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의 핵심쟁점을 정확히 파악하라
협상의 핵심쟁점을 정확히 파악하라
  • 최영우 한국노동교육원 교수
  • 승인 2006.03.29 00:00
  • 수정 0000.00.0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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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사는 지금 단체협상이 한창 진행 중이다. 노동조합에서는 30여 가지의 단협 요구사항 중 징계위원회 노사 동수 구성 및 이사회 참여 건을 협상 초부터 쟁점으로 부각시켜 한 달 동안 공세를 취해오고 있다.

 

회사에서는 노동조합의 요구사항은 사용자의 인사·경영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으로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 그런데 최근 노조에서는 갑자기 입장을 바꾸어 초기 요구안을 철회하면서 협상쟁점을 다른 의제로 옮기고 있다’ 

 

협상관련 서적들을 보면 한결같이 초기협상기법으로 ‘내가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요구하라’ 라는 주문이 나온다. 효과적인 협상의 기본법칙 중의 하나가 실제로 내가 원하는 것 이상을 상대에게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는 ‘협상테이블에서 가장 효과적인 협상은 자신의 요구를 얼마나 과장하여 전달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했다. 이것은 협상할 여지를 남겨둠으로써 상대방도 자신이 승리했다는 느낌을 가지게 만들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머리의 사례는 최초 제안을 터무니없이 과장되게 제시함으로써 협상의 주도권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어가려는 협상전술이라는 것은 유사하지만 접근방식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요구한다’는 것은 동일한 협상의제에서 ‘양보 가능한 선’을 염두에 둔다는 것이지만, 위의 사례의 경우는 초기 쟁점의제를 철회하고 전혀 다른 의제로 옮겨가는 것을 예로 든 것이다.

 

이번 협상에서 반드시 관철해야 하는 중요 사안이 있는 경우 협상초기에는 그것과 관계없는 전혀 엉뚱한 것으로 쟁점화시킨 다음 일정시간이 지나면 최초 쟁점 안을 ‘양보’하는 것처럼 하면서 진짜 협상요구사항을 나중에 풀어 놓는 방식이다. 협상에서는 이것을 ‘Door in the Face Technic’(얼굴 들이밀기 전술)이라고 하는데, 상대방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것을 일부러 협상안에 포함시킨 다음 협상을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글머리의 사례에서 노동조합이 그 해에 반드시 관철시키려고 한 핵심 사안은 징계위원회 노사 동수 구성도, 이사회 참여도 아닌 ‘주5일제 관철’이었다. 이 회사는 2003년 당시 1,000 인 이상 대기업에 해당되어 2004.7.1 자로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의해 주40시간제가 적용되는 사업장이었지만 1년 앞당겨 주5일제 조기관철을 위한 대표사업장으로 지목됨으로써, 해당 노조가 그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이 경우 회사 측이 인사권의 핵심인 징계결정권을 상대방에게 쉽게 넘겨줄 리도 만무하겠지만 반면에 노동조합도 회사가 노사 동수 구성 요구를 들어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은 처음부터 주5일제 의제로 바로 협상을 시작하지 않고 징계위원회 구성 등의 인사ㆍ경영권 문제를 쟁점화 시켰다. 이것은 애초부터 끝까지 관철시킬 의도 없이 단지 양보용 카드로 끼워 넣어 놓은 위장전술에 불과하다. 그 해 단협에서 노동조합은 이 전술을 사용함으로써 주5일제를 노조에 유리한 방향으로 큰 어려움 없이 쉽게 관철시켰다. 

 

협상에서 어느 일방이 이러한 전술을 구사하는 경우 실제 협상쟁점이 아닌 위장된 협상안을 가지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협상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야 하는 노사협상에서 그러한 비윤리적인 전술을 구사하는 쪽도 문제가 있지만, 협상의 핵심쟁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끌려가고 있는 상대방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협상과정에서 상대방이 터무니없는 제안을 하는 경우 이것은 분명 다른 요구조건을 뒤에 숨기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상대가 제기한 협상의제를 놓고 같이 논쟁하지 말고 상대방의 의제가 아닌 나의 의제를 쟁점화 시켜라. 이것이 위장된 협상카드를 무력화시키고 협상의 본질적 의제에 충실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