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 불씨 언제 다시 살아날지 모른다
매각 불씨 언제 다시 살아날지 모른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3.02.07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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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에겐 고배당, 노동자엔 고용불안
민간기업에 매각 땐 전력수급 불안정해질 것
[뉴스後] 한전산업개발 매각 저지투쟁 이후

▲ 서울 서소문동 한전산업개발 사옥 앞에서 한전산업개발노조가 매각에 항의해 규탄집회를 열고 있다. ⓒ 한전산업개발노동조합
지난해 4월, 서울 도심 한복판인 서소문동 한전산업개발 사옥 앞에 농성천막이 설치됐다. 한전산업개발의 대주주인 자유총연맹이 보유지분을 매각하려하자 한전산업개발노조가 매각 저지에 나선 것이었다. 그로부터 9개월여가 흐른 올해 1월, 한전산업개발 노사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 올 1년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 다시 매각이 진행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매각을 둘러싼 노사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꺼지지 않고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는 상태다.

시작부터 꼬인 한전산업개발 민영화

한전산업개발(대표이사 김영한)의 전신은 지난 1990년 한전이 100% 출자해 설립한 한성종합산업이다. 1996년 사명을 한전산업개발로 바꿨으며, 전기검침, 고지서 발행 및 송달 등을 독점적으로 수행했다.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갖춘 알짜기업이었던 것이다. 2006년에 전기검침 업무에 제한경쟁입찰제도가 도입되면서 독점은 깨졌지만, 한전산업개발은 여전히 이 분야에서 50%에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한전산업개발은 전기검침 업무 외에도 전국 13곳의 석탄화력발전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석탄화력발전소 6곳의 설비정비 업무도 담당하고 있다. 이 같은 업무를 통해 한전산업개발은 2011년 기준 170억여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한전은 2003년에 공기업 자회사를 민영화하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한전산업개발 보유지분의 51%를 매각했다. 이를 인수한 곳은 비정부기구(NGO)인 자유총연맹이었다. 자유총연맹은 김대중 정부 들어 정부의 지원금이 대폭 줄어들자 단체 운영을 위한 수익사업 차원에서 한전산업개발을 인수했다.

당시 자유총연맹이 한전산업개발 지분 인수에 들인 금액은 665억 원이었다. 하지만 자유총연맹이 실제로 조달한 금액은 인수금액의 1%에 불과한 6억6천만 원뿐이었다. 나머지는 한전산업개발이 운영하는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석탄회를 싼값에 넘기는 조건으로 2개 업체로부터 조달한 210억 원과 금융기관 대출로 충당했다. 석탄회는 시멘트 대체재로 쓰이는데, 이를 싼값에 넘겨 한전산업개발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당시 자유총연맹 총재가 구속되기도 했다.

이렇게 한전산업개발의 대주주가 된 자유총연맹은 지난 2010년 12월 주식시장에 한전산업개발을 상장했다. 상장과 함께 자유총연맹은 보유지분 51% 중 20%를 매각했다. 2대 주주였던 한전도 보유지분 49% 중 20%를 매각했다. 상장 이후 우리사주조합은 5% 남짓의 지분을 확보하게 됐다. 이로써 자유총연맹이 31%, 한전이 29%, 우리사주조합을 포함한 일반투자자가 40%의 한전산업개발 지분을 보유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지분 매각을 통해 자유총연맹은 358억여 원을 회수했다.

자유총연맹은 이 같은 지분 매각뿐만 아니라 매년 100억 원에 이르는 현금배당을 통해서도 투자금을 회수했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한전산업개발은 매년 110억 원대의 현금배당을 실시했는데, 당기순이익이 61억여 원이던 2009년에도 114억 원을 배당했다. 당기순이익 가운데 배당금 비중을 나타내는 배당성향은 매년 90%가량이었다.

배당한 금액 중 51%(2010년 상장 이후에는 31%)는 자유총연맹의 든든한 자금줄이 됐다. 배당금이 다소 줄어든 2010년과 2011년에도 자유총연맹은 각각 15억여 원, 26억여 원을 현금배당으로 받아갔다. 이렇게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자유총연맹이 챙긴 금액은 배당금 618억여 원, 지분 매각 대금 358억여 원을 더해 모두 977억여 원에 이른다.

지난해 4월, 자유총연맹이 한전산업개발 보유지분 매각의 우선협상대상자로 만도그룹 컨소시엄을 선정하면서 매각은 급물살을 탔다. 보유하고 있는 지분 31%를 전량 매각할 경우 매각대금은 78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이미 회수한 금액에 매각대금까지 더하면 자유총연맹은 한전산업개발에서 9년 만에 1,750억 원 넘게 뽑아내는 셈이고, 금융기관 대출금을 갚아도 1,100억 원 가까이 이익을 남기는 것이었다.

▲ 지난해 3월 28일 열린 한전산업개발 정기주주총회 당시 주주들이 매각방침을 강행 처리하려 하자 한전산업개발노조가 이를 막아서는 과정에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단물 다 빨아먹고 이제 와서 ‘먹튀’라니

자유총연맹은 당초 지난해 7월까지 한전산업개발 매각절차를 완료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노조는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되기 전날 오후에야 결과를 ‘통보’받을 수 있었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정에서는 매각에 대한 노조와의 어떠한 대화도 없었다. 항간에 한전산업개발을 매각할 거라는 소문이 돌자 노조가 이를 확인했는데, 자유총연맹은 그때까지도 노조에게 아니라고 발뺌하기만 했다.

이에 한전산업개발노조(위원장 신민식)는 자유총연맹 총재와 사무총장을 만나 노동자가 원하지 않는 일방적인 매각절차 추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어 중앙위원회를 열어 노조를 비상대책위 체계로 전환키로 결의하고, 매각저지 투쟁계획을 수립했다.

이 같은 결의에 따라 한전산업개발노조는 서울 서소문동 한전산업개발사옥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연일 집회를 이어갔다. 평소에는 수도권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매각저지 투쟁을 진행했고, 지식경제부 항의집회 때는 전국의 조합원들이 모이기도 했다.

“2003년 당시 민영화 방침에 따른 매각부터가 잘못이었습니다. 민영화 논리를 앞세워 노동자가 피와 땀으로 발전시킨 회사를 관변단체에 떠넘긴 거죠. 자유총연맹은 전기사업에 관한 한 문외한입니다. 그러니 한전산업개발을 인수한 후에 투자는 하지 않고 자기들 배당 챙기는 데만 열심이었죠. 곶감 빼먹듯 건물과 대지 등 자산을 하나씩 하나씩 팔아치웠어요. 경영진은 자회사 손실을 한전산업개발에 떠넘겨 경영을 부실하게 한 것은 물론, 임기 중 횡령과 배임행위를 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습니다. 노조가 일방적인 매각을 저지하는 것 외에 경영진 연임을 반대했던 이유입니다.”

처음 자유총연맹이 한전산업개발을 인수하던 2003년, 자유총연맹은 노조에 고용보장과 처우개선, 시설투자 등 다양한 약속을 했다. 그로부터 9년이 흐르는 동안, 자유총연맹이 지킨 약속은 단지 고용보장 하나뿐이었다. 처우개선이나 시설투자는커녕 있는 자산마저도 매각됐다.

그런 마당에 자유총연맹은 신규사업 투자 여력 부족과 배당수익 감소를 이유로 한전산업개발 지분을 매각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노조는 자유총연맹이 제시한 매각의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 원래 자유총연맹이 한전산업개발을 인수한 게 수익사업 차원이었으니 배당금을 단체 운영자금으로 활용한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치더라도, 2010년 상장 당시 확보한 350억 원이 넘는 금액은 당연히 한전산업개발에 투자됐어야 했다. 증시에 상장했으니 신규사업 투자 여력이 부족하다면 증자를 통해서 자금을 확보할 수도 있었다. 그런 시도는 전혀 하지 않은 채 매각을 들고 나온 데에는 다른 속내가 있다는 것이다.

노조는 그 이유로 한전의 완전한 지분매각 전에 보다 높은 가격에 지분을 팔아치우려는 속셈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당초 한전은 정부의 민영화 방침에 따라 주식시장 상장 이후 남아 있는 29%의 보유지분을 2012년 안에 모두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한전의 지분매각은 2013년 1월 현재 진행되지 않은 상황이다). 한전의 지분매각 이전에 좀 더 높은 매각대금을 챙길 수 있을 때 지분을 매각하려는 게 자유총연맹의 의도라고 노조는 설명한다. 인수 이후 9년 동안 단물만 쭉 빨아먹고 이제 와서 발을 빼려는 자유총연맹의 행태는 ‘먹튀’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노조의 가장 큰 요구는 고용보장이었다. 여느 회사처럼 한전산업개발에서도 매각에 따른 노동자의 고용불안은 쉽게 예상되는 문제였다. 노동자에게 고용안정은 곧 생존권의 문제였다. 노조로서는 고용불안과 생존권 위협을 야기하는 매각을 중단하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노조는 또 부실과 비리의혹을 받고 있는 경영진을 연임시키지 말고 회사를 정상화시킬 수 있는 전문경영인을 선출하라고 요구했다. 여기에 그간 건물 매각, 배당금 등으로 엄청난 이익을 챙긴 만큼, 자유총연맹은 고액 배당 요구를 중지하고, 자회사 손실분과 위탁원 퇴직금 지급 문제를 책임지라는 요구가 더해졌다.

ⓒ 한전산업개발노조
매각은 철회됐지만

한전산업개발노조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만도그룹의 실사를 수차례에 걸쳐 막는 등 매각 저지를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그 결과 지난해 9월, 자유총연맹은 한전산업개발 지분을 매각하려는 계획을 거둬들였다. 이로써 지분매각을 둘러싼 한전산업개발 노사의 갈등은 표면적으로는 해소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노조는 자유총연맹이 언제든 다시 매각을 진행하려 할 것이라고 보고 이와 관련한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안테나를 곧추세우고 있다. 신민식 위원장은 전기산업에 대한 이해가 없는 자유총연맹에 한전산업개발을 매각한 것도 문제였지만, 이를 다시 민간기업에 매각하는 것은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발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은 석탄화력발전입니다. 그중 13곳을 한전산업개발이 운영하고 있어요. 그런 한전산업개발을 민간기업에 매각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전기산업의 공공성보다는 기업의 이윤에만 관심 있는 민간기업이 한전산업개발을 인수하면 전력수급이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요즘 안 그래도 전력대란이니 뭐니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한전산업개발을 민간기업에 매각하는 것은 전력수급 안정화에도 역행하는 것입니다. 만약 사고라도 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어요.”

노조는 이 때문에 한전산업개발의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 방안으로 노조가 제시하고 있는 것은 연간 수익의 배분에 관한 것이다. 지난 2009년까지는 당기순이익의 90%를 배당했고, 상장 이후 배당성향은 낮아졌지만 2011년에도 여전히 거의 50%에 가까운 당기순이익을 배당으로 돌렸다. 노조는 현재 ‘지나치게 많은’ 배당을 1/3 수준으로 줄이고, 1/3은 노동자에게, 1/3은 기업에 재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노사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수익을 가져가는 치킨게임이 되지 않을 수 있고, 노사가 서로를 이해하면서 공생할 수 있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그렇게 해야 노사가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기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한전산업개발 경영진에게는 노사가 함께 공생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노조는 주장한다. 이는 단적으로 2012년 임·단협이 현재까지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노조는 2012년 임·단협과 관련해 노사간 자율적 합의에 실패한 후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다.

임·단협이 해를 넘겨 지지부진해지자, 신민식 위원장은 지난 1월 2일 대표이사와의 막후교섭을 통해 잠정합의안을 이끌어낸 바 있다. 비록 노조가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교섭을 조속히 마무리하려는 의지가 담긴 잠정합의안이었다. 노조는 발전부문(석탄화력발전) 조합원과 배전부문(검침 및 송달) 조합원 간의 이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중앙위원회를 열어 잠정합의안을 승인했다.

그런데 경영진은 대표이사가 합의한 내용을 뒤집어 결국 노사 대표자가 이끌어낸 잠정합의안은 무용지물이 됐고,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까지 하게 된 것이다. 자유총연맹을 비롯한 주주에게는 당기순이익을 넘어서는 수준의 배당까지 하면서도, 피땀 흘려 기업을 발전시켜온 노동자에게는 인색하기 그지없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지난해 한전산업개발 노사의 극심한 갈등을 야기했던 지분매각은 철회됐다. 하지만 노사가 서로 믿지 못하면서 여전히 갈등을 빚고 있고, 더구나 매각의 불씨가 언제 다시 피어오를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한전산업개발노조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