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는 늦잠, ‘유전자’ 때문이야!
오늘도 어김없는 늦잠, ‘유전자’ 때문이야!
  • 참여와혁신
  • 승인 2013.03.05 10:34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잠도 자꾸 미루면 ‘빚’ 된다
수면유전자 차이 따라 잠자는 습관도 달라

동아사이언스 박태진 기자
새해 첫 학기가 시작되는 3월. 대부분의 학생들은 ‘일찍 일어나는 새’가 돼 더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겠다고 다짐한다. 학생뿐 아니라 직장인도 매일 일찍 출근해 여유로운 하루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눈꺼풀에 풀칠을 했는지 아침만 되면 좀처럼 눈이 안 떠지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저녁에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고 새벽에 일어나도 몸이 개운치 않고, 오히려 피곤함만 돌아온다. 이유는 유전자에 있다. 사람마다 가진 생체시계 유전자가 ‘아침형 인간’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에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지각색이다. 어떤 이는 말끔하게 차려 입고 책까지 읽는 반면 다른 이는 고개를 수차례 곤두박질하며 못다 잔 아침잠을 채운다. 시계바늘은 똑같은 시각을 가리키는데도 이렇게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가 ‘유전자’다. 키에 외모에 성격도 모자라서 이제는 잠자는 패턴도 유전자와 상관이 있다는 이야기다. 

사람마다 다른 잠 패턴, 유전자 때문

우리 몸속에서 알람시계 역할을 하는 ‘생체시계 유전자’는 자고 일어나는 시기를 조절한다. 초파리에서 발견한 이 유전자의 이름은 per, tim, cyc, clock이다. per와 tim, cyc는 각각 영어 단어 ‘시기(period)’, ‘영원한(timeless)’, ‘주기(cycle)’의 줄임말이다. 네 유전자 모두 시간과 관련 있는 이름인 셈이다.

이 유전자들이 만드는 단백질의 양이 늘었다 줄었다하면서 우리 몸에 시간을 알려준다. per 유전자가 만드는 ‘PER 단백질’과 tim 유전자가 만드는 ‘TIM 단백질’이 많으면 잠에서 깬다. 이들 단백질 수치는 보통 오전 6시부터 점점 높아졌다가 정오부터 낮아진다. 오후 3시가 되면 최저점을 찍고 다시 높아졌다가 저녁 9시가 되면 최고점을 찍고 다시 줄어든다. 오후 3시에 낮잠이 몰려오고 밤이 깊어질수록 졸리는 이유도 이들 단백질 양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cyc 유전자가 만드는 ‘CYC 단백질’과 clock 유전자가 만드는 ‘CLOCK 단백질’은 per 유전자와 tim 유전자의 단백질 생성을 촉진한다. 또 이렇게 만들어진 PER 단백질과 TIM 단백질은 두 유전자의 단백질 생성을 억제해 전체적으로 PER 단백질과 TIM 단백질의 양이 조절된다. 쥐 같은 포유류에서는 tim 유전자와 cyc 유전자를 대신해 ‘cry 유전자’와 ‘Bmal1 유전자’가 각각 그 역할을 한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자기 패턴 맞게 충분한 수면 필요

생체시계 유전자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따라 사람들은 각자 다른 24시간 주기의 생체곡선을 갖게 된다. RER 단백질과 TIM 단백질의 수치가 높은 시기가 늦은 아침부터 정오까지면 ‘아침형’이고, 오후부터 집중력이 높아져서 오후 6시 이후에 가장 활발한 사람은 ‘저녁형’이 된다.

초저녁에 잠들어서 아침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per2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잠들고 깨는 주기가 일반적인 경우보다 3~4시간 정도 빨라진다. 이런 아침형 주기를 ‘전진성수면위상 증후군’이라고 부르는데, 유전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늦잠을 많이 자는 사람들은 아침형에 비해 per3 유전자가 짧고, faxl3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faxl3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우리 몸은 하루를 길게 인식해서 생체 시계가 느려진다. 다른 사람이 밤 11시로 느끼는 시간을 오후 8시 정도로, 아침 8시를 새벽 5시 정도로 인식하므로 일찍 잠들지 못하고 아침에도 늦잠을 자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하루에 자는 시간은 평균 8시간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조금만 자도 생생하게 일상생활을 하고, 잠을 길게 자지 못하면 맥을 못 추는 사람도 있다. 하루에 몇 시간을 자야 충분한지를 결정하는 것도 유전자다. 이런 유전자를 ‘수면유전자’라 하는데, 이들 중 하나라도 이상이 생기면 남들보다 더 자거나 덜 자게 된다.

남들보다 더 자도록 만드는 수면유전자는 ‘ABCC9 유전자’가 대표적이다. 유럽에서 7개국 4251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ABCC9 유전자가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30~60분 정도 더 자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유전자가 있다면 8시간 30분에서 9시간을 자야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초파리의 경우에도 ABCC9 유전자가 있으면 평균보다 3시간 정도 더 잤다.

ABCC9 유전자와 달리 수면 시간을 줄이는 유전자도 있다. 미국 위스콘신대 키아라 치렐리 박사가 초파리 9000마리의 평균 수면시간을 조사해 평균보다 30%만 자도 멀쩡한 초파리를 찾았다. 이 초파리들을 사람으로 바꿔 말하면 하루에 3~4시간만 자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셈인데, 이들에게서 ‘셰이커 유전자’에 변이가 발견됐다. 잠을 조금만 자도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 초파리의 수명은 보통 초파리보다 짧았다.

늦잠을 자는 이유 중에는 생활습관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매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것은 빌린 돈을 갚지 못한 것처럼 고스란히 빚으로 쌓인다. 가령 어떤 사람이 하루에 8시간을 자야하는데, 전날 5시간밖에 못 잤다면 3시간을 빚지게 된다. 다음날은 8시간이 아니라 11시간을 자야 충분한 잠을 자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바쁜 현대인에게 매번 충분한 잠을 자면서 수면빚을 안 지고 살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면 수면빚이 계속해서 쌓이고 우리 몸은 조금이라도 더 자라는 몸부림을 치게 된다. 이 몸부림의 결과가 늦잠으로 나타나게 된다.

우리 몸은 이미 유전자를 통해 아침형이나 저녁형, 혹은 중간형으로 맞춰져 있다. 또 각자에게 맞는 양만큼 푹 자야 건강하고 공부나 일의 효율도 높일 수 있다. 새해 새 학기에는 각자에게 맞는 수면 주기와 수면량을 찾아보고, 잠 때문에 빚지지 않는 삶을 사는 게 어떨까. 무리하게 아침형 인간이 되려는 것보다 스스로에 맞는 계획을 세우는 게 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