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노동자는 누가 돌봐주지?
돌봄노동자는 누가 돌봐주지?
  • 김정경 기자
  • 승인 2012.12.0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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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으로 억누르거나 정치권에 기대거나
대화 통한 문제 해결이 제대로 된 선진화
[기획] 돌봄노동자 노동실태

고령화, 핵가족, 여성의 사회진출이 증가하면서 과거에는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주로 여성에 의해 이뤄지던 가사, 양육, 보육 등에 대한 사회적인 수요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적 영역으로만 여겨지던 가사 노동이 공적 영역으로 나오게 되면서 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직업군도 생겨났다. 재가 및 시설 요양기관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보조사, 병원에서 환자의 간병업무를 수행하는 간병사, 집안 살림을 돌보는 가사도우미, 아기를 양육하는 베이비시터 등이다. 사회적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을 아울러 ‘돌봄노동자’라 부른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돌봄노동, 들어보셨나요?

“수급자보다 센터장이 요양보호사의 인권을 무시해요. 요양보호사의 할 일은 수급자에 관한 케어를 해야 하는데도 그 일보다 집안일을 많이 시켜요. 대상자 자식들 4명한테 줄 마늘장아찌 4접, 땡볕에 2시간 동안 쑥 캐고, 미숫가루 할 곡식을 쪄서 말리고, 땅콩 까는 일 등을 했어요. 수급자 수발보다는 가족들 수발드는 일들이 너무 버겁고 명절 때나 제사가 돌아오면 최소한 7일 전부터 매일 연장근무하면서 음식 준비하는 일까지. 센터장에게 중재시켜달라고 하소연하면 혹여 대상자 하나 놓칠까봐 ‘다 그렇게 하는 것이다’며 오히려 무안을 줘요.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연장근무하고 그냥 웃음으로 넘길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프죠.” _ 요양보호사 고순례 씨

“병원에서 하루 24시간을 일하는 데 인간적으로 따뜻한 밥 한 끼는 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간병사 선생님들 급여가 너무 적죠. 그 돈으로 하루 세끼 식당에서 밥을 사먹는 다는 건 상상도 못하죠. 저희는 6일을 24시간 꼬박 병원에 붙어 있는 몸이니까 다들 주말 집에 들러서 일주일치 밥과 반찬을 싸와야 해요. 한 공기 분량씩 18개 포장해 와서 냉동실에 얼렸다 꺼내 먹는 거죠. 이것도 힘들면 고구마 조금씩 가져와서 쪄먹기도 하고, 아님 그냥 우유 한잔 마시고 때우고 그래요. 밥 먹을 장소도 따로 없고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아요. 환자 식사 챙기고 돌보다보면 끼니를 거를 때도 많죠.” _간병보호사 김 모 씨

돌봄노동자의 업무 특성상 정확한 전체 규모를 파악하기 힘들어 통계마다 그 규모가 다르게 집계된다. 최근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돌봄지부의 발표에 따르면 적게는 30만명에서 많게는 130만 명의 돌봄노동자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확실한 건 그 수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사용자는 돌봄노동서비스를 제공 받는 개인 고객이고, 돌봄노동자 대부분이 알선업체나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자리를 찾는다. 고용형태는 요양보호사 같은 경우는 시설 등에 정규직으로 근무하는 경우도 있지만 극히 일부일뿐 대다수가 계약직, 파견직, 일용직으로 일하며 일터를 옮겨 다닌다. 한편 가사도우미의 경우는 일시적인 호출근무의 성격을 띤다. 돌봄노동자는 여성이 대부분이며 평균연령대는 자녀들을 다 양육하고 장시간 일에 매달릴 수 있는 50대 중·후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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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디까지가 우리 일인지

돌봄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업무 특성상 일반 노동자들과 비교했을 때 턱없이 길다. 요양보호사들의 경우는 12시간 맞교대 또는 24시간 격일제 근무를 하고, 간병사는 하루 24시간 주 6일을 꼬박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며 함께 생활한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토로하는 어려움은 자신의 업무영역을 넘어서는 일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장시간 대상자와 함께 있고 대부분의 대상자가 신체적 약자인 경우가 많다는 점 또한 돌봄이란 서비스 자체가 포괄적이고 돌봄노동자의 사회적 지위가 열악해서 발생하는 문제다. 특히 개별 가정에 파견된 요양보호사의 경우는 대상자의 청소, 빨래를 비롯한 가사일 전반은 물론 그들의 생업까지 돕고 있는 실정이었다.

“국가자격증을 소지한 제가 지금 부업을 하고 있다니까요. 나무젓가락 봉투 넣기, 마늘까기를 왜 제가 해야 하죠?”
_요양보호사 오복자

“요양보호사로 들어갔는데 어르신들은 절 청소하는 아줌마로 아시나봐요. 맨날 시키는 청소 고분고분 다 하니까. 하루는 손님이 와서 누구냐 물으니 우리집 파출부 아줌마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돈 들여서 교육 받고 자격증도 땄는데…. 급여는 적지만 봉사한다는 생각에 자부심도 가지고 일하고 있는데 이러면 정말 맥 빠지죠.”
_요양보호사 강순미

하지만 이들에게 자신에게 주어진 불합리한 일거리를 거부할 권한은 없다. 소속 센터나 센터장에게 어려움을 이야기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원래 다 그런거니 참고 일하라”거나 “하기 싫으면 관둬라”는 말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간병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간병사의 경우 아침 6시부터 업무가 시작된다. 환자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힌 후 의사들이 아침 회진을 돌기 전까지 침대와 주변 환경을 깨끗하게 정리해야한다. 이후 환자의 식사를 돕고 재활물리치료나 운동을 시키고, 검진이 있을 경우 시간에 맞춰 이동을 돕는다. 환자뿐만 아니라 보호자들이 왔을 때는 보호자들을 상대해야 하는데 깐깐한 보호자들을 만나면 힘이 두 배로 든다. 한편 중증환자의 경우는 대소변부터 매 시간 체위변경, 목욕, 시간 맞춰 약 먹이는 일까지 일거수 일투족을 돌봐야 한다. 업무는 이뿐만이 아니다. 원래는 간호사와 의사가 해야 할 의료업무의 일부도 이들이 하고 있다. 환자는 많고 병원 인력은 부족해 간호사들이 매시간 환자들을 일일이 챙길 수 없기 때문이다.

“환자를 돌본다는 게 그냥 앉아서 지키는 게 돌보는 게 아니에요. 환자에게 해 드려야 할 일들이 산재해 있죠. 의료적인 것도 우리가 다 해요. 환자들 가래같은 분비물을 제거하는 석션부터, L튜브라고 식사 못하시는 분들 미음 삽입하는 거나 모든 제반 일들이 우리 몫이 돼버렸어요. 신경경추환자는 4~6시간마다 낼라톤이라고 호스로 연결해서 소변 빼는 것도 해줘야 하고요. 원래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하셔야 하는 일인데 우리 병원은 인턴 선생님들이 하고 있더라고요. 근데 환자가 많다보니 다 처리를 못하니까 우리한테 하라고 하죠. 여자 환자는 괜찮은데 남자들 한다는 건 너무 억지이지 않나요? 가끔씩 민망한 상황도 생기고 곤욕이에요.”
_ 대학병원 간병사 김 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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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아니거든요

이처럼 요양이나 간병, 보육과 같은 경우는 일정한 교육을 이수하고 자격증을 가지고 전문적인 업무를 하고 있지만 이들의 노동은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 현실을 반영하는 건 바로 돌봄노동자를 부르는 명칭에서부터 드러난다. 병원에는 의사와 간호사는 있을지언정 간병사는 없다. 이들 대부분이 ‘아줌마’이고, 심한 경우는 아예 명칭도 없이 ‘저기요’ 라고 불리기 때문이다.

전국실업단체연대 최영미 정책위원장은 “직종의 명칭은 그 직종에 대한 사회적 존중을 반영한다”며 “과거 파출부, 가정부, 간병인으로 불리던 것이 이런 점을 고려해 요즘은 가사도우미 또는 가사관리사, 간병사, 육아도우미, 재가보육사 등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라고 말한다.

인터뷰 중 만난 한 간병사는 “선생님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아줌마 말고 간병인도 말고 간병사라고만이라도 불렸으면 좋겠다. 꼭 잡지에 그렇게 써서 많은 사람들이 간병사라고 부를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김민자 씨 역시 “자격증 따려고 공부할 때는 우리 같은 사람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고 배웠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더라”며 “정말 이 대접받으려고 공부하고 시험봤나 싶다”고 말한다.

우리도 보호받아야 할 존재

작년 10월 서울대병원 에이즈 환자 병실에서 일하던 간병사 박 모씨가 환자에게 주려고 놓아둔 주사바늘에 찔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간병사들은 감염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지만 병원 측은 감염 예방 수칙으로 손씻기 만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또 요양, 간병사 대다수가 나이가 많고 환자를 부축하거나 옮기는 등의 일을 빈번하게 하고 있어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는 비중이 높다. 병원에서 일하고, 환자를 돌보는 일을 하지만 정작 이들은 아파도 제때 치료조차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신분 때문에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일하다 사고가 발생해도 모두 개인 부담으로 돌아온다.

한편, 저임금으로 인한 어려움도 따른다.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지만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있다. 요양보호사는 시급 3,900원, 간병사는 시급 2,700원을 받고 일하며 식대, 퇴직금, 초과수당 같은 건 따로 없다. 일주일에 하루 쉬는 것도 철저하게 무급휴가다. 작업복을 비롯해 업무관련 물품들도 전혀 지급되지 않아 개인이 자비로 부담하고 있다. 일주일을 병원에서 생활하지만 소지품을 보관할 캐비닛이나 옷을 갈아입을 탈의 공간이 없어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식사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 같은 것도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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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성 인정이 절실하다

돌봄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실태를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일까?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돌봄지부 차승희 지부장은 노동자성 인정과 병원 직고용을 꼽는다. 지금까지 돌봄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과 사회보험에서 제외돼 왔다. 그 이유는 개인 가정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도 감독이 어렵고 사용자도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봄노동자도 서비스 제공기관과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근로기준법, 4대 보험관련 법을 전면 적용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빠듯한 저임금을 실질적인 생활이 가능한 생활임금으로 책정해야 한다. 한편 돌봄지부는 “간병비를 건강보험화 해 환자의 간병비 부담도 줄이는 동시에 간병사가 보호자에게 직접 월급을 받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당함과 심리적 스트레스도 없앨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김 모 간병사는 “돌봄은 온 국민에게 다 적용되는 일이다. 건강보험화되면 국민들도 원활하고 돌봄 선생님들도 편하다”며 “무엇보다 법적인 제도가 만들어지면 더 이상 하대받지 않고 떳떳하게 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한국공인노무사회 표대중 부회장은 “돌봄서비스 노동 개선을 정책적으로 접근할 경우에 가사, 간병, 요양, 보육 등 각각의 서비스 유형의 차이점을 최대한 반영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는 우리들의 인식개선도 필요하다. 돌봄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언젠가 나와 내 가족에게도 필요한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가족이 못하는 일을 대신 수행하는 돌봄노동자들의 노동을 존중하고 가족과 같은 자세로 대하는 배려가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