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이웃의 손발이 된 사람들
아픈 이웃의 손발이 된 사람들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3.05.0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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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먹고 구정물 뒤집어쓰고 형광등 교체에 TV 수리까지
관리비 절감에 일은 갑절이 늘었지만 처우는 벼랑 끝으로
[삶의 현장] 서울 중계주공9단지 관리사무소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서울 노원구 중계주공9단지. 곳곳에 봄 햇살이 가득하다. 양지 바른 곳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학교로 일터로 떠나고 적막감이 돌 듯한 오전 10시 30분. 이곳은 오가는 발자국 소리가 어지럽다. 중계주공9단지는 2,634세대가 사는 영구임대아파트다. 세대의 절반 이상이 기초생활수급자다. 그래서 장애인, 모자가정, 독거노인들이 많다. 한낮인데도 아파트 단지에 사람이 많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주택공사에서 지은 중계9단지는 1992년에 첫 입주가 시작되었다. 20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건물 곳곳에 주민들의 애환이 덕지덕지 달라 붙어있다. 그만큼 시설물도 사람의 손길을 간절히 바란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소외된 이웃의 말벗

‘홈닥터’라고 적힌 연둣빛 새순을 닮은 조끼를 입은 사내가 바쁘게 관리사무소에서 나온다. 그의 손에는 공책과 형광등이 들려있다.

관리사무소 뒤편에 있는 907동으로 들어간 홈닥터는 잰 발걸음으로 2층으로 올라간다. 층계 바로 옆 현관문의 초인종을 누른다.

“할머니 계세요?”
“뉘요?”
“관리사무소입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현관문이 열리며 할머니 한 분이 나온다. 손바닥만 한 현관에 신발 다섯 짝이 들어서니 내 신발은 복도로 밀려난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기 조차 힘든 복도 오른쪽으로 자그마한 방이 있고, 그 옆엔 욕실이 있다. 싱크대가 겨우 들어선 주방을 마주하고 베란다와 침실이 있다. 미닫이문으로 나뉜 침실과 주방은 경계를 가늠하기 힘들다. 침대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으니 그야말로 발 딛고 설 곳이 없다. 중계주공9단지는 23.14평방미터(7평형)와 29.75평방미터(9평형) 두 평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작은 평형이 대부분이다.

“할머니 식사는 하셨어요?”
“아침은 묵었지.”
“점심은요?”
“점심은 안 먹어. 아침저녁만 묵지.”
“세끼 챙겨 드셔야죠. 반찬은 있어요?”

마치 고향집을 찾은 아들처럼 관리소 직원이 살갑게 말을 건네며 냉장고 문을 열어 반찬통을 요리조리 살핀다. 할머니와 말벗이 되어 이야기하는 동안 동료 직원은 불이 껌벅이는 형광등을 바꿔 낀다.

“그게 껌벅이다가도 들어오고 했어. 그런데 엊저녁부턴 영….”
“어휴, 그냥 불편하면 빨리 말하세요.”

형광등을 교체하더니 주방 조리기구 위의 팬을 뜯어내 욕실로 들어간다. 누렇다 못해 새까맣게 변한 팬을 세제를 풀어 박박 문댄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영구임대아파트 관리소 직원은 분양 아파트의 관리소 업무는 기본에 플러스 되는 일이 수두룩하다. 사회의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사는 영구임대아파트에서는 자살하는 사람이 많았다. 중계주공9단지도 한해에 15명 내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족들이 없다보니 홀로 아파트에서 숨을 거두어도 죽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다. 이웃들이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신고가 있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일이주일이 지난 시신이 있기도 했다. 그래서 관리소 직원들이 ‘홈닥터’가 되어 독거노인들을 돌보고 있다. 1주일에 한 번씩 집을 방문해 생활에 어려운 점이 없는지, 건강은 어떤지, 식사는 제대로 하는지 등을 살핀다.

홀로 외로움을 견디며 사는 이들은 홈닥터가 말벗이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삼는다. 실제로 홈닥터 제도가 실시된 뒤로는 자살하는 이가 거의 사라졌다.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는 직원은 13명이다. 사회의 보호가 절실한 200세대를 한 사람이 담당하는 셈이다. 민원 창구에서 일하는 사람 4명을 제외하면 300세대가 넘는다. 1992년도 주택공사에서 입주자를 받을 당시에는 24명이 했던 일이다. 24명이 일할 당시만 해도 홈닥터와 같은 입주민의 복지사업 업무는 없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관리비 절감에 감춰진 땀

영구임대주택은 국가의 공적자산이다. 시공을 맡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관리 업무를 함께 맡았다. 아이엠에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정부의 공기업 경영혁신 방침에 따라 관리 업무가 분리되었다. 1998년 LH가 100% 출자해 주택관리공단을 만들어 이 업무를 전담하게 한 거다. 주택관리공단에서 관리하는 가구는 14만 가구가 넘는다.

주택관리공단의 예산은 국토해양부에서 LH로 주는 국가 예산과 입주한 기초생활수급자 등이 내는 관리비다. 관리사무소 직원의 임금은 관리비로 충당한다. 영세한 입주자가 부담하는 관리비를 절감하려면 관리사무소 직원을 축소하여야 한다. 그렇다고 업무량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봤듯이 입주자의 복지업무까지 떠맡게 되어 업무량은 예전에 비해 월등히 늘어나는 추세다. 삶의 질이 중요하게 대두되고, 복지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커지면서 관리사무소에서 떠맡아야 하는 일은 많아지는데, 입주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인원을 줄여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중계주공9단지 관리사무소도 2009년부터 관리비 40% 수준 절감 노력에 들어갔고, 3년 만에 목표치를 달성했다. 입주민이 내는 관리비가 2009년에 100원이었다면 이제 60원만 낸다는 말이다. 그 절감만큼 직원들의 땀은 더 많이 요구됐다.

눈이 오는 겨울은 직원들에게 고역이다. 외부 인력이나 중장비를 불러 눈을 치우면 좋으련만 그럴 경우 입주민의 관리비 부담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장비가 해야 할 일을 직원들의 노동으로 채워야 한다. 특히 이곳은 장애인을 비롯한 노인들이 많기 때문에 빨리 눈을 치우지 않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곳엔 노약자, 장애인이 사는 곳이라 도로에 눈과 얼음이 있으면 신경이 이만저만 쓰이는 게 아니다. 장비나 외부 인력을 부르면 빨리 해결할 수 있으나 관리비가 올라가니 그럴 수도 없고. 직원들이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다.”

올해 쉰하나, 90년 주택공사에 입사해 98년 주택관리공단으로 옮겨 영구임대주택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는 길형섭 씨. 주택관리공단으로 온 것은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다. 국가 정책에 따라 소속이 바뀐 거다. 현재 길형섭 씨가 받는 임금은 LH 입사 동기의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하는 일은 갈수록 고되다.

입주민의 손과 발이 되어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관리사무소 직원이 건물 지하로 우르르 몰려간다. 지하에는 급수, 배수, 난방, 급탕 배관들이 노랑 빨강 파랑과 같은 알록달록한 띠로 묶여진 파이프들이 어지럽다. 배수관이 막혔다. 서둘러 4단 비계를 설치하고, 안전모와 비옷으로 중무장하고 관리사무소 직원 둘이 오른다. 배관을 풀고 관통기 선을 집어넣자 오수가 폭포처럼 쏟아진다. 음식찌꺼기 등이 섞인 오물에 옷이 젖고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찌른다.

“수고하셨습니다.” 
말을 건넸다.
“늘 하는 일인데요, 뭘.”

이런 일은 일축에 끼지 않는다는 듯 대수롭게 말한다.

“겨울에 해빙기를 들고 새벽부터 뛰어다닌 것에 비하면….”

분양 아파트의 경우 입주민이 해결할 문제도 영구임대아파트에서는 관리사무소의 몫이다. 세면대가 막혀도, 문고리가 헐거워져도 관리사무소가 출동한다. 심지어 세탁기 호스가 빠지거나 텔레비전이 고장 나도 관리사무소가 나선다. 영세한 입주민의 사소한 불편을 이곳에서는 제일처럼 해결해줘야 한다. 힘들고 외로운 입주민이 모여 사는 곳이라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들이 하는 일이 온당한 대우라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젊은 신입사원은 공기업이라고 입사했다가 서너 달을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낮은 임금도 임금이지만 업무량에 버티기가 힘들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희생 아닌 정당한 대우 필요

“염병을 하고 왜 안 쫓아내냐고. 한달에 와이로(돈)를 얼마를 쳐먹었냐고. 잠을 자야 살 거 아니야!”

한 할머니가 관리사무소에 들어와 책상을 두들기고 쓰레기통을 발로 냅다 차며 악을 쓴다.

“할머니가 치매끼가 있어요. 가족들도 힘들게 사니 찾아오지도 않고.”

할머니는 환청에 시달린다. 옆집에서 시끄럽게 떠든다고 날이면 날마다 관리사무소를 찾아와 한바탕 난리를 피운다. 할머니가 이러니 이제는 옆집에서도 할머니를 내보내라고 민원이다. 이럴 때 난감하다. 치료가 필요한 사람인 걸 알기 때문에 할머니의 행동을 고개 숙이고, 사죄(?)하며 지켜볼 수밖에 없다. 할머니는 한 시간 넘게 관리사무소에서 성을 내다 때론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기를 이어간다.

“나 죽어도 못 살아. 왜 그년을 놔두냐고!”

결국 경찰관이 와서야 잠잠해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는 경우도 있고, 민원실 여직원에게 폭언을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관리사무소에서는 성추행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밤이라고 관리사무소를 비워둘 수가 없다. 그래서 돌아가면서 한 명씩 당직을 선다. 중계주공9단지의 경우 8일에 한 번씩 당직이 돌아오고, 특근도 한 달에 한번 꼴로 한다. 이곳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세대 수가 적은 곳은 사흘에 한 번씩 야간 당직을 서야 하는 경우도 있다. 홀로 당직을 서다가 보일러실 가스에 질식해서 숨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관리사무소에서 하는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영구임대주택에 들어와 사는 세대가 없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분양 받는 세입자를 직접 만나 도장을 받아야 하는데, 만나기가 힘든 경우도 있다. 아파트를 관리하고, 입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일할 시간도 부족한데, 실태조사까지 맡아서 하자니 죽을 맛이다. 홈닥터야 봉사정신으로 한다지만 실태조사는 그런 뿌듯한 자부심조차 없다.

자신이 맡은 세대들의 숟가락 숫자까지 안다는 영구임대주택 관리사무소 직원들. 그들의 노력과 사랑이 희생이 아닌 정당한 대우받을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