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고 섬뜩한 ‘뱀 비늘’에 그렇게 깊은 뜻이
차갑고 섬뜩한 ‘뱀 비늘’에 그렇게 깊은 뜻이
  • 참여와혁신
  • 승인 2013.02.0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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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도에 강하고, 필요에 따라 늘어나며, 표면 마찰력 뛰어나
약점 많은 신체구조 환경에 맞춰 살아남아
[과학칼럼]
뱀의 생존전략

동아사이언스 박태진 기자

2013년은 ‘뱀의 해’다. 뱀은 지렁이 같은 몸뚱이로 꿈틀거리는 모습 때문에 징그럽고, 독을 가진 이빨 때문에 무섭게 여겨지는 동물이다. 하지만 지구가 탄생한 후 지금까지 살아남은 다른 생물들처럼 뱀 역시 그만의 지혜와 생존전략을 가지고 있다. 다리도 없이 구불거리는 몸으로 이 험한 세상을 살아온 뱀. 계사년 설날을 맞아 뱀이 가진 다양한 지혜를 소개한다.

S자 이동 비밀은 비늘 마찰력

지구상에 약 3,100종의 뱀이 넓은 지역에 걸쳐 살고 있다. 이들은 사는 곳마다 조금씩 다른 특성을 지니면서 환경에 최적화된 상태로 살아남았다. 다리도 없고 크기도 별로 크지 않은 뱀이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비밀은 무엇일까. 답은 뱀의 몸 구석구석에 숨어 있다.

먼저 ‘뱀’ 하면 떠오르는 비늘부터 남다르다. 뱀 비늘은 땅 속에서 살다가 밖으로 나오면서 진화했다. 흙 속에 있을 때는 특별히 몸을 보호하지 않아도 됐지만, 땅 위 환경은 다르기 때문에 포유류의 털이나 새의 깃털처럼 몸을 지키는 피부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들의 비늘은 언뜻 보면 물고기처럼 하나씩 따로 떨어진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사실은 전체가 하나로 연결된 피부라 머리부터 꼬리까지 한 번에 허물을 벗을 수 있다. 특히 자기보다 몇 배나 큰 먹이를 삼켰을 때는 주름졌던 비늘이 늘어나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단백질의 일종인 젤라틴으로 이뤄진 비늘은 뱀이 습도 변화에 잘 대응하도록 만들어준다. 젤라틴으로 온몸을 한 차례 코팅하고 있어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습기를 막고, 몸에 있는 습기도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뱀은 건조한 사막은 물론 파충류가 살 수 있는 환경 어디에나 살 수 있다.

비늘의 진짜 중요한 역할은 ‘이동성’에 있다. 다리가 없는 뱀이 사막이나 나무 위, 물 등에서 잘 다닐 수 있는 이유가 바로 비늘에 있다. 뱀의 배 부분에 있는 비늘은 필요에 따라 마찰력이 다르다. 덕분에 S자 곡선을 그리며 미끄러지듯이 이동할 수 있다.

미국 조지아공대 데이비드 후 교수팀은 실제로 뱀 비늘의 마찰력을 측정하기도 했다. 연구진은 작고 온순한 뱀인 ‘퍼블란 밀크 스네이크’를 마취시켜 몸통을 앞, 뒤, 옆으로 기울여 각 방향의 마찰력을 측정했다. 그 결과 앞 방향의 마찰력이 가장 작고, 옆 방향이 가장 컸다. 뱀이 이동하려고 근육을 수축하고 이완할 때 마찰력이 작은 몸통 앞쪽이 이동하기 좋도록 생긴 구조다.

또 마찰력이 큰 몸통 옆쪽이 브레이크 장치의 역할을 해서 머리와 꼬리가 먼저 움직이고 나중에 몸 전체가 앞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뱀이 기어가는 모양은 자연스럽게 S자 모양의 사인곡선이 된다. 이런 이동방식은 물에서도 유리하다. 파도를 따라 사인곡선으로 이동하면 힘을 덜 써도 앞으로 잘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 박태진 기자
서식지 따라 다른 역할 하는 비늘

비늘의 구조를 나노 단위에서 관찰하면 더 놀라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서식지에 따라 나노 단위의 무늬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역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과학자들의 설명이다.

주로 사막 모래 위에서 활동하는 뱀의 비늘을 나노 현미경으로 보면, 비늘 사이사이에 작은 벽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벽들은 나노 크기의 미세한 모래 알갱이를 비늘에 달라붙게 하는 역할을 한다. 모래처럼 거친 입자가 있는 땅에서 기다 보면 비늘이 상하거나 이동하는 데 방해를 받을 수도 있는데, 작은 모래를 붙여서 ‘윤활제’로 쓰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이동할 때 마찰력도 줄어들기 때문에 더 쉽게 이동할 수 있다.

반대로 물에 사는 뱀 비늘을 현미경으로 보면 나노 크기의 돌기가 튀어나온 것을 볼 수 있다. 이들 돌기 사이에 물을 머금게 되면 물과 뱀 비늘이 맞닿는 부분에 충격이 줄어들기 때문에 역시 이동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뱀의 특성을 배워 로봇을 만들려고 한다. 다리가 없이도 이동할 수 있는 뱀 로봇을 만들면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재난 현장 등에 쉽게 투입하고 도움 받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뱀 비늘에 있는 나노 크기의 무늬들을 마찰이나 마모가 필요한 각종 기계장치에 응용하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먹이 안 먹고도 한동안 버텨

뱀 몸에 있는 400개가 넘는 갈비뼈도 뱀의 움직임을 돕는 데 최적화돼 있다. 자기 몸보다 4배나 큰 먹이를 삼키고 소화시킬 수 있도록 최대한 벌어지며, 몸을 180°에 가깝게 꺾을 수도 있다. 유연한 몸을 스프링처럼 사용해 하늘을 날기도 한다. 황금나무 뱀은 갈비뼈의 탄성을 이용해 나무 위에서 뛰어 오른 뒤, 공중에서 몸을 움직여 S자로 날아간다.

먹이를 못 먹어도 한동안은 버틸 수 있는 특징도 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전략 중 하나다. 서부다이아몬드방울뱀이나 볼비단구렁이는 6개월 동안 먹지 않아도 버틸 수 있다. 미국 아칸소대 연구진에 따르면, 그 비결은 뱀의 몸이 기본적으로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인 기초대사율을 평소의 72% 수준까지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물무늬왕뱀은 겨울이 다가오면 아예 토끼 다섯 마리를 한 번에 먹고 3달 동안 굶기도 한다.

뱀의 재미있는 점 중 하나는 기온이 15℃ 아래로 내려가면 아예 먹지 않는다는 점이다. 뱀은 변온동물이기 때문에 환경에 따라 몸의 온도가 변하는데, 체온이 너무 떨어지면 몸에서 소화효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먹은 음식이 도리어 안에서 썩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변 온도가 너무 많이 내려가면 먹은 음식을 도로 토해내기도 한다.

뱀은 독을 가진 이빨을 빼면 길쭉하고 다리가 없는 몸 등을 가진 약점이 많은 생물이다. 하지만 비늘이나 갈비뼈 등 신체의 특성을 최대한 환경에 맞추고, 환경 변화에 맞춰 활동하기 때문에 험한 자연환경을 이겨내고 살아남았다. 유연하고 구불거리는 몸속에 나름대로의 지혜를 갖춘 셈이다. 우리 조상들이 오래 전부터 지혜의 상징으로 존경해왔던 뱀의 변화무쌍함을 배워 올해도 활기차고 즐거운 일들이 많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