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관심에서부터 공장을 바꾸다
작은 관심에서부터 공장을 바꾸다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3.06.0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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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펌프’ 신한일전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다쳐서 뭐가 좋나”…개별 직원들의 산재예방 참여
[삶의 현장] 신한일전기

지난 1968년에 설립된 경기도 부천시의 터줏대감 (주)신한일전기. 대중들에게 한일자동펌프, 선풍기, 난로, 믹서기 등의 제품으로 유명하다. 과거에 비해 비록 규모는 줄었지만 신한일전기는 노사관계, 산업안전보건, 직장 내 복지 등 다양한 부문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알찬 사업체다. 어떤 모습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일까. 신한일전기 부천 공장의 구석구석을 살펴보자.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생각보다 조용한 공장?

한국노총 금속노련 산하조직인 신한일전기 노동조합 박종현 위원장을 따라 주력 상품인 펌프 생산 공장으로 들어섰다. 공장에서 이뤄지는 주요 작업은 조립이다. 부품을 조립해 일종의 모듈을 만들고 이를 다시 완제품으로 조립한다. 완성된 제품의 성능도 검사한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금속 제조업 사업장 대부분이 쇠를 깎는 날카로운 소음이나, 전동 장비를 사용할 때 나는 소음으로 귀가 먹먹할 경우가 많은데, 신한일전기의 생산 공장은 놀랍게 조용하다. 작업장 소음을 80dB 이하로 관리하기 위해 조립 공정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드라이버는 유압식으로 교체하고, 프레스의 뒷편에는 방음판을 설치하는 등 세심하게 신경을 써 놓았다. 선풍기와 같은 가정용 가전제품을 조립하는 공장은 더더욱 소음이 줄어든다. 흔히 다른 제조업 공장 안에선 작업 공정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듣기 어려울 정도로 소음이 심했지만, 이곳에선 평소 이야기 나누던 대로 ‘대화’가 가능할 정도였다.

신한일전기에서 만들어지는 제품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 펌프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라면 서수남-하청일 콤비의 CM송이 곧바로 떠오를 만큼 ‘한일자동펌프’는 신한일전기의 주력 상품이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오늘날 농촌은 더없이 한적해졌지만, 과거에는 집집마다 양수기 한 대쯤은 구비해 놓는 것이 장마나 가뭄에 대비하는 상식이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 이런 가정용 펌프 시장은 대단히 쪼그라들었다.

대신에 산업용이나 건축용 펌프가 자리를 차지했다. 산업용 기계장비의 과열이나 마모를 방지하기 위해 냉각수나 오일을 공급해 주는 쿨런트(coolant) 펌프나 대형 고층 건물 어디서나 일정한 수압을 유지시켜 주는 부스터시스템 펌프 등의 대형 고급 제품들이 대표적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좁은 사업장부지, 큰 고민거리

신한일전기 부천공장의 가장 큰 고민거리라고 하면 역시 공간이 비좁다는 점이다. 또한 도심 안이어서 개발 자체가 묶여 있기도 하다. 회사가 설립될 무렵처럼 대규모 인원이 수작업으로 제품을 생산하던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기계 장비의 덩치도 커졌다. 협소한 공간 때문에 적절한 작업 동선을 짜는 것은 큰 골칫거리다.

신한일전기노조 조합원들의 평균 연령은 42세, 평균 근속년수도 19년에 달한다. 젊은 신입 직원들이 섞여 있긴 하지만, 그만큼 나이 많은 직원들도 있다. 여성 노동자들도 40% 가량 섞여 있다. 신한일전기는 IMF를 즈음해 대부분의 공정을 반자동화시켰는데, 비교적 가벼운 부품을 옮길 때에도 허리나 어깨, 손목에 반복적으로 무리가 가지 않도록 리프트 설비를 이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중년의 여성 노동자들에게 특히 환영받을 만한 부분이다.

작업장 공간이 협소할 경우 소소하게 자주 발생하는 사고 중 하나가 모서리나 돌출 부위에 긁히거나 베이는 것이다. 굳이 노동조합이나 회사의 산업안전 담당자가 아니더라도 작업장에서 일하는 직원들 중 누구라도 눈에 띠는 부분이 있으면 플라스틱 폼이나 고무판으로 덧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아이디어를 노동조합 간부나 관리자들과 상의하는 모습도 신선했다. 선풍기 조립 라인에서 일하던 한 여성 노동자는 작업대의 높이를 조절할 수 있다면 어깨에 무리가 덜 갈 것 같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노사는 제도를 만들고, 구성원 전체가 참여

신한일전기 노동자들이 산재 예방과 작업장 환경을 개선하는 부분에 있어서 이처럼 관심이 높은 까닭은 무엇일까? 회사 정문 옆에 마련된 휴게공간에서 조합원들과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40대 중반의 한 남성 노동자는 “다쳐서 좋을 게 뭐가 있겠냐”고 지극히 상식적인 대답을 꺼내며 껄껄 웃는다. 나이 들어 다치면 잘 낫지도 않는다는 얘기도 덧붙인다.

우선 노동조합과 회사가 앞장 서 제도를 정착시키고 독려했던 부분이 매우 크게 작용했다. 지난 1998년부터 매달 안전보건은 물론이고, 생산이나 품질, 개발 등의 업무보고 회의를 노사가 동수로 참여해 운영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대표이사와 노동조합 위원장이 참여하며, 노사의 실무자들이 소위원회를 구성해 세부적인 안전관리의 전체 그림을 그린다.

노사가 동등하게 회의에 참여하는 만큼, 결론도 노사 합의에 의해 도출된다. 어느 한 쪽의 불성실함이나 무성의함에 대해서는 즉시 문제제기가 되고, 한 번 정해진 목표에 대해서는 전 조직적으로 추진력을 얻게 된다.

개별 구성원들도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프레스나 선반, 리프트 등이 사용되고 있는 공장 안에서 충돌이나 베임, 협착 등의 사고가 날 우려가 높은 작업 과정에 대해 이를 직접 운용하는 직원들로부터 각종 개선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있다. 수시로 작업장을 순회하고 있는 환경안전 담당자에게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이야기하거나 노동조합 간부들에게 이를 건의하면, 공장 내 전 구성원들에게 이와 같은 내용이 공유된다.
노사가 산업안전보건 부문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공장 구성원들이 이에 적극 참여하는 바람직한 구도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400여 명의 직원들은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4,500,000시간의 무재해 6배수를 달성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구조조정의 아픈 기억들


박종현 위원장이 입사한 1986년 당시,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1,600명에 달했다. 현재 부천 공장에는 400여 명만이 남아 있다. 원주와 전주 공장으로 분산된 인원을 감안하더라도, 과거에 비해서 인원이 크게 줄었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농촌의 인구가 격감했고, 소비자들의 수요도 따라서 크게 바뀌었다. 날개 돋친 듯 팔리던 가정용 펌프를 찾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주력 상품이 예전처럼 팔리지 않게 된 것이다. 90대 후반에는 아이엠에프의 충격도 회사를 강타했다.

20년 이상 장기근속하고 있는 신한일전기 직원들은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나마 구조조정의 충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노사는 물론, 구성원들 모두가 조금씩 피해를 감수했다. 제조업 사업장에서는 이례적으로 신한일전기는 1998년부터 주5일제 근무를 시작했다. 구조조정 인원을 최소화하기 위한 자구책이다. 당시와 같은 상황이 앞으로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노동조합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여전히 안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봐요. 옛날에는 우리 제품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는데, 요새는 외국 제품들이 만만치 않고. 회사에서 경영이 어렵다고 나가라고 그러면 우리 같은 개별 직원들이 의지할 데가 노조밖에 없는 거죠.”

아이엠에프 여파로 회사의 사정이 어려워지자 대기업의 계열사인 당시 금성펌프는 사업 분야를 해외 업체에 매각했다. 금성펌프를 인수한 윌로펌프는 현재 신한일전기의 라이벌 업체이다. 주력 상품이자 부가가치가 큰 제품인 산업용, 건축용 펌프 시장은 양사 제품이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구성원들이 만족하면 성과가 나온다

“어떤 회사든 공장이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거는 비슷비슷하지 않을까요? 좋은 환경에서 건강을 지키면서 오래 일할 수 있고 돈도 많이 받고 복지혜택도 많으면 좋겠지요.”

한 조합원이 이야기를 정리해 주겠다며 이와 같이 말한다. 조합원들의 욕구가 다양하다는 것은 노동조합도 잘 알고 있다. 특히 성별과 연령대가 매우 다양한 신한일전기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지난 2003년에는 어린 자녀를 키우고 있는 직원들, 특히 여성 노동자들을 위해 직장 내 보육시설 ‘신한일 어린이집’을 개원했다. 2005년에는 10억 원의 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 대학생 자녀 무이자 학자금 대출을 지원했으며, 2008년에는 정년을 만 57세로 연장했다. 2009년에는 13억 원을 출연해 장학재단을 설립하기도 했으며 올해는 단체협약 교섭을 통해 정년을 만 58세로 연장할 계획이다.

구성원이 행복해야 성과도 높다는 점에 대해서는 노사가 의견을 함께 하고 있다. 노사의 철학이나 비전이 같은지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우선 경험적으로 과거의 사례가 이를 증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노사는 구조조정이 필요한 유휴인력이 발생했을 때, 해고의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 일감을 나눠 일찌감치 주5일제 근무를 시작한 이후 생산성이 오히려 30% 넘게 향상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산업안전 부문도 마찬가지다. 2005년과 2006년, 두 번에 걸쳐 한국노총으로부터 현장 안전진단을 받은 이후, 2007년부터 무재해 목표를 6배 넘게 달성하는 성과를 낳았다.

가시적인 성과 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비록 짧은 시간 이야기를 나눴지만, 공장의 직원들이 경영 상황이나 회사의 미래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최근 신한일전기는 펌프 사업 부문에서 지속적으로 큰 이익을 창출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일본 시장을 적극 공략해 고급형 렌지후드를 생산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기존의 생산 인력이 다른 공정에 투입돼야 하는 현실인 것이다. 유휴 인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기존의 경우에도 직원들의 전환 배치가 종종 발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대부분의 공정을 매뉴얼화하고 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눈 직원들은 새로운 사업 부문이나 공정의 참여에 있어서 호기심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제품에 비해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해 내겠다는 자신감도 확고했다.

개별 구성원들부터 생산적 참여와 작업장 혁신이 가능하다면, 결국 조직 전체에 있어서 대단히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신한일전기의 앞으로 발전상에 더욱 관심이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