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에 울고 웃는 영업사원 김 차장의 하루
실적에 울고 웃는 영업사원 김 차장의 하루
  • 이가람 기자
  • 승인 2013.02.0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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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은 구두 굽에는 내 삶의 흔적 고스란히
될 때까지 성실하면 ‘실적’과 ‘신뢰’얻는다
[삶의 현장] 금호리조트 분양팀

국가에서만 복지를 운운하는 게 아니다. 기업에도 사원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범위가 늘어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리조트 회원권을 분양받는 기업이 늘고 있다. 과거엔 대기업에 한정된 이야기였지만 최근엔 소규모 기업들도 이런 추세에 합류하고 있다. 기업에 리조트를 소개시켜주기 위해 발 벗고 뛰어다니는 영업 사원들이 있다. 금호리조트 분양팀 차장 김영호 씨를 인터뷰하고 일과를 각색해보았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고객들이 언제 다시 연락을 줄 지 모르잖아요.”

김영호 씨의 휴대전화 번호는 두 개다. 영업용과 개인용으로 나뉜다. 영업용 번호는 15년 전부터 사용해왔으며 휴대전화 기종은 구형 모델이다. 영업용엔 15년 동안 만나온 사람들의 전화번호가 담겨있어서 함부로 휴대전화를 바꾸기가 어렵다. 구형 휴대전화에 저장된 수많은 정보엔 김영호 씨의 영업 인생이 담겨 있다.

AM 9:00

나는 분양팀 영업 사원으로 일한 지 올해로 8년차다. 우리팀 영업 사원 6명이 출근하자마자 회의실에 모였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부터 걱정이 앞선다. 6명이 전국을 모두 포괄하려니 신경 쓸 게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리조트업체는 영업 전담 직원이 따로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분양팀 정사원들이 자체적으로 나서서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분양팀 내외적인 사정을 알 수 있어 영업할 때 도움이 되지만 한편으론 업무 부담이 큰 게 사실이다. 오늘은 공기업과 대기업 위주로 역할분담을 하려 한다. 그래도 희망적이다. 이 법인들은 중소기업에 비해 임직원 수도 많고 예산도 많이 확보돼 있는 부류라 분양이 성사될 확률이 높을 거라 기대된다. 막내 사원에겐 그동안의 경험상 수월했던 법인을 맡겼다. 그렇다 해도 아직 영업에 익숙지 않을 테니 이따가 있을 미팅에 데려가야겠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AM 11:00

오늘 리조트 분양 미팅 2건이 잡혀있다. A기업은 점심식사를 겸한 미팅이고 그 이후 B기업과의 미팅도 있다. 영업에선 고객을 직접 대해보는 것이 최고의 공부다. 막내 사원에게 내가 하는 말과 행동들에서 나오는 영업 스킬을 직접 보여주려 한다. 사무실을 나서기 전 미팅할 때 유의할 점과 맡은 일들을 알려주고 회사에서 나왔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게 일찍 나왔다. 나는 영업을 시작하던 시절, 시간에 관해 아픈 기억이 있다.

첫 미팅 약속을 잡았을 때가 떠오른다. 참으로 아찔했던 날이다. 전날 지인의 상갓집에서 밤새 조문객들을 맞았다. 다음날 오전까지 근무를 하다가 약속 장소로 이동하는데 이게 웬일. 도로를 차들이 가득 메워 앞으로 나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마음은 이미 미팅 장소에 도착했는데 몸은 도로 위를 벗어날 줄 모른다. 안되겠다 싶어 미팅 장소에서 가까운 주차장까지 이동했다. 주차장에 차를 놓고 헐레벌떡 뛰어갔다. 도착해서 시계를 보니 이미 15분이 지난 상태다. 죄송하면서도 난감했다. 첫 경험이라 막막함이 앞섰다. 설상가상으로 거래처 담당자의 반응은 냉담했다.

“약속 시간이 지났으니 돌아가세요.”

할 말이 없었다. 내 잘못이니 그냥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 후로 시간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지키려고 노력한다. 늦게 되면 담당자에게 미리 연락해서 양해를 구해야한다. 막내 사원에게도 시간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고 조언해주었다.

PM 12:00

A기업 담당자하고는 전부터 친분을 쌓아온 사이다. A기업은 리조트 분양 예산이 현재 넉넉하지 않은 상태라고 들었다. 다른 리조트를 계약했고 우리 리조트는 계약이 불확실한 상황이라서 오늘의 미팅이 중요하다. 식사를 하면서 하는 미팅은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야 한다. 업무 이외의 사적인 대화가 추가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면서도 미팅의 목적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재 리조트 분양 구조가 리조트 회사 이름만 보고 계약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 지역에서 강세인 지점 별로 리조트에 계약하는 추세다. 왜 우리 리조트를 택해야 하는 지 소개를 시작했다. 우리 회사 리조트 중 유명한 제주 리조트, 통영 충무 마리나 리조트의 장점을 부각했다.

“저희 금호리조트는 제주도민들도 아름답다고 인정하는 올레 5코스 해안에 위치해 자연 경관이 매우 좋습니다. 앞으로 1개 동을 더 증축해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덕분에 많은 고객들께서 찾아주십니다. 또한 통영에 위치한 충무 마리나 리조트는 오랜 명성으로 통영을 대표하는 리조트로 발전했습니다. 다도해 연안의 잔잔한 바다 덕분에 요트 시설까지 갖추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쌓아온 신뢰감과 성실함도 있어 자신이 있었다. 한 번 인연을 맺으면 끝까지 고객으로 모시기 때문에 이것을 알아봐 주시는 분들도 계신다. A기업 담당자도 그런 분이었다.

“윗분들께 보고를 드린 후 다른 리조트와 금호까지 다 계약 할게요. 다 김영호 차장님께서 그동안 회원 관리를 잘 해주신 덕분이에요.”

그러면서 리조트를 이용했던 사원들의 건의사항이 접수됐다며 전달해주신다. 내용인즉슨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예약용지를 리조트에 프린트 해가야 하는 게 번거롭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과거의 시스템이었다. 현재는 예약번호만 알아도 체크인이 가능하도록 변경돼 편리해졌다고 정정해 드렸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PM 2:00

A기업과의 미팅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좋은 기운을 얻어 다음 미팅도 잘 풀리기를 바라며 B기업으로 이동했다. B기업은 최근 담당자가 바뀌었다. 이전 담당자가 금호 리조트와 계약했던 사실이 있고 사원들의 리조트 만족도도 높았다기에 안부 차 미팅을 잡았다. 그런데 A기업과 미팅이 생각보다 길어졌고 도로상황이 좋지 않다. 아무래도 B기업 미팅에 늦을 것 같다. 첫 미팅 때의 악몽이 떠오른다. 다행히 전화로 미리 양해를 구했더니 사정을 봐주셨다. B기업 담당자는 이전 담당자로부터 나에 대해 좋은 평을 들었다고 한다. 이런 평판을 갖추면 미팅을 하면서 플러스 요인이 된다. 앞으로 리조트 회원권 구매까지 이어질 수 있는 불씨다. 새로 온 담당자는 우리 금호 리조트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이니 당장의 계약보다는 친목, 상담 위주의 미팅을 진행했다. 미팅은 반드시 리조트 분양만이 목적은 아니다. 당장 회원권을 구입하지 않더라도 지속적인 교류를 바탕으로 한 만남은 영업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다. 앞으로도 몇 번이고 다시 찾아뵈어야겠다.

▲ 영업을 다니느라 구두 굽이 금방 닳는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PM 3:00


두 건의 미팅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걷다보니 구두 굽에서 유난히 소리가 난다. 그러고 보니 굽을 갈아줄 때가 왔다. 영업을 하다 보니 왔다갔다 움직이는 일이 많아 보통의 회사원들보다 굽이 금방 닳는다. ‘한번 산 신발은 오래 신자!’는 주의라 구두수선 집에 들렀다. 구두 굽을 교체하고 헌 가죽에 광을 내니 오래된 구두지만 멀쩡하다. 하나만 매일 신지 않고 요일별로 여러 켤레를 돌아가며 신기 때문이다. 구두 굽이 닳을 때면 내가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흔적이 드러나는 것 같다.

사무실에 돌아왔다. 미팅의 내용을 토대로 업무 기록을 남겨야 한다. 회사 전산 시스템에 입력하면 된다. 추후에 다른 사원이 이 업무를 맡게 된다면 작성된 내역들을 확인하며 인수인계가 된다. 현황들을 차례로 보면서 업무 파악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오늘은 성과가 있어서 쓸 말이 많아 기쁘다.

벌써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다. 미팅을 갖지 못한 기업들이 산적해 있지만 일일이 다 찾아갈 수 없다. 그럴 땐 전화상으로 영업을 한다. 그렇지만 전화는 미팅보다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여러 번 시도해야한다. C기업은 작년에 계약했었지만 올해는 아직 소식이 없다. 일단 해당 담당자에 연락을 하여 예산이 확보돼 있는지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보통 전화를 걸면 예산이 없다며 무심하게 끊는 경우가 허다하다. C기업도 마찬가지다. 담당자들이 다른 업무에 쫓기다보니 이 일에 당장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이다. 처음 입사해서 통화했을 땐 예산이 없다고 하면 곧이곧대로 믿었다. 이제 8년차다 보니 대화해보면 ‘예산이 있을 거다 없을 거다’라는 촉이 온다. 이게 바로 노하우인가 보다.

예산이 없었다가 생겼거나 리조트 분양 업무를 해야 하는 시점의 담당자는 먼저 연락을 주기도 한다. 그러니 영업에서 빠른 포기란 없다.  

PM 4:00

리조트 이용현황을 살펴보는 중이다. 어떤 법인이 어느 정도 리조트를 이용하는지 살피는 것도 우리가 할 일이다. D기업은 올해 새로 리조트 회원권을 구매한 기업인데 이용률이 저조해서 관리 대상이다. 담당자가 리조트 시설을 직접 관찰하길 원해서 통영까지 함께 다녀온 적이 있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내가 과거 통영 리조트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 홍보에 신경을 썼다. 그런데도 무엇이 문제일지 사후관리를 통해 알아보아야겠다. 여름 휴가철이 되면 이용률이 오르겠지만 짚고 넘어가야 한다. 

PM 5:00

사장님께 업무 보고가 있다. 지난해엔 실적이 미진해서 회사에 냉기가 돌았다. 어떤 원인이 있는지 조사하고 극복 방안을 모색해봤다. 영업은 실적에 울고 웃기 때문에 이 부분에 민감하다. 또한 올해 새로 시작되는 업무 계획과 목표도 준비했다. 영업에서 고객을 대하는 것엔 적응이 됐지만 사장님 앞에 서면 아직도 신입사원 같다. 사장실에 들어섰다. 나름대로 준비한 자료들을 토대로 떨리지만 차분히 사장님께 보고 드렸다. 드디어 준비한 내용이 끝났다. 뭔가 불안하다.

“김 차장, 내일 다시 보고해.”

역시 첫 술에 배부르긴 어려운가 보다. 축 쳐진 어깨를 이끌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이렇게 일을 하다 힘이 들 때면 가족을 떠올린다. 퇴근 후 집에 가서 만날 아내와 아이를 생각하니 어깨가 펴진다. 

PM 6:00

퇴근 길, 사무실을 나왔지만 집으로 가지 못한다. 거래처 담당자와 저녁식사 자리가 기다리고 있다. 이것 또한 영업 업무의 연장선상이다. 여기에 술은 옵션이다. 술에 취해 실수를 하기라도 한다면 그동안 쌓아온 나의 노력은 잿더미로 변한다. 그러므로 항시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게 중요하다.

모든 업무가 끝났다. 개인용 휴대전화를 꺼내든다. 집으로 들어가며 아내에게 전화하는 진짜 퇴근길이다. 영업사원이 아닌 우리 가족의 김영호로 돌아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