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 햇살 같은 노조 만들 것
제약업계 햇살 같은 노조 만들 것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3.03.05 11:06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외국계 제약사 소산별, 한국민주제약노조 출범
고용불안 느끼는 조합원들, 유대감 넓혀가야
[인터뷰 5] 김상찬 한국민주제약노조 위원장

지난해 12월 12일, 한국노총 화학노련 산하 외국계 제약사 8개 노조로 구성된 한국민주제약노조가 출범했다. 한국노바티스, 사노피파스퇴르, 얀센, 다케다, 와이어스, 쥴릭파마, 아스트라제네카, BMS 등의 사업장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조합원은 900여 명 규모이다. 국내에 진출해 있는 다국적 제약사들이 대부분 생산라인을 철수했기 때문에 한국민주제약노조 조합원들의 대부분은 영업직으로 구성돼 있다.

공공연맹의 노동부유관기관노조에 뒤이어 한국노총의 두 번째 소산별노조로 깃발을 올린 한국민주제약노조의 김상찬 초대 위원장을 만나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한국민주제약노조의 뒤를 이어 양대 노총 환경부유관기관 노동조합이 소산별 노조 설립을 위한 조직 전환을 결의한 바 있으며 올 상반기 중 본격 출범할 예정이다. 유사 업종별 노동조합의 연대가 타 조직에서도 급물살을 탈 수 있을지 앞으로가 기대된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한국민주제약노조의 출범을 축하드린다. 소산별노조 설립의 취지가 궁금하다.

“가장 우선시되는 부분은 고용이다. 높은 임금을 받기 위한 노동조합 활동이 아니다. 고용이 불안정하다면 우리 사회 전반이 제대로 가동이 되겠나. 노동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노동력밖에 없지 않나. 기업체에서 일하다가 퇴직금을 받고 자영업을 시작하면 성공하는 비율이 1, 2% 밖에 안 된다고 한다. 외국계 제약사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상시적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25년 넘게 외국계 제약사에 근무하다보니 실정이 빤하다. 우리 조합원들을 비롯해 직원들 대부분이 영업직이다. 과거에는 외국계 제약사들에서 파업도 많이 일어나고 했다. 그러다보니 그룹 입장에서는 굳이 국내 생산 공장을 유지할 필요가 없는 거다. 어차피 자본도 있고,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는데 기반 시설을 남길 필요가 있겠나.

최근의 고용 상황은 더욱 불안정해지고 있다. 영업직 역시 아웃소싱을 사용하기도 한다. 기업들끼리 간단한 협약을 통해서 서로 보유하고 있는 약품을 나눠 팔기도 한다. 과거처럼 복잡하게 인수합병을 진행하는 것도 별로 없어졌다. 코프로모션(공동영업)을 위한 계약을 맺고, 기간이 지나면 해지되는 것이니 얼마나 간단한가? 영업이나 판매를 위한 네트워크마저도 굳이 유지할 필요가 없어지는 거다. 실제로 지점을 폐쇄하거나 아예 사무실 공간을 없애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더욱이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이 시행되면서 회사의 입장에서는 구조조정의 명분이 생긴 거다.”

소산별노조를 출범시켰는데, 향후 교섭의 구도는 어떻게 가져갈 생각인가?

“여러 가지 교섭의 형태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일단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건 대각선 교섭이다. 가능하면 산별 차원에서 움직이고, 모든 운영권과 책임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각 지부 단위에서 노사관계가 원만하며 교섭 자체도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면 굳이 산별에서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본조는 교섭지침을 내려주고, 이에 따라 충실히 노사가 교섭을 이끌어 간다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8개 지부 중 사노피파스퇴르가 제일 먼저 교섭이 타결됐는데, 연맹과 산별의 지침에 따라 잘 풀렸다. 단체협약과 임금합의 조인식 자리에도 지부에 권한을 위임했다.”

본사 내지는 그룹 출신의 외국인이 한국 법인 대표로 오기 때문에 조직이나 노사문화의 차이로 빚는 갈등도 있어 보인다.

“아무래도 개인차가 있을 거 같다. 내가 한국노바티스노조 위원장을 처음 할 때 새로 온 CEO가 스위스 사람이었다. 한국에 와본 적은 없었지만, 네팔의 국경없는의사회에서 8년간 무료진료를 해왔던 이였다. 동양적인 사고에 대한 이해도 있었고, 합리적인 합의점을 노조와 모색해 왔다. 하지만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답답한 경우가 많다.

우선 본사에서 내려오는 정책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다국적 제약사들이 한국 외에도 다른 나라에 법인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본사의 정책을 이야기하지만 이게 각 나라별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르다. 물론 공통적으로 가져가야 할 부분이 있겠지만, 회사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본사 정책의 핑계를 대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어느 정도 입김을 받는 부분에 대해선 이해할 수 있지만, 이들 한국 법인 대표들이 아무 권한도 없다는 식으로 나온다는 건 말이 안 된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지점 폐쇄에 대한 얘기도 있었지만, 전국에 흩어진 영업직 조합원들과 조직적 유대를 어떻게 형성해 나갈 계획인가?

“산별노조가 지금 출범했을 뿐, 제약 쪽의 노동조합은 유서가 깊다. 선배들부터 꾸준히 노동조합 활동에 매진해 왔으며 그만큼 조직이 탄탄하다고 볼 수 있다. 이만큼 대표자나 간부들이 자주 모이고 회의하는 조직도 없다고 생각된다.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부분이 영업자들의 관계는 굉장히 끈끈한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영업망, 판매망 등을 통해서 전국의 지점과 네트워크가 잘 구축돼 있다. 한데 뭉치는 경향도 아주 강하다. 향후 외국계 제약사를 넘어서 제약 분야 전체의 산별노조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다. 이러한 취지는 노조 규약에도 잘 명시돼 있는데, 제약업체 비정규직 직원들은 물론, 퇴직한 이들, 제약업체 취업을 시도하는 이들까지 조합에 가입할 수 있도록 범위를 열어 두었다.

이러한 강점에 대해선 경영진들도 잘 알고 있는 거 같다. 그렇기 때문에 구성원들을 개인 단위로 파편화하려는 시도도 많다. 긴장을 하는 부분은 알겠지만, 회사와 대립각을 세우는 세력이라고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얘길 하고 싶다. 오히려 산별노조와 함께 노사가 문제없이 발전적인 관계를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사람이 옷을 벗게 만드는 것은 몰아치는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이다. 노동자의 권익을 높이고 업계가 꾸준히 발전해나갈 수 있도록 유연한 자세를 취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