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수첩을 샀습니다
새로 수첩을 샀습니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13.03.05 09:52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참 봄이 더딥니다. 입춘 우수 지났건만 겨울 외투를 꼭 껴안고 삽니다. 골목 귀퉁이에는 아직도 녹지 못한 눈이 겨울의 풍경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출근길, 도시가스 가격을 인상한다는 소식에 한숨이 먼저 나옵니다. 유난히 추웠던 탓에 난방비 영수증 받기가 두려웠는데…. 이러다간 집에서도 침낭 속에서 잠을 자야 하는 건 아닌지 싶습니다. 어디 난방비뿐입니까? 당근 가격은 400% 가까이 뛰었다고 합니다. 먹을거리를 비롯한 생필품 가격이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앞 다퉈 오르고 있습니다. 중산층 70%를 향한 국민 행복 시대의 구호가 신기루처럼 여겨집니다.

지난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가장 뜨거웠던 이야기는 경제민주화였습니다. 정책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기업의 독식 구조를 바꿔 골고루 나누자는 생각에는 후보들의 목소리가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뒤에는 경제민주화라는 말을 신문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어디 경제민주화뿐이겠습니까? 4대 중증 질환자의 병원비 걱정이 사라지나 했더니, ‘팩트’를 잘못 이해한 시민을 나무라며 공약집을 내밉니다. 노령연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정 나이가 되면 20만 원의 노령연금을 받을 줄 알았는데, 차포는 떼겠다고 합니다. 늘 이런 식입니다. 아니, 공약을 아직도 곧이곧대로 믿는 이가 어리석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봄, 참 멉니다.

누구나 겨울을 사는 동안 봄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봄은 기다린다고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봄은 길에 있습니다. 찾아 나설 때 맞이할 수 있는 계절이 봄입니다. 넋 놓고 기다리고 있다가는 봄은 오간 데 없고 땀 뻘뻘 흘릴 여름과 마주칠 겁니다. 그때서야 봄이 짧니 사라졌니 하면서 온난화 탓을 해봐야 계절의 봄은커녕 인생의 봄도 사라질 겁니다.

봄을 맞이하려면 다가가야 하고, 몸을 낮춰야 합니다. 나무 곁에 바짝 다가가 눈 맞추고 귀 기울이면 남보다 한 달은 먼저 봄과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벌써 나무들은 바쁩니다. 꽁꽁 얼어 튼 살갗에 물을 길어 적시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손바닥으로 나무를 매만져 보세요. 겨울나무와 달리 촉촉할 겁니다. 그리고 귀를 바짝 기울여보세요. 새순을 틔우려고 애를 쓰는 노동의 소리가 들릴 겁니다. 이번에는 몸을 낮추세요. 봄은 이 땅의 낮은 곳에서 시작합니다. 벌써 흙을 뒤집고 나온 생명이 연둣빛 웃음을 지으며, 난 봄이야 하며 당신에게 말을 걸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우려의 눈과 기대의 마음이 교차할 겁니다. 봄비에 우려는 말끔히 씻겨 사라지고, 봄 햇살에 기대는 활짝 꽃망울을 터뜨리기를 바랍니다.

대통령이 춥고 그늘진 이들에게 봄이 되는 길은 다른 것 없습니다. 다가가서 귀 기울이고, 늘 낮은 자리를 찾아 몸을 낮춰 눈을 마주치면 됩니다. 대통령이 눈 마주치고 귀 기울일 사람은 온실의 화초가 아니라 꽁꽁 언 길에서 겨울을 버티고 있는 나무와 들풀들입니다.

오늘 수첩 한 권을 샀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5년을 꼼꼼하게 기록할 예정입니다. ‘수첩’에 담겼던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었는지, 아니면 더 큰 설움의 바다를 만들었는지도 새로 산 수첩에 담을 겁니다.

조금은 더디고 소란스럽고 우려되고 뒷걸음치는 것 같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기에 부푼 기대로 2013년 3월을 맞이합니다. 박근혜 정부 5년이 여느 봄보다 아름답게 피어나기를 바라며….

홍대 언저리에서 <참여와혁신> 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