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그림 손대지 않고 덧칠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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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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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중요한데 대기업 밀어주고


서비스업 키운다며 시장개방 추진


노동시장 처방 없이 일자리 수에만 매달려


사회양극화, 해법은 있다 _ 3. 양극화, 백약이 무효한 이유


정부가 쏟아내고 있는 각종 양극화 대책들이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실효성 논란에 쌓여 좌초 위기다.
정부의 위기 진단에서부터 출발하는 양극화 대책들은 외견상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 고용서비스 선진화와 사회적 일자리 창출, 설비투자 확대 및 내수 활성화 기반 확충 등은 사회 양극화의 핵심을 집고 있으며 여기에 복지정책 확충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양극화 해소의 큰 그림이 다 그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도 이런 대책들은 양극화 해소에 기여하기 보다는 사회적인 논란만을 촉발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전문가들은 정부의 세부적 대책들과 경제정책 기조가 충돌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10대 성장동력, 여전히 대기업 중심
현재의 양극화 현상이 역대 정부의 ‘선 성장, 후 분배’ 정책의 산물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동의를 얻고 있는 지적이다. 그런데 참여정부 들어서도 이런 정책 기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말로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내세웠지만 실제로 진행된 정책들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대표되는 대기업 중심의 성장 방안이었다. 


이는 정부가 2003년에 발표한 ‘10대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의 목록을 살펴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당시 정부가 오는 2012년 부가가치생산 169조 원, 수출 2519억 달러, 고용창출 241만 명 이상을 달성한다는 목표로 선정한 성장산업의 목록은 ▲ D-TV/방송 ▲디스플레이 ▲지능형 로봇 ▲미래형 자동차 ▲차세대 반도체 ▲차세대 이동통신 ▲지능형 홈 네트워크 ▲디지털 콘텐츠/SW솔루션 ▲차세대 전지 ▲바이오 신약/장기 등이다. 이들 모두가 현재 대기업이 집중하고 있는 사업 분야이거나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 때문에 중소기업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분야들이다.


중소기업 지원에 관한 대책이 봇물을 이루지만 대-중소기업 양극화의 또 다른 핵심인 하도급 구조와 불공정 거래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존의 재벌중심 정책을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지난해 한국노총 금속노련과 민주노총 금속연맹이 제기한 현대기아차의 ‘바이백’(부품 역수입) 조치에 대한 고발에 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4월 4일 답변서를 보내 “현대기아차가 바이백을 8차례에 걸친 회의를 통해 추진했다”고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했으나, “하도급법 위반 행위로 인정되지는 않아 무혐의 처리했다”고 밝혔다.


금속산업연맹 김연홍 정책국장은 “바이백 지침을 확인했고 이에 따른 ‘주의조치’를 취한 것은 혐의를 충분히 인정한 것임에도 이를 무혐의로 처리한 것은 재벌사의 눈치를 본 정치적인 판단”이라며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정부의 중소기업 육성책은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계속되는 외자유치 신화와 개방정책
IMF 이후 진행된 정부의 금융시장 전면 개방과, 초국적 투기자본의 한국시장 진출 및 영향력 증대가 생산과 소득의 해외 유출로 이어지면서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문제제기도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이미 투기자본의 폐해와 이를 통한 국부유출 사례가 여러 건 보고되고 국민적인 울분을 사고 있지만 정부는 투기자본에 대한 과세와 규제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그나마 최근 들어 론스타 사태가 불거지면서 법위반 사항에 대해서는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번 사건이 외국자본에 대한 무차별적인 반감으로 번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며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


투기자본감시센터에 따르면 IMF 이후 투기자본이 해외로 유출한 국부의 규모는 150조 원에 달한다. 정부의 양극화해소 대책인 ‘희망한국 21’에 소요되는 예산이 30조5천억 원. 단순하게 계산하면 투기자본에 대한 규제만으로도 양극화 재원이 해결되고도 남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또 외환은행 매각으로 론스타가 챙긴 시세차익 4조5천억 원은 양극화 해소 예산 1년치와 맞먹는 규모다. <25면 기사 참조>
국민대학교 정승일 교수는 “정부의 경제정책과 금융정책의 기조 자체가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는 주범”이라며 “지난 97년 이후 외환위기, 신용카드 위기를 거쳐 부동산 위기까지 세 번째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데, 이는 모두 재경부가 주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비판했다.

 

“FTA 통해 양극화 해소한다는 해괴한 논리”
이런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월 취임 3주년을 맞아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가진 북악산 산행 및 오찬에서 “남은 임기 2년의 국정운영 우선순위를 양극화 문제 해소와 한미 FTA 체결에 두겠다”고 밝히면서 또 다시 양극화 논란에 불을 붙였다.


논란의 핵심은 이 두 정책이 양립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한미 FTA에 대한 찬반 논란이 가열되는 가운데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도 정확한 진단이 없다.


이런 가운데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를 중심으로 한미 FTA가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사회진보연대 박하순 운영위원장은 한미 FTA를 통한 국민소득 증대 논리에 대해 “노동자 농민의 소득 증가율은 낮은 반면, 자본의 소득 증가율이 매우 높아 전체 GDP가 증가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며 이는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사회양극화, 빈곤 심화, 비정규직 만연, 한계상황으로 몰린 농민 등을 보면 예상할 수 있는 결과”라고 주장했다. 박 위원장은 “한미 FTA를 통해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주장은 양극화의 원인인 신자유주의를 더욱 강화해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해괴한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멕시코는 미국 및 캐나다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한 후 2년 간 흔히 ‘페소화 위기’로 불리는 외환위기를 거쳤고, 미국경제에의 종속과 외국계 투기자본의 득세를 경험했다.


이에 대해 김대중 정부 시절에 농림부 장관을 지낸 상지대학교 김성훈 총장은 “깜빡이는 오른쪽으로 보내면서 핸들은 왼쪽으로 트는 것과 같은 모순된 경제정책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양으로 승부하는 일자리 정책
정부가 거듭해서 양극화 대책의 핵심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일자리 창출 정책도 노동시장의 구조에 대한 정확한 진단 없이 일자리 수를 늘리는 데만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단순한 일자리 ‘양’의 부족이 아니라 비정규직 및 저임금 일자리의 증가에서 기인했다는 점에 관해서는 각계의 진단이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은 산업 구조 제고 등과 연결된 ‘좋은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단순한 ‘양 늘리기’에 집중되고 있다.


기획예산처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1조5000여억 원을 투입해 청년·고령자·저소득자 등 취업 취약계층 52만7000명에게 일자리를 지원할 계획이다. 이 중 1년 이상 장기적 일자리는 9만5000개에 불과하고 13만3000개는 1년 이내의 사회적 일자리, 22만7000개는 훈련·연수·직장체험 등을 통한 간접적인 고용지원에 머물고 있다.


‘양극화해소 국민연대’ 박원석 사무처장은 “정부가 양극화의 발화점이 되고 있는 노동시장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 없이 사후 대책인 사회안전망에만 초점을 둠으로써 격차 해소와 불평등 완화에 결정적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