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무섭다 4. 산업보호·경쟁력 강화, 국내 노사정은 강건너 불구경?
중국이 무섭다 4. 산업보호·경쟁력 강화, 국내 노사정은 강건너 불구경?
  • 승인 2006.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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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무섭다 4. 노사정 대응 시급하다

개별 기업 “특별한 대책 없다” 80%, 업종협회 ‘나몰라라’

노사정위원회 제조업공동화특위는 3개월째 ‘개점휴업’

 

산업 전반에 걸쳐 중국발 ‘황사’가 거세지만 우리 업계와 정부, 노동계의 대응은 여전히 ‘강건너 불 구경’ 수준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1월 275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중국의 기술추격과 업계 대응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86.6%가 중국 경쟁업체의 기술발전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 빠르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책 마련 여부를 묻는 질문에서는 응답자의 23.3%만이 ‘대책을 마련했다’고 답해 80%에 달하는 기업들이 대응반안 마련에 어려움을 겪거나 대책을 강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책마련을 ‘검토 중’이라는 경우는 40.4%,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기업은 36.3%에 달해 대책을 마련한 기업보다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마땅한 대책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43.2%에 달해 대기업(15.9%)보다 중국의 기술추격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36쪽 그래프 참조>


중국의 기술추격에 대응하기 위한 정채과제로 기업들은 ‘기초연구·원천기술 등 국가차원의 R&D 확대(27.3%)’, ‘자금·세제 등 기업지원 확대(27.3%)’를 가장 많이 꼽았다.


대한상의 경영조사팀 손세원 팀장은 “가격경쟁력이 열세인 상황에서 기술경쟁력마저 중국에 추월당하면 세계시장에서 우리기업이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지는 셈”이라며 “중국이 턱밑까지 접근하기 전에 핵심기술 확보, 기술유출 방지, R&D투자 확대 등 기업과 정부가 할 수 있는 다각적인 기술경쟁력 강화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선 현장과 달리 업계의 문제의식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 한국철강협회 관계자는 “산자부와 상시적 협의 채널을 가동하고는 있지만 최근 중국산 철강의 가격이 오르고 있어 반덤핑 제소 등의 가시적 조치를 취하기에는 통상마찰의 여러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즉각적인 대응에 난색을 표했고 한국석유화학공업협회 관계자는 “석유화학 업종의 경우 중국 추격이 심각하지 않다”고 일축했다.


당장 쌍용자동차의 중국산 부품 조달 방침으로 비상이 걸린 부품업계를 대표하는 자동차공업협동조합도 “국내 부품시장에서 쌍용자동차에 납품되는 비중이 너무 적어 큰 파장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제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사정 논의기구로는 유일한 ‘제조업공동화특위’는 지난해 5월 결성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금속노련 정문주 정책실장은 “올해 들어 몇 차례 모임만 열렸을 뿐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공염불만 반복되고 있다”며 “산업정책 요구의 경우 노사정위원회보다는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통해 풀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 중국산 부품 조달로 인한 부품업계의 도산, 저가 철강재 유입으로 인한 중소 철강업체들의 경영난은 1~2년 내에 수익성 악화와 고용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일선 현장의 진단이다.

 

산업경쟁력·일자리 지키기 나선 세계 노동계
우리 노동계가 별다른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다른 나라 노동계는 자국 산업 보호와 경쟁력 강화에 대해 강력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미철강노조(USWA)는 2003년 말 중국 등지로부터 저가 철강재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부시행정부가 수입 철강제품에 관세를 매기는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철회를 검토하자 공동 캠페인과 입법청원, 로비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미국 철강산업이 경쟁력을 확보할 때까지 세이프가드를 유지할 것을 촉구했다.


또, 2005년 9월에는 미국-호주간 FTA의 본격적 발효에 따라 호주노동조합총연맹과 ‘업무 협정 조약’을 맺고 “가속화되는 자본의 세계화 속에서 노조 스스로가 구조를 혁신하고 세계화에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지 않으면 존립기반 자체가 흔들린다”면서 “FTA 시대에 걸맞는 노조위상 확립과 양국 주력산업 보호를 위한 공동의 노력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미국 최대의 제조업 노조연맹 중 하나인 전미자동차노조(UAW)는 지난 2월 구조조정과 공장 폐쇄 등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미국 자동차산업을 살리기 위한 ‘제조업 기반 강화법안 제출’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동유럽으로의 생산기지 이전으로 심각한 실업 대란에 직면했던 독일에서도 금속노조 등 노동계가 고용안정을 위해 임금·노동시간 유연성을 선택하는 등 대책 마련에 앞장서고 있다.


정부에 중국산 철강재 유입에 대한 대책 마련 요구를 검토 중인 철강노조협의회 조택상 상임의장은 “중국산 저가 철강재의 유입을 방치하면 공장가동률 하락과 대규모 손실에 따른 공장폐쇄, 대량 감원 등 철강산업의 사양화와 철강 노동자들의 대량실업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 자명하다”며 “노동조합과 정부, 업종협회가 나서 통상환경에 대한 대응, 산업보호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이상 통상환경의 변화는 노동계와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산업과 경제의 국경이 사라지고 자유무역협정 확산 등 통상환경이 빠르게 변하면서 국가 차원에 머물렀던 산업 및 일자리 정책도 이러한 환경의 영향을 받게 됐다. 이제 노동계가 통상환경의 변화에 적극 대처하고 산업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한걸음 앞서 행동할 때라는 지적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