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갈등하니 마음이 흔들립니다
계절이 갈등하니 마음이 흔들립니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13.04.03 12:42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람을 사귀는 일은 어렵습니다. 일이든 놀이든 사랑이든 함께 몸과 맘을 모은다는 게 참 힘듭니다. 어쩌면 세상살이에서 반드시 생기는 갈등 때문일 겁니다. 나무가 해마다 제 몸에 새기는 나이테처럼 이러저러한 갈등으로 생긴 생채기를 몸에 한 줄씩 새기며 나이를 먹고 철이 들고 늙어가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갈등을 자연의 생리처럼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사회생활이 어렵습니다.

갈등을 두려워해서는 외톨이로 지내야 합니다. 갈등이란 사람과 사람을 더욱 단단히 엮어주는 사슬과 같습니다. 드러난 갈등을 풀어갈 때 사람과 사람은 더욱 긴밀해집니다. 인간관계나 사회의 결속력은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생깁니다. 갈등을 감추거나 모른 척하거나 폭력적으로 없앤다고 갈등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 갈등을 해결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갈등을 풀려면 인내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서로의 마음이 열려야 하기 때문이지요. 제 몸을 내어주지 않는데, 어찌 서로를 엮을 수 있단 말인가요. 마음을 열려면 믿음을 갖아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이와는 어떤 대화도 총과 칼처럼 무기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내의 시간도, 마음을 여는 믿음도 쉽지 않습니다.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갈등의 해결이 하나가 되는 것만은 아닐 겁니다. 때론 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서로의 가슴에 못을 박지 않는다면 갈라서는 일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갈라설 때 꼭 서로의 가슴에 못질을 하기에 갈등을 죄악시하며 불온한 응시를 합니다.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사람은 사회에서 ‘갈등 유발자’ 또는 ‘불만분자’로 낙인찍힙니다. 역사가 그랬습니다. 기존 질서나 관계에 문제제기를 하면 갈등을 일으킨다며 적대시해서 권력으로 짓눌렀지요. 물론 이에 저항하는 세력은 늘 있었고, 이런 과정에서 힘의 관계가 바뀌며 역사는 한발 한발 진보했습니다.

갈등에 폭력이 등장하는 까닭은 ‘유발자’ 때문이 아니라 갈등 자체를 불온시하는 사회 때문입니다. ‘갈등은 있는 거야. 갈등이 생기면 이렇게 대화하고 때론 싸우며 푸는 거야.’ 이런 교육은 대한민국에서 존재하지를 않았습니다. 힘으로라도 빨리 ‘진압’하는 걸 해결책처럼 여겼기 때문입니다. 참을 만큼 견뎌도 해결이 안 되면 갈등을 해결하려고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고,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더욱더 많은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폭력으로 흐르기 때문입니다. 물리력 또는 언어의 폭력으로 상처를 남깁니다. 부딪혀서 안 될 땐 조용히 기다려야 합니다. 자신의 몸에서 자신이 떨어져 나와 객관의 눈으로 자신이 보일 때까지. 상대의 목소리가 있는 그대로 들릴 때까지. 한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아름다운 까닭은 바로 이 시간과 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갈등이 없는 만남은 본래 없었는지 모릅니다. 갈등이 없는 게 아니라 어느 한쪽이 희생을 하였던 거지요. 노사화합을 잘한다고, 몇 년 동안 노사 갈등이 없었다고 상을 받은 기업이 훗날 커다란 폭력이 한 쪽의 입을 틀어막았다고 밝혀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건강한 민주국가나 시민사회는 갈등이 보이지 않는 사회가 아니라 갈등이 쉼 없이 일어나지만 그 갈등을 서로 슬기롭게 해결하는 사회입니다. 때론 어수선하더라도 말입니다.

아침 낮으로 날씨가 갈등합니다. 덩달아 사람의 마음도 흔들립니다. 겨울과 봄 사이. 그 계절의 갈등이 겨울을 그립게 하고 봄을 더 봄답게 빛나게 하는 것 아닐까요.

홍대 언저리에서 <참여와혁신> 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