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농협은 중앙회가 쥐고 흔든다
여전히 농협은 중앙회가 쥐고 흔든다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3.04.0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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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사 건너뛰고 개별적으로 업무 지시
규모가 커진 건가, 작아진 건가? … 신경분리의 딜레마
[특집 2] 농협 신경분리 1년 ② 중앙 시스템의 변화

사업구조개편 결과 농협은 농협중앙회와 금융지주회사, 경제지주회사(1중앙회, 2지주) 체제로 정비됐다. 그 성과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엔 아직 이른 시점이다. 각 사업부문의 정비와 통합, 그리고 새로운 사업에 대한 계획이 쏟아지는 가운데, 사업구조개편이 완료된 지 1년이 지났다고 봐야하는 지도 의문스럽다. 농협중앙회 역시 “올해가 신경분리의 진정한 원년”이라고 자평하는 형국이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농협중앙회, 파워는 여전

구체적인 실적을 가지고 사업구조개편의 득실을 따지기 이른 시점이라 하더라도 조직 차원에서, 혹은 구조개편을 체감하는 당사자 입장에서 조직 내 구성원들이 그간의 과정을 바라보는 소감은 남다를 것으로 생각된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난관에 부딪치는 경우도 많을 것이며, 당초의 계획보다 5년 이상 스케줄을 당기면서 심한 갈등에 봉착했으니만큼, 이야깃거리가 무성하리라고 본다.

농협 안팎의 많은 관계자들은 사업구조개편 이후에도 여전히 강한 입김을 보이는 중앙회에 대한 얘기를 가장 먼저 꺼내 놓았다. 지주회사와 중앙회는 엄연히 별개의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말처럼 ‘분리’된 게 아니라는 지적이다.

새로 설립된 금융지주회사의 수장이 바뀌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현실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레 제기되기도 한다. 초대 금융지주회장과 NH농협은행장을 겸직했던 신충식 회장은 취임 100일 만에 회장직에서 물러나며 은행장의 역할만 수행하게 되었다. 차기 회장으로 선임된 것은 신동규 전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 회장이다.

자리에서 물러난 신충식 회장은 금융지주 출범 초기에 조직을 안정화시키는 것까지가 본인의 소임이었다면서 사퇴 배경을 설명했지만, 농협 관계자들은 “금융지주회장으로서 실권이 주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굳이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무의미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특히 사업구조개편을 위해 정부 지원금이 들어오는 형국에서 금융지주회장 자리는 “정부 지분 몫” 으로 관료 출신의 인사를 배려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는 예상도 많았다.

농협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새로 자리를 맡은 신동규 회장에 대해서도 “신 회장이 과거 수출입은행장으로 있을 당시 별명이 ‘불도저’일 정도로 과감하게 계획을 추진하는 면모를 보였다”며 “금융지주회장으로 취임한 초기에도 여러 가지 구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 했으나,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을 비롯한 이사회와 다소 마찰을 보이면서 지금은 그 기세가 수그러진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금융·경제지주 실권은 사실상 전무”

농협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최원병 회장을 비롯해 중앙회 임원들의 머릿속에선 아직도 사업구조개편이 안 돼 있는 거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앙회의 지시 한 마디면 은행이고 보험이고, 말을 잘 따라야 한다는 과거의 통합 농협 구조라는 의미다. 상부의 의식이 그래서일까, 실무를 담당하는 중앙회 직원들의 태도도 별반 다를 게 없다고 한다. 필요한 자료를 요청한다든지, 회의 참석을 요구할 때에도 “일방적인 지시 내지는 통보”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사업구조개편 이후 인사와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는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중앙회 소속 직원인 모 지역본부장이 불미스런 이유로 해직이 됐다. 그런데 중앙회에서는 금융지주 산하 개별 법인인 NH농협의 개인고객팀장을 지역본부장으로 인사조치했다. 중앙회에서는 은행으로 직접 이와 같은 조치를 통보했으며, 은행은 중앙회 통보 내용에 맞춰 문서 처리를 시행했다. 금융지주 회사에서는 법인이 다르므로 해당 팀장이 중앙회 소속으로 전적된다는 문서시행 내용을 보고서야 이와 같은 사실을 알았다. 농협의 관계자는 “금융지주 입장에서는 한 마디로 어이없는 상황”이라며 “개별 인사뿐만 아니고 중간에서 진행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황당한 경우를 겪는 일이 허다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금융지주회사만 천덕꾸러기가 된 것이 아니다. 경제지주 쪽도 유명무실하긴 마찬가지다. 고주영 NH농협지부 중앙본부장은 “지역 곳곳에 산개돼 있는 유통센터들을 묶어서 경제지주 산하 자회사로 통합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라면서 “기존의 중앙회 소속 유통센터들은 문제가 덜 하겠지만, 그간에 독립 자회사로 있었던 유통센터의 경우 자체적으로 채용한 인원도 있고, 급여며 인사복지 시스템이 천차만별임에도 이에 대한 검토가 전혀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사업구조개편에 대해서 말 그대로 ‘분리’해 내는 것만 고민했었지, 유통센터의 경우처럼 통합했을 때는 어떤 대책을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가 전혀 안 돼 있다는 의미다. 고 본부장은 “경제지주에 자본금이 있을지는 몰라도 자체적으로 집행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도 덧붙였다.

농협 경제사업활성화위원회의 보고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농협 경제사업 신규투자는 684억 원이었다. 당초 2012년 목표치는 2,570억 원이었다. 원예조합공동사업법인 육성(38억 원), 농산물 대형판매장 신설(50억 원), 인삼가공센터 구축(131억 원), 종묘사업 인프라 구축(38억 원) 사업 등 11개 과제는 집행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기존의 목표치에 비해 불과 26% 정도만 집행됐던 부분에 대해서 경제사업활성화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지난 정부가 농협 신경분리를 치적으로 내세우려다 보니 농협 신경분리 스케줄을 정해서 밀어붙였고 그 결과 사업계획, 투자계획이 조율이 안 된 채 진행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제지주는 2020년까지 국내 생산 농산물의 50% 이상을 판매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6월 안성을 시작으로 2015년까지 전국 5곳에 농식품 물류센터를 세워 직거래 유통채널을 구축할 계획이다. 대도시 내 직거래장터도 153곳에서 200곳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특히 사업부별 경쟁력 강화를 위해 소매ㆍ식품ㆍ공판ㆍ종묘사업 등 총 네 개 자회사를 설립하고 올해 6,805억 원을 새로 투자할 계획이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중앙본부를 보면 농협 문제가 보인다

사업구조개편으로 발생하는 혼란이나 갈등의 양상은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농협중앙회 본점에서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중앙회와 금융지주, 경제지주, 농협은행 본점 등이 위치한 말 그대로 농협의 심장부다. 금융노조 NH농협지부 중앙본부의 조합원 구성을 보면 이런 특성이 잘 나타난다. 각 법인별로 조합원 분포가 매우 다양하다.

지난해 3월 사업구조개편이 시행되면서 중앙본부의 인원은 늘었다. 2011년 말 기준으로 조합원이 2,800여 명이었는데, 300명 넘게 증원됐다. 3월에 6개 법인으로 조직이 찢어지는데, 2월에서야 각 법인별 정원이 확정됐다. 이 정원을 맞추는 과정에서도 혼란이 발생했던 것은 불 보듯 하다.

중앙본부의 인원을 늘린 것은 구조개편 시행 이후 중앙 차원의 관리 업무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인력이 부족하다는 반발이 일 것이 뻔했다. 노조 차원에서 문제제기를 했다. 부행장이나 상무 등의 인원이 많아지는데 일종의 자리보전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문제제기를 했으며, 각 법인별로 나뉘는 가운데 업무 내용도 중복되는 게 많다고 보았다. 홍보 업무만 하더라도, 중앙회 홍보실과 금융지주 홍보실 등으로 별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노조의 문제제기에 대해 농협 측은 중앙이 안정돼야 구조개편이 안착한다는 논리로 일선의 부족한 인력은 추후에 보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구조개편 시행 후 불과 3개월이 안 되서 100명의 인력을 일선으로 재배치해야 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노조의 반발로 인원 재배치는 다음 정기 인사 기간으로 늦춰졌다. 2월 인사이동이 끝나고 결국 200여 명 정도 인원이 줄었다.

여하튼 지금의 농협 상황을 빗대어 살펴보면, 중앙본부의 입장은 꽤나 애매하다. 어쨌든 구성원들의 소속이 법인별로 분리돼 있기 때문이다. 중앙본부 전체의 인원은 규모가 큰 편이다. 하지만 여타의 일반 시중은행의 본점과 비교를 해 보자면, 농협은행 본점의 인원은 매우 적다. 대형 유통회사를 기준으로 보아도 경제지주의 본사 인원이 적다. 인원을 늘리자니, 일선에서 중앙 조직의 비대화에 목소리를 높이고, 인원을 줄이고 중복 업무를 공동으로 처리하자니 신경분리의 취지가 무색해진다. 농협 사업구조개편의 근본적인 딜레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