 합니다. 일을 하며, 동시에 회의를 하는 셈입니다.

메일과 함께 곧바로 문자 메시지도 도착합니다. 빨리 확인하고 답을 달라는 것이지요. 이동 중이거나 술자리에 있으면 예전에는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탄생하자 더 이상 답을 미룰 핑계거리가 사라졌습니다. 정해진 공간에서 일하는 노동시간은 줄어들었을지 모르지만 개인의 삶 구석구석을 파고들어 여가시간을 좀 먹습니다.

공장에서 일할 때였습니다. 좋은 설비가 들어오면 일이 편해질 것이라고 관리자들이 말했습니다. 최신 설비가 들어오자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 시켜 더 많은 생산량을 요구했습니다. 힘을 쓰는 일은 줄었는데 퇴근을 할 때면 몸이 더 녹초가 되었습니다. ‘더’ 최신 설비가 들어서자 신입사원을 뽑지 않았습니다. 내가 공장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넓어졌고 사람과 간격은 멀어졌습니다. 사람은 사라지고 최신 장비의 숲에 갇혔습니다.

대통령 후보들이 너나없이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일자리를 만들려면 사회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나 가치를 높여야 합니다. 사람의 가치가 산업이나 과학기술의 발전보다 우위를 차지할 때 가능합니다. 사람이 없어도 가능한 산업 시스템을 만들지 않아야 하고, 적은 사람이 더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거부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대통령 후보의 발걸음을 쫓아다니거나 입을 옮기는 특집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이 무엇을 해주겠다는 걸 바라거나 비판할 생각도 없습니다. 시민들이 바라는 대통령을 찾고 싶습니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무얼 할까를 들었습니다. 그 대통령이 레즈비언일 수도 있고, 미혼모일 수도 있습니다. 아픔을 해결하겠다는 대통령보다는 아픔을 함께 겪어 본 대통령이 소중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자리의 고통을 아는 게 아니라 오감으로 겪었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눈물에 연민을 표하는 대통령이 아닌 함께 피눈물을 흘려본 대통령이 필요하지는 않나요. 대안이나 대책도 없이 당장의 표를 위해 남발하는 공약 대신 고통 받는 이와 함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두 주먹 불끈 쥐고 주저앉은 무릎을 일으켜 세우는 대통령이 당신 곁에 있다면…….

과학기술의 발전에 놀라워 할 때 사람의 가치는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책 대신 애니팡에 폭 빠져 있는 동안 내가 살아야 하는 세상을 누가 도둑질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이고 역사가 있는 종이 언론들이 폐간한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먹고 살기 힘들어지고 사람의 가치는 땅바닥에 떨어졌지만 그래도 밥 먹고 힘냅시다.

홍대 언저리에서 <참여와혁신> 취재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