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 휴식처 만들다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 휴식처 만들다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3.07.0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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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 노동사목서 출발한 ‘노동자 인성센터’
스트레스 노출된 마음을 어루만지다
[삶의 현장] 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자센터 ‘일과 생명’

ⓒ 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자센터 ‘일과 생명’
2008년 개원한 노동자 인성센터,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자신을 돌볼 기회는 적었던 노동자들이 내면을 돌아볼 기회를 갖도록 도와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왔다. 개별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하고 심리적인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70년대 부평 노동사목에서 출발해 현장 노동자들의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 왔던 노동자 인성센터, 과연 어떤 곳인가?

과거 노동사목의 역할, 현재는 다른 게 필요

부평 노동사목의 역사는 지난 19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동자들의 삶에 건강한 공동체 문화를 보급하고 노동현장 가까이에서 본래의 선교활동도 펴 왔다. 부평 노동사목은 30주년을 맞은 2008년, 노동자 인성센터로 이름을 바꾸고,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심리상담·심리치료 전문 교육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단체로 탈바꿈한다.

김은숙 사무국장은 노동자 인성센터의 설립 즈음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2007년 부평에선 지엠대우에 다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량으로 해고된다. 공장에 다니면서 노동사목을 자주 찾던 이들이 모두 다 해고됐다. 이후 일 년 넘게 투쟁을 진행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기존 노동사목의 역할과는 다른 활동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부평 노동사목이 생긴 70년대에는 노동조합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 노동법에 대해 상담을 하며 노동조합 설립을 돕기도 하고, 노동조합 내 소모임 활동을 지원하고, 회의 공간을 제공하는 등의 일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와 같은 활동을 굳이 노동사목이 수행할 필요가 점차 사라졌다. 노동조합을 둘러싼 내외의 환경이 그만큼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미 총연맹이라든지 산별노조, 지역본부 등에서 이와 같은 활동을 펴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떤 활동으로 노동자들의 삶에 보탬이 될 수 있을까? 노동사목을 자주 찾았던 지엠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량으로 해고당하고 이후 투쟁의 과정을 지나오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들이야 말로 당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 김은숙 사무국장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이전의 현대자동차도 그랬고, 가까이 쌍용자동차도 그랬고, 해고된 이후에 자기상실감이라든가 박탈감이 이루 말할 수 없더라고요. 20~30년 일하던 곳에서 갑자기 쫓겨나서 어디 그만한 일자리를 다시 구하긴 어려운 거잖아요. 특히 대공장에 다니던 노동자들의 경우, 일정 정도 가정에서 생활수준이 있었던 거잖아요. 당연히 경제적인 부분이 해결이 안 되는 거고, 그러다보니 집안에서도 갈등이 생기더라고요. 이혼하는 분들이 그렇게 많았어요. 노동자들의 해고가 가정파탄으로 직결되고, 당사자들은 물론 아이들까지 정서적으로 문제가 생기더군요.”

경제적인 문제와 제도적인 문제,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고 잃어버린 일터로 다시 되돌아가기 위한 싸움도 중요한 일이겠지만, 우선 일이 벌어진 상황에서 사람들이 지금의 상황을 극복해 낼 수 있는 힘이 되어 주는 게 필요했다. 내적인 고통을 치유하고 현실을 견딜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했다.

심리상담, 문턱을 낮추자

2008년 11월 노동자 인성센터를 개원하고 3년 동안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첫 시도이니만큼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상담이나 교육의 내용이 낯설었다.

특히나 상담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선 아직도 선입견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마치 내가 정신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취급받는 게 불쾌하다는 것이다. 딱히 불이익을 받을 건 없지만 어쩐지 낙인이 찍히는 기분이라서 꺼려진다는 것이다. 혹여 병원에 가서 전문적인 감정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을 하면 그야말로 질색을 한다.

노동자 인성센터로 개편한 부평 노동사목, 그리고 인근의 주안과 부천의 노동사목이 지난해 하나의 단체로 통합해 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자센터 ‘일과 생명’이라는 이름으로 개편됐다. 인천광역시 부평구 십정동에 새로 둥지를 틀고 본격적인 상담과 교육 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김은숙 사무국장은 “상담과 교육의 문턱을 낮추는 것”을 센터가 지향해야 할 우선적인 과제라고 말했다. 새로 입주한 건물 1층에는 향후 찻집을 열 생각이다. 이른바 심리 카페 내지는 치유 카페라는 이름으로 예전의 사랑방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이면 좋을 거 같다고 덧붙였다. 편한 마음으로 들러서 차를 마시며 성격유형 검사라든지 결혼만족도 검사, 나의 자존감 척도 등 가벼운 진단을 할 수 있도록 운영할 계획이다.

비용 측면에서 센터의 문턱은 2008년 당시부터 매우 낮았다. 대부분의 검사가 용지 대금 수준의 실비만 부담하면 족하다. 다른 연구소나 기관에서 같은 검사를 진행할 경우 결과를 얼마나 심도 깊게 해석해 주느냐에 따라 가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것에 비하면 대단히 저렴하다.

찻집에서 심리 검사에 대한 심적인 거부감을 낮춘 이들 중에 보다 전문적인 상담이나 교육을 원하는 이들은 건물 4층에서 심화 상담이나 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 전문 상담사가 상주하면서 개별 상담이나 집단 상담, 교육을 위한 공간도 확보할 계획이다. 현재는 상담을 전문으로 전공한 교구 수녀가 와 있는 상황이고, 앞으로는 교구에서 관할하는 건강관리 지원센터의 상담가들과 연계해 상담실을 운영해 나갈 예정이다. 김 사무국장도 노동자 인성센터를 기획하면서 실무자가 심리 상담에 대한 감을 키우지 않으면 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울 거 같다는 생각에, 늦깎이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원을 다니고 연구소에 나가며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 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자센터 ‘일과 생명’
통합 노동자센터로 개편, 더 큰 도약 준비 중

노동자센터 ‘일과 생명’은 통합·개편을 준비하며 현재는 잠시 개점휴업 상태이다. 이사가 마무리되고 정리가 끝나는 대로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할 계획이다. 지난 노동자 인성센터의 운영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면, 개편된 센터에서 꾸려 나갈 프로그램들의 면면과 방향성을 짐작할 수 있다.

과거 노동자 인성센터 시절에는 애니어그램을 통한 내적 여정, MBTI를 통한 내적 여정, 부부성장 프로그램, 중년기 자아성장 교육, 부모역할 훈련, 예술치료, 아동 청소년 상담 및 치료 프로그램 등이 상시적으로 운영됐다.

김 사무국장은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상담이나 교육 프로그램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반항기가 심하고 말을 듣지 않는 자녀들에 대한 고민 때문에 센터를 찾은 부모들은 단순히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 스스로에게도 문제점이 있고,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해 나가는 데에서 걸림돌이 있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한다.

김 사무국장은 사오십 대 중년층이야 말로 사춘기 못지않게 굉장히 힘든 시기라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큰 세대다. 아이들을 양육해야지, 노부모를 부양해야지, 게다가 자신의 노후준비까지도 신경 써야 한다.

부모가 중년일 때 자녀들은 사춘기 즈음일 경우가 많으니, “불안정한 두 영혼이 한 가정에서 충돌하다보면, 더군다나 부모들이 직장 일에 쫓겨 관계가 소홀해진다면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센터가 운영하는 상시적인 프로그램이 자리가 잡히면 현장 노동자들을 위하여, 특히 장기투쟁사업장의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직접 발품을 팔 계획도 갖고 있다. 그동안 노동사목 활동으로 다져진 명성 때문에 노동조합 활동가들과 센터는 많은 접점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도 간혹 노동조합의 요청으로 교육이나 상담을 나가기도 한다. 지역의 투쟁 사업장인 대우자동차판매지회나 콜트콜텍지회 등과의 인연은 각별하다.

노동단체들의 참여도나 호응을 높이기 위한 아이템들도 구상 중이다. 이를 테면 노동조합이나 단체들을 대상으로 할인 쿠폰을 발행하는 계획 같은 것이다. 그간의 각종 검사도 실비 수준의 저렴한 가격이었지만 이마저도 할인해 주는 기획도 검토 중이다. 비영리단체로 등록된 센터만이 지향할 수 있는 부분이다. 천주교 교구의 예산으로 상근 인력의 인건비 정도는 감당할 수 있으며, 비영리단체이기 때문에 시, 군 등 지자체에서 추진하는 각종 지원 사업을 신청하면 소정의 예산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특히 그동안의 역사와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센터는 대부분의 신청 사업에 무난히 선정돼 왔다고 한다.

과거 노동자 인성센터에서 지금의 통합 노동자센터는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갈 목표를 가지고 있을까. 김은숙 사무국장은 “심리상담 쪽에서 하는 얘기인데, 개인에서 출발해 결국 관계에 대한 상담으로 끝난다는 말이 있다” “가족치유 프로그램을 센터에서 만들고 이 분야 대한 전문성을 확고히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개개인에 대한 상담은 이미 많은 곳에서 접할 수 있다. ‘나’에 대한 재발견이 중요하다는 점은 마찬가지이지만, 다양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패턴이라든지, 갈등요소 등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는 매우 의미 깊다는 뜻이다. 좁게는 부부관계나 부모자식관계, 직장 동료의 관계, 나아가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와 넓게는 한 나라에 이르기까지,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지쳐서 나가떨어지지 않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 센터가 갖고 있는 큰 목표다.  

▲ 중년은 인생의 황금기인 동시에 새로운 위기를 맞게 되는 전환기이다. 중년기의 발달 특성과 접하게 되는 스트레스 등 심리적 요인을 살펴보면서 이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모색해 보는 과정이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행복한 중년학교’ 프로그램이다. 모두 네 번의 강의로 이뤄진 프로그램의 마지막 강의는 에너지 충전을 위한 행복 숲 여행 과정이다. ⓒ 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자센터 ‘일과 생명’

‘노동자 인성’ 프로그램, 어떤 내용일까?

노동자 인성센터의 맥을 잇게 될 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자센터 ‘일과 생명’의 인성팀은 향후 다음과 같은 활동을 해 나갈 계획이다.

우선 전문가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여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상담과 교육이라는 대표적인 센터의 활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다. 상담 전문가의 경우 중구 건강가정 지원센터의 상담 봉사자 체계와의 협력을 통해 지원받는 한편, 교구 내 홍보를 통해 상담 자원봉사자를 조직할 예정이다.

전문가 풀 못지않게 기반을 갖춰야 할 것은 대중들의 호응과 참여도일 것이다. 따라서 센터의 활동에 대한 홍보 기획이 필요하다. 양대 노총을 포함해 각급 단체와의 결연을 통해 센터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나 카페의 이용에 무료 내지는 할인 혜택을 주는 것도 구상 중이다. 또 일반인들을 위한 거리 홍보나 노동자들이 밀집한 공단, 산업단지 등에서의 홍보 활동도 강화할 예정이다.

센터의 핵심 사업인 상담 부문의 경우 상시적인 심리 상담실을 운영할 계획이다. 개인상담은 물론, 가족상담, 부부상담, 집단상담 등도 가능하도록 공간과 전문인력을 확충할 예정이다.
교육 프로그램은 기존의 노동자 인성센터의 커리큘럼과 비슷한 맥락에서 가져갈 계획이다. 주요 연간 교육 프로그램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애니어그램으로 떠나는 내적 여정
- MBTI를 통한 자기이해
- 일하는 사람을 위한 중년기 성장 교육
-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 교육
-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건강강좌 (몸살림 마음살림, 한의사와 함께 하는 건강강좌 등)
- 음악, 미술, 춤 등 예술 치유 프로그램
- 리더십 교육, 공동체 프로그램 등

노동자 인성센터를 운영했던 3년 동안 가장 인기가 높았던 교육 프로그램은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 교육 과정이었다. 네 번의 교육 과정으로 진행되며 구체적인 교육 내용은 다음과 같다.

|1회| 사춘기의 자녀, 중년기의 부모
- 자녀의 발달단계를 이해하고 자녀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조력
- 사춘기 자녀와 중년기를 맞이하고 있는 부모의 발달과제를 인식하도록 하고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갈등 해결방안 모색

|2회|사춘기 자녀의 발달특성과 환경
- 사춘기 자녀의 발달단계 특징과 반영적 경청, 공감적 이해
- 자녀들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의사소통 기술 습득
- 부모와 자녀 관계의 변화와 성장을 경험할 수 있도록 촉진

|3회| 부모의 양육태도와 소통방식 탐색
- 부모와 자녀의 상호작용에서 감정코칭의 방법으로 서로를 이해
- 관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 상황에 적절한 대처법

|4회| 감정코칭을 통한 의사소통 훈련
- 부부관계가 자녀 양육에 미치는 영향 탐색
- 가족과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각자의 의사소통 방식 탐색
- 부부의 상호작용을 다룸으로써 친밀한 부부관계 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