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해고자 때도 아침저녁으로 조합원 만났다
13년 해고자 때도 아침저녁으로 조합원 만났다
  • 이가람 기자
  • 승인 2013.04.02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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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과 변화를 통해 신뢰 회복
사회 공공적 노동운동 전개해나가야

서울지하철노조가 18대 박정규 위원장을 선출하여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말 서울지하철노조는 17대 정연수 전 위원장의 복수노조 설립과 민주노총 탈퇴 등의 문제들로 구성원간의 갈등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박정규 위원장은 84년 입사해 줄곧 조합원들과의 소통을 놓지 않았다고 말한다.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3월 15일 서울지하철노조에서 인터뷰를 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18대 위원장 선거에 왜 출마하게 됐는가?

“2012년 6월 1일 노원역 역무원으로 복직했다. 99년 해고된 이후 13년 만에 현장에 돌아오니 업무 시스템이 많이 변화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업무를 숙달하고 동료들과 관계를 맺는 데에 전념해왔다. 나는 84년에 입사하여 사내에서 고참에 속하는데 후배들에게 일 못하는 선배로 남기 싫어 열심히 일을 배웠다.

그러나 지난 연말 정연수 17대 위원장이 불신임되면서 노조에 문제가 생겼다. 당시 현직 위원장이 노조 조합원들을 탈퇴시키고 복수노조를 설립하는 유례없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조합원들은 아노미 상태가 됐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노조 조합원들이 노조 창립 이래 이러한 시련과 위기가 없었다고 진단했다. 복직된 지 6개월 된 시점으로 업무에 재미를 맛보고 있던 상황이었지만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오랜 해고기간 동안 내게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도움을 주었던 조합원들이 출마를 권유하기도 했다. 이러한 혼란 상황 속에 조합원들의 지지를 받고 위원장 선거 후보로 나오게 되었다.”

해고기간을 포함해 그동안 어떤 활동을 했는가?

“공공운수연맹에 속해 있으면서 광주, 인천, 대전의 지하철 관계자들과 조직 및 궤도 사업을 했다. 철도노조가 민주화되는 첫 걸음을 우리가 뗐고, 그 일을 계속 해왔기 때문에 지방에 새로 생긴 지하철 조직사업을 했다. 또한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시절에 선거본부 노동부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노동계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공공부문, 궤도 연대 사업, 지하철 현장 등 직책에 구애받지 않고 조직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나는 해고자 신분이었을 때도 조합원들과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3교대 현장 방문을 수시로 했다. 아침, 저녁으로 퇴근하는 조합원을 만나서 때론 라면을 안주삼아 술을 마시며 친분을 쌓았다. 출근 목록을 보고 친한 동료가 있는 역에 가서 안부를 묻기도 했다. 자주 소통하고 만나다보니 동료들과 멀어지진 않았다. 그런데 벌써 13년이나 지났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긴 시간 동안 조합원들의 굴곡진 삶이 현장 속에 너무나도 많이 녹아 있었던 것 같다. 체념, 허탈, 냉소, 불만들 중 ‘냉소’가 가장 무서운 감정이었다. 지난 노조 간부들은 그동안 현장을 방치하다시피 했었다. 사측의 지시를 일방적으로 따르고 전달하기만 하는 노조 간부들 밑에서 조합원들은 아예 입을 닫아버렸다. ‘요구를 이야기해봤자 나만 손해’라며 냉소적으로 시키는 대로만 해가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이런 일이 일상화되다보니 노조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신이 생겨나게 됐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서울시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해고자가 발생했는데, 해고사유가 무엇이며, 어떻게 대응할 건인가?

비정규 노동자들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면서 정년이 단축되는 바람에 해고된 사례다. 모두 7명으로 만 58세 5명, 만 59세 2명을 퇴직시켰다. 무기계약직 정년이 정규직과 동일한 58세라는 이유다. 해당 노동자들은 부당해고라고 반발하고 있다. 일용계약직 시절에는 재계약을 통해 만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됐는데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면서 피해를 봤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선거기간 중 알게 되었다. 서울시 비정규직 대책이 진일보한 것은 사실이나 아직은 미비점이 있다. 당선되자마자 사태의 진상과 사측의 입장을 파악하고 해법을 찾는 중이다. 지난 12일 정기 노사협의회에서도 시급 해결 현안으로 다뤘다. 7명의 비정규직에 해당되는 일이긴 하나 노조에서 무거운 사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에게 억울한 피해가 없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복수노조 얼마못가 왜소화될 것

정연수 전 위원장의 노조 탈퇴와 신규노조 설립으로 복수노조 체제가 됐다. 한 사업장이다 보니 신규노조와의 관계를 정립하는 문제가 남아 있는데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다른 사업장들과 마찬가지로 복수노조가 법 시행취지와는 다르게 노조 존립을 와해시키고 조직력과 교섭력을 추락시키는 행태들이 나타나고 있다. 복수노조 설립으로 문제점이 산적해있지만 노조 현장간부들의 위기의식과 열의는 어느 때보다 높다. 노조 단결의 의의와 정신을 새롭게 가다듬고 현장에서 공동체를 살리려는 노력을 다해간다면 분열의 수습은 물론 통합과 단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실제로 그런 기운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매일같이 우리 노조에 가입원서를 들고 오는 조합원들이 있다. 일시적인 분열일 뿐 영구히 지속되진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 조직은 인간관계로 끈끈하게 맺어져 있기 때문에 노조 내에 정파 간의 갈등 같은 게 거의 없다. 신규노조로 옮긴 조합원들의 경우 투쟁 정신, 이데올로기 같은 이유가 아니었다. 동기 모임, 계모임, 역모임 등의 활동이 노조 가입으로 이어진 것이다.

나는 선거운동 할 때부터 우리 노조 조합원만 만나러 다니지 않았다. 편 가름을 안 하기 위해 8천 전 직원들과 소통하려 했다. 이곳 군자 기지에도 서울지하철노조가 아닌 신규노조 서울메트로노조 조합원들이 많이 있다. 대다수의 인원이 두 노조가 빨리 합쳐지기를 바라고 있다. 노조가 다르다는 이유로 20년 가까이 함께 근무했던 동료와 관계가 애매해진다며 말이다. 소수 조합간부들이 빗나간 사리사욕에 휘둘려서 복수노조가 생기게 된 것이다. 앞으로 한 노조가 왜소화가 되어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방향으로 흐를 것 같다. 인위적인 방법으로는 할 수 없다.”

▲ 1999년 총파업 당시에 설치한 대형스피커가 세월의 무게를 몸에 새긴 채 굴뚝 위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그날의 감동과 눈물을 담은 채.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민주노총 탈퇴 부분에서 규약에 맞추지는 못했지만 53%의 조합원이 찬성했다. 조합원들이 민주노총이나 기존의 민주노조 세력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건가?

“솔직히 말씀 드리면 조합원들이 민주노총 관심도 없다. 비판이냐 비난이냐가 아니라 관심 자체가 없다.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 하는지도 모른다. 일부 몇몇 사람이 민주노총을 앞세운 민주 세력을 이간질 시키려고 하는 거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비교하면 다 민주노총이 좋다고 한다. 조합원들은 민주노조 정신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파업을 경험해봤지만 이겨본 적이 없다. 봉급 깎이지 징계 먹지 해고자도 생기지, 그러면서 불안과 피해의식을 느끼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정신은 살아있다. 민주노총 탈퇴에 53%가 찬성을 한 건 맞다. 그렇다면 신규노조에 그 53%가 가야 하는데 실제로는 30%만 가고 나머지는 남아 있다.”

앞으로 노동조합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원칙은 무엇이며, 어떤 사업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노조 자체가 끊임없이 스스로 성찰하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다짐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조에 자기 관성적인 부분이 많이 있다. 우리 지하철노조는 26년 동안 수많은 투쟁과 실천을 위한 싸움 속에서 우리의 역량을 확인했고, 조합원들의 노조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조직이다. 아마 다른 노동조합에서 우리와 같은 일이 생겼으면 벌써 분열되고 간판만 있는 유명무실한 노조가 됐을 것이다. 그렇지만 5천명의 조합원들이 노조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니 26년의 투쟁 경험을 비롯한 동고동락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래서 과거의 정신을 계승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관행과 타성에 젖어있지 않은지 돌아보는 노력은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형식적인 업무지시와 집회 동원은 지양하고, 구성원들과 충분히 사업에 대해 논의하고 공유한 후에 집행할 것이다. 조합원 전체가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려면 노조 간부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과거엔 수련회를 중앙 조직 간부와 지부장이 따로 다녀온 뒤 다시 함께 수련회에 가서 안건을 논의했다. 이번에는 내가 방법을 바꿔 처음부터 함께 다녀왔다. 금전적·시간적으로 절약이 됐다. 중앙 조직과 지부장 간의 의견이 서로 다른 부분들도 오랜 토론을 하다보면 접점을 찾아가게 된다. 중앙 조직 간부보다 역무, 승무, 차량, 기술 4개 각 지부장들의 현장 이해도가 높기 때문에 서로 맞춰가며 소통을 해나가고 있다. 현재 초기 단계 치고는 잘 되고 있는 편이다.

앞으로 2년 간 무슨 사업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이후 노동 행정의 전향적인 변화를 가져 오고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새로운 노사정 질서를 만드는 일도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러다보니까 조합원들이 기대를 갖고 있다. 이명박, 오세훈 서울시장 당시 우리 서울지하철은 공공기관 전시행정의 기본 타깃이었다. 온갖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예를 들어 창고 같은 곳에다가 직원들을 몰아넣고 아무런 업무도 주지 않았다.  할 일이 없으니 그들에게 빗자루와 걸레를 주고 청소를 하게 했다. 이런 식으로 공공서비스의 질을 저해하는 사업들이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하지만 제도적인 문제 해결과 노사정 각 주체 간의 내실 있는 변화를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공공서비스의 질 개선을 위한 협력 모델을 만들고 노동권도 얘기할 수 있는 노사정 각 주체의 모델이 만들어져야 한다. 서양에 이런 속담이 있다. ‘주인이 즐거워야 손님이 즐겁다’ 내가 찌푸리고 있으면 찾아온 손님들도 즐겁지 않다. 노사정 각 주체 간의 안전운행, 시민 서비스와 더불어서 노동권까지도 논의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들이 마련되도록 하겠다. 지금까지는 그런 시도가 없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과거보다 조합비가 줄어들고, 타임오프제도 시행되면서 노조 운영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그동안의 관행대로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줄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줄일 것이다. 현재 현장 4개 지부에 과거보다 더 많은 조직적 배려를 하고 있다. 중앙을 줄이고 현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지부장 및 지회장 활동비도 기십 만원이었는데 전화보조비 10만 원만 지급하기로 했다. 그래도 간부들이 주말도 없이 사업들을 진행하면서 안정화되어 가고 있다. 돈이 없다고 기존의 사업들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노조는 인원이 5천 명으로 큰 규모에 속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 조합원들은 조합비의 액수에 상관없이 많이 내더라도 간부들이 제대로 일하길 바라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제대로 일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조합원들에게 신뢰를 주는 것이다. 이번만큼은 서울지하철노조를 자랑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적 연대활동을 강화할 것이다. 과거 노조가 공공성 강화를 위해 얼마나 사회적 연대활동을 했었는지 의문이 든다. 그렇지 못해 발생하는 지금의 현상들을 반성해야한다. 공기업 노조로서 사회적 역할에 대한 성찰과 방향을 재구성하여 사회 공공적 노동운동을 해나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