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유연하게’ 발 빠른 치타의 사냥 비밀
‘순식간에 유연하게’ 발 빠른 치타의 사냥 비밀
  • 참여와혁신
  • 승인 2013.07.09 10:17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사인 볼트 4배의 근력으로 급격하게 감속하는 능력
신체조건 불리하지만 특징 최대한 살려 극복

과학칼럼니스트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간, 우사인 볼트의 100m 기록은 9.58초다. 번개처럼 빠른 속도다. 그러나 천하의 볼트도 치타와 한 판 승부를 겨룬다면 보기 좋게 나가떨어진다. 치타의 최고 기록은 시속 104.4km인데, 단순히 계산해도 100m를 3.4초에 주파한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람들은 치타가 살아남은 비결로 바로 이 ‘달리기 속도’를 꼽았다. 사자 같은 다른 맹수에 비해 몸집이 작고 턱과 이빨이 덜 발달됐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뛰어가 사냥감을 제압할 수 있어 생존했다는 논리다. 그런데 최근 영국 연구진이 치타의 진짜 무기는 속도가 아니라는 걸 밝혔다. 살기에 꽤 불리한 조건을 가진 치타가 가진 비밀 무기를 공개한다.

치타의 무기는 속도? … 급가속·급감속 능력이 관건

그늘에 앉아 느긋하게 휴식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치타 한 마리가 슬금슬금 톰슨가젤 무리로 다가간다. 위협을 느낀 톰슨가젤 무리가 흩어지는 순간 치타는 폭발적으로 질주한다. 표적이 된 톰슨가젤 한 마리만 겨우 보일 듯 말 듯 치타의 움직임은 눈으로 쫓기도 쉽지 않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치타는 톰슨가젤의 목덜미를 문다. 순식간에 끝난 사냥 장면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치타의 달리기 솜씨에 탄복한다. 쉽게 잊을 수 없는 이 장면을 본 사람들은 ‘바로 저 속도가 치타의 무기’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아프리카 야생에서 17개월 동안 치타의 실제 움직임을 추적한 영국 왕립수의대의 앨런 윌슨 교수팀은 이와 조금 다른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치타의 사냥 무기는 속도라기보다 엄청난 근력에서 나오는 ‘감속능력’과 페라리보다 더 빠른 ‘가속능력’에 있다는 것이다.

치타 최고 기록은 시속 104.4km … 야생에선 시속 93km에 그쳐

애초에 윌슨 교수팀은 1997년 치타가 동물원에서 세운 최고 속도인 초속 29m, 시속 104.4km를 야생에서 확인하려고 했다. 당시 속도 측정은 동물원에서 일직선으로 만든 레인에서 어느 정도 길들여진 치타로 이뤄져 야생 환경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태양광으로 작동하는 가벼운 송신기를 만들어 GPS와 평형측정장치, 가속도계 등을 내장하고, 암컷 치타 3마리와 수컷 치타 2마리의 목에 채워줬다.

치타는 아프리카 보츠와나 북부에서 활동했는데, 연구진이 추적한 17개월 동안 총 367건의 사냥이 진행됐다. 치타 목에 채워진 송신기 덕분에 연구진은 이들이 언제 어디에서 어떤 자세이고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추적 결과를 조합하자 5마리 치타들은 1초에 20~25.9m를 이동할 수 있는 속도를 기록했다. 최고 기록을 시속으로 바꿔도 93km/h에 그쳐 동물원에서 측정한 것보다 느렸다. 게다가 치타의 사냥은 대부분 최고 속도가 아니라 초속 14m 안팎의 보통 속도에서 이뤄졌다. 동물원에서 측정한 기록이나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치타가 매우 빨리 달린다는 것만이 사냥에 성공하는 비결은 아닌 셈이다.

ⓒ 박태진
순식간에 속도를 높이고 낮추는 근력 … 사냥에선 감속능력이 더 주효

그렇다면 치타가 사냥에 성공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 연구진은 치타가 사냥하면서 움직인 데이터를 분석해 치타의 놀라운 가속·감속능력이 열쇠라는 걸 알아냈다. 치타는 한 걸음에 속도를 초속 3m씩 올리기도 하고 반대로 초속 4m씩 줄이기도 했다. 말보다 두 배 이상 뛰어난 능력이다. 치타의 몸무게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근육에서 나오는 힘 덕분이다. 치타가 근육 1kg당 낼 수 있는 힘은 최대 120W(와트)인데, 이는 근력이 가장 좋다고 알려졌던 사냥개 ‘그레이하운드’(60W)의 2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참고로 우사인 볼트가 2009년 100m 세계 기록을 깰 때 냈던 힘은 1kg 당 25W다.

사냥에 더 큰 역할을 했던 건 가속능력보다 감속능력이었다. 367건의 사냥 중 94번에 성공해 성공률은 26%였는데, 사냥에 성공했을 때 평균 감속도가 실패했을 때보다 훨씬 높았다. 반면 가속도는 양쪽 모두 비슷했다. 사냥감을 낚아채는 마지막 순간에 힘 조절을 해서 속도를 줄이고 방향을 틀 수 있는 능력이 치타가 사냥하는 데 가장 중요한 능력인 것이다.

지형 파악하는 영리한 면 있어 … 햇빛 피하는 검은 줄무늬까지

치타의 발톱과 눈 아래 세로로 그려진 검은 줄무늬도 사냥에 도움을 주는 요소다. 다른 고양이과 동물은 발톱을 숨기고 있다가 사냥할 때만 드러내는데, 치타의 발톱은 스파이크 형태로 노출돼 있다. 이 발톱으로 바닥에 큰 마찰을 일으켜 가속력을 높이고 방향을 전환할 때 도움을 받는 것이다. 또 얼굴에 나타난 두꺼운 검은 줄무늬는 햇빛의 눈부심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검은색이 햇빛을 흡수하기 때문에 낮에 활동하기 한결 좋은 셈이다.

신체적인 능력 외에 영리한 전략도 숨어 있었다. 연구진이 치타의 사냥 현장에서 관측한 자료와 ‘구글 어스’에서 제공하는 지형 정보를 조합하자 초목이 두터운 가운데서 사냥을 성공하는 사례가 많았던 것이다. 치타는 초목이 시야를 가리는 지형을 골라 사냥감을 공격하고 이때 매우 예리하게 회전하고 갑자기 멈추는 전략을 써서 사냥감을 낚아챈다.

결국 치타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빠른 발만으로 사냥하는 게 아니었다.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능력은 기본이고, 신체능력을 최대한 이용해 달리는 동안 능수능란하게 급가속·급감속하고, 사냥에 유리한 지형까지 파악하는 게 치타 사냥의 진짜 비결이다. 사자나 호랑이처럼 큰 몸집에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지 못하고도 최고의 사냥꾼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건 자신의 특징을 최대한 살린 영민한 전략이었던 셈이다.

야생에 살아남은 치타는 1만 마리 미만 … ‘벼랑 끝에 선 치타

이렇게 멋지게 살아남았던 치타에게 닥친 위기는 인간이었다. 몇 백 년 전만 해도 인도 반도에서 홍해 해안, 아프리카 대부분 지역까지 넓게 분포했지만 인간이 초원지대에 들어오면서 치타가 설 땅이 줄어들었다. 20세기 동안 개체수가 90% 이상 줄어들어 현재 야생에서 살아남은 치타는 1만 마리가 안 된다. 개체가 적어지면서 유전적 다양성도 줄어들었다는 점은 더 안타깝다. 근친 교배가 많아지고 열성인자가 나타나면서 생존에 불리해진 것이다.

지상의 멋진 사냥꾼, 치타가 더 넓은 지역에서 꿋꿋이 살아남으려면 인간들의 배려가 절실해졌다. 어떤 육상동물보다 폭발적인 근력을 내며 똑똑하게 사냥하는 치타가 미래에도 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모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