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의 시련과 ‘홀인원’의 기쁨 가려진 아픔의 교차
‘벙커’의 시련과 ‘홀인원’의 기쁨 가려진 아픔의 교차
  • 승인 2006.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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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개의 구멍만큼 다양한 골프에 얽힌 사연들

 

골프는 18개의 구멍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구멍을 향해 공을 치고 그 공을 찾아 잔디벌판을 걷는다. 격렬하게 상대방과 몸을 부딪쳐가며 하는 운동이 아니다.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골프를 ‘신사 스포츠’라 말한다.


하지만 골프는 여전히 ‘귀족 스포츠’다. 평균 300여 만원에 달하는 장비와 연습비, 한 번 필드에 나갈 때 소요되는 금전적 비용, 필드를 찾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까지 고려한다면 꽤 비싼 스포츠이다.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평균근무시간도 무시한 채 살아가는 대다수의 국민들에게는 쉬이 접하기 어려운 스포츠임은 분명하다.


18개의 구멍을 찾아가는 지름 42.67mm의 작은 공은 홀에 들어가기까지 사람을 긴장시키며 울고 웃게 만든다. 벙커에 빠져 시련을 주고, 홀인원의 경쾌한 울림으로 환한 미소를 짓게 한다. 그리고 이젠 필드 밖으로 나와서 또 사람들을 웃고 울게 만든다.


골프로 ‘벙커’에 빠진 사람들
최초의 분권형 총리로 불리며 막강한 권한을 자랑하던 이해찬 총리는 결국 골프 때문에 낙마했다. 사정이 여기에 이르자 국가청렴위원회가 나서 골프 금지령을 내렸다. ‘골프 및 사행성 오락 관련 공직자 행위기준 지침’을 내놓은 것이다. 골프가 졸지에 ‘마작, 화투, 카드’와 같은 레벨로 묶인 셈.


‘골프 금지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골프 금지령은 한번 배우면 푹 빠지는 속성이 때로는 도덕성이나 판단력도 마비시킬 수 있기 때문에 주로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내려졌다. YS정권 때의 ‘공직자 골프 금지령’을 비롯하여, 김종빈 검찰총장도 검사들에게 ‘폭탄주 금지령’과 더불어 ‘골프 자제령’을 내렸다. 군당국은 APEC 회의 당시에 모든 장성들의 골프장 출입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골프 금지령은 마니아들에겐 그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YS 정권 당시에는 골프 금지령 속에서도 일가친척의 자동차를 빌려 기를 쓰고 골프장을 찾았다가 사정 시 적발돼 중도하차하는 공직자가 속출했다.


이해찬 총리는 45세가 넘어 뒤늦게 배운 골프로 수차례 물의를 일으켰다. 지난 2004년 6월 군부대 오발사고 희생자 조문 전에 골프모임을 가져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식목일에는 강원도 속초·양양 일대에서 대형 산불이 번지고 있는 가운데 골프를 쳤다가 비난 여론이 일자 국회에서 “근신하겠다”고 사과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두 달 만인 지난해 7월초 남부지방에 집중호우 피해가 났을 때 제주도에서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등과 골프를 쳤다. 최근에는 법조브로커 윤상림씨와 수차례 골프를 친 일로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한나라당 김태환 의원도 골프로 벙커에 빠진 대표적인 인물이다. 김 의원은 2004년 9월 지인들과 골프를 마친 뒤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술을 마시다 60대 경비원을 폭행해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었다.


정치인 중 최고의 골프애호가는 단연 김종필 전 총리라 할 수 있다. 김 전 총리도 자주 구설수에 올랐지만 그럴 때마다 “한두 번 조지다 말겠지. 같은 걸로 계속 쓸겨? 지들이 내 건강 챙겨줘?”라고 대응한 걸로 유명하다. 1990년 신민주공화당 총재 시절 YS와 골프장에서 만나 3당 합당의 실마리를 만들었고, 96년 말 DJP연대의 물꼬도 골프장에서 트는 등 ‘필드’로 나오는 발판을 만들기도 했다.


골프가 지금처럼 비밀스런 정보교환의 장으로 이용이 되는 한 ‘벙커’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은 계속 늘어나지 않을까.

 

골프, 국민 곁으로… 국민을 웃게 하다
골프채를 클럽이라 부르는 것은 모른다. 하지만 최경주 선수는 안다. 버디가 무엇인지 보기가 뭘 의미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박세리 선수가 양말 벗고 들어가 러프에 빠진 공을 필드로 쳐냈던 장면은 기억한다. 이것이 현재 대다수 국민들이 골프에 대해 알고 있는 정도다.


사실 골프채를 만져본 사람도 많지 않다. 지금까지 골프는 TV드라마에서 부잣집 ‘어르신’이 퍼팅연습을 하는 것을 본 게 전부였다. 국민들이 골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사이다. 모두 작은 골프공 하나로 세계를 점령한 프로골퍼들 때문이다.


1998년 7월 7일 US여자오픈, 연장 18번 홀에서 박세리의 티샷이 물웅덩이의 경사진 러프에 빠졌다. 한쪽에서는 경쟁자 추아시리폰(미국)이 그 광경을 보며 승리를 확신하며 득의에 찬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박세리는 망설임 없이 양말을 벗고 물웅덩이에 들어가 러프를 탈출했다. 세계를 놀라게 하고 감동시킨 명장면이 연출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결국 박세리는 그 경기에서 역전승을 거뒀다.


물웅덩이에 들어가기 위해 양말을 벗자 얼마나 골프연습을 많이 했는지 발과 발목의 색깔이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박세리의 불굴의 투혼은 당시 IMF로 힘겨워하던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그리고 그 해 세계 유수의 매체들은 최고의 여자선수로 박세리를 선정했다.


이때 박세리 선수가 국민들에게 준 감동은 낯설기만 한 스포츠였던 골프와 국민들의 거리감을 좁혀줬다. 박세리가 우승하는 것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TV 속의 골프경기를 지켜봤으며, 박세리처럼 될 수 있을까하여 사람들이 골프연습장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올해도 많은 선수들이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골프에서도 대한민국이 세계강국임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프로골퍼들이 일궈낸 노력의 땀방울로 골프는 점점 더 국민들 곁으로 가까이 다가와 희망과 기쁨을 주고 있다.

 

‘성북동 비둘기’ 골프장에서 울다
골프는 15세기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됐다. 영국은 평지에 가까운 나라다. 사람이 살기 시작한 4천년 전부터 산림을 개간하여 한때는 국토 면적의 80% 정도가 목초지와 농경지였다. 멕시코 난류의 영향으로 사계절 푸른 잔디가 자라기 때문에 잔디를 잘 깎아만 주면 골프장이 조성되므로 자연파괴가 거의 없이 자생적으로 골프장이 생겨났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은 이와 매우 다르다. 우리 국토는 면적의 65%가 산림이다. 결국 18홀 골프장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30만 평의 평지가 필요하므로 산을 깎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만든 골프장이 벌써 전 국토면적의 0.2%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골프장이 204곳이고 올해 새로 문을 여는 곳이 20곳, 현재 추진 중이거나 공사에 들어간 곳이 103곳이라고 하니 그 면적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골프장은 우리나라 토양과 기후에 맞지 않아 건설할 때면 많은 마찰을 빚어왔다. 골프장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30만 평 이상의 대지에서 수백 종의 식물을 모두 거두어 내고 흙을 40~70cm까지 파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골프장을 덮은 고려잔디와 벤트그라스가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모래와 인공흙 위에 심어진 잔디와 벤트그라스는 엄청난 비료와 농약으로 생명을 유지한다. 비공식적 자료에 의하면 골프장 1ha당 연간 비료사용량은 10.9kg 정도다. 지렁이와 두더지 등이 잔디를 파괴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비가 온 뒤에는 독성을 2배로 하여 살포한다고 하니 골프장에 뿌려진 농약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골프장은 비가 그치면 곧바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배수시설이 탁월하게 만들어져서 이 많은 비료와 농약은 바로 지하수와 주변하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골프는 이렇게 우리의 환경을 위협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푸르름 뒤에 감춰진 경기보조원들의 그늘
골프공이 잔디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져간다. 그 모습은 저 곳이 잔디밭인지 비단 위인지를 의심스럽게 한다. 좋은 골프장일수록 필드 관리는 철저하다. 현재 이런 잔디밭 관리는 일명 ‘캐디’라 불리는 경기보조원들의 몫이다. 물론 본디 그들의 업무는 말 그대로 골퍼들이 골프를 잘 칠 수 있도록 코스를 안내해 주는 등 경기보조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필드상태 관리까지 그들의 일이 되어 버렸다.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는 경기보조원들은 지금도 노동자성 인정유무를 두고 회사와 정부를 상대로 싸움 중이다. 경기보조원들은 입사 후 2개월 정도 수습교육을 거친 후 회사로부터 고유번호를 부여받는다. 그 고유번호에 따라 순번을 기다려 골프장을 찾은 골퍼들의 골프가방을 운반하고, 코스에 대한 설명을 하는 등 골퍼들이 경기를 잘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로 보조한다.


경기보조원은 통상 임금을 받지 않고, ‘캐디비’를 손님에게서 직접 받는다. 원칙적으로 캐디비는 고객과 경기보조원 사이에서 협상할 수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모든 경기보조원들은 회사가 정한 비용만 받을 수 있다. 정해진 금액보다 더 받게 되면 회사로부터 징계를 받고 해고를 당하기도 한다.


회사에서 임금을 받지 않고, 한 번 경기할 때마다(18홀을 1번 라운딩할 때 보통 4시간 30분 정도 소요) 캐디비를 받는 경기보조원들은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어 있다. 이론적으로는 개인이 원하는 시간에 나와 한 경기를 보조하고 그 금액을 받으면 되는 직업으로 알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경기보조원들은 하나의 골프장에 소속되어 있고, 자기소개서 및 주민등록증 사본 등의 서류를 제출하고 면접을 봐서 골프장에 입사한다. 그리고 이후에도 해당 골프장으로부터 업무지시 및 관리를 받는다.


혹여 해당하는 순서에 라운딩을 나가지 못하게 되거나 업무지시 이행시 실수를 하는 등의 경우에는 벌점을 받게 되는 구조로 결코 내부의 규제와 강제로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다. 특수한 고용관계로 인해서 경기보조원들은 과거에는 회사로부터 한 끼의 식사도 제공받지 못했으며, 볼에 맞아서 다치더라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국민간서비스연맹의 이영화 조직국장은 “대부분의 골프장에서 하루 1건의 타구사고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골프공의 속력이 세기 때문에 공에 맞으면 이가 부러지기도 하고 실명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에선 골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고를 골프장이 책임지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손님이 책임지게 되어 있다. 따라서 경기보조원은 다치고서도 손님을 잘 만나면 치료비를 받을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치료비도 못 받을 뿐만 아니라 치료기간 동안 일을 하지 못해서 오는 불이익 또한 감당해야 하는 실정이다.


경기보조원은 타구사고 외에도 각종 질병과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타구사고의 위험 때문에 안경을 착용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많은 경기보조원들은 렌즈를 착용하게 되고 이로 인한 안구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또 18번 홀까지 있는 필드를 골프가방을 운반하며 걸어서 이동을 하다 보니 관절이 좋지 않다. 여름에는 5시간 동안 뙤약볕에 노출되다 보니 일사병에 걸리고,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에는 잔디가 미끄러워 낙상사고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또 잔디에 뿌려진 맹독성 농약에 노출되다 보니 구토증과 피부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보조원들의 노동자성은 아직도 명쾌한 결정이 나지 않고 있다. 이영화 국장은 “골프를 치러오는 정치인들도 우리가 ‘빨리 끝내고 가지 않으면 회사로부터 벌점을 받는다’고 말해서 회사에 소속된 노동자임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는 국내 골프인구를 대략 35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골프장을 방문하는 내장객 수는 1995년에 824만 명에서 2000년에는 1205만 명, 2005년 1176만 명으로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 해외로 골프 여행을 떠나는 사람만 해도 1년에 50만 명으로 전체 해외 여행객 수의 5.7%를 차지한다.


어떤 이는 골프로 한 나라를 세계에 알리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어떤 이는 골프가 자신의 정치인생에 걸림돌이 되었다. 그리고 어떤 이들에겐 골프가 상처와 눈물이다. 대한민국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골프가 당신에겐 과연 어떤 의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