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이기는 건 희망이다
절망 이기는 건 희망이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3.02.0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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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만들 수 있으면 뭐든 해야
아무리 중요해도 담아낼 그릇 안 되면 무용지물
[기획인터뷰] 백석근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지난해 11월 30일, 민주노총은 진행하던 7기 임원선거를 중단했다. 전날 열린 중앙집행위원회(중집)에서 10월 30일의 대의원대회 결정을 무효라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10월 30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직선제를 3년 유예키로 하는 규약개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그런데 당시 표결에 참가했던 대의원 중 일부가 정상적으로 표결 자격을 얻지 못했고, 그 수를 제외하면 대의원대회 의결정족수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민주노총은 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11일 중앙위원회를 열어 7기 임원선거 출마자이기도 했던 백석근 건설산업연맹 위원장을 비대위원장으로 하는 비대위 구성을 인준했다. 백석근 비대위원장에게 맡겨진 과제는 선거와 관련된 규약과 규정을 정비하고, 7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것이었다.

비대위는 직선제와 관련해 지난 1월 24일 열린 정기대의원대회에 1년 9개월 유예를 내용으로 하는 규약개정안을 상정해 통과시 켰다. 대의원대회를 열흘 앞둔 지난 1월 14일, 민주노총 사무총장실에서 백석근 비대위원장을 만났다.

백석근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장으로 선임된 직후 교통사고를 당해 아직까지 한쪽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 같은 시각 위원장실에선 직선제 실시를 촉구하는 좌파노동자회의 농성이 진행되고 있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직선제가 혁신의 전부는 아니다

민주노총이 정상적으로 임원을 선출하지 못한 상태에서 비대위 체제로 전환됐다.

“직선제라는 선거와 관련해서 만들어진 비대위 체제이기 때문에 산별 쪽에서 책임을 지는 게 옳겠다고 해서 몇 차례 논의 과정을 거쳐 내가 비대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비대위원장 역할은 확실하다. 선거제도와 관련된 내용들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와 7기 민주노총 집행부를 어떻게 뽑느냐다.”

일부에서는 비대위가 오래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선거제도와 관련된 내용이 확실하게 정리되지 않으면, 6기 김영훈 위원장 집행부 때처럼 대의원대회가 파행을 거듭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하는 우려에서 나오는 얘기 같다. (선거제도와 관련) 현재까지의 흐름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다수가 합의할 수 있는 지점들을 찾았고, 다수의 의견에 의해서 정리되면 비대위가 그렇게 오래갈 것 같진 않다.

1월 24일 정기대의원대회 때 규약개정이 합의하에 정리되면 비대위가 길어도 3월에는 마무리될 것 같다. (규약 개정이) 안 되면 언제까지 갈지 이제 모른다. 더 짧아 질수도 있다. 대의원대회 때 비대위가 낸 안이 정리되지 않고 또다시 파행이 오면 비대위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비대위원들이 또다시 바뀔 수 있는 지점은 있는데, 거기까지 가는 불상사는 없을 것 같다.”

정기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유예안이 통과될지 우려도 있을 텐데.

“비대위 내에 지금 3개 팀을 꾸렸다. 인수위 대응팀, 열사와 고공농성하시는 분들과 관련된 현안투쟁 대응팀, 그리고 정기대의원대회 준비팀이 있다. 거기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다각적으로 검토를 할 거다. 중집의 대다수의 의견이 그쪽(유예)으로 동의되는 걸 보면 정족수부족으로 대의원대회가 무산되는 사태는 없을 것 같다.

다음으로는 유예안이 3분의 2를 넘길 수 있느냐의 문제인데 이건 열어봐야 알겠지만 현재 중집 성원들의 동의수준을 보면 무난하게 넘기리라 판단한다. 대의원대회가 앞으로 열흘 가까이 남아 있는데, 그 사이에 만장일치로 합의를 보고 규약개정이 커다란 불상사 없이 정리되는 것을 비대위의 최고목표로 두고 있다.”

2007년 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총의 혁신을 위한 과제 중 하나로 임원직선제가 통과됐다. 현재 상태에서도 혁신과제로서 직선제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는가.

“민주노총 탄생 이후 17~18년 동안에 민주노총이 최하의 상황에 와있다고 판단한다. 여러 가지 혁신의 과제에 직선제도 하나의 혁신의 과제일 수 있다고 판단한다. 그런데 직선제가 (혁신과제의) 전체는 아니다. 혁신할 수 있는 하나의 기제가 되더라도 조직이 담아내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지금은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안 된다. 이게 문제다. 직선제는 언제든지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준비되면 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산별, 지역본부도 하고 있는 직선제인데, 민주노총이 못 할 데는 아니다. 하지만 제도를 담아낼 그릇의 준비는 덜 됐다. (직선제가) 아무리 혁신의 키가 되더라도 올바로 담아내지 못하면 키가 아니라 수렁에 빠질 수 있다. 그런 거라면 (직선제에 대해) 심사숙고할 부분이 있다.

지금 민주노총의 혁신 과정에서 중요한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조직의 민주적 질서에 대한 부분과 집중에 대한 부분들. 민주노조가 가지고 있는 ‘민주’라는 부분들이 이미 깨져 있다. 결의 따로 집행 따로다. 이 부분을 바로세우지 않으면 혁신은 안 된다. 뭐든지 결정을 했으면 집행이 돼야 하는 거다. 다른 하나는 조직의 현장성이다. 지금 민주노총 조직의 숫자나 내용이 거의 답보상태다. 비정규직에 대한 조직사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민주노총이 지금까지 했던 방향이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방점을 어디다 찍는가는 그 시점마다 다르다. 지금은 민주노총이 확 한 번, 100만 조직화 사업에 지금 80만이라고 하면, 20만은 비정규직 대오로 꾸려내겠다는 각오로 돈과 사람을 투자해야 한다.

현장성을 확보해 들어가는 조직사업이 혁신과제 가운데 중심에 서야 한다. 이 두 가지의 혁신과제를 풀면서, 그 과정에서 민주적 질서의 내용 중 하나인 수렴구조로서 직선제가 확인되어야 할 것 같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최소한 죽음은 막아야 하지 않나

대선시기에 민주노총이 의미 있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민주노총 출신 간부들이 각각의 대선캠프로 뿔뿔이 흩어지는 모습도 보였다. 이런 이유가 현재 민주노총이 정치방침을 정하지 못했기 때문 아니냐 하는 지적이 있다.

“민주노총이 정치방침을 가져야 한다고 판단한다. 민주노총 내부의 여러 가지 역관계 속에 정치방침을 못 만든다면, 제휴도 할 수 있고 연대도 할 수 있다. 민주노총이 탄생할 때부터 노동중심의 정치세력화를 주장해왔다. 그건 지금까지도 역시 유효하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대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은 잘못됐다. 민주노총이 중심에 서서 대중정당으로 새롭게 정치세력화(를 추진)해야 한다. 내용적으로 노동중심의 대중정당이라는 점을 확고하게 하는 정체세력화가 준비돼야 한다. 민주노총이 정치를 직접 하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진보정치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그 세력은 민주노총 중심이 돼야 한다.”

진보적 정권교체라는 슬로건이 민주노총에서 주류를 형성했는데, 결과는 그렇게 안 나왔다. ‘멘붕’ 상태라고 이야기한 산별도 있었다.

“절망과 좌절을 이겨낼 수 있는 건 희망밖에 없다. 민주노총이 추진했던 제반의 사업이든, 정치세력화든, 어떤 방침이든, 이게 다 이루어지는 것들은 아니다. 하지만 조합원들이 볼 때 그거 전망 있는 거다, 희망 걸 수 있다, 이번에 좀 어려운 길을 가더라도 이건 된다, 이런 게 다 희망이다.

이번 대선과정을 보면 장기투쟁하고 어렵게 싸우는 동지들한테는 기대를 걸게 했었던 부분들이 있었다. 그런 부분에서 민주노총이 중심적 역할을 못한 건 사실이다. 그들이 희망을 볼 수 있는 부분이 한두 부분만 있었어도 그러진(자살) 않았을 것 같다. 이제 절망의 끝에 내몰린 꼴이 되었다. 대선과정에서 민주노총은 정치적 입장을 유보한 상태였지만,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가맹조직이나 산별들이 자기현안을 가지고 대선 판에 다 붙었다. (대선 결과) 이게 다 무너져 내렸다. 왜냐면 지금 (박근혜) 당선인 쪽하고는 그런 부분에 대한 거래가 깊질 않다. 하나도 없었던 데도 있다. 기대를 하고 접촉하고, 같이 했던 쪽이 결과적으로 떨어지다 보니까 이런 결과가 왔다.

인수위원회가 꾸려졌지만 (민주노총은) 사실 통로가 없다. 1월 7일 인수위원회 앞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이 밝힌 입장은 대화하자는 거였다. 만나서 대화하자. 그래서 인수위원장 면담요청도 해 놨다. 정치적 이유야 어떻든 일단은 고공에 떠있는 분들, 죽음에 이르는 상황들은 최소한 막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 참여와혁신 포토DB
민주노총이 힘 있었으면 검찰이 꿈쩍 않겠나

투쟁사업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민주노총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민주노총이 크게 두 가지만 잘하면 박수 받는다. 하나는 산별이 가지고 있는 고유영역의 사업이 있는데 이것들을 공동으로 연대해서 정치사업화 하는 부분이다. 민주노총이 전체사업을 밀고가기 위해선 정치적 힘이 있어야 한다. 대정부 교섭력이 됐든, 정치력이 됐든. 이게 없는 내셔널센터는 자기역할이 없는 거다. 오히려 산별이 더 잘한다. 가맹조직이 강화되고 확대될 수 있는 부분들을 찾아 정치적 의미든 대중적 의미든 현장의 의미든, 민주노총은 언제든지 힘을 갖고 이 부분을 도와야 한다.

다른 하나는 사업에 대한 내셔널센터의 정치력과 힘이 있어야 한다. 교섭력도 뛰어나야 하고 전투력도 있어야 한다. 자기 나름의 다양한 전략전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현안사업장들, 투쟁사업장들, 장기든 단기든 확인되는 것만 해도 60개가 넘는다. 1월 4일까지 확인한 게 57개다. 더 확인되고 또 터지는 데가 있다. 민주노총 비대위원들에게 이야기했다. 이 60개 현장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기자회견이라도 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면, 1인 시위라도 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면 무조건 붙어라! 규모를 떠나서. (지금 당장 모두) ‘모아서 싸우자!’고 하는 건 하지 않겠다는 거다. 지금 이 문제를 풀기 위한 첫 단추는 투쟁들을 만들어 가는 거다. 우리 문제를 풀기 위해선 어떤 세력하고든 무조건 교섭해야 한다.

(비대위원장으로) 첫 출근하고 투쟁사업장인 쌍용차와 유성에 들렸다. 5일 희망버스 편으로 울산 부산까지 쭉 내려갔다. 의외로 쌍용차하고 유성을 보면서 힘을 얻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아직 건강하더라. 옆에선 멘붕이다 좌절이다 하는데, 한쪽에선 투쟁하는 동지들이 정리를 해가고 있다. 이미 박근혜가 당선됐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 싸우는 수밖에 없다.

동지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나머지가 있다. 정치적인 것들. 노동부에서는 회사를 고발해 검찰에 넘겼다는데, 검찰은 손에 쥐고 꿈쩍도 않는다. 민주노총이 정치력이 있거나 힘이 있으면 검찰이 저러겠나. 내셔널센터든 산별연맹이든 이것을 풀어주는 역할이 필요한 거다.”

민주노총이 지나치게 정치권이나 법률적인 해결에만 기대는 건 아니냐. 역으로 얘기하면 민주노총이 대중투쟁으로 현안을 돌파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현 시점에서는 그 비판을 전면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1월에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2월에는 각 산별 조직들 대의원대회, 1년 사업을 짜는 때여서 민주노총이 조직을 동원하기에도 상당히 어려운 시기다. 1년 사업을 짜는 데 있어서 앞으로 1년 동안 정치적인 지형에 어떤 변화가 있을 거고 우리는 어떤 힘을 가질 건가, 이런 부분이 가장 핵심적이다.

점이 쳐져야 하는데 점이 잘 안쳐지는 거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중투쟁을 통해 돌파하는 것이 진리다. 이 부분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해서 법에 기대거나 정치에 기대는 게 아니다. 인수위 앞이 모든 정치적인 핵이 되고 있다. 거기에서 민주노총이 뭔가 이슈화 시켜내는 거다. 거기에 기대는 게 아니다.

예컨대 인수위원장 면담을 기대하는 게 아니다. 뻔하다. (인수위에서) 가지고 나올 것 없다. 하지만 박근혜 당선인에 대해서 성격규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 의지가 없구나.’ 그럼 우리 조직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 만나주지도 않고 정치적인 부분에 대해서 풀려고도 안 하는 사람하고 우리가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힘을 만들어서 대드는 수밖에 없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새 정부와 관계설정을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분명히 노사정이 함께 만나 할 수 있는 교섭 내용들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산별 노사교섭의 틀을, 단위사업장 문제를 뛰어넘는 교섭의 틀을 가지고 있느냐. 금속이든 보건의료든 산별을 건설한 곳도 아직은 형성돼 있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 노사정이라는 것은 한계가 뚜렷하다.

또 하나 노정교섭의 측면에서 정부와 지금 민주노총이 정치적이든 정책 협업적 파트너든 대립적 갈등이든 갖고 있는 파트너십이 있느냐. 노동계의 정책적 요구를 검토해줄 수 있는 교섭 내용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정부쪽에서 노동계의 흐름들이나 내용을 색안경 안 끼고 정당하게 노동계의 파트너로서 인정을 하고 보느냐. 이게 전혀 안 되는 관계에서 노사정이라고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민주노총이 (노사정에 앞서) 노정, 노사교섭이라고 하는 부분을 선결과제로 가져왔던 것에 대해서는 아직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