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하청, 불법인가 합법인가
사내하청, 불법인가 합법인가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2.11.0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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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되는 정규직화 요구 vs 고용유연성은 어떻게?
대선 앞둔 정치권, 비정규직 문제 해결 요구 높아
[분석 2] 불법파견 문제 어디까지 왔나?

ⓒ 참여와혁신 DB
지난 2010년 11월 15일,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현대자동차 생산라인이 멈춰 섰다. 그로부터 25일간 지속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파업은 사내하청 문제를 전 국민적인 관심사로 바꿔 놓았고, 수많은 과제를 남긴 채 마무리됐다.

그로부터 2년 가까이 흐른 지금, 사내하청 문제는 어디까지 와 있을까?

8년을 끌어온 불법파견 문제

국정감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10월 10일, 금속노조는 국회 정문 앞에서 불법파견 문제를 고용노동부 본부 국정감사의 의제로 채택하고, 정몽구·정의선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 부자를 증인으로 채택하라는 요구를 담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8년 넘게 끌어온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문제에 대해 이제는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요구였다.

현행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제조업의 직접 생산 공정에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자동차산업을 비롯한 제조업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파견노동자냐 도급노동자냐 하는 것이다. 파견노동자라면 그 자체가 불법으로 파견법에 따라 고용의무가 주어진다. 반면 도급노동자에 대해서는 이를 규정하는 법률 자체가 없다.

제조업, 특히 자동차산업에서의 불법파견 논란은 8년 전 노동부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들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내리면서 본격화됐다. 지난 2004년 9월 당시 노동부가 현대자동차 울산·아산공장 사내하청업체 21곳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다. 노동부는 같은 해 10월 전주공장 12개 업체에 대해서, 12월 울산공장 101개 업체, 아산공장 14개 업체에 대해서 각각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다. 모두 127개 사내하청업체에 대한 불법파견 판정이 내려진 것이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도급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실상 사용사업주인 현대자동차로부터 지시와 감독을 받고 있기 때문에 파견노동자라는 판정이었다.

이듬해인 2005년부터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이른바 ‘불법파견 투쟁’에 돌입했다. 고용의제(사용사업주인 현대자동차가 해당 노동자를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가 적용되던 당시 파견법에 따라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은 현대자동차에 직접 고용된 정규직이므로,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로 내걸고 투쟁에 들어간 것이다.

당시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조(울산)는 5공장사업부 파업과 1, 2, 3공장사업부 잔업거부를 통해 정규직화를 요구했다. 그해 파업에 나섰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집단해고를 당했지만, 결국 현대자동차로부터 불법파견 특별교섭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런데 검찰은 이 같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의 근거가 됐던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에 대해 다른 판단을 했다. 2006년 노동부가 현대자동차를 파견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에 대해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2007년 항고도 기각한 것이다.

법원의 판단도 갈렸다. 2005년 파업으로 인해 해고된 울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중 90명은 그해 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8년에 걸친 기나긴 소송의 시작이었다. 지노위로부터 부당해고를 인정받지 못한 이들은 중노위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중노위 역시 2006년 7월 이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들 중 15명은 2006년 8월 행정법원에 중노위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2007년에 진행된 1심과 2008년에 서울고법에서 진행된 2심에서 거듭 패소했다. 2심 패소 이후 2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대법원에 상소했고, 대법원은 그들 중 최병승에 대해 2010년 7월 22일 원심인 2심의 판결을 깨고 파기환송을 결정했다.

2011년 2월 서울고법에서 진행된 파기환송심을 거쳐 2012년 2월 23일 대법원은 최병승에 대한 해고가 부당해고였음을 다시 한 번 확정했다. 이 같은 재판 결과에 따라 지난 5월 중앙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 재심판정에서 절차를 위반한 부당해고로 판정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가 이에 불복해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8년을 끌어온 소송이 계속되고 있다.

2005년 파업으로 인해 해고됐던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7명도 그해 말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을 냈다. 2007년 6월에 내려진 1심 판결에서 7명 중 2년 이상 일한 4명의 노동자는 현대자동차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2010년 11월에 열린 2심에서도 원심이 유지됐고, 현재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 참여와혁신 DB
성과 없이 끝난 비정규직 파업

2010년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소송에서 잇따라 승소 또는 일부 승소하면서 이들의 정규직화 요구가 점차 고조되던 때였다. 그해 7월 22일 대법원은 최병승에 대해 원심을 깨고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고, 11월 12일에 열린 현대자동차아산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에 대한 근로자지위 확인소송 2심에서도 일부 승소 판결이 내려진 터였다.

그런데, 같은 해 11월 14일 폐업한 사내하청업체에 소속돼 있던 노동자들이 11월 15일 새벽 시트1공장에 진입해 라인을 세우고 농성에 들어가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울산)는 폐업에 맞서 바로 CTS라인을 점거한 채 파업에 들어갔고, 아산지회와 전주지회도 파업에 동참했다. 25일간 진행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파업이 시작된 것이다.

파업이 시작되기 전, 현대자동차비정규직3지회는 ▲ 사내하청 노동자 정규직화 ▲ 부당해고 조합원 정규직 원직복직 ▲ 사내하청 노동자 입사일 기준 차별 미지급 임금 지급 ▲ 비정규직 노동자 구조조정 중단 등을 요구하며 현대자동차에 교섭을 요청했지만, 현대자동차는 이 같은 교섭요구를 4차례에 걸쳐 거부했다. 이에 따라 현대자동차비정규직3지회는 쟁의행위 절차를 거쳐 쟁의행위를 가결하고, 업체 폐업이 있을 때에는 즉시 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의한 상태였다.

이렇게 시작된 파업은 뚜렷한 성과를 남기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당초 ▲ 사내하청 노동자 전원 정규직화 ▲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 관련 부당해고 조합원 전원 정규직 원직복직 ▲ 입사일 기준 미지급 임금 지급 ▲ 비정규직에 대한 구조조정(무급휴가, 계약해지 등) 중단 ▲ 부당징계, 구속, 수배 조합원에 대한 피해보상 ▲ 고 류기혁 열사 명예회복 ▲ 대국민 공개사과 ▲ 비정규직 불사용 노사합의를 요구했지만 파업을 통해서 얻은 것은 전무했다.

대신 파업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 농성장 비정규직 고소고발 및 치료비 등 해결 ▲ 농성자의 고용 보장 ▲ 지도부의 사내 신변 보장 ▲ 불법파견 교섭에 대한 대책 마련으로 요구안이 바뀌었다. 게다가 이후 진행된 교섭에서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현대자동차비정규직3지회가 교섭단을 구성해 5차에 걸쳐 교섭을 진행했으나, 합의서 작성을 위한 회의에서 현대자동차비정규직3지회의 입장차이로 어떠한 합의도 도출하지 못한 채 교섭은 결렬됐다.

또 이 파업으로 울산에서만 6명이 구속되고 32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형사사건으로 약식기소된 인원도 모두 9건에 걸쳐 253명이며 벌금은 8억2,180만 원에 달한다. 손해배상도 모두 6건에 걸쳐 336명에게 82억 원의 벌금이 청구됐다. 금속노조가 2011년 5월에 집계한 바에 따르면 사법처리 외에도 해고 104명, 정직 659명 등 모두 1,500여 명이 징계를 받았다.

ⓒ 참여와혁신 DB
사내하청 왜 사용하나?

지난 10월 15일 진행된 부산지방고용노동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문제가 이슈가 됐다. 심상정 의원은 이날 국정감사에서 지난해 현대자동차의 당기순이익 4조7,400여 억 원 중 6% 수준인 2,859억 원이면 사내하청 노동자 8,27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놔 눈길을 끌었다.

심 의원이 제시한 바에 따르면 지난 6월 현재 현대자동차에는 사내하청 중 생산하도급이 7,382명, 한시하도급으로 불리는 기타하도급이 888명, 식당·청소·경비 등 간접하도급이 4,685명, 파견근로가 250명 등 총 13,205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정규직과 사내하청 노동자의 급여 차이를 감안할 때, 이 중 생산하도급과 기타하도급 노동자를 합해 8,270명을 정규직(현대자동차 직접고용)으로 전환할 경우 추가로 소요되는 비용은 2,859억 원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의 셈법은 다르다. 물론 직접고용에 따른 추가적인 비용도 있지만, 사내하청을 사용하는 것은 고용유연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영상황에 따라 고용을 유연하게 가져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사내하청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정규직도 걸리는 문제다. 지난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사내하청이 확대돼 온 데는 정규직이 사내하청을 자신의 ‘고용의 안전판’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도 한 몫 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 역시 사내하청을 고집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상황에 놓였다. 지난 2010년 7월과 2012년 2월 대법원에서 내려진 판결은 비록 최병승 한 명에 대한 판결이지만, 수많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최병승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의 파업 이후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높아진 정규직화 요구도 만만치 않다.

또 지난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국회에서도 불법파견 문제의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 올해 연말로 다가온 대선을 앞두고 각 당이 앞 다퉈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그동안 비정규직 문제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던 새누리당 역시 ‘사내하도급법’을 입법발의하면서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사내하도급법은 사내하도급의 사용은 허용하되 차별을 제한한다는 내용 때문에 노동계로부터 ‘사내하청 양산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기는 하다.

이 때문에 올해 임·단협에서는 (불법파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가 이슈로 등장하기도 했다. 현대자동차비정규직3지회의 요구에 따라 이 문제가 임·단협에서 분리돼 특별교섭으로 넘어가기는 했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임은 분명하다.

이에 따라 지난 8월 16일, 임·단협 교섭에서 현대자동차는 오는 2016년까지 사내하청업체 노동자 중 3,000명을 신규채용 형식으로 직접 고용하겠다는 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비정규직3지회는 현대자동차의 이 같은 제안을 거부했다. 그동안 요구해왔던 모든 불법파견 노동자에 대한 정규직화와는 거리가 있는 안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대자동차가 제시한 3,000명이라는 인원은 2016년까지 정년퇴직 등으로 자연 감소하는 인원과 엇비슷해, 자연감소 인원을 대체하려는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심 의원이 국정감사에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불법파견으로 분류돼 직접 고용의무를 적용할 수 있는 인원이 현재 3,142명이다. 따라서 현대자동차가 제시한 3,000명은 라인 혼재작업 등 불법파견의 소지가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수에 대략 근접한다고 볼 수 있다. 전체 사내하청 노동자 중 대부분은 현대자동차 공장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일하고 있기는 하지만 라인이 분리되는 등 합법도급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현대자동차는 사내하청 노동자와 정규직의 라인을 분리하는 등, 불법파견의 소지를 없애려 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자동차비정규직3지회는 지난 9월 19일 국회 앞에서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노숙농성에 들어갔다. 지난 10월 18일 새벽에는 대법원 판결의 주인공이었던 최병승과 천의봉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사무장이 울산공장 근처 송전탑에 올라 고공농성에 들어가기도 했다.

전후 사정이야 어찌 됐든, 불법파견 문제는 이제 더 이상 그 해결을 미룰 수 없는 문제가 된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 방법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현대자동차비정규직3지회가 요구하는 것처럼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를 즉시 정규직화 할 수도, 현대자동차가 제시하는 것처럼 2016년까지 3,000명을 신규 채용하는 등 단계적으로 정규직화 할 수도 있다. 아울러 보다 근본적으로는 고용유연성 확보라는 경영계의 입장과 고용안정을 보장받으려는 노동계의 입장 사이에서 우리 사회가 선택 가능한 대안이 무엇인지 합의해 나가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