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둔 당신은 어느 줄에 섰습니까?
대선을 앞둔 당신은 어느 줄에 섰습니까?
  • 참여와혁신
  • 승인 2012.12.05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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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입학식 날이었습니다. 고모가 사준 노란 스웨터에 하얀 손수건을 달고 학교로 갔습니다. 1학년 6반이라고 적힌 푯말 뒤에 두 줄로 길게 늘어섰습니다. 왼쪽은 여자, 오른쪽은 남자 줄이었습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내가 서야할 줄이 어딘지 알 수 있었습니다. 남자 줄에 차렷 자세로 섰습니다. 학생이 되었다는 뿌듯함에 내 가슴은 한껏 벌어졌습니다.

조금 있으니 갈색 투피스 정장 차림의 담임선생이 왔습니다. 입학식에 앞서 신입생들의 자리를 키 순서대로 잡아주었습니다. 작은 학생 앞으로 큰 학생 뒤로. 내 앞에 다가온 담임선생은 나를 앞이나 뒤가 아닌 옆줄로 자리를 바꿔주었습니다. 갑자기 혼돈스러웠습니다. 분명 왼쪽 줄은 여자인데, 왜 내가 옆으로 가야하는가.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하지만 따질 수가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수학 선생이었던 아버지가 아침에 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시키면 무조건 ‘예’하고 따라하는 거야.” 난 울상이 되어 여자 줄에 서있었습니다.

다 고모와 엄마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아들이었던 나는 늘 형의 옷을 물려 입었습니다. 조카 입학식이라고 고모가 누런 기름종이에 둘둘 말아 가져온 노란 스웨터가 내 생애 처음으로 ‘내 옷’이자 ‘새 옷’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새 옷의 때깔이 너무 고와서 ‘여성’스러웠습니다. 거기다 마치 밥뚜껑을 엎어 둔 꼴로 어머니가 무쇠 가위로 잘라준 머리 스타일도 문제였습니다.

홀로 여자 줄에 서서 기나긴 교장 선생님의 말을 듣는 내내 난 엉엉 울고 싶었습니다. 잘못 선 줄, 선택이 아닌 강요로 세워진 줄, 그 줄에 서있던 나는 오랫동안 마음의 생채기를 안고 지냈습니다.

총선과 대선을 함께 치루는 2012년. 노동계는 야심차게 새해를 열었지만 대선을 코앞에 둔 지금은 무기력한 모습입니다. 총대선 투쟁을 목청껏 외쳤던 양대 노총 위원장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사퇴했습니다. 사퇴의 이면에는 양대 노총이 자신이 서야할 줄을 제대로 찾지 못한 까닭도 있을 겁니다.

노동계의 대선 방침은 각자 알아서 줄서기를 하는 꼴입니다. 총연맹이나 노동자의 이익보다는 ‘의자놀이’에만 혈안이 된 듯합니다. 어떤 이유든 중도 사퇴해야 했던 전직 위원장들이 대선 후보의 왼쪽 오른쪽에 나란히 서있는 모습을 볼 때, 덧없음을 느낍니다. 노동조합운동을 하면서 조합원에게 받은 사랑과 영광을 훈장으로 이 캠프 저 캠프에 줄을 서는 모습이 새삼스럽지 않은 풍경인데도 절망합니다.

41일 동안 곡기를 끊은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이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앞 철탑에, 유성기업 아산공장 앞 다리 난간에 노동자의 허기진 삶이 매달려 있습니다. 오늘 새벽에는 끊긴 밥줄을 찾으러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 철탑에 노동자들이 올라갔습니다.

길이 복잡한 게 아니라 욕심이 복잡한 것은 아닐까요. 욕심을 감추려고 복잡한 길을 탓하며 자신의 서는 줄의 명분을 꾸며대는 것은 아닐까요. 노동계가 서야 할 길은 복잡하지도 어렵지도 않습니다. 전체 노동자의 행복에 줄을 서서 뚜벅뚜벅 걸어가면 그만입니다.

한 해를 마감하며, 내 글쓰기는 어느 줄에 섰는가. 기웃기웃 줄타기만을 하지 않았는가를 돌아봅니다.

홍대 언저리에서 <참여와혁신> 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