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는 비용 아닌 새로운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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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여와혁신
  • 승인 2013.06.04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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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하나도 이해당사자 협상으로 합의점 마련
신자유주의 바람 … 인력확보투쟁으로 맞대응
[기고] 산별의 나라 독일 방문기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
ⓒ 참여와혁신 포토DB
요즘 한국에서 뜨고 있는 나라, 독일을 다녀왔다. 4월 21일부터 28일까지 7박 8일의 일정으로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FES)후원과 통합공공노조(Ver-di) 초청을 받아 ‘보건의료분야의 노조정책 - 한국과 독일의 경험교류’라는 주제를 가지고 베를린에 있는 노조, 병원, 의회 등 여러 곳을 둘러보고 관계자들과 대화할 기회를 가졌다. 진주의료원 폐업투쟁으로 일정 연기까지 검토했으나 이미 6개월 전부터 잡힌 일정이라, 결국 대표 자격으로 함께 가기로 했던 유지현 위원장이 가지 못하고 나머지 대표단만 잠시 투쟁을 뒤로 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독일로 향했다.

중앙집중적 산별교섭 … 현장교섭도 활성화

독일은 노동운동에 있어 강력한 산별노조운동의 원조국가, 현장 종업원 평의회를 통해 노조의 경영참여, 직장 민주주의가 잘 이루어진 나라, 노사정 대타협과 대화를 통해 민주주의가 성숙된 국가, 분단에서 평화롭게 통일을 이룩한 통일국가, 사회보험을 통해 사회적 연대가 실현되는 복지국가라는 점에서 이전부터 많은 노조들이 독일을 찾았다. 특히 의료제도가 한국과 같은 건강보험을 골간으로 하는 국민건강보험 NHI(National Health Insurance) 시스템이기 때문에 우리 보건의료노조도 더욱 더 관심을 갖고 연대하고 교류하고 있는 나라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한국에서 새로운 대안사회를 모색하는 가운데 진보는 물론 보수조차도 독일을 배우자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복지국가 모델로서 스웨덴과 함께 성장과 복지(일자리)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독일이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첫날 에버트 재단에서는 FES 활동 소개, SPD(사민당)의 보건의료정책, 독일 의료제도, 경제위기 하에서 사회적 대화 등에 대해 전문가와 간담회를 진행했다. 평화, 민주주의, 사회정의를 가치로 내걸고 1925년에 창립된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은 독일총연맹, 사민당과 긴밀한 연관이 있지만 독립적인 재단으로 상근직원 619명(그 중 102명 해외 주재)에 베를린과 본에 멋진 현대식 본부 건물을 가지고 있다.

둘째 날부터 일정은 통합공공노조(Ver-di, 이차 베르디)가 주관했고, 병원에서의 직업적 이미지 향상, 의료기관 평가인증제와 의료 질 향상, 병원 분야에서 노조활동, 직업경력 개발, 산별교섭과 단체교섭, 노조와 SPD 정치활동, 현장 활동과 관련해서 전문가와 국회의원, 병원 관리자, 노조활동가 들의 발제를 듣고 질의응답하면서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주로 일정은 강 옆으로 베를린 장벽이 보이는 베르디 7층, 노조 이사회 멤버들이 회의하는 전망 좋은 회의장에서 진행되었다. 베르디는 조합원 210만 명에 공공행정, 운수, 미디어, 우체부, 전화 등 14개 전문 분야로 구성되고 있고, 우리 방문에는 우리 노조와 연관성이 있는 보건, 사회서비스, 복지, 교회 분과 책임자가 함께했다.

독일은 전체 노동자의 10%가 보건의료직에 종사하고 있고 재정규모도 GDP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참고로 한국은 고용규모가 3.6%, 재정은 GDP 대비 7% 수준이다. 현재 의료산업 종사자의 숫자도 독일은 490만 명이지만 한국은 70만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최근 독일 의료기관은 신자유주의 정책 확대와 DRG 시스템으로 인해 경제적인 압박이 늘어나 예산 삭감과 청소, 영양팀을 외주화하고 있고, 간호사 부분도 많이 줄였다. 고령화 사회로 인해 간호간병인력 부족문제 또한 심각하다. 베르디에서는 최근 각 현장별로 인력부족 실태조사를 실시하여 간호분야 7만 명을 포함하여 162,000명이 더 충원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인력확보투쟁을 하고 있다. 이전에도 13만 명이 브란덴부르크에서 시위를 해서 간호종사자들의 인력을 늘리고 재정을 지원받았다. 독일 산별교섭은 여전히 중앙집중적이지만 현장교섭도 활성화되고 있는 듯했다. 베르디 보건 분과에서는 2005년부터 지금까지 2,084개의 단협을 체결했다. 이를 위해 베르디 내에서 가장 많은 파업을 하고 있다.

넷째 날은 독일 연방의회를 방문하여 사민당 출신 보건복지위원장 Carola Reimann과 간담회를 진행하면서 독일노조와 사민당과의 관계, 의회에서 쟁점이 되는 보건의료 의제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올해 9월 총선을 앞두고 있지만 지금도 야당인 사민당의 낮은 지지율에 고민이 많았고, 그 원인을 묻는 질문에 보건의료정책에는 문제가 없지만 연금과 일자리 정책 때문에 기민당에 밀린다는 답변을 들었다.

▲ 독일노총 DGB 방문. ⓒ 이주호
독일, 65세까지 근무 vs 한국, 근속년수 5년

우리 노조 연수 때면 빠지지 않는 병원 현장 방문은 베를린 정부 산하 공공병원으로서 1896년 설립되어 산하 9개 병원에 직원 14,000명을 두고 베를린 환자의 1/4이 찾는 Vivantes 병원 중 하나인 노이켈름 병원을 찾았다. 독일의 2천여 개의 병원에서 가장 큰 병원 중 하나라고 한다.

먼저 병원 사무국장에게 병원 현황 설명을 듣고 일반 병동과 정신과 병동 투어를 진행했다. 총 간호 종사자들의 평균연령이 43세이고 상당 비율이 65세 정년까지 근무하는데, 이직률이 높고 평균 근속년수가 5년 남짓한 한국과 비교할 때 현장 노동조건이 얼마나 차이 나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특히 정신병원은 6개 병동 170개 병상에 130명의 간호사, 35명의 의사 등 200명 이상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었다. 이 숫자는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숫자이다. 한국 정신병원이 포로수용소, 군대 내무반을 연상시킬 정도로 많은 환자를 한 방에 입원시키는 것과는 달리 독일은 대부분 1~2인실로 구성되어 있었고, 정신치료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훈련된 개를 활용하고 있는 것도 이색적이었다.

병원 내에 있는 종업원 평의회 사무실도 방문하여 현장위원과 간담회를 가졌고 우리의 관심사인 병원 간호사들 근무표도 받았다.

마지막 날은 독일에 있는 한국 간호사들과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1966년도 1차 해외개발공사를 통해 처음 온 간호사부터 70년대 이후 온 베를린 간호요원회 회장 등 4명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한국에 있을 때는 우리가 노동자라는 생각을 미처 못 했는데 독일에 와서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진짜 노동자구나 생각을 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여성노동자들과의 연대감도 생겼다고 했다. 지금 한 달에 3,500유로를 받지만 세금, 보험료 등으로 1,700 유로가 나가고 있는데, 그래도 복지혜택이 많아 큰 불만은 없다고 한다. 병가의 경우 6주간 100% 임금이 나오고 이후 6개월간은 질병금고에서 80%가 나온다. 처음 3일간은 진단서도 필요 없다. 이전에는 6개월간 100% 임금이 나왔다.

이번 방문 기간 내내 베르디 노조활동가들은 4년 전 독일을 방문해서 대화를 나눌 때보다 자신감에 차 있었다. 독일노총과 베르디노조의 엄청난 규모의 노조건물과 600명이 넘는 상근자, 200만 명 이상의 조합원 숫자에 압도당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의식이었다. 2009년 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를 통해 많이 위축되어있을 것이라 상상했는데, 그들은 복지가 비용이 아닌, 새로운 투자라는 점에서 보건의료분야의 정치적·경제적 가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더 공세적으로 의료 공공성 활동, 인력확보투쟁을 하고 있었다. 또한 성숙된 민주주의 의식을 바탕으로 정책 하나하나까지 많은 이해 당사자들과 긴 시간동안 협상을 통해 합의점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 독일 의회 면담. ⓒ 이주호
이번 연수는 우리 산별노조 활동에 있어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후 베르디와 양국 전문가와 함께 의료기관 인력기준 마련을 위한 공동연구사업을 추진하기로 했고, 2016년 간호사 파독 50주년 기념 공동사업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베르디와도 이후 양 조직간 공동교류사업의 토대를 튼튼히 구축했다.

이번 보건의료노조의 독일 연수는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FES) 한국 사무소 폴먼 소장과 진양숙 선생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다. 우리 노조는 물론 한국 노동계와 시민사회에 애정을 가지고 공동사업을 활발히 펼쳐나가고 있는 두 분에게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