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평온함을 만나다
길의 평온함을 만나다
  • 김현정 기자
  • 승인 2012.11.01 17:51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용불안과 자부심 사이의 엔지니어
고속도로 통신 설비를 관리하는 DB정보통신
[삶의 현장] DB정보통신 고속도로 통신설비 관리원

고속도로는 평온하다. 요금을 내기 위해 잠깐 멈춰 서는 것을 빼면, 차들의 흐름은 유유하다. 고속도로의 이런 풍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기계와 사람이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지능형 교통 시스템을 관리하는 DB정보통신 사람들을 빼놓을 수 없다.

서해안고속도로에 위치한 한국도로공사 서서울영업소에서 DB정보통신 사람들을 만났다. 위험하고 고달픈 현장의 목소리는, 곧게 뻗은 탄탄한 도로와 대비됐다. 서서울영업소는 평일만 해도 20만 대의 차량이 지난다. 주말에는 통행량이 26만 대까지 늘어날 만큼 중요한 길목이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서울영업소가 가장 복잡할 것 같지만, 서서울영업소의 통행량이 더 많다고 한다. 요금소의 출입구는 상행선과 하행선을 합치면 33개나 된다. CCTV와 전광판 등 관리해야 하는 각종 기기들은 100개를 훌쩍 넘는다. 하지만 영업소마다 배치된 DB정보통신의 평균 인원은 2.5명이다. 길은 그렇게 유지된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그래서 올해는 어떻게 된대요?”

DB정보통신은 지능형 교통 시스템(ITS : Intelligent Transportation Systems)의 설비 관리를 수행하는 기업이다. 고속도로에 설치된 통신, 촬영 장비 등을 유지 관리하고 교통정보의 관리도 담당하고 있다. 지능형 교통 시스템은 세부적으로 차량검지장비(VDS : Vehicle Detection System)와 도로전광표지판(VMS : Variable Message Sign), 근거리전용통신(DSRC : Dedicated Short Range Communication)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설비와 시스템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교통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쉽게 생각하면, 고속도로에 설치된 장비들을 관리하는 것은 한국도로공사의 업무로 보기 쉽다. 그러나 한국도로공사는 발주처일 뿐이고, 계약을 따낸 업체가 교통 시스템을 실질적으로 관리하게 된다.

본래는 한국도로공사의 일이었지만, 지속적으로 추진된 민영화는 한국도로공사의 업무 영역도 축소시켰다. 한국도로공사의 100% 출자로 설립됐던 고속도로정보통신공단은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따라 민영화되어 민간에 매각됐고, 지금은 DB정보통신이라는 이름으로 15년째 고속도로 유지 보수를 담당하고 있다.

이름이 바뀌고 업무체계는 변화했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같다. 고속도로의 안전을 책임지는 모든 장비들을 관리하고, 운전자들의 안전을 지키는 일도 같다. 차들이 달리는 도로에서 맨몸으로 일해야 하는 위험성도 같다. 시간을 다투는 촉박함 속에서 긴장하며 일해야 하는 것도 같다. 그렇지만 한 가지, ‘다음 해에 대한 불안감’은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몇 년에 한 번씩 계약을 해서 일을 하게 되니까 계약 만료 시점이 되면 불안해지는 거죠. 그나마 원래는 3년 계약이었던 걸 2년으로 줄인다고 하니까 더해요, 불안감이. 올해가 계약 만료되는 해인데, 찬바람 불기 시작하니까 일하다가도 문득 불안해지고 그런 거죠. 동료들도 만나면, 인사가 그 얘깁니다. ‘그래서 올해는 어떻게 된대요?’”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무개념 운전자와 문자메시지

DB정보통신의 업무 영역 중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부분은 하이패스 시스템이다. 차를 세울 필요도 없이 요금 정산을 가능하게 하는 하이패스야말로 첨단 교통 시스템의 대표주자다.

하이패스 차로의 정기점검은 한 달 단위로 짜인 계획 아래 이뤄진다. 진입 차로를 200m 정도 막아두고 점검 체크리스트에 따라 작업이 진행된다. 기본적인 전압을 측정하고, 하이패스 단말기로 통신영역을 검사한다. 공중에 있는 장비를 점검하기 위해서는 직접 올라가기도 해야 한다. 하이패스는 무선통신으로 돈에 대한 데이터를 주고받기 때문에 점검 과정에서도 예민하게 다룰 수밖에 없다.

보는 입장에서는 때때로 아찔했다. 점검을 위해 공중으로 올라가고 차들이 옆으로 지나가는 모습은 꽤 위험해보였다. 위험한 고속도로에서 하는 작업인만큼 안전 확보를 위한 조치가 가장 먼저 이뤄진 후에 점검이 시작되지만, 제 갈길 가는 차들까지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DB정보통신 내부적으로도 안전교육이나 안전을 위한 결의대회에 신경을 쓰고 있다. 사고 예방을 위해 안전장비 착용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아무리 철저한 준비도 ‘무개념 운전자’ 앞에서는 소용이 없다.

“솔직히 우리가 아무리 조심하면 뭐합니까. 차로를 막아놔도 뒤에서 확 들이받아 버리면 끝인데요. 화물차가 밀어버리는 경우는 왕왕 있어요. 갓길사고도 많고, 졸음운전자도 위험하죠. 우리는 뭐 일하다 죽는 사람도 나오는데요, 그냥 부딪히는 사고야 많죠.”

시간이 주는 중압감도 상당하다. 고속도로 위의 고장은 완벽하게, 그리고 빠르게 고쳐져야 한다. 일례로 하이패스 차로의 경우, 고장 발생 후 3시간 내에 수리가 완료돼야 한다는 항목까지 계약에 포함되어 있다. 꼭 계약 때문이 아니더라도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끊임없이 시간의 압박이 들어오는 것은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나름대로 체계가 잡혀있고 노하우가 있거든요. 그래도 솔직히 ‘몇 시간 안에 고쳐 놔라’, 이런 건 좀 힘들죠. 9월에는 안산톨게이트 차로 장비가 한 번에 다 죽어버린 적이 있어요. 그건 담당 직원만으로 안 되니까 여러 군데서 지원 나가고 15~16명이 작업했죠. 보이는 시설물만 있는 게 아니고 노선이나 바닥에도 장비랑 센서 같은 것들이 많으니까요. 그거 살려놓는데 2박 3일 밤 새다시피 했어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근데 우리 직원들이, 뭐가 하나 고장이 나면 다 고칠 때까지 밥 못 먹고 퇴근 못하고 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단 말이죠.”

고속도로의 안전을 유지하는 일에는 밤낮이 없다. 도로 위의 문제들도 근무시간에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DB정보통신 직원들의 휴대폰에는 장비의 이상을 알리는 문자메시지가 24시간 들어온다. 밥을 먹다가도 문자가 오면 뛰어가야 하고, 휴가를 가더라도 문자메시지를 받으면 마음이 불안하다. 무거운 족쇄 같은 문자메시지에 시달린 세월이 10년을 훌쩍 넘기니, 문자메시지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라고 한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추위를 이기는 자부심

고속도로에는 과속 단속 카메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평소에는 잘 의식할 수 없지만, 교통정보 수집을 위한 CCTV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지에 상관없이 필요한 교통정보를 얻을 수 있다. TV나 라디오에서도 교통정보를 알려주고,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도 실시간 교통정보를 볼 수 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바로 눈앞에 가져다 주기 위해서는 꽤나 유기적이고 복잡다단한 시스템을 거쳐야 한다. 중간에 한 단계라도 이상이 생기면 첨단의 시스템도 의미가 없다. 잘 갖춰진 시스템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이 일이 신속성도 중요하고 업무 협조도 중요해요. 사람들 안전도 걸려있는 거고, 차량 소통도 빨리 이뤄져야 하는 거니까 신속한 대처는 기본이죠. 그런데 신속한 대처가 되려면 업무 협조도 필요하거든요. 우리가 유기적으로 통합 관리를 하니까 아무래도 빠른 대처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CCTV는 고속도로의 말초신경인 셈이다. 도로망을 따라 설치된 카메라들은 최초의 정보를 수집하고 시스템의 최전선을 지킨다. 그래서 높은 곳에도 낮은 곳에도 빠짐없이 있어야 하고, 한 대의 기기도 소홀히 다룰 수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CCTV는 온도에 약하다. 아주 덥거나 추울 때는 작동에 이상이 생길 확률이 높다. 즉, 안 그래도 힘든 여름과 겨울에 CCTV를 정비하러 공중으로 올라갈 일이 더 많이 생긴다는 뜻이다.

“대관령에서 근무할 때는 겨울이 진짜 힘들었어요. 영하 20도 되면 CCTV가 작동을 멈추는 경우도 생겨버리고, 성에 끼고 하는 것도 닦아줘야 돼서 자주 올라가야 되거든요. 일단 올라가면 내려오기 힘드니까 줄을 내려서 먹을 걸 올려주고 그래요. 올라가긴 올라가는데 워낙 추우니까 작업하는 동안 손도 다 얼어버리는 거죠. 그럼 내려올 때는 사다리를 잡을 수가 없는 거예요, 손이 곱아서. 손으로 못 잡고 팔꿈치를 걸고 버티면서 내려왔죠.”

혹독한 환경과 싸워가며 일하기 위해서는 고단함을 메워줄 기쁨이 있어야 할 것이다. DB정보통신 사람들에게, 그것은 자부심인 듯 했다. 한 부문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진 엔지니어라는 자부심은 대화 곳곳에서 묻어났다. 실제로 DB정보통신 직원의 94% 이상이 산업기사 이상의 자격을 갖고 있다. 기계와 사람을 상대하며 생긴 속 시끄러운 일이 한두 개가 아니겠지만, 엔지니어들의 깊은 자부심이 고속도로를 평온하게 만든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돈 때문에 안전을 줄인다?

서울외곽순환도로에 위치한 수리터널과 수암터널의 관리 역시 DB정보통신이 담당하고 있다. 수리터널과 수암터널의 길이는 각각 1.8km, 1.3km를 넘는다. 한 터널에 설치된 CCTV만 28대에 달하고, 조명과 공기순환기 등 관리 대상에 들어가는 다른 장비들도 빼곡히 설치돼있다. 관리사무소에 상주하는 7명의 직원은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그것도 주간 4명, 야간 3명의 근무 인원으로 24시간 터널을 모니터링하고 있으니 식사를 하는 것도, 화장실에 가는 것도 자유롭지 못하다.

“장대터널 관리는 특히 힘듭니다. 하루 종일 모니터를 쳐다보면 식사를 제대로 챙기기도 어려워요. 뭐라도 해먹으면 좋겠지만 시간이 없으니까 앉은 자리에서 도시락 먹고. 먹다가도 일 있으면 바로 터널로 들어가야죠. 터널에 들어가는 것도 일이에요, 진짜. 사람 다니는 길은 좁은데 옆에 화물차라도 지나가면 아찔하죠. 공기는 더럽고, 시끄럽기는 엄청 시끄러워서 가는 귀 먹은 사람도 많습니다. 좁은 데로 차들이 바람 몰고 다니니까 겨울에는 또 엄청나게 춥고요.”

최근 1km를 넘는 장대터널의 관리를 무인화 하겠다는 한국도로공사의 계획이 발표됐다. 장대터널의 증가로 관리 비용이 늘자, 예산 절감을 위해 무인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예산을 줄이고 인력을 줄여 수치상의 효율성을 확보한다는 발상은 낯선 것이 아니다. 몇 년간 지속된 민영화 시장화 정책 속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된 패턴이다. 그래서 예산 절감의 결과 역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터널 관리의 무인화를 통해 줄어드는 예산과 인력만큼 안전도 줄어들 것이다. 특히 터널의 경우, 사고에 대한 신속한 초동대처가 없다면 2차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2011년에 수암터널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사고는 300건이 넘는다. 하루 평균 0.7~0.8건의 사고가 발생하는 셈이다. 터널에서는 조도와 시야에 갑작스런 변화가 생겨 아무래도 사고의 위험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사고의 빈도도 높고 2차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큰 터널 관리에서 인력과 예산의 축소를 생각한다면, 안전의 축소도 각오해야 한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고속도로를 고속도로답게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교통 시스템에도 이미 ‘지능’과 ‘정보’가 접목됐고, 사람들은 앞으로 더 편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요구할 것이다. 더 좋은 기계와 시스템에 대한 투자와 연구도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도 필요할 것이다. 예산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은 점점 뒤로 밀려나고 있다. 하지만 최고의 설비도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사람이 없다면 고철에 불과하다.

DB정보통신노동조합 경기지부 서동원 지부장이 연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고속도로에 관련된 많은 업무들이 외주화 내지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연대를 통해 고용불안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소속된 회사는 달라도, 하는 일은 달라도 공동의 노력으로 고용의 안정을 얻는다면 그들이 제공하는 대국민 서비스의 질도 향상되리라는 생각이다.

‘빠름’은 휴대폰만의 미덕이 아니다. 고속도로의 미덕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속도로에는 편안함과 안전도 필요하다. 운전자가 빠르고 편안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원하는 곳까지 갈 수 있어야 고속도로라는 이름이 어울린다. 속력과 편안함과 안전. 고속도로를 고속도로답게 만드는 세 가지는, 사람으로부터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