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發 ‘조류독감’, 넌 정체가 뭐니?
중국發 ‘조류독감’, 넌 정체가 뭐니?
  • 참여와혁신
  • 승인 2013.05.0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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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변종으로 치사율 높아… 전 세계 전염병 공포 확산
사람 간 접촉으로 감염되는 진화판 바이러스
과학칼럼니스트

조류독감이 돌아왔다. 10여 년 전 태국에서 발생한 ‘H5N1 바이러스’가 아닌 새로운 변종, ‘H7N9 바이러스’다. 둘 다 조류가 걸리는 전염성 호흡기 질병인 조류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였는데, 어느새 사람까지 공격하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는 발생한 H7N9 바이러스는 기존에 사람에게 발견되지 않던 것이라 인체 내 면역력이 없으므로 더 치명적이다. 벌써 60여 명의 사람이 이 바이러스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이 바이러스가 사람끼리 전염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세계적으로 ‘판데믹(pandemic)’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

종을 뛰어넘는 독감 바이러스의 치명성

판데믹, 전 세계에 아주 빠른 속도로 전염병이 퍼지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전쟁보다 더 무서운 전염병의 공습이 전 인류에게 퍼지는 것이다. 인류는 이미 20세기 들어 1918년 스페인독감(H1N1 바이러스)과 1957년 아시아독감(H2N2 바이러스), 1968년 홍콩독감(H3N2) 등 크게 3가지 판데믹을 겪었다. 원인 바이러스는 다르지만 각각 약 2,000만 명, 100만 명, 7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전 세계 인류를 위협했다.

이후 판데믹의 후보로 떠오른 바이러스가 바로 H5N1 바이러스인데, 이유는 종간 장벽을 뛰어넘는 조류독감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지난 10여 년간 이 바이러스에 대해 연구하고 치료제도 개발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서 발생한 조류독감은 이 바이러스가 아니라 H7N9 바이러스다. 특히 이 바이러스는 사람끼리 접촉을 통해 감염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어 전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독감 바이러스는 A, B, C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겨울에 유행하는 독감 바이러스는 대부분 A나 B형이고 C는 사람에게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 B형 바이러스는 유전자 염기서열의 한두 군데만 달라지는 ‘소변이(drift)’를 일으키며 일시적으로 유행하며 판데믹으로 확장되지 않는다.

그런데 A형 바이러스는 유전자의 많은 부분이 바뀌는 ‘대변이(shift)’를 일으키고, B형보다 치명적인 증상을 보인다. H5N1이나 H7N9 바이러스 모두 A형 바이러스에 속한다. 이들 바이러스처럼 대변이가 많은데다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사람끼리 전염되면서 확산 속도까지 빨라진다면 판데믹으로 확대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A형 바이러스는 둥근 공 모양인데, 안쪽에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RNA 8가닥이 있고 바깥에 헤마글루티닌(H)과 뉴라미니다아제(N)라는 단백질로 둘러싸였다. 지금까지 헤마글루티닌은 15가지(H1~H15), 뉴라미니다아제는 9가지(N1~N9)가 밝혀졌는데, 조류는 이 모두를 갖고 있다. 헤마글루티닌과 뉴라미미다아제의 조합으로 총 135가지의 변종 바이러스가 만들어지고 독감 유형도 결정되는 것이다.

사람은 헤마글루티닌 3가지(H1, H2, H3)와 뉴라미니다아제는 2가지(N1, N2)만 발견됐다고 알려졌다. 그러니까 조류가 가진 135가지 바이러스 유형 중 인체를 공격할 수 있는 것은 H1N1, H1N2, H2N1, H2N2, H3N1, H3N2의 6가지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H5N1과 H7N9가 인체를 공격하면서 조류독감의 위험성이 커졌다. 인체를 공격할 수 없던 바이러스가 ‘어떤 계기’로 능력이 향상된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들 바이러스가 인체를 공격하게 된 경로를 두 가지 정도로 추측한다. 우선 독감 바이러스가 변하는 환경에서 생존하려고 끊임없이 돌연변이를 만들어내다가 어떤 시점에서 조류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전염시킬 수 있는 조건을 가지게 됐다는 가설이다. 독감 바이러스의 유전정보는 대부분 RNA가 전달하는데, 이들은 DNA보다 불안정해 돌연변이가 쉽게 일어난다는 점이 작용했다고 본 것이다.

다른 가설은 돼지 같은 다른 동물을 매개로 했다는 것이다. 돼지는 조류독감 바이러스와 사람독감 바이러스의 수용체를 모두 갖고 있다. 두 바이러스가 동시에 돼지 몸속에 들어갔다가 RNA가 섞이면서 새로운 조합의 RNA를 가진 바이러스를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H7N9 바이러스가 더 위험하다

H5N1 바이러스는 둘 중 한 경로로 인체에 침투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치사율이 60%에 달해 치명적인 바이러스였다. 대신 확산속도가 빠르지 않아 2004년 당시에도 세계적으로 확산되지 못했다.

H7N9 바이러스는 아직 뚜렷한 감염경로가 밝혀지지 않았는데, 최근 사람끼리도 접촉하면서 감염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판데믹 우려를 높이고 있다. 일본과 홍콩에서 H7N9 바이러스가 사람 사이에서 전염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일본 도쿄대 가와카 요시히로 교수와 일본국립전염병연구소 다시로 마사토 박사 연구팀은 H7N9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조류에서 사람으로 전염뿐 아니라 사람 간 전염 가능성도 발견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신종 조류독감에 감염된 사람과 조류에게서 각각 바이러스를 채취해 관찰했는데, 사람에게서 채취한 바이러스 유전자의 단백질이 변이된 것을 확인했다. 이 단백질이 변이돼 H7N9 바이러스가 인체 내 세포에서 효율적으로 자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는 이 바이러스로 인한 조류독감이 전 세계로 퍼질 수 있는 위험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호 팍-룽 홍콩대 교수도 H7N9 바이러스가 인간에 강력한 전염성을 지니고 있고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으며 H5N1 바이러스보다 치명적이라고 밝혔다. H7N9 바이러스의 유전자 배열이 매우 특이한 형태이며 H5N1 바이러스보다 인체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 것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백신을 개발 중이지만 바이러스가 유전자 재조합을 통해 계속 진화하고 있어 백신 개발이 뒤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아직 중국 밖에서 H7N9 바이러스 감염자는 없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바이러스가 더 이상 퍼지지 않게 최선을 다하고, 이 바이러스뿐 아니라 또 다른 판데믹의 위험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