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바다
두 사람의 바다
  • 김현정 기자
  • 승인 2013.05.0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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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 통영지사 소속의 선장과 기관장
바다와 배에서 함께 만드는 인생
[사람향기] 이종률 선장과 이광률 기관장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통영에는 배가 많다. 바다의 땅, 통영에서는 구급대원도 경찰도 배를 타고 다닌다. 고깃배와 여객선까지 배의 숫자가 많기도 하다. 수많은 배들 중에 한 척, 한국전력 통영지사의 배가 있다. 그 배는 섬과 섬 사이에서 전기를 나른다. 통영 앞바다에 아무리 많은 배가 떠있어도, 그 배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배는 없다. 그리고, 배를 움직이는 두 사람이 있다.

바다의 속살같은 이야기

꽤 높은 파도가 칠 때에도 깊은 바닷속은 의외로 평온하다. 가까이 있는 것들은 닮아가는 법일까. 선장과 기관장은 인생의 파고를 엇비슷한 어조로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마음속에 바다 하나씩을 품은 것처럼.

선장의 이름은 이종률이다. 기관장의 이름은 이광률이다. 올해로 쉰다섯의 선장과 마흔다섯의 기관장은 공교롭게도 이름이 비슷하다. 한 배에서 일하는데다가, 한 글자만 다른 두 사람의 이름 덕에 형제 사이로 오해하는 사람도 많다. 이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한 고장에서 나고 자라 한솥밥을 먹고 있는 두 사람이니 충분히 형제처럼 보일 만도 하다. 아니, 이미 형제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다. 각자의 삶에 충실했던 시간들이 어느 샌가 하나로 합쳐져, 두 사람의 물길은 조화롭게 흐르고 있다.

▲ 이광률 기관장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이종률 선장은 통영 토박이다. 수산고등전문학교 기항과를 졸업하고 계속 배를 탔다. 배를 공부하던 소년은 먼 바다로 나가 어선을 타다가 1992년 한국전력에 입사한다. 한국전력 통영지사에 소속된 선박은 딱 한 대뿐이라, 사람을 자주 뽑지는 않는다. 한 사람이 나가야 한 사람이 새로 들어올 수 있는 셈이다. 이종률 선장은 그때 좋은 일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을 그저 ‘운때가 좋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운 좋게 기관장으로 들어와 경험을 쌓고, 같이 일하던 선장이 정년퇴직을 한 후 선장이 됐다.

이광률 기관장 역시 통영 토박이다. 그 역시 학교를 졸업하고 쭉 배를 탔다. 젊을 때는 외국을 드나드는 외항선도 3년 정도 탔고, 해양경찰로 지내기도 했다. 바다가 지겹고 배가 지겨워져 시내버스 운전사로 8년을 일하기도 했지만, 결국 바다로 돌아왔다. 생활 때문이다.

“외항선 타고, 군대 갔다와가지고 인자는 바다 안 갈끼라고, 배 안 탈끼라고 시내버스 하다가 또 우예 하니까 나와 가지고. 보수 면이나 근속 면이나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으니까. 직업 바꿀라캐도 쉽지가 않다는 거 아입니까.”

▲ 이종률 선장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다시 타게 된 배가 한국전력 통영지사의 배였다. 그 역시 2007년에 한국전력에 기관장으로 입사하게 된 것을 ‘운이 좋았다’고 표현했다. 그저 배타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의심없이 배를 탄 사람도, 물 위의 삶이 힘들어 다른 곳을 바라봤던 사람도 지금은 같은 배에서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수많은 선택과, 선택의 결과들이 인생의 굴곡을 만들어냈겠지만 그것을 요란하게 드러내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담담하게 삶을 받아들이는 지점에 이르렀다. 흡사 고요한 날의 바다처럼.

뱃사람의 풍경

배를 타는 사람은 으레 그렇듯이, 선장과 기관장은 손도 얼굴도 까무잡잡하다. 처음 배를 타기 시작한 그 때부터 지금까지, 맨얼굴 그대로 바다로 나갔다. 조타실에 있는 선크림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딸이 서울에서 은행 다니는데, 선크림 뿌리는 거를 일부러 보내줬다 아입니까. 그래도 안 써요. 습관이 안 돼있어요. 육지에서는 일부러 선탠도 한다 카던데요 뭐.”

내리쬐는 햇빛은 수면에 반사되어 한 번 더 뱃사람의 얼굴을 그을린다. 바다에서 보낸 세월만큼 피부는 구릿빛으로 변해갔다. 아주 오랫동안 뜨거운 햇빛이 스며든 뱃사람의 피부가 얼핏 단단한 갑옷처럼 보였다.

눈가 옆에 자리 잡은 주름 사이에는 바닷바람이 고여 있다. 깊게 패인 주름에선 어쩐지 고단함보다 청량함이 먼저 읽힌다. 배를 타던 소년들은 청년이 되고 아버지가 되었지만, 꾸밈없는 웃음만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눈 옆에 남은 웃음의 자국은 바다를 가르는 배의 물살처럼 긴 궤적을 남겼다. 길고 깊은 눈꼬리 덕에 웃음소리의 여운이 길다.

배에 달린 고속엔진은 운항하는 내내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배의 운항 중 엔진을 점검하는 일은 필수적인데, 잠시만 고속엔진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있어도 귀가 피로해진다. 목도 피로해지긴 마찬가지다. 소음을 이겨내고 의사소통을 제대로 하려면 큰 목소리로 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뭍에 내려서도 크게 말하는 습관이 뱄다. 사정 모르는 사람들은 평범한 대화를 싸움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일종의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이지만, 두 사람에게는 한 번 웃고 넘길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다.

두 사람은 배와 바다에 맞춰 앞으로도 천천히 변해갈 것이다. 바다도, 배도, 두 사람도. 모든 것이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점점 더 조화로운 풍경을 만들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바다와 태풍과 불

육지에 서서 바라보는 바다는 아름답다. 하지만 바다 한가운데에 서있게 되면 감상이 다르다. 단단히 발 딛고 설 땅이 없는 바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한 일터다. 이종률 선장은 알고 보면 바다도 그렇게까지 위험한 곳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익숙함과 겸손함이 섞여있는 말로 들린다.

선장과 기관장은 거의 매일 바다로 나간다. 바다 위에 점점이 흩뿌려진 섬들, 그 위에 자리잡은 철탑들을 점검하고 보수하기 위해서다. 들러야 할 섬은 많고 배는 한 척뿐이니 하루에 몇 군데씩 섬을 돌아도 빡빡한 스케줄이 이어진다. 때로는 늦은 시간에도 바다로 나서야 한다. 다리가 놓이지 않은 섬에서 전기설비의 고장이 발생하면 시간과 상관없이 배를 띄워야 하기 때문이다. 새까만 밤바다 위에서 사람이 사는 섬을 구분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빛이다. 따뜻하고 밝은 빛이 물과 뭍을 구분해준다. 한국전력의 배를 움직이는 두 사람은 섬에서 섬으로 빛을, 전기를 나르는 역할을 한다.

선장과 기관장은 배의 운항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섬마다 돌며 전기검침도 한다. 비용절감을 위한 한국전력의 방침이다. 새로운 업무를 소화하기 위해 두 달간 교육을 받고 생소한 PDA 작동법을 익혔다. 일이 늘면 스트레스도 같이 늘어날 법하지만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이종률 선장이 바다 위에서 가장 위험했던 순간으로 꼽은 것은 2002년의 비진도 화재였다. 불은 거센 바람을 만나 순식간에 옆으로 번져나갔다. 바람 때문에 배는 나아갈 수가 없어 소방서도 해양경찰도 배를 띄울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전력의 배가 비진도를 향한 것은 책임감 때문이었다. 거세지는 불길이 전기 설비 쪽을 향해서 잘못하면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거센 태풍에 맞먹는 바람을 뚫고 바다로 나간 배는 결국 불길을 잡았다. 지금 생각해도 무모한 일이었다고 말하면서도, 책임감이라는 단어에 더 힘이 들어가 있다.

“그때는 태풍만큼 바람이 세게 불어서 해경도 배 못 띄우겠다고 그카는데, 우리가 의용소방대랑 다 태워가꼬 간 거지요. 그거는 지금 생각해도 무모한 기라. 좋다고는 몬하겠는데, 책임감이죠 책임감.

그런 경우도 가끔 생기대요. 섬에 가서 아픈 사람들 싣고 들어올 수도 있거든예. 요즘은 119 부르면 퍼뜩 오니까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일이긴 한데 급하면 우리가 데리고 나가기도 하고. 아, 그거 고맙다 카던데요. 한밤중에 섬에 들어가서 전기 다 나간 거 고쳐주니까. 그럴 때는 좀 뿌듯했고……”

옛날이야기를 하던 이종률 선장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뿌듯한 경험을 풀어놓는다. 평범한 개인의 역사도, 찬찬히 톺아보면 비범하게 빛나는 때가 있다. 이광률 선장은 생생히 남아있는 보람찬 기억을 다시 떠올리면서 눈을 빛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최고의 선장, 최고의 기관장

같은 배를 탄 시간이 벌써 6년이다. 같이 일한다는 것은 단순히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일터와 자신의 동료에게 익숙해지는 과정이다. 움직이는 방식을 맞춰가고 자연스러운 배려를 익히는 시간이다. 그런 시간이 6년간 이어졌고, 지금 두 사람은 서로에게 최고의 선장이고 최고의 기관장이다.

“파도가 조용한 날만 있는 게 아니고 파도칠 때도 있고 바람 불 때도 있고 선장님이 그런 걸 다 짊어지고 가시죠. 선장님은, 바람 불어도 파도가 높아도 배의 조타나 운항 실력이 워낙 월등하시니까.

저는 로프 같은 걸 빨리빨리 치워줘야 배가 밀리지도 않고, 제대로 감아줘야 배를 또 잘 운전할 수 있으니까. 지금은 좀 오래 타고 이래놓으니까 눈빛만 봐도 배를 이렇게 댈 거다 하는 걸 알죠. 저도 많이 배우고. 퇴직 하시고 나면 또 제가 선장님처럼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저 자리에서 지금 하시는 것처럼 하려면 많이 배워야죠.”

“저는 키만 잡고 있지 인자 광률이가 잘하니까. 못하는 사람 같으면 배가 희한하게 돌아가불고 퍼뜩퍼뜩 몬하면 배가 돌아가버리니까. 파도가 심할 때는 옆에서 잘 몬해주면 배가 안 대져요. 따로 신경 쓸 거 없이 알아서 잘 하니까 내가 할 게 없다는 거 아입니까.

광률이도 인자, 얘도 자격증 다 있고 혼자서도 잘해요. 근데 우리는 섬 주위를 도니까, 섬 가까이에 암초가 많아요. 해변 쪽에 철탑이 많고 편한 자리에 있는 건 없거든요. 그런 걸 인자 배워야 되거든요. 섬 옆에는 그기 암초가 보이지 않는 기라. 몇 군데만 주의하라고 알려주면 되니까. 우리 같은 경우는 혼자서도 할 줄 알아야 돼요. 고장 생겨도 그렇고 내가 타지 있을 경우가 있고 하니까. 광률이도 혼자서도 잘해요.”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혼자서도 완전히 설 수 있는 사람이어야 다른 사람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 혼자서도 유유히 바다를 헤칠 줄 알아야 다른 사람의 항해를 도울 수 있다. 완성된 두 사람의 호흡이 배를 나아가게 한다.

이종률 선장과 이광률 기관장은 운이 좋다는 말을 참 많이 했다. 운이 좋아 다른 뱃사람들보다 좋은 일자리에서 편하게 일할 수 있고, 그저 운때가 맞아 좋은 동료 만나 잘 지낸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세상만사가 좋은 운으로만 채워질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이 얼마나 좋은 운을 갖고 있는지 말하는 사람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험하고 모질었던 시간마저 좋은 기억으로 바꿔내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다. 지혜로운 선장과 기관장은, 앞으로도 섬과 섬 사이를 오가며 통영의 빛나는 저녁을 밝힐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아끼는 두 사람의 관계도 계속될 것이다. 마치 바람좋은 날의 평온한 항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