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지킴이의 투쟁, 레임덕은 없다
외환은행 지킴이의 투쟁, 레임덕은 없다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3.03.05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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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교환 시도 하나금융지주, 소액주주 보호 없다
독립경영 보장 합의, 1년만에 휴지조각?
[인터뷰 4] 김기철 외환은행지부 위원장

“날씨가 다시 추워지니 걱정이네요.”

수그러드는가 싶던 동장군이 다시금 맹위를 떨쳤다. 퇴근 시간에 맞춰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앞 결의대회를 준비하던 김기철 위원장은 오후가 되면서 매서워지는 칼바람에 걱정이 앞선다. 지난 2007년 금융노조 외환은행지부 10대 위원장으로 당선된 이후, 길거리에서 얼마나 찬바람을 맞았는지 모르겠단다. 함께 고생하는 집행간부와 조합원들, 그리고 이들이 열심히 지켜 온 외환은행의 미래를 생각하면, 봄이 멀지 않았는데 마음이 아직 스산하다.

지난해 2월, 금융위원회의 감독 아래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 외환은행지부 3자 간의 합의가 체결된 이후, 잠시 외환은행에 봄볕이 드는가 싶었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노동조합은 “독립경영 보장 합의를 무시하고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며 다시 투쟁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 외환은행지부
지난 1월 28일 하나금융지주가 이사회를 통해 포괄적 주식교환으로 외환은행의 잔여지분을 확보하기로 결정했다.

“사실상 강제 주식교환이라고 본다. 하나금융지주가 주식교환과 상장폐지를 추진하는 것은 외환은행을 강제로 합병하겠다는 것이다. 5년간 독립 경영을 보장하겠다는 노사정 합의를 불과 1년 만에 휴지조각 취급하는 것이다. 3월 중 주주총회를 거쳐, 4월 중 주식교환을 실시한다는 하나지주의 계획대로라면 4월 26일 이후, 외환은행의 이름은 주식시장에서 사라지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현행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금융지주가 이번에 인수하려고 하는 외환은행의 잔여 지분은 40% 가량이다. 가령 영국에서는 90% 이상, 독일에서는 95% 이상을 공개매수를 통해 확보한 이후에야 잔여 지분의 포괄적 주식교환이 가능하게 돼 있다. 왜냐하면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주식교환이나 주식이전 제도는 모자회사 관계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현행 상법은 기업 구조조정의 편의만을 고려해서 외환은행의 경우처럼 소액주주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 소액주주가 가지고 있는 지분이 40%가 되는데도, 대주주가 특별결의를 통해 강제적으로 주식교환이 가능하도록 돼 있는 거다. 참고로 지난 2011년에 우리금융지주가 경남은행, 광주은행에 대한 포괄적 주식교환을 실시할 당시에는 공개매수(TOB) 등을 통해 지분을 90% 이상 확보한 이후에야 진행됐다.”

지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공개매수를 선행할 경우 소액주주가 어떤 방식으로 보호되는가?

“주식의 교환 비율을 정하거나 교환을 반대하는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가격을 정할 때 인수되는 기업의 적정한 가치평가를 하지 않고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에 의해서 정하게 된다. 어떤 기업이 인수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그 기업의 주가는 어떻게 되나? 당연히 하락하게 된다. 헐값에 인수되는 것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하나금융지주가 론스타 지분을 인수한 이후로 실제 외환은행 주가는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이번에 적용될 주식교환 비율은 대략 외환은행 5주 당 하나금융지주 1주 꼴이다. 주당 순이익을 살펴보면 2011년 말 기준으로 외환은행은 2,487원이고 하나금융지주는 711원이다. 주당 배당금을 따져 봐도 외환은행은 1,510원이고 하나금융지주는 600원이다. 즉 외환은행의 실질 가치가 높다는 얘기다. 교환비율도 그렇지만, 주식매수청구 가격 역시 주당 7,383원이다. 하나금융지주가 론스타로부터 지분을 매입할 때는 11,900원을 줬다. 외환은행의 주당 순자산가치는 13,109원이다. 한마디로 외환은행 소액주주들은 매우 불리한 조건으로 하나금융지주 주식으로 바꾸든지, 아니면 헐값에 팔 것을 강요받는 거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는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배후에 있다고 본다. 금융지주의 지배력 강화와 하나은행의 부실을 완화하는 데 외환은행을 쿠션처럼 쓰겠다는 의도다.”

ⓒ 외환은행지부
인수합병을 둘러싸고 투쟁이 계속되고 있는데 조합원들의 피로도는 어떤가? 지부도 올해 말 임원선거를 앞두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사태가 그만큼 조합원들에게도 절박하게 와 닿기 때문에 그동안의 투쟁 과정이 길고 험난했음에도 여전히 왕성한 참여를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노동조합 차원에서 안 해본 투쟁이 없을 정도였지 않나. 외환은행노조는 집행부는 물론이고 하부 조직까지 짜임새 있게 힘이 결속될 수 있는 조직임을 자부한다.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에 나서는 조직은 레임덕이 없다.

현재 전 직원이 교대로 집회와 1인 시위, 선전전을 벌이는 릴레이 연가투쟁이 진행 중이다. 매일 약 300여 명의 조합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또한 금융노조로부터 올 임단협 교섭 권한을 위임받은 바 있다. 향후 하나금융지주가 합병 추진을 계속한다면 작년 합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외환은행 인수 무효 투쟁을 파업까지 염두에 두고 나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