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 대신 차별을 고착시키는 기간제법
보호 대신 차별을 고착시키는 기간제법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3.01.0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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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제한이 쏙 빠져 보호는커녕 고용 위협
기간제를 쓸 수 있는 사유를 제한하는 게 먼저
[바꿔, 싹 바꿔! 2013] ⑤ 기간제 노동자

2013년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바람을 찾아봤다.
일할수록 적자 인생인 저임금 노동자.
목숨을 걸고 밤샘 노동을 하는 이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이들.
파견, 용역, 특수고용, 기간제 노동자의 처지를 살짝 들춰봤다.
지난해 총대선을 거치며 금배지를 달거나 청와대에 자리 잡은 이들은 너나없이 서민들의 삶을 챙기겠다고 했다.
선거 때마다 한 약속이지만 지켜진 적이 있었던가?
여기 낮은 이들의 자그마한 소망을 쓴다.
새삼스럽지 않은 이야기지만 꼭 바꿔야 하기에 적는다.
바꿔, 싹 바꿔! 2013

십 수 년을 묵묵히 자신의 모교에서 일한 행정조교들은 비정규직을 2년 이상 고용할 경우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바로 그 법 때문에 쫓겨납니다. 학교는 2년이 넘는 행정조교를 내쫓고 그 자리에 1년짜리 계약직 직원으로 채웁니다. 새로 뽑는 계약직도 대부분이 명지대학교 졸업생입니다.

“제가 대학에 입학해서 지금껏 스무 해를 명지대학교에서 있었어요. 이십 대, 삼십 대를 고스란히 명지대에서 보냈고, 사십 대를 맞이했어요. 제가 평생 사랑하며 내 이름 앞에 달고 살아야 하는 명지대학교가 이런 공간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어요.”

ⓒ 참여와혁신 포토DB

2007년에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이 시행된다. 이 법 제1조를 보자.

‘이 법은 기간제근로자 및 단시간 근로자에 대한 불리한 차별을 시정하고 기간제 근로자 및 근로조건 보호를 강화함으로써 노동시장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 법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정규직에 비해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만들어졌다.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는데, 비정규직이라고 임금을 비롯한 노동조건이 달라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 법 4조에는 ‘사용자는 2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기간제 노동자를 쓸 수 있다고 했다. 반복해서 계약을 하더라도 2년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만약 ‘2년을 초과하여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 기간제 근로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본다’고 했다. 사용자가 기간제노동자가 2년 넘게 일하면 기간이 정함이 없는 정규직 노동자라는 거다.

하지만 이 법이 시행된 이후에 계약한 기간제 노동자만 이 조항을 적용 받는다. 그래서 사용주는 법 시행을 앞두고 기간제 노동자들을 해고한다.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으려는 꼼수다.

이들이 하는 일은 특정한 업무라서 어떤 기간이 지나면 업무가 사라지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다. 계약을 갱신하며 한없이 기간제 노동자를 쓰려고 했는데, 이 법 때문에 2년이 되면 해고를 하고, 새로운 기간제 노동자로 교체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법 시행을 앞두고 많은 사업장에서 기간제 노동자로 계약을 반복하며 일했던 노동자들이 해고가 됐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다른 노동자가 채용되었고, 그 노동자들은 3개월, 6개월, 1년씩 계약을 맺어 이전보다 고용기간이 짧아기도 했다.

기간제를 쓰는 이유?

고용기간을 정하지 않는 정규직의 경우 해고가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기간제노동자는 회사의 사정에 따라 인력 조정이 쉽다.

다음으로 비용의 절감이다. 2011년 8월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정규직의 월 평균임금은 272만 원이었다. 하지만 기간제노동자의 임금은 168만 원으로 60% 수준이다.

기간제법에는 차별시정을 요구하게 되어 있는데, 이는 차별을 받은 당사자만이 청구할 수 있다. 요구한 사람만 시정 명령하겠다는 거다. 대부분 기간제노동자로 취업하는 이유는 2년 뒤에는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차별시정을 요구하면 2년 뒤 정규직이 되지 못할까 두려워 차별시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또한 계약기간이 갈수록 짧아져 6개월, 1년, 심지어는 3개월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다음 계약 때 불이익을 받거나 해고가 될까봐 참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법이 있다는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부지기수일 거다.

차별시정 판결을 받기도 만만찮다. 사용주가 소송을 이어가면 기간제 노동자는 지방노동위원회 결정에서 대법원 판결까지 5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 기간이 보통 3년에서 5년이 걸린다. 이미 계약이 종료되고 딴 일자리로 간 상태에서 소송을 이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차별에 대한 처벌이 약하기 때문에 대법 판결이 있어도 사용주가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 이때는 다시 민사소송을 들어가야 한다. 이 절차 앞에 그냥 계약기간을 버티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경우가 많다.

2008년에 기간제노동자의 임금은 159만 원이었고, 정규직은 250만 원을 받았다. 정규직의 63.6%다. 하지만 2009년에는 56.4%, 2010년에는 58.1%, 2011년에는 61.7%를 받았다. 해가 갈수록 나아지지 않았다.

기간제법 시행으로 사용주들이 기간제노동자를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무기계약직이란 정규직 대우는 받지 못하지만 계약기간을 정하지 않아 고용안정을 보장한 방법이다.

정규직과 업무를 분리해 분리직군을 만들어 이 자리에 기간제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여 채용하는 방식도 있다. 정규직과 처우에서 차별을 두되, 고용은 보장하는 방식이다. 또는 정규직의 직제보다 낮은 직급을 새로 만들어 이 자리를 채우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도 정규직과 차별은 그대로 남는다. 그래서 이들을 ‘중규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직접고용 하던 기간제노동자를 내보낸 뒤에는 새로 채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 업무를 외주 용역이나 사내하청, 위탁과 같은 간접고용 방식으로 바꾸고 있다. 외주화, 아웃소싱을 택하는 방식이다.

비정규직도 간접고용이나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처우는 직접고용 비정규직인 기간제노동자 보다 열악하다. 파견, 용역,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포함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더 크게 벌어진다. 2000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73만 원(정규직의 53.5%)이었다. 2011년에는 140만 원(정규직의 48.5%) 차이로 벌어졌다. 격차의 비율만이 아니라 절대액수 자체도 갈수록 그 폭이 넓어지고 있다. 2011년 8월을 기준으로 기간제노동자의 평균임금은 168만원인데 비해 용역노동자는 122만 원에 불과했다.

결국 기간제법 시행으로 기간제노동자가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도 했지만 더 열악한 용역노동자로 전락한 경우가 많다.

기간제법 폐지해야 하나?

꼭 그렇지는 않다. 기간제법을 만들 당시 이 법을 ‘비정규직법’이나 ‘비정규직 보호법’이라고 불렀다. 2007년에 시행되었지만 2001년부터 논의가 있었다. 아이엠에프 사태 이후 고용불안정과 각종 차별이 심해져 사회문제가 되었다. 인권침해, 자살, 분신을 비롯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과 파업이 이어졌다. 이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만든 법이 기간제법과 파견법이다. 기간제노동자와 파견노동자를 보호하겠다 목적으로 논의가 시작된 거다. 하지만 이 법은 법 조항이 갖은 한계와 이 법을 교묘히 피하거나 악용하려는 사용주들 때문에 악법의 소지가 생겼다. 그럼에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존재하는 한 이들을 보호하고, 차별을 해소할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동일한 가치의 노동을 할 때는 누구나 동일한 임금 및 처우를 하도록 하는 거다.

처음 이 법을 만들 때 노동계에서는 사용주들이 무차별적으로 기간제를 고용하는 것을 막자는 의도로 ‘사유제한’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 사유제한은 쏙 빠지고 2년 동안은 기간제를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합법의 길을 열어주었다. 이런 한계가 편법이나 악용의 소지를 만들었다.

이제 법의 취지는 살리고 내용은 바꿔야 한다. 기간제를 쓸 수 있는 사유를 제한하는 게 먼저다. 기간제 및 파견 노동자 고용의 사유를 법으로 강력히 제한해야 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용주가 직접고용하고, 그 업무가 지속될 필요가 있을 때는 정규직 채용을 원칙으로 하도록 사용주를 강제해야 한다. 기간제노동자를 2년 이상 고용하지 못하게 할 것이 아니라 2년 이상 필요한 업무에 대해서는 정규직을 고용하도록 입법해야 한다. 노동자 ‘개인’이 아닌 ‘업무’를 기준으로 법을 바꾸면 된다.

다음은 차별시정 제도를 강화하는 방법이다. 분리직군처럼 업무를 구분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비교할 대상을 없애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땐 동일업종의 다른 사업장의 비교대상을 설정해 차별을 막아야 한다.

차별시정 제도에 대한 사용주의 처벌을 강화해 법의 본래 취지에 맞게 적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차별 당사자만이 요구할 수 있게 해 사회에 만연된 차별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있는 지금의 차별시정 제도도 바꿀 필요가 있다.

불법파견 내지는 외주화로 기간제법을 피해가려는 것을 막지 않으면 법을 고쳐도 소용없다. 이를 위해서는 파견노동자 사용을 최대한 억제하고, 불법적인 용역 계약을 제도적으로 방지해야 한다.

한국에만 비정규직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해고가 되는 순간 사회에서 이들을 보호해줄 장치가 빈약하다. 비정규직 문제는 사회보장제도가 허약한 나라에서는 생명이 오가는 심각한 문제다. 한국의 비정규직법은 가까운 일본을 많이 따라 만들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본 비정규직 노동자의 묻지마 살인을 기억할 거다. 이런 심각성 때문에 일본도 최근에는 법을 고쳐 비정규직 사용을 억제하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일을 할 권리가 있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고, 인권의 기본이기도 하다.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이윤을 얻거나 해고가 쉽다는 이유로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일은 헌법에 어긋나고 인권을 무시한 처사다.

누구나 안정되게 일할 수 있게 고용이 보장되어야 한다. 불가피하게 해고가 발생할 때는 사업주와 함께 정부가 앞장서서 이들이 다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그동안의 생계를 보장해야 하는 것 아닐까.

또한 동일한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자라면 동일한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차별을 시정하는 일에 정부와 사용주가 나서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한 채로는 양극화와 빈곤, 남녀 차별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의 갈등구조는 해결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