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가 아니다 잠 좀 자자
올빼미가 아니다 잠 좀 자자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3.01.0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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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노동, 다이옥신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발암물질
목숨을 담보로 돈 버는 셈 ... 이윤보다 사람을
[바꿔, 싹 바꿔! 2013] ② 야간노동

2013년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바람을 찾아봤다.
일할수록 적자 인생인 저임금 노동자.
목숨을 걸고 밤샘 노동을 하는 이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이들.
파견, 용역, 특수고용, 기간제 노동자의 처지를 살짝 들춰봤다.
지난해 총대선을 거치며 금배지를 달거나 청와대에 자리 잡은 이들은 너나없이 서민들의 삶을 챙기겠다고 했다.
선거 때마다 한 약속이지만 지켜진 적이 있었던가?
여기 낮은 이들의 자그마한 소망을 쓴다.
새삼스럽지 않은 이야기지만 꼭 바꿔야 하기에 적는다.
바꿔, 싹 바꿔! 2013

광온(狂溫)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도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
이며못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모두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 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_ 시, ‘그 쇳물 쓰지 마라’


ⓒ 참여와혁신 포토DB
독일 수면 학회는 야간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주간만 일하는 노동자보다 수명이 13년 짧다는 발표했다. 일반 노동자의 평균 수명이 78세인데 비해 야간 교대자는 65세이다.

또한 야간 교대근무자의 80%가 수면장애를 앓고 있다. 주간 근무자의 신경장애는 25%인 반면, 교대 근무자는 60~70%에 달한다. 돌연사, 심장마비와 같은 심혈관계 질환도 주간 노동자에 비해 높다. 주야간 교대 근무를 6~10년을 하면 2배, 11~15년은 2.2배, 16~20년을 하면 2.8배가 주간만 일하는 노동자보다 높다.

미국 산업안전보건원은 교대 근무자의 심혈관계질환 위험성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40% 정도 높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변비, 소화불량과 같은 위장 질환도 심각하다. 불면증 위험은 1.72배 높고, 직업성 암에 걸릴 확률도 높다.

2007년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암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야간노동은 암을 유발한다. 야간노동은 심체리듬을 교란해 암을 일으키는 요인이며, 납이나 자외선과 동급인 2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야간노동이 자동차 유해가스나 유해물질로 알려진 다이옥신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발암물질이다.

사람이 야간에 빛에 노출되면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이 감소하고 에스트로겐이 증가하여 생체주기가 깨진다. 그래서 호르몬에 의존하는 암인 유방암이나 전립선암이 발생한다.

덴마크 코펜하겐 암연구소에 따르면, 야간에 일하면 유방암 발생률이 50% 높아진다고 한다. 미국, 노르웨이, 덴마크의 노동자 가운데 오랜 기간 교대 근무를 한 여성 노동자의 유방암 발생 비율이 일반인에 비해 6.1배가 높았다.

18세 미만일 경우에는 근로기준법에서 야간노동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2012년 1월 기아자동차에 실습 온 고등학생이 과도한 야간근무로 쓰러진 사건처럼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다.

어쩔 수 없이 야간 근무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전기와 같은 공공부문처럼 야간에도 서비스를 멈출 수 없는 산업이 있다. 제철소 같은 경우는 한 번 용광로를 멈추면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365일,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야 한다.

공공의 이익이나 불가피한 경우만 야간노동을 하는 게 아니다. 자동차나 전자와 같은 제조업에서 특히 야간노동을 많이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하루 여덟 시간 설비를 가동하는 것보다 잔업을 시켜 12시간을 가동하면 더 많은 수입을 올릴 것이고, 24시간 가동하면 투자한 설비에서 최대의 이윤을 얻을 수 있다.
 
돈도 좋지만 생명이 먼저다.

밤에는 집중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사고도 자주 일어난다. 사고가 일어나면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2교대로 일하는 노동자는 낮에 근무하는 이들에 비해 4배 이상 사고가 발생한다. 또한 중증 사고도 교대근무자에게 많이 일어난다.
 
아침보다 오후에 근무할 때 재해 발생률이 18.3% 높다. 밤에 근무를 하면 30.4%가 높아진다. 뉴질랜드의 조사에 따르면, 낮 근무자에 비해 밤에 일하는 교대 근무자가 재해 위험이 1.89배 높다.

글 시작에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시를 소개했다. 2010년 9월 7일 용광로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은 29살 청년을 기리며 한 시민이 쓴 시다.

이 청년이 죽은 것도 야간 근무 때문이다. 새벽 2시에 작업 도중 발을 헛디뎌 섭씨 1,600도의 쇳물이 흐르는 용광로에 빠졌다.

용광로가 제대로 닫히지 않으면 생산의 손실이 있어 이를 막으러 용광로에 걸쳐진 철판에 올라갔다가 사고가 생겼다. ‘10만 원짜리’ 안전 설비만 설치되었어도 떨어져 죽지는 않았을 거라고 한다.

노동자들이 밤일을 거부하면 사라지지 않을까? 그런데 쉽지 않은 일이다.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밤일을 마다 않고 하는 까닭은 생계 때문이다.

앞에서 봤듯이, 한국의 임금노동자 50% 이상이 한 달에 200만 원을 벌지 못한다. 밤일이나 잔업을 해서 연장수당을 벌지 않고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한국에서 높은 임금을 받는다고 알려진 자동차 회사들도 월급봉투를 뒤져보면 결코 많지가 않다. 기본 시급은 7,000~8,000원 수준이다. 물론 최저임금을 받는 이들보다는 월등히 높지만 최저 시급의 2배에도 미치지 않는 셈이다. 자동차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도 잔업과 특근으로 채워지는 1.5~3.5배의 초과 수당에 목을 매는 까닭이 여기 있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연간 노동시간은 2,400~2,500시간에 이른다. 1주에 64시간 노동은 기본이고, 80시간을 넘기는 경우도 있다.

특근을 하지 않으면 임금의 30%가 준다고 한다. 법정근로 시간인 주 40시간만 일하면 지금 받는 연봉의 40%가 줄어들 거라고 한다.

현재 8천만 원을 받는 노동자라면 실제 5천만 원 대의 연봉이라는 말이다. 국내에서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고, 세계 3대 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이들의 실정이 이러니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들은 야간 노동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전 세계 노동인구의 약 20%가 야간노동을 한다

한국은 임금노동자의 10.2~14.5%인, 127만~197만 명이 야간근무를 한다. 그런데 큰 기업일수록 야간근무를 시키는 경우가 높다. 사업장 규모가 300인 이상의 대기업에서 야간근무를 하는 노동자 비율은 21.2%다.

고용노동부가 2012년 4월에 상시 근로자가 500인이 넘는 자동차, 트레일러 제조업체 40곳과 금속가공 제품 제조업 8곳에 대해 근로시간을 점검했다. 이 사업장 가운데 81.3%가 주야 2교대 근무를 했다.
 
자동차 제조업의 42.9%는 야간노동을 하고, 야간노동만 하는 경우도 18.4%에 이른다. 1000인 이상의 기업은 45.7%, 매출액 5천억 원 이상의 기업은 50.5%가 야간노동을 하고 있다.

금속노조 소속 노동자는 15만 명인데, 이 가운데 12만 명이 교대제로 야간근로를 한다. 완성차를 만드는 대기업 노동자는 75~80%, 부품을 만드는 사업장 생산직 노동자의 70%가 밤에 일한다.

병원 등 보건의료계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57.2%가 야간에 일한다. 아파트에서 경비를 서는 노동자는 24시간 맞교대로 일하는 경우가 98.2%다.

학교에서 야간 당직을 서는 노동자는 주당 평균 130.34 시간을 일한다. 법정 근로시간의 세 배가 넘는다. 주5일제 수업으로 근무 시간이 더 늘었다. 금요일 오후에 출근해 월요일 아침 퇴근까지 꼬박 64시간을 일하는 실정이다. 이렇게 일하는 노동자가 전국 1만 명, 서울에만 1,600명이다.

숙박업소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경우, 24시간 맞교대 근무가 75.6%에 이른다. 한 달에 하루도 쉬지 않는 노동자가 절반에 가까운 47.4%라고 한다.

공공부문인 철도 산업에서 일하는 32,000명 가운데 20,000명이 교대 근무를 한다. 야간 작업을 할 때, 열차 운행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운행열차나 작업장비와 접촉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토록 심각한데 어떤 대책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많은 이들이 고민을 하지만 아직 뚜렷한 대안을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심야에 일하면 산업전기료가 40%가 싸기 때문에 야간근로를 시킨다는 주장도 있다.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버는 셈이다.

노동자 스스로도 야간 근무를 선호한다. 아파트 대출이나 자동차 할부 등 빚을 갚으려면 야간근무를 해야 한다는 노동자도 있다. 언제 해고를 당할지 모르니, 일이 있을 때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안한 노후가 밤일의 현장으로 몰기도 한다.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몸이 축나고, 생명을 위협받더라도 야간 일을 하겠다는 거다.

이제 바꿔야 한다. 우선은 생산성을 증대해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는 자동차나 부품 생산과 같은 제조업에서는 심야 노동을 아예 없애야 한다. 노동계가 요구하는 주간 연속 2교대제 실시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철강, 화학, 병원과 같이 연속 근무가 불가피한 산업에서는 인력 확충을 통해 심야노동을 최소화해야 한다. 철도, 지하철, 경찰, 소방과 같은 공익을 위한 곳에서는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고려한 교대제와 충분한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불가피하지 않으면 심야노동은 반드시 사라져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