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보건지킴이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보건지킴이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2.11.0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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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전에 예방, 인식을 바꾸자
전국 5개 지역 공단밀집지구에 위치
[현장 2] 광주 근로자건강센터

소규모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평소 소홀하기 쉬웠던 건강관리와 직업성질환 예방을 전문가들에게 무료로 상담받을 수 있는 근로자건강센터가 주목받고 있다. 체지방량을 비롯해 혈압, 혈당 등 성인병에 대한 검진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만성적인 근골격계 질환에 대해서도 일시적 치료가 아닌 근본적 재활 방법에 대해 상담받을 수 있다. 매달 각 센터마다 700~8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찾아와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지만, 센터의 종사자들은 아직 널리 알려지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 박종훈 기자 jhpark@laborplus.co.kr

성인병·근골격계 질환, 원인부터 관리

근로자건강센터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사장 백헌기)이 대학병원 등 직업건강전문기관에 사업을 위탁해 운영하고 있으며 인천, 광주, 시흥, 대구, 창원 등 전국에 5개 센터가 산재해 있다. 해당 센터들은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이 밀집한 공단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향후 운영되는 센터는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산재보험에 가입했는지를 기준으로 지난 2010년 말 국내의 사업장 수는 1,608,361 곳이다. 이중 50인 미만 사업장 수는 1,569,587 곳으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종사자 수만 해도 7,662,110 명이다. 대략 절반 이상의 노동자들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들 사업장의 재해율은 대규모 사업장에 비해 매우 높다. 500인, 1,000인 이상 사업장의 재해율이 0.1~0.2% 수준인 반면, 1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1.5% 수준이고 30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0.59%에 달한다.

전 산업 평균치를 살펴보면 지난 2000년 이후 0.7% 수준으로 산재율이 낮아졌으나 그 뒤로 더 이상 감소되지 않고 있다. 공단의 관계자들이 ‘마의 0.7%’라고 표현할 만큼 산재율을 더 줄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이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산재 발생 건수의 약 80% 가량이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공단 관계자는 설명한다.

대규모 사업장의 경우 자체적인 안전보건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여력이 부족한 소규모 사업장을 지원하기 위한 안전보건사업 모델로 제시된 것이 바로 근로자건강센터이다. 각 센터에는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와 산업보건 간호사, 산업위생기사, 근골격계 전문가, 심리상담사 등의 인력이 기본적으로 배치돼 있으며, 작업장 내 안전보건관리에 대한 지원과 협조를 구하는 사업주들은 물론, 개별 노동자들이 쉽게 찾아와 이용할 수 있다.

ⓒ 박종훈 기자 jhpark@laborplus.co.kr

50인 미만 사업장에 산재도 많더라

지난해 4월 설립된 광주근로자건강센터(센터장 이철갑 조선대학교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하남산업단지 내 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에 위치하고 있다. 올해 2월부터는 조선대학교병원이 사업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으며, 입지 면에서 하남산업단지 외에도 북쪽으로 위치한 첨단산업단지, 남쪽의 평동산업단지 등 3개 산업단지를 주요 관리지역으로 설정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근로자건강센터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산업안전보건사업의 모델이다. 기존에는 단순히 검진과 치료라는 2차원적 개념에만 익숙했던 사업주나 노동자들에게 예방적인 관리라는 개념은 아직 낯설다. 이러한 인식의 부족, 그리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접근성의 부족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가 광주센터를 비롯한 전국의 근로자건강센터에서 풀어야할 우선적인 과제다.

광주센터에 파견돼 있는 송한수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근로자건강센터는 수요자들이 센터를 내방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운영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센터의 존재를 널리 알리고 언제든지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전국의 각 센터마다 지역이나 업종의 특성에 맞게 특화된 사업 분야가 두드러진다. 예를 들면 외국인근로자들이 밀집한 지역에서는 통역 인력을 배치하는 등의 서비스가 특화돼 있으며, 광주센터의 경우 근골격계 질환에 노출되기 쉬운 요양보호사와 운수, 건설부문 노동자들의 건강관리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광주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기은정 팀장은 “통상 정형외과 등 치료기관에서는 X-RAY 촬영과 물리치료, 투약 등의 치료 활동에 중점을 두는 반면, 센터에서는 원인을 진단하고 예방하는 방법을 주지시키는 데 역점을 둔다”며 “스트레칭이나 작업자세 교정 등을 통해 노동자 스스로가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말했듯이 근로자건강센터를 널리 알리기 위해 이동 상담이나 사업장을 방문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광주센터에서는 운영 중에 있다. 10월 12일에는 시내버스 기종점에 이동검진소를 설치하고 운행을 마친 버스기사들을 대상으로 무료 검진서비스를 벌이기도 했다. 송한수 교수는 “기본적으로 센터를 방문해 프로그램을 이용하도록 유도해야 하지만, 사업 초기 단계에서 홍보의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이동검진이나 상담 프로그램도 당분간 병행하고 있다”며 “지역 내 적합한 사업장이나 업종을 탐색하는 데에만 한 달여 노력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 박종훈 기자 jhpark@laborplus.co.kr

“기본적으로 수요자 내방 중심 운영돼야”

광주 근로자건강센터는 지역 내 노동조합 및 노동조합 상급단체들의 협조를 구해 센터 홍보와 건강검진 및 안전보건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소화하고 있다. 12일 이동검진 활동을 벌인 광주광역시 동구 월남동의 시내버스 기종점 역시 자동차노련과 운수노조의 협조 아래 장소를 섭외했다. 또한 건설노조와의 협약을 통해 조합원들이 센터를 방문해 건강관리를 받도록 유도하고 있으나 아직 실적은 미흡한 상태다.

버스기사나 택시기사 등 운수업 종사자들은 업무의 특성상 비만이나 고혈압인 이들이 많다. 장시간 좁은 공간에서 운전을 해야 하므로 운동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의 이유 때문에 허리나 어깨 등의 관절 부위 역시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또한 성별이나 연령대를 감안했을 때 흡연자의 비율도 높기 때문에 뇌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성이 높다고 한다.

이날 이동검진소에서는 혈액검사와 체질량, 체지방 측정, 폐활량 측정 등의 검사가 진행됐다. 아울러 개인적인 차원의 건강관리에 대해 포괄적인 상담이 진행됐으며, 검사 결과에 따라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적절한 의료기관이나 진료와 연계해 환자를 인계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지역관할 보건소에서 실시하고 있는 금연 프로그램이나 뇌심혈관계 질환 예방 프로그램 등과도 연계해 지자체와 진료기관, 예방기관의 3박자가 어울어지는 관리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광주센터는 추후 학교급식조리 담당자들에 대한 상담활동도 진행할 계획이다. 앞서 언급한 요양보호사들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반복적인 근골격계 부담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뜨거운 음식을 조리하고, 물 묻은 바닥에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서 산재 발생도 많은 편이다. 하지만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이들 노동자들이 몸에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더라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게 쉽지 않다. 사비를 들여서 진료기관을 찾으면 일시적으로 증상을 완화시키는 치료만 받게 된다. 통증을 없애더라도 일터에 나가면 다시 몸에 부담이 오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스스로 간단히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스트레칭에 대한 교육이라든가, 몸에 부담을 덜 수 있는 보조도구를 적용하는 방법 등에 대해 접근하고 있으며, 산업위생기사나 직업환경의학 전문의가 작업현장을 방문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활동도 기획 중이다. 현재 지역 내에서 의사를 타진해본 결과 관계자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어 조만간 구체적인 사업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광주센터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근로자건강센터도 아직 그 역사가 짧다. 송 교수는 “향후 2~3년간 개별 센터가 진행했던 프로그램의 아이디어와 경험들이 축적되고 서로 공유하게 되면 예방관리 부문에서 상당한 수준의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앞서 언급한 학교급식조리 담당자들에 대한 검진 및 상담 활동은 경남 근로자건강센터에서 해당 업종에 대한 프로그램을 진행한 바 있다.

ⓒ 박종훈 기자 jhpark@laborplus.co.kr

운수노동자·급식조리사, 찾아가는 홍보 활동

광주 근로자건강센터에서 올해부터 전담 인력을 배치하고 수행하고 있는 사업 중 하나가 심리상담 프로그램이다. 육체적인 건강관리 못지않게 소규모 사업장 종사자들이 도외시 해 왔던 분야이기 때문이다. 직장과 일상생활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자기 이해를 통해 이를 관리하고 조절할 수 있도록 하며, 필요한 경우엔 전문기관과 연계해 심화된 대응이 가능하게 한다. 개별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그룹별, 단체별 집단 상담을 통해 접근하기도 한다.

광주센터에서 심리상담사로 있는 조현미 씨는 “일단 센터에 내방해 상담을 신청한 것 자체가 자기관리의 의지가 있다고 봐야하기 때문에 대부분 결과가 좋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시간과 비용’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정신적인 건강에 대해 방치하는 경우가 많았다고도 덧붙였다.

최근에는 상담 프로그램을 찾는 이들이 대인관계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직장 내 동료관계에 있어서 어려움을 느끼고, 문제가 심화될 경우 우울증이나 공황장애가 오기도 한다. 조 씨가 상담을 진행했던 한 요양보호사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심한 피해의식을 느끼고, 정도가 점점 심해진 나머지 정신병원을 찾기 직전에 센터의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이 경우에는 두 달에 걸쳐 꾸준히 상담을 진행한 결과 결과가 매우 호전됐다고 한다. 조 씨는 “과거에는 가족이나 친구 등 개인적인 네트워크 안에서 해소하고 치유될 수 있던 정신적인 문제들이 요즘에는 그 창구가 막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센터의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찾는 이들을 사례를 보면 과중한 업무로 인한 부담감, 불안한 고용상태나 노사 간 갈등 등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보다 앞서 말한 대로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느끼는 불편함이 다수를 차지한다. 따라서 부부관계에 대한 상담이라든지, 일터 내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한 대인관계 개선 등을 겨냥한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다.

정신건강 방치되는 현실

광주 근로자건강센터는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다. 앞서 살펴봤듯이 근로자건강센터는 이미 발생한 질병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질병이 발생하기 전에 위험 요인을 사전에 파악하여 이를 통제하기 위한 예방활동을 수행하는 곳이다. 각 사업장에서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근로자건강검진이 이미 상당히 정착돼 있긴 하지만, 검진 결과를 해석하고 어떻게 사후관리를 할 것인가에 대해 상담하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곳은 대단히 부족하다. 따라서 건강검진 자체도 의례적이고 요식행위에 그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규모 사업장의 경우 보건관리실을 두고 전문 인력을 채용해 이와 같은 부문을 담당하게 하게 한다. 하지만 중소 사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근로자건강센터가 이런 현실적인 아쉬움을 해소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사업 자체가 시행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다양한 실험을 통해 효과적인 모델로 자리 잡아야 한다. 통계상 수치로 살펴봤듯이 다수의 중소사업장 노동자들과 사업주들을 대상으로 하기 위해서 양적인 확장도 필수적이다.

무엇보다도 노동자들과 사업주들이 근로자건강센터를 친근하게 대하고 주저 없이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게 급선무이다. 송한수 교수는 센터와 이용자들 사이에 ‘라포(rapport)’를 형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라포는 상호간에 마음을 열었을 때 쌓이는 신뢰관계를 가리킨다. 호기심에 한번 방문해볼 순 있지만, 재방문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선 이용자와 센터간에 라포가 형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에 있어서 근로자건강센터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게 될 지 주목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