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는 멈춰 있고 텔레비전은 작동하지 않았다
시계는 멈춰 있고 텔레비전은 작동하지 않았다
  • 이가람 기자
  • 승인 2013.02.0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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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예찬] 서울 황학동 만물시장

‘장은 오래 묵어야 맛있고, 친구는 오래 돼야 좋다.’
세월이 지날수록 어떤 물건들은 그 진가를 드러낸다. 누군가에게는 쓰레기 취급을 당할 케케묵은 잡동사니들이 모이는 골목이 있다. 옛 사람의 정이 그립고 고즈넉한 맛이 담긴 골동품들을 찾는 사람들에게 황학동 만물시장은 천국이다.

1970~80년대엔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문정성시를 이뤘다. 하지만 세월의 변화는 황학동 만물시장도 비껴갈 수 없었다. 마트나 백화점에 익숙한 요즘 세대들에게 황학동은 낯선 지명이다. 누군지 알 수 없는 무수한 사람들의 손을 탄 물건들, 황학동에서도 이제 골동품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상점은 찾아보기 드물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만물’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란 뜻이다. 만물시장엔 물건만큼이나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역사가 물건에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물건이 새로운 주인을 만날 수 있게 도와주는 만물시장 상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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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공업고등학교 앞엔 주방용품, 신발 가게들이 있다. 신발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가면 왼편에 허름한 골동품들을 모아 놓고 파는 골목이 나 있다. 가게들은 서로 마주보고 있다.

40년 전만 해도 리어카를 이끌고 나와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 년 뒤 건물들이 들어서고 하나둘씩 상인들이 모여 이 골목이 형성됐다. 그들이 지금은 백발의 노인이다. 그럼에도 상인들은 심심할 겨를이 없다. 고물을 정비하고 옆 가게 주인과 담소를 나누느라 할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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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입구 옷가게는 이 골목 사랑방이다. 새색시처럼 곱게 화장한 주인 아주머니는 사람들을 그냥 보내주지 않는다. “생강차 한 잔 하고 가” 라며 붙잡는다. 못 이기는 척 생강차를 받아들었다. 철사 줄에 달아 놓은 털모자, 옷걸이에 걸린 외투들은 골목 상인들의 패션 트렌드를 대변한다. 꾸미기 좋아하는 아주머니답게 꽃 장식들이 가게 군데군데 달려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옛날엔 골동품 가게가 많았는데 지금은 줄었어. 텔레비전보고 구경 온 손님들도 실망해서 돌아간다고. 그런 거 보면 속상해.”

정말 골동품 전용 가게는 몇 군데 없었다. 김경구(67) 아저씨의 ‘벨소리’가 살아남은 가게 중 하나다. 일제 강점기 때 썼다는 ‘모시모시’ 전화기부터 미닫이문이 달린 텔레비전, 시계, 타자기 등이 진열 되어 있다. 시계는 멈춰 있고 텔레비전은 작동하지 않았다.

“골동품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어서 고치지 않아.”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당신은 나의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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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없는데도 가게 문 밖에서 청소기를 고치는 아저씨가 계신다. 승원전자 대표 정상철(70)씨다. 가게 앞에 다가가자 옆 가게 주금안(65) 아주머니가 더욱 흥이 났다. 아저씨는 묵묵히 청소기 수리에 집중하신다. 허연 먼지와 기름때가 검정색 외투를 덮었다. 장갑도 없이 고치느라 손가락이 트다 못해 갈라졌다. 수리에 방해가 될까 손톱은 바짝 잘랐다.

“아저씨는 약주 안 잡수시고 담배도 안 펴. 이렇게 열~심히 일하시니까 아직까지 장사하시지. 성실하다고 소문나신 분이야.” 남편 자랑에 신이 난 아주머니는 한참 뒤에야 부부사이임을 밝혔다. 아주 애부가가 따로 없다.

“우리 아저씨가 깨끗하게 새것처럼 만들어 주시니까 단골들도 있지. 식당하려는 사람들이 중고 사러 잘 와. 밥솥 없이 밥 만들겄어(웃음).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온 외국인들도 많이 와. 알뜰 시장에서 물건 파는 사람들도 오고.”

청소기를 다 고친 아저씨가 서랍 속에서 무언가 꺼내신다. 30년 된 미제 연장이었다. 그동안 이것으로 고쳐온 전자제품들은 셀 수없이 많다. “시대가 변하면서 손님들이 원하는 게 바뀌니까 우리가 맞춰나가야지.” 하지만 이 연장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저씨 곁에서 40여 년을 함께한 아주머니가 승원전자를 지켜온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노부부는 서로가 인생 최고의 동료이자 동반자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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