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은 또 다른 폭력으로 풀리지 않는다
학교폭력은 또 다른 폭력으로 풀리지 않는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3.04.1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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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위,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지침 폐기해야
“앞에선 의견수렴 뒤에선 징계강행”…지침 개정안 비판

▲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종합정부청사 후문 앞에서 열린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관련 교육부의 기재 지침 취소 및 징계 취소, 고소·고발 취하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학교폭력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학교폭력의 학생부 기재를 둘러싸고 교육부와 일선 교육청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전교조(위원장 김정훈)를 비롯한 교육 관련단체들로 구성된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보류 관련 교과부의 위법·부당행위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15일 오전 세종로 교육부 후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폭력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기재 지침을 폐지하고 기재 유보를 이유로 한 징계 및 고소·고발을 취하할 것을 교육부에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은 “학교폭력은 폭력적인 방식으로는 결코 풀리지 않는다”며 “학교폭력 가해자에게 책임은 충분히 물어야 하나, 학생부 기재 지침과 같은 폭력적인 방식이 아니라 교육적인 방식으로 책임을 물어야 가해학생은 물론 피해학생의 치유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교육부(당시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해 1월 발표한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 지침’(이하 학생부 기재 지침)과 2월 발표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통해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조치사항을 기록하고, 이를 생활지도와 상급학교 진학자료로 활용토록 했다. 또 초·중학교의 경우 졸업 후 5년까지, 고등학교의 경우 졸업 후 10년까지 이 자료를 보관토록 했다.

하지만 일선 교육청 중 경기도교육청과 전라북도교육청은 이 같은 지침에 반대해 학생부에 기재하는 것을 보류하거나 기재하지 않도록 각 학교에 방침을 전달했다.

그러자 교과부는 경기교육청과 전북교육청의 방침을 취소하는 명령을 내렸으며, 지난해 10월에는 학교폭력의 학생부 기재를 거부한 전북교육청에 기관경고와 함께 관련자 143명에 대한 징계를 요구하고 교육감과 학교장을 고발했다. 경기교육청에도 74명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다. 해당 교육청들이 징계를 이행하지 않자 교육부는 특별징계위원회를 구성해 징계절차를 개시했다.

전교조를 비롯한 63개 교육 관련단체들은 지난 2월 공대위를 구성해 징계 강행을 규탄했으나, 교육부는 특별징계위원회에서 징계를 의결했다. 이에 공대위는 징계 취소와 고소·고발 취하, 학생부 기재 지침 취소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지난 4월 12일까지 진행했다.

공대위는 “학생의 존엄성과 민주주의를 무시해온 경쟁 위주의 폭력적인 교육과 사회로 인해 학교폭력이 발생했다”고 진단하고, “학교폭력을 발생케 하는 학교의 구조적인 문제는 건드리지 않은 채 학생들을 잠재적인 가해자로 낙인찍어 겁박하고 처벌과 치료의 대상으로만 분류하고 있는 교육부의 학생부 기재 지침은 또 다른 폭력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학생부 기재 지침에 대해 “학교폭력에 대한 이와 같은 운영방식은 그 기록이 장기간 유지되는 점으로 인해 입시 및 졸업 후 취직활동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과 한두 번의 일시적 문제행동으로 사회적 낙인이 찍힐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과도한 조치라고 판단된다”며 “학교생활기록부 학교폭력 기록에 대해 졸업 전 삭제심의제도나 중간삭제제도 등을 도입하는 등 학교생활기록부 학교폭력 기재가 또 다른 인권침해가 되지 않도록 개정하여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공대위는 학생부 기재 지침과 같은 학교폭력에 대한 대증요법이 아닌 근본원인에 대한 구조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며, ▲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을 통한 교육환경 개선 및 교육복지 확충 ▲ 자사고·특목고 및 일제고사 폐지와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를 통한 입시경쟁 완화 ▲ 학생인권 및 교사의 교육권 보장을 위한 학생인권법 제정 ▲ 교사의 교육권 보장을 위한 초·중등교육법 개정 ▲ 폭력 재발 방지를 위한 회복적 사법으로의 전환을 위한 학교폭력법 개정 ▲ 가정과 사회에서 아동·청소년 인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한 근거로서 아동·청소년 인권법 제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해 교육부는 지난 2월 15일 학생부에 기록할 조치사항 중 경미한 일부 사항에 대해서는 학교 졸업과 동시에 기록을 삭제토록 학생부 기재 지침 개정안을 내놨다.

공대위는 교육부의 개정안에 대해 “학교폭력 기재와 장기간의 보존으로 학생들이 겪게 되는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한 채 기록대상 일부 축소로 현재의 왜곡된 판을 덮어보려는 어설프고 얕은꾀에 불과하다”며 “뒤에서는 위법적인 특별징계위원회와 교육감에 대한 고소·고발을 자행하면서 앞에서는 현장의 의견을 수렴한 듯 보이려는 기만적인 쇼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공대위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지침 폐지 ▲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유보 관련 징계 취소 및 고소·고발 취하 ▲ 피해자 의사를 존중한 화해조정절차 마련 ▲ 사법조치 결정기관에서 피해자 치유 및 가해자 회복 지원 기관으로 학교폭력자치위원회의 역할 변경 ▲ 학교폭력 근절 대책 전면 수정 ▲ 공대위의 교육부 장관 면담 요구 수용 ▲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에 대한 토론회 개최를 요구했다.

또 이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학생부 기재 거부 현장교사 선언을 조직하겠다”며 “학생부 기재 지침이 완전히 폐지될 때까지 경기·전북교육청뿐만 아니라 다른 시·도교육청 소속의 양심 있는 교사들과 함께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