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성곽 길을 걷는 듯한
소박한, 성곽 길을 걷는 듯한
  • 이순민 기자
  • 승인 2013.07.0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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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과 담쟁이넝쿨로 덮인 돌담길 속 세월의 무게
무채색 지붕이 이끄는 대로 봉의산 자락을 거닐다
[골목예찬]
춘천 봉의산 골목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힘들게 올라탄 열차는 춘천행이었다. 대성리, 청평, 강촌. 익숙한 이름의 역들을 지났다. 둘이서 어깨를 맞대고 앉던 기차는 낯선 이와 마주보는 전철로 바뀌었지만 덜컹거리는 소리는 변함없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다르지 않았다.

‘호반의 도시’라고만 하면 춘천은 섭섭할지 모른다. 춘천에는 갖가지 모습의 골목길도 많다. 효자동 낭만골목에선 화사한 꽃길이 손님을 맞고, 약사동 망대골목에선 추억 속의 모습이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봉의산 골목은 조금 색다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골목의 도시에 내려앉은 봉황

한림대학교 방향의 옥천길로 접어든다. 봉황이 깃을 펴고 내려앉은 모습과 닮았다는 봉의산 자락이다. 고즈넉한 단층집들 사이의 길은 산자락을 따라 경사가 조금씩 가팔라진다. 예전에는 없었다던 원룸 건물들도 하나둘 눈에 띈다.

산이 깎인 곳이면 어김없이 돌담이 있다. 처음에 산이었을 자리는 사람들이 터를 닦으며 집이 되었고, 돌담이 쌓였다. 담쟁이넝쿨과 사이사이에 피어난 들꽃은 돌담을 자연의 일부로 만들었다.

인적이 드문 골목을 오가는 집배원을 뒤따른다. 돌담과 나무 사이, 동굴과도 같은 길을 지나자 ‘동원루’라는 간판을 내건 낡은 중국집 건물이 불쑥 튀어나온다. ‘2’로 시작하는 국번으로 적잖은 세월을 짐작한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언덕 너머의 석탑길 입구는 소박하다. 대문을 활짝 열어놓은 ‘가정 미용실’만큼이나 정겹다. 담벼락 사이의 작은 골목 어디로든 들어서도 좋다. 경사를 따라 집과 담 사이를 걸으면 마치 성곽을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골목을 돌고 돌아 시야가 확보되는 자리에 서면 은빛으로 반짝이는 소양강이 내려다보인다. 밑에 펼쳐진 지붕들은 잔잔히 흐르는 소양강의 물결과 닮았다. 석탑길 골목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무채색 지붕들을 위에서 보면 삭막할지도 모른다. 한걸음 물러나면 동네가 타인의 공간으로 느껴지는 탓이다. 그러나 골목 안에서 조금만 걸으면 무채색의 집들은 우리 이웃들의 터전으로 다가온다. 대문으로, 담벼락으로 감추려고 해도 일상은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굳이 발뒤꿈치를 곧추 세워 안을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 빨랫줄에 걸린 옷들, 대문 아래로 고개를 내밀고 짖는 개들이 친숙하게 다가와서다.

석탑길에는 걸음을 방해하는 것들이 많다. 직선과 곡선이 교차하다가 별안간 계단이 끼어드는 식이다. 두 사람이 걸을 만한 공간마저 내어주지 않는다. 맞은편에서 누구라도 오면 서로 등을 담에 붙이고 게걸음을 걸어야 한다. 이방인의 산책도 쉬이 허락하지 않는다. 쉴 만한 곳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하지만 겉모습만으로 불친절하다고 판단하기엔 이르다. 골목은 생활의 공간인 탓이다. 삶의 자리를 최대한 늘리다 보니 길의 폭이 줄었고, 서로의 집들을 구분하는 경계인 담이 세워졌다. 골목길의 형태는 철저히 기능을 따랐다.

춘천역에 이르러 소양강을 등지고 선다. 미군 기지였다는 파란 들판 위로 봉의산을 바라본다. 키 큰 나무들에 가려 방금 지나온 골목길은 보이지 않는다. 나무 너머 봉의산 자락의 길에는 세련되진 않아도 추억을 곱씹게 하는 춘천의 표정이 숨어 있을 터였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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