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은 “공감” 진단은 “각각” 처방은 “딴판”
현상은 “공감” 진단은 “각각” 처방은 “딴판”
  • 승인 2006.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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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양극화, 해법은 있다 _ 1. 모든 길은 양극화로 통한다?


양극화 해법, 방향 못 잡고 사회적 갈등만 깊어져

양극화라는 동일한 현상을 놓고 사회 각 이해집단 간의 갈등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양극화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은 어느 계층, 어느 집단이나 대체로 동일하지만 진단과 처방에서는 엇갈린 의견이 제시되고 있는 것. 


연초에 정부가 양극화 대책을 국정 주요 과제로 설정하고 각 부처, 분야별 양극화 대책을 세우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자 시민사회단체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다소 엇갈렸다. 정부의 양극화 해결 의지는 환영하지만 해법이 구체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축과 진단부터 틀렸기 때문에 해법도 새롭게 내야 한다는 입장으로 나뉘었다.


정치권에서는 양극화 대책마저 ‘양극화’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여당이 양극화의 주범으로 과거의 압축 성장을 꼽는 반면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부의 ‘실정’을 양극화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증세정책과 분배 중심의 경제정책을 정면으로 공격하고 나섰다. 여당과 야당은 양극화에 대한 진단에서부터 처방까지 의견일치를 보는 점이 하나도 없을 정도다.


노동계와 경영계의 시각도 다르다. 노동계는 비정규직이나 소외 계층의 보호를 통한 전반적인 ‘상향평준화’를 주요 해법으로 제시하는 반면 경영계는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를 양극화 주범으로 지목,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 동결과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정부 vs 시민단체

심각성은 공감, 진단·해법은 엇갈려
정부와 시민단체의 양극화에 대한 현상 인식은 대체로 일치하는 모양새다.
정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소득 격차, 고소득자와 저소득자의 격차를 들어 내수시장 불안과 소비위축에 따른 저성장 문제가 야기된다는 차원에서 양극화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양극화 관련 시민사회단체로는 가장 큰 규모인 ‘사회양극화해소 국민연대’도 심각성에 관해서는 정부 의견에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진단에 경제정책과 노동시장정책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다는 점은 큰 결함이라고 지적한다. ‘양극화해소 국민연대’ 박원석 합동사무처장은 “양극화가 지난 시기 경제 성장의 산물인 측면은 있지만 정부의 경제사회정책 기조가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빼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해법도 엇갈린다. 정부는 ‘분배와 성장의 동시 추구’라는 기조를 유지하면서 재분배정책 강화, 사회서비스산업 육성,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의 불평등 해소, 저소득층 교육 지원 등의 해법을 주로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들 단체는 정부가 말로만 ‘양극화 극복’과 ‘동반성장’을 강조하면서 실제 경제정책 운용에 있어 ‘기업투자 활성화와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지속적인 구조개혁, 기업 규제 완화, 건설경기 부양 등의 정책을 추진해 온 결과 오히려 양극화를 심화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 단체는 ▲비정규직 보호입법 ▲최저임금 결정기준 개선을 위한 최저임금법 개정 ▲사각지대 해소와 차상위 빈곤계층 지원을 위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 ▲모든 의료비 건강보험 적용 등 단계적 무상의료 ▲만 5세아 무상교육 실현 등 단계적 무상교육 ▲상장주식 양도차익과세와 금융소득종합과세 현실화를 위한 소득세법 개정 ▲간이과세 폐지 ▲금융차명거래 금지를 위한 법률 개정 ▲임대료와 임대보증금 소득 차등부과를 위한 임대주택법 개정 ▲영리의료법인 허용 반대 ▲보육료 자율화 반대 등을 주요 해법으로 제시하고 법률 및 의견청원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 단체의 대책은 정부 대책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가지 수도 많지만 실질적인 재원확보 방법 등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는 한계도 지니고 있다.

 

 


  여당 vs 야당

진단은 180도 해법은 360도 달라
정부·여당과 한나라당은 양극화 원인에 대한 진단부터가 다르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현 정권 3년의 경제 불황”을 양극화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이 불러들인 외환위기와, 국민의 정부 시절의 카드 남발 등이 양극화를 심화시켰다고 지적한다.


진단이 다르니 해소 방안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양극화 해소 방안으로 감세와 ‘작은 정부론’, 성장 우선 정책 등을 고수하고 있다. ‘재정 확충을 통한 복지 지출 확대’라는 정부·여당의 해법과는 정반대다.


한나라당은 성장을 이루기 위해 정부의 각종 규제와 반시장·반기업 정서, 사회적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소해야 할 것들로는 수도권 공장 증설 불가, 불시 세무조사 등을 들었다. 그러나 정부·여당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성장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내수부진 탓이고, 이는 신용불량자 양산, 비정규직·영세 자영업자 증가 등의 결과라는 것이다.


사회안전망 구축 방안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은 기초연금제와 소득비례연금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지만 열린우리당은 국민연금제도 개혁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복지비 및 조세부담률에 관한 공방도 치열하다. 한나라당은 우리나라의 복지비와 조세부담률이 해외 선진국에 비해 낮지 않다는 입장인 반면 열린우리당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국민소득을 지닌 나라들과의 비교에서는 확실히 조세부담률이 낮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유일호 교수는 “정치권에서 과거에 국가채무를 놓고 논쟁을 하기는 했지만, 재정정책의 기조를 가지고 이렇게 치열하게 논쟁하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며 “기본적인 경제 철학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처럼 첨예한 정치권의 대립은 양극화를 경제적 이슈에서 정치적인 수사로 이동시키는 데까지 이르렀다. <관련기사 18면>

 

  노동계 vs 경영계

취약계층 보호냐 기득권 양보냐, 해법 놓고 공방
노동계와 경영계는 양극화에 대한 진단보다는 해법을 놓고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민주노총은 양극화 해소를 위한 해법으로 비정규직 차별 및 임금격차 해소와 연대임금 확보를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는 ▲임금격차 해소와 생활임금 확보 위해 전체 노동자 임금의 1/2 수준으로 법정최저임금 현실화 ▲산별 최저임금협약의 체결 ▲지자체 조례제정을 통한 지역 내 저임금 해소 ▲원·하청 공동투쟁을 통한 임금격차 축소 등을 제기했다.


또,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동일가치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해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의 80% 수준까지 끌어올리려면 단계적으로 올해는 정규직의 56% 수준까지, 비정규직 임금을 17.4%를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영계의 양극화 대책은 차별 해소보다는 기득권의 양보에 더 초점이 있다. 한국경제인총연합은 2006년도 임금조정 기본방향에서 임금조정에서 고려해야 할 환경으로 원자재가격 인상과 환율 등 대외경제여건 악화, 기업규모에 따른 수익성·임금소득의 양극화 등 경제적 양극화 심화, 일자리 창출 역량의 저하, 고령화와 인건비 부담증가 등을 들고 있다.


이에 따라 임금협상의 원칙으로 ▲대외환경변화를 고려한 임금조정 ▲경제양극화 해소를 위한 임금 조정 ▲일자리 창출과 고용안정 도모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적합한 인적자원 관리체계의 확립 ▲직무급과 연봉제 확산으로 임금 유연성 제고 등을 제기하고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동결과 중소기업의 정기승급분을 제외한 임금총액 2.6% 인상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중소기업 저임금은 그대로 둔 채 대기업 임금만을 동결하겠다는 것으로 책임 떠넘기기 억지 논리”라고 반박하고 경총은 “대기업 노동자가 양보를 하지 않으면 차별해소를 위한 재원 마련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처럼 민주노총과 경총이 양극화 해소와 임금 인상을 놓고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올해 임금정책과 교섭에서 충돌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양극화 해소를 위해 노동시장의 차별 해소를 꼽는 노동계와 노동시장의 유연성 강화를 강조하는 경영계의 시각은 사안마다 부딪히며 파열음을 내고 있다.


재계는 정부의 양극화 진단과 해법에 대해서도 불만을 갖는 눈치다. 연초에 대통령이 양극화 대책을 발표하자 전경련 등의 경제단체는 환영 성명을 발표하고 적극 동참할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증세와 복지 확대, 분배 형평성을 뼈대로 하는 정책보다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 마련을 통해 성장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양극화가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이라는 점은 경영계도 동의하고 있는 점이지만 분배에 너무 초점을 두다 보면 성장이 지체될 수 있다”며 증세와 분배에 무게가 실리는 것을 경계했다.

 

“양극화 심각하지 않다” 주장도 등장
양극화에 대한 논의가 해법을 찾지 못하고 미궁으로 빠져드는 가운데 양극화 자체에 대한 공감대마저 흔들리고 있다.
올 3월 들면서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양극화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는 주장이 등장했고 일부 경제연구소와 학자들도 “모든 문제를 양극화로 연결시키는 시각이 오히려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3월 5일 ‘소득양극화의 현상과 원인’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양극화가 본질적인 의미와는 관계없이 가계, 기업, 산업 등 각 부문의 성과격차 확대 현상을 설명하는 데 통용되면서 논의의 초점이 분산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소득 양극화와 소득 불균등을 혼돈해서는 안 된다”고 제기했다.


양극화에 대한 공감대마저 흔들리기 시작하자 국정홍보처는 ‘양극화 쟁점, 따져봅시다’라는 연재를 시작하고 “양극화가 심각하지 않다는 일부의 주장은 참여정부의 양극화 해소 대책에 흠집을 내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자 야당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정부여당이 신 빈곤층을 끌어안기 위한 ‘인기영합주의’를 택하고 있다며 반박하고 나섰다. ‘양극화를 이용하는 오렌지좌파’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양극화의 개념, 문제의 심각성, 원인, 대응방향 등을 둘러싸고 오히려 혼란과 대립이 나타나는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양극화 해소 방안을 논의하기 전에 양극화의 개념과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북대학교 경제학과 김형기 교수는 “양극화는 어느 하나의 원인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 만큼 진단과 해법에 있어서도 사회 각계각층과 이해집단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킬 수밖에 없다”며 “양극화 해법이 소모적이고 정치적인 논쟁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국민적 공감대 마련을 위한 활발한 토론과 합의가 우선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