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호텔 철거? 서울시가 답하라
멀쩡한 호텔 철거? 서울시가 답하라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3.07.09 11:16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각·철거 발표 이후 투쟁 분위기 고조
절박한 상황에도 호텔과 고객 걱정…“울화통 터진다”
[인터뷰 2] 서재수 르네상스서울호텔노조 위원장

지난 5월 서울 역삼동의 르네상스서울 호텔의 매각 양해각서가 모기업인 삼부토건과 이지스자산운용 사이에 체결됐다. 1조1천억 원에 달하는 매머드급 매매 계약인데다가, 더 이상 개발할 여지가 남아 있지 않은 강남 땅 노른자위에 초고층 오피스센터가 지어진다는 이야기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십 수 년 넘게 호텔에 근무하고 있던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날벼락이 따로 없다. 멀쩡한 호텔을, 내 소중한 일터를 부수겠다는 소식을 듣고 황당한 기분마저 들었다.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40일 넘게 뙤약볕 아래 매일 집회를 열고 있지만, 모기업인 삼부토건도 인수업체인 이지스자산운용도 아무런 대책을 내놓고 있지 않다.

르네상스서울호텔노조 위원장이기도 한 서재수 한국노총 관광서비스노련 위원장을 만나 답답한 심경을 들었다. 때로는 울분에 찬 목소리로 서 위원장은 호텔 철거를 그냥 좌시하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르네상스서울호텔노조
현재의 상황은 어떠한가?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이미 매각을 결정한 삼부토건의 입장에서야 별다른 대책이 있을 리 만무하고, 호텔 부지를 인수해 재개발을 계획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을 상대로 이야기를 시도하고 있다.

대단히 갑작스럽고 걱정스러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조합원들의 사기는 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우려가 되는 부분은 호텔의 영업과 관련된 부분이다. 업종의 특성상 기본적으로 철저히 대고객 서비스를 중심에 놓고 일해 왔던 조합원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투쟁으로 인해 호텔을 찾는 고객들에게 불편이 가지 않을까 마음을 쓰는 눈치다.

정말 울화통이 치미는 부분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조합원들은 그동안 바라는 것 없이 호텔을 위해, 고객을 위해,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만 온통 신경을 쓰면서 열심히 일해 왔던 것이다. 매년 꾸준히 영업이익을 내면서 모기업의 경영 상황이 어려울 때 젖줄 역할을 해 왔다. 결국 돌아온 것은 등 뒤에 비수를 꽂는 철거 계획이었다.”

개발도 좋다지만 멀쩡한 호텔을 철거하는 계획이 상식 밖이다.

“잘 살펴보면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고 생각된다. 호텔을 철거한다든지, 대규모 고층 빌딩을 재건축한다든지 할 때는 지자체의 인허가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 조만간 르네상스서울 호텔의 문제를 가지고 서울시와 연맹 간의 협의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필요하다면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 문제를 가지고 논의를 나눌 수도 있겠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어 서울 시내의 호텔들이 이를 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다. 다른 나라의 수도는 관광 명소를 개발하고 호텔과 부대시설을 늘려가는 추세인데, 멀쩡한 호텔을 철거한다는 계획을 지자체 차원에서 쉽게 허가한다는 부분이 납득되지 않는다.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하는 계획을 서울시는 갖고 있지 않은 것인가? 대형 호텔을 늘려가도 시원찮을 판국에 특급 호텔을 철거하는 계획을 이렇게 손쉽게 허가해 줄 수 있는 것인지 따져 물어볼 필요가 있다.

한 가지 더 의심스러운 점은 호텔이 위치한 부지가 인근에 비해 지대가 높은 곳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호텔의 높이는 24층이지만, 50층짜리 다른 빌딩들의 높이와 엇비슷한 수준이다. 만약에 여기다 50층 규모의 고층빌딩을 짓는다면 실제 높이는 80층짜리와 비근해지는 것이다. 고도제한과 관련해서 이와 같은 계획에 하자는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추후의 계획은 어떠한가?


“5월 말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사실상 하루 경고 파업을 단행했다. 노동조합 지도부는 물론이고, 조합원 개개인들 역시 대단히 마음에 걸리는 결정이었다. 왜냐하면 이미 수개월 전부터 결혼식이나 행사를 예약해 놓은 고객들은 호텔의 파업으로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제도 절박하지만, 결혼식과 같은 행사는 당사자들에게는 정말 일생일대의 큰 행사 아니겠나?

지난 출정식 때는 호텔 전면의 방화문을 내리고 집회를 진행했다. 결혼식이 열리는 안쪽 공간에서 완벽하게 방음이 되는 상태였다. 결혼식을 예약했던 고객이 도리어 조합원들에게 와서 이렇게 다급한 문제로 싸우고 있는 와중에 식을 열게 되서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할 정도였다.

아직 호텔의 매각과 철거가 완벽하게 확정된 계획은 아니다. 무엇보다 본계약 체결이 예정돼 있으며, 이 부분이 엎어진다면 매각 계획은 사실상 백지화되는 것이다. 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하는 시점을 본계약 체결 즈음으로 잡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다.

정치권과 접촉하며 현안 해결에 협조를 부탁하는 활동도 추후로 미루어놓고 있다. 정치인들을 동원해 변죽을 울리기보다는 지금 시점에선 내부의 힘을 결집하고 실질적으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주체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이해당사자인 이지스자산운용측과의 면담 가능성도 얼마든지 열어두고 있다.

(르네상스서울호텔노조는 6월 20일 이지스자산운용을 방문해 김대영 대표 앞으로 면담 요청서를 제출했으며, 25일까지 회신과 더불어 이지스자산운용이 MOU를 파기하고 매각 협상에서 물러날 것을 요청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아무 대답도 해줄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총파업이 시작되면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강력한 투쟁을 전개할 것이다. 700여 명의 조합원들 모두 호텔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펼 계획도 가지고 있으며, 강남 테헤란로 한 복판을 호텔 직원들이 점거하는 진풍경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너무나 절박한 문제이다. 생존권이 달린 문제다. 2008년 용산 참사 역시 절박한 이들을 벼랑 끝에서 떠밀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강남 한복판에서 제2의 용산 참사가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고 강력하게 경고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