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하라 요구만 말고 스스로부터 혁신하라
혁신하라 요구만 말고 스스로부터 혁신하라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3.06.04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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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토론·존중·설득…조직문화 바꾸자
노정교섭, 언제나 열려 있다…먼저 요구는 않을 것
[기획인터뷰 3] 양성윤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민주노총의 지도부 공백상태가 6개월을 넘기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1차 투표 때 다득표자인 이갑용 후보조에 대해 찬반투표를 실시했지만, 투표자가 과반수를 넘기지 못해 투표함을 열어보지도 못했다. 민주노총 선관위는 재선거를 결정했지만 후보자를 설득하지 못해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이 같은 비상 국면에서 양성윤 부위원장이 비대위원장을 맡게 됐다. 양성윤 비대위원장에게 현재의 민주노총에 대한 진단과 나아갈 바를 들었다.

불안 요소 해소되면 재선거 공고

길어지고 있는 민주노총의 지도부 공백상태에서 비대위원장을 맡게 됐다. 비대위원장에게 주어진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위원장과 사무총장을 뽑지 못해서 비상대책위가 꾸려졌다. 비상대책위가 해야 할 일은 빠른 시일 안에 위원장과 사무총장을 안정적으로 선출하는 것이다. 재선거 결정에 대해 선관위와 후보 사이에 이견이 있고 한 대의원은 선거와 관련해 법원에 가처분신청까지 냈다. 이런 문제가 빨리 해소되고 안정화돼야 위원장과 사무총장 선거를 할 수 있다.

이 상황이 해결될 때까지 대략 2개월 정도 걸릴 것 같은데, 그동안 사업들도 진행해야 한다. 중요하게는 전체 65개 장기투쟁사업장 중에서 투쟁과 협상을 통해 해결 가능한 사업장들은 해결하고 가야 한다.
또 이미 결정된 것 중 직선제위원회를 구성하기로 돼 있던 것도 지금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위원장이 누가 되든 해야 할 일이고 방향도 정해져 있다. 그동안 축적됐던 자료 분석이나 현장에서 투표가 가능하게 선거지침을 만드는 것들은 지금 시작해야 한다.”

지도부 공백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비대위의 로드맵은?

“지금 2013년 사업계획이나 예산안이 통과되지 못했다. 기존에는 임원선거에서 당선된 위원장이 바로 다음 안건 의장이 돼서 대의원대회에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상정하고 중앙위에 위임했다. 그런데 지금은 역으로 중앙위에서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심의하고, 1~2개월 후에 선출된 지도부가 보완해서 대의원대회에서 논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번 선거와 관련해서는 가처분신청 결과를 두고 봐야 한다. 이런 부분이 안정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선거를 공고하면 후보자들이 나오려고 하지도 않고 모아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중간에(선거 전에) 토론회를 했으면 좋겠다. 민주노총의 위기는 어디서 비롯됐고, 대의원들의 기능과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지도부가 잘못하면 혼낼 사람은 대의원들과 조합원들이다. 대의원들은 지도부를 세울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데 대의원들이 언제부턴가 참여하지 않는다. 대의원대회만 하면 겨우 과반을 채우기에 급급한 게 지금의 문화다. 중요한 허리가 되는 대의원들의 역할이나 그런 문화를 바꿀 수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선거일정이 공고되는 건 가처분 결과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불안한 요소들만 해소되면 바로 선거에 들어갈 수 있다. 빠르면 6월 중순에서 말 정도로 본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한 번 아니면 끝까지 아니다?

지도부 공백이 이처럼 길어지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백석근 후보를 위원장으로 당선시키지 못해서, 아니면 이갑용 후보를 당선시키지 못해서 위기인가? 지금 조합원들이나 현장에서 분노하고 상실감 갖는 것은 위원장조차 제대로 못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괜찮을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정파의 문화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과연 제대로 위기라는 진단을 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다. 선거 전에 산별대표자들과 정파들이 원탁회의를 했다. 이견이 있더라도 수긍하고 정리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러지 못했다. (한 번) 아니면 (끝까지) 아니더라.

정파의 순기능은 적극적으로 키워야 한다. 하지만 특히 선거 때 표출되는 배타적인 문화가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자신 있게 책임지고 토론하며, 존중하고 설득하는 문화를 정파 활동가들이 가져야 한다. 대화로 서로의 입장을 나누면서 공통분모를 찾아가야 한다.

정파가 공조직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바로 잡아야 한다. 선거를 통해서 공조직에 들어온 게 정파의 입장을 반영하려고 온 건 아니다. 계속 정파의 입장만 반영하라고 하는 건 심각한 문제다. 공조직에 들어오면 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해서 함께 모아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정파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동지들이라도 공조직에 들어오면 정파가 아닌 공조직 내에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면 많이 달라지지 않겠는가.

조합원, 대의원들과 지도부의 간극도 너무나 벌어져 있다. 그동안 지도부가 간극을 채우지 못한 게 선거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나 생각한다. 서로 신뢰하지 못한다. 총연맹을 정상화하는 게 절실하다고 하면서도 대의원들이 뽑아주지 않았다. 지도부와 위원장 후보들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이 표현됐다고 본다. 이에 대해서는 후보들도 각성해야 될 부분이 있다.”

조합원들은 자신이 민주노총 조합원이라는 인식을 거의 하지 않고 있고, 지도부를 선출하는 데에도 관심이 없다. 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민주노총의 존재감이 현격히 떨어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위기이고 문제가 많긴 하나, 그래도 여전히 민주노총은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미조직 비정규노동자들에게는 민주노총 조끼 입는 게 소원일 만큼 민주노총이 희망이다. 민주노총의 존재감이나 민주노총에 대한 애착이 현격히 떨어지는 것은 한편으로는 지도부가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또 한편으로는 현장에서 일상 사업들이 사라지고 있다. 조합원과 무엇인가 만들어내고 무엇인가 함께하려는 일상 사업들이 없어지는 거다. 일상 사업들이 충분히 진행될 수 있게 민주노총이 큰 그늘막이 돼야 하는데, 민주노총이 제 역할을 못하면서 지도부부터 현장간부까지 자신감이 사라지고 상실감이 자리 잡고 있다. 그게 현장의 조합원들과 거리감이 커진 원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비판하면서 책임은 안 진다

가능하면 빨리 지도부를 선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지도부를 선출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지금 민주노총의 지도부에게 요구되는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전체적으로 문화를 얘기했는데, 너무 반목과 불신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이 민주노총을 갉아먹는 거다. 자기와 맞지 않으면 모든 것들을 부정하고 자기를 돌아보지 않는다. 상황을 객관화해서 보지 못하고 자기입장만 생각한다.

이런 문화들이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굉장히 힘들겠지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문제다. 혁신하고 변화하라고 얘기하지만, 스스로도 혁신하고 변화하려는 노력과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데 네가 혁신하고 변화하라고만 한다. 자기는 그러지 않고. 이런 문화가 팽배해 있고, 그 중심에 정파들의 배타성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더 심각하다.

정파들 간의 정기적인 논의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특히 이런 시기에는 중요한 사업이 있을 때 테이블을 만들어서 서로 이견을 좁혔으면 좋겠다. 무조건 비판하고 비난하는 건 책임 있는 사람들이 할 일이 아니다. 계속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자기가 비판하는 부분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우리 조직 내에서 그런 문화를 바꾸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지금 위원장을 선출하더라도 임기가 2014년 말까지다. 아무리 빨리 뽑아도 임기가 1년 6개월 정도인데 과연 누가 출마할 것인가 하는 우려도 있다.

“위원장 왜 출마하나? 임기가 중요한가? 오히려 이런 시기일수록 정말로 책임감 있게 나오는 후보가 필요하다. 개월 수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1년 6개월 임기가 굉장히 불안정하고 할 일도 그렇게 많지 않을 수도 있지만 현재 상황을 수습하고 해결하는 것도 굉장히 크다.

그리고 그 1년 6개월 임기 동안 지도부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을 거다. 정말로 모아가는 역할, 산적한 장기투쟁사업장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 이런 것들을 자신감 있게 할 수 있고 책임질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이번에 출마한다면 진정성이 전달될 거라고 생각한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총연맹은 산별이 못하는 일 해야

현재 민주노총은 총연맹으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무엇이 문제인가? 총연맹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내셔널센터로서의 기능을 얘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많은 투쟁사업장들이 ‘민주노총이 안 보인다’고 한다. 민주노총은 산별노조나 지역본부가 하지 못하는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집회에 참가해서 발언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투쟁을 모아내고 위력적인 큰 힘을 발휘하게 하는 게 총연맹이다.

민주노총은 총연맹이기 때문에 사회적 의제를 공론화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민주노총이 차지하는 사회적 위상과 역할을 높여 가면서 전반적인 여론을 주도하는 것이 필요한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현장 사업도 그렇고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도 실추돼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정부에서는 정부와의 대화 창구가 막혀 있었고 현 정부에서도 민주노총을 배제하고 가려는 시도가 확인되기도 했다. 정부와의 논의를 어떻게 풀어나갈 생각인가?

“98년에 정리해고 문제 때문에 노사정위원회에서 탈퇴한 뒤,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지 않는 걸로 대의원대회에서 결정됐다. 그렇지만 노정교섭이나 노사간 중층적 교섭들은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사회적 합의를 얘기하고 있다. 현재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대협실에 전화해서 노사정 대표자들이 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할 수 있냐고 묻더라.

물론 4월 25일 장관이 방문하기로 했다가 어수선한 상황이어서 약속을 취소하기는 했다. 그날 장관이 와서 참석해 달라 청하려 했다고 얘기하더라. 피치 못할 사정으로 만나지 못하면 그 다음날이라도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서 얘기를 해야 할 거 아닌가. 그런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결국 민주노총을 배제하려는 전략이다.

방하남 장관이 노동부 업무보고 때, 노사정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으니 민주노총과 다른 채널을 통해서 계속 대화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노정교섭은 여전히 유효하고 조건 없이 열려 있다. 이걸 굳이 하지 않겠다고 할 필요는 없지만, 먼저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조직 조직화·노동기본권 두 축으로 간다

최저임금위원회에 민주노총에서도 4명의 근로자위원이 참석하고 있지만, 민주노총 전체의 사업은 아닌 것 같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바로 그게 한계다. 민주노총 대부분의 사업장들은 최저임금과 무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 투쟁은 사회적 투쟁이다. 민주노총이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결과적으로 앞으로 민주노총이 이 최임 투쟁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묶어 내느냐에 따라서 민주노총의 사회적 영향력이나 위상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사업은 민주노총 안에서는 더 어려운 조건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투쟁들을 전면화하고, 그들을 조직화하고 묶는 방법이다.

민주노총의 지금 객관적 상황을 보면 내년엔 더 조직화하기 힘들 수 있는데, 이번 투쟁을 통해서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할 건지 새롭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또 알바 노동자나 청년유니온, 노년유니온 등과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지도 다 모색해야 한다.”

민주노총이 전략조직화 사업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미조직 노동자나 노조를 가지지 못한 노동자를 위한 조직화 전략은 어떠한가?

“제1의 사회안전망은 국가가 만들지만, 기본적으로 노동조합은 제2의 사회안전망이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은 나라일수록 공통적으로 양극화가 굉장히 줄어들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 자체가 굉장히 잘못돼 있다. 막무가내 노조에 대한 혐오증을 가지고 있다. 노조 조직률을 높이려면 사회적으로 노동조합에 대한 불신이나 잘못 알려진 것들을 제거해야 한다. 또 정규교육과정에 반드시 기본적인 노동자의 권리를 포함시키고 이런 것들이 확산돼야 한다. 그래서 당연한 권리로 만들어 한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단위와 노동기본권 관련 사업을 하는 단위로 부서를 재편해서 미조직 조직화 사업을 더 적극적으로 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