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파는 빅판의 아름다운 미소
꿈을 파는 빅판의 아름다운 미소
  • 전재훈 기자
  • 승인 2013.03.0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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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로 무너진 삶, 무위도식 노숙생활
가족들과 행복하게 지낼 날을 꿈꾼다
[사람향기] 김희종 빅이슈코리아 판매원

종종 길거리나 지하철 역 출구 앞에 서서 책을 파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바로 빅이슈 판매원, 이른바 ‘빅판’이다. 종로를 거닐던 중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몸을 꽁꽁 싸맨 아저씨가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책을 들고 서있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고 보행자들이 그가 있는 쪽으로 걸어간다. 이 아저씨는 사람들을 향해 구애를 하지만 수많은 보행자들은 추위에 몸을 움츠린 채 시선을 잘 주지 않는다.

그는 왜 여기에 있을까. 2년째 종로의 한 가로수 밑을 지키고 있는 빅판 김희종씨(59세)를 만났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종로의 가로수 아래에서

“빅이슈입니다. 3,000원이에요.”

약간은 갈라진 목소리, 어눌한 말투로 사람들에게 소리친다.

대부분은 그냥 지나치지만 간간이 사람들이 책을 구매하기 위해 다가가면 반갑게 웃으며 응대한다. 너무 환한 얼굴이지만 왠지 마음이 슬프다.

그는 서울역, 용산역, 청량리역 일대에서 1년 2개월간을 노숙했다. 이 역들 근처에는 노숙인을 위한 무료급식소가 있다. 하루는 청량리 무료급식소 ‘밥퍼’ 앞에서 줄을 서고 있는데 빅이슈 직원들이 나눠주는 구인 전단지를 받았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일을 하고 싶어도 받아주는 곳이 없어 전전긍긍하던 때라 솔깃해서 유심히 설명을 들었다. 그리곤 다음 날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 전단지를 잃어버린 것이다. 할 수 없이 몇 달 더 노숙을 해야 했다. 하지만 빅이슈는 그의 운명이었던 것일까. 이듬해 2월, 같은 곳에서 줄을 서있다 빅이슈 직원들을 또 만났다.

“그때는 작정하고 찾아갔죠. 그래서 작년 2월부터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나무 아래에 있은 지도 거의 2년 됐네요.”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그는 낮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가로수 밑을 지킨다. 봄, 가을에 날이 좋을 때는 하루 20권 정도 팔지만 요즘 같이 추운 겨울에는 행인들이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지 않아 열댓 권 파는 게 보통이다. 빅판들은 빅이슈 한부를 1,400원에 떼 와서 3,000원에 판다. 그가 손에 쥐는 돈은 하루 2~3만원 남짓이다.

“내 인생자체가 쓸모없더라고요.”

그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고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은 사채 빚이었다. 개인 사업을 하다 일이 기울자 사채를 쓰게 됐고, 빌린 돈을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 2년 정도 있으니 사채업자가 원금 7,000만 원의 3배를 내래요. 난 그렇게는 못한다고 하니까 사채업자가 ‘그럼 넌 이 자식아 죽어야 돼’ 하는 거예요. 그리고 저와 가족들을 괴롭히기 시작했죠. 저는 그 사람들을 피해 다니고, 그 사람들은 저를 찾아다녔어요. 부모님은 물론 사촌이나 고모님한테도 찾아가고 난리도 아니에요. 집안 식구들 모두 노이로제에 걸렸어요. 그런 일을 당하는 제 심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파란만장한 삶과는 달리 ‘이 아저씨 어딘가 귀엽다’는 느낌이 든다. 환한 미소와 어눌한 말투, 그 속에는 지난 시간의 괴로움이 숨어 있었다.

“하루는 친구들하고 얘기하다 물을 마시는데 친구들이 제가 물을 마시지 못하고 흘린대요. 저는 그걸 의식하지 못했고요. 뇌경색이 입으로 온 거예요. 그길로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갔습니다. 반신불수가 되는 줄 알았어요. 다행히 병원에 빨리 도착해서 몸은 멀쩡합니다. 하지만 말하는 게 이렇습니다. 그리고 감정조절이 잘 안돼요. TV를 보다가 제 자신도 모르게 울고 웃고 합니다.”

사채업자들은 그의 삶을 산산조각 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스스로 집을 나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끝에 결국 집을 떠났다. 그리고 서울역, 청량리역 일대를 자신의 거처로 삼게 됐다.

“2008년에 60만 원을 들고 나왔어요. 처음엔 찜질방에서 생활했는데 나중엔 갈 데가 없었죠. 결국은 노숙을 하게 된 겁니다. 노숙할 때는 그야말로 무위도식했어요.”

아침에 눈뜨고 5시면 전철을 탔다. 소요산에서 천안까지, 오이도에서 당고개까지 지하철로 왔다갔다 하는 것이 그의 일상이었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듯하고, 지하철만큼 좋은 게 없죠. 노숙하는 동료들이 ‘여름엔 어디가 좋다, 겨울엔 어디가 좋다’ 이야기를 해줍니다. 더울 땐 덕소역 벤치에 가서 자주 낮잠을 잤어요. 그리고 때 되면 밥 주는 곳에 가서 밥을 먹죠. 그렇게 1년 2개월을 보낸 겁니다. 노숙할 당시 하루에도 12번씩 죽고 싶어요. 내 인생자체가 쓸모없더라고요. 몸은 병들고 미치겠는 거예요. 살아 뭐하나. 죽어야지. 끔찍하게 많이 생각했어요.”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다시 찾아온 희망

그러다 빛을 만났다. 무언가 가슴속에 꿈틀거리게 하는 재기의 빛. 빅이슈를 만나게 된 것이다. 빅이슈에 처음 들어가면 10권을 무료로 준다. 이걸로 종잣돈을 만든다. 이렇게 3만 원 종잣돈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해보니까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더라고요. ‘그래, 한번 해보자’ 뭔가를 한번 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6개월 이상 근무하면 회사에서 임대주택을 얻어줘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하던 버릇 때문에 6개월을 버티질 못해요. 술 마시고 경마하던 사람들은 돈 벌면 또 그걸 해요. 저는 6개월을 버텼어요. 지금은 망원동 원룸에 들어가 편안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노숙인의 상당수는 빚이 있거나 신용불량자인 경우가 많다. 때문에 재기하려는 빅판들을 위해 빅이슈에서는 신용회복위원회를 연결해준다. 그는 빚의 삭감과 신용회복을 통해 노숙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가정으로, 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을 봤다.

“상담해준 분에게 빚이 7,000만 원 정도인데 2억을 내라니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얘기했죠. 신용회복위원회에서 조정을 통해 원금에서 약 30% 정도 삭감된 금액만 갚게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5,000만 원 정도 되잖아요. 일시불은 어렵겠지만 내가 벌어서 꼭 갚을 겁니다. 건전한 정신으로 꼭 갚아야죠. 남한테 손가락질 받으며 살 순 없잖아요. 하루 수입의 절반 정도는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는 저금하고 있습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그는 가족과의 정상적인 재회를 간절하게 꿈꾸고 있었다. 집까지 넘어가게 생겨서 서류상 이혼할 수밖에 없었던 아내, 자신의 핏줄 두 아들. 이들이 그가 살아있는 이유다. 하지만 사채업자들 때문에 부인이건 자녀들이건 자유롭게 만나질 못한다. 빚을 삭감 받고 가족들을 당당하게 만나려면 법원 확정판결이 나야한다. 하지만 재판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제일 마음에 걸리는 건 애들이에요. 아들만 둘이 있어요. 큰놈은 직장 다니다가 호프집을 하고 둘째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자식들을 자주 만날 순 없고 몰래 어디서 만나자고 해서 밥이나 한 그릇 먹고 헤어지는 게 전부에요. 자식들이 ‘아빠 춥죠?’ 물으면 저는 ‘춥지 않다’ 그래요. 내가 짐이 될까봐서요. 애들은 자기들도 빠듯할 텐데 돈을 보탤 테니 빚을 다 갚자 그래요. 근데 저는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생활하라고 하죠. 내가 보태주지는 못할망정 손 벌리기가 어려워요. 그게 아비의 마음이죠.”

지금도 그는 친구들에게 경조사 연락을 받는다. 그러면 매번 찾아가진 못해도 축의금이나 부조금을 보낸다.

“친구 아들 결혼하면 3만 원, 누가 상을 당하면 2만 원을 보냅니다. 우리 큰 애가 32살 인데 이제 곧 장가를 간데요. 아들 결혼식 땐 친구들한테 연락을 해야죠.”

누군가에게 일은 고역이고 단순한 돈벌이 수단이다. 하지만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에게는 가슴속 심지의 불씨다. 그는 다시 일을 하며 ‘근로의식’이 생겨서 좋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 했다.

“지금 내 나이에는 어디가도 일하라고 반겨주는 데가 없어요. 이걸 하고 나서는 자고 일어나면 ‘근로의식’이 가슴에 있습니다. 희망에 부푼 생각들. ‘책을 팔러나가야겠구나. 오늘은 몇 권 팔까, 몇 권만 팔자’ 그런 생각이 참 좋습니다. 전에는 매일 전철이나 타고 왔다갔다 했는데, 이제는 ‘나도 할 일이 있구나. 꼭 팔아야지’ 그게 참 좋습니다. 그나마 담뱃값이라도 벌 수 있다는 것. 가족들과 다시 행복하게 지내는 꿈을 꿀 수 있다는 것. 참 좋습니다.”

너무나 환한 미소, 어눌한 말투 그리고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더 좋은 날이 오겠죠.”

빅이슈란?
The Big Issue는 1991년 9월 영국에서 창간된 대중문화 잡지이다. 빅이슈는 홈리스에게만 잡지를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 자활의 계기를 제공한다. 영국에서만 5,500명이 빅이슈를 판매하여 자활에 성공했고 한국어판인 빅이슈코리아는 2010년 7월 5일 창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