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환호 속에 스트레스가 싸악~
웃음과 환호 속에 스트레스가 싸악~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3.07.0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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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고용공단노조의 19년 만의 첫 대동제
조직문화·조합원 취향 달라진 만큼 노조도 변해야
[기획] 우리가 만들어갈 내일 충전_ 장애인고용공단노조 대동제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톱니바퀴처럼 짜인 업무 속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어려운 직장인들. 하루 일과는 물론이고 주간, 월간, 연간 업무계획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 것 같다. 날마다 업무 성과에 대한 기대치는 높아지고 실적에 대한 부담은 무겁게 어깨를 짓누른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직원들도 예외는 아니다. 장애인의 취업을 위한 각종 지원에서부터 교육훈련, 장애인고용을 확산시키기 위한 사업주들의 지원 사업까지 수행하고 있는 공단 직원들은 ‘어지간한 봉사 정신이 아니면 일을 버텨내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노총 노동부유관기관노조 한국장애인고용공단지부(위원장 송춘섭)가 일상 업무의 피로에 지친 조합원들을 위해 1박 2일간의 특별한 재충전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오랜 만에 만나는 동료들과 반갑게 안부를 묻고, 웃고 떠들며 그간의 스트레스를 날려 보냈던 노동조합의 첫 대동제 행사에 동행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노동조합 대동제, 전통으로 명맥 이어갈 것

지난 5월 31일 아침, 한국장애인고용공단지부 조합원들이 속속 압구정역 인근으로 모인다. 대전의 KT인재개발원에서 1박 2일로 열리는 노동조합 대동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조합원들의 편의를 위해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공단 본부에서 출발하는 차량과 서울에서 출발하는 차량을 따로 마련했다. 자가용을 이용해 참석한 조합원들까지 모두 350여 명이 이번 대동제에 참석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내년 2월에 노동조합 설립 20주년을 맞는다. 지난 2012년 1월 10대 위원장으로 취임한 송춘섭 위원장은 “지난 19년 동안의 노동조합 역사에서 조합원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대동제 행사가 한 번도 없었다”며 “동료들과 화합하고 친목을 다질 수 있으며 노동조합의 단결된 힘을 보여줄 수 있는 이런 자리가 노조의 자랑스러운 전통이 될 수 있도록 명맥을 이어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대동제 행사 준비를 위해 발품을 아끼지 않았던 고인철 사무처장은 “다른 무엇보다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신경 썼던 부분은 즐거움과 편안함”이라면서 “일부 참가 선수들만 열성적인 체육대회나 딱딱한 총회 행사가 아니라, 남녀노소 조합원들 모두가 함께 부대끼고 웃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임기 중반을 넘어선 10대 집행부가 최근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사회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힐링’ 프로그램이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서다.

올해 대동제 행사를 시작으로 내년에는 노동조합 차원에서 전문적인 조합원 힐링 프로그램을 준비할 계획이다. 조합원 개개인은 물론이고, 가족들과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행사로 기획 중이다.

업무량과 성과 부담에 치이는 조합원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공공기관의 근로조건은 정부의 입김에 좌지우지 되고 있다. 특히 공공부문 선진화 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된 지난 MB정부의 임기 동안에는 여타의 공공기관이 그랬듯이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역시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노동조합에서 가장 우려하고 있는 부분은 인력이 대단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공공기관의 정원을 기획재정부가 단단히 틀어쥐고 있는 상황에서, 부족한 인력을 충원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다.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장애인들도 직장을 갖고 일상적인 생활을 누리길 바란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도 차갑다.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장에서 장애인을 필수적으로 고용하도록 제도를 마련해 두었지만, 장애인이 일자리를 구한다는 건 여전히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처럼 어렵다.

이들이 구직을 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알선하거나 직업능력평가를 수행하고,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보조기기 등을 지원하는 등의 사업은 물론, 디자인, 귀금속공예, 인쇄출판, 건축, IT 부문 등의 일반 직업 훈련과 시각장애, 청각장애, 정신장애 등 장애 영역별로 특성화된 직업 훈련을 실시하는 것이 공단의 주요 사업이다. 또한 장애인 의무고용률인 2.7%를 초과해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업주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는 사업 역시 공단이 맡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송춘섭 위원장은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고용센터와 똑같은 업무를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공단의 업무에 대해서 정리한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단순히 ‘알선’이나 정보제공만 하면 되는 센터와 달리, 장애인의 구직 지원은 최초 상담 과정에서부터 대단히 수고로운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청각 장애인의 경우 수화통역이 필요하다든지, 지적?정신 장애인의 경우엔 기초적인 상담에도 수배의 시간이 소요된다. 중증 장애인의 경우 맞춤한 일자리를 소개하고 면접을 보게 될 경우, 사업장까지 동행하거나 혹은 함께 면접에 참여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한 마디로 처음부터 끝까지 토탈 케어를 제공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결국 한 사람의 장애인을 취업시키기 위해 그만큼 손이 많이 필요하며 시간도 걸린다. 그에 반해 인력 충원은 안 되고 있으며, 취업률에 따르는 실적 압박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프로그램 내내 웃음꽃이 끊이지 않았다

화창한 날씨에 대동제 행사가 열리는 KT인재개발원은 일찍부터 시끌벅적했다. 전국에 산개되어 있는 공단 조직 특성상, 순환 근무를 하면서 오래 못 보던 동료들을 만나는 즐거움에 여기저기서 웃음꽃이 핀다. 한 조합원은 “처음 공단 근무를 시작했을 때 함께 일했던 동기를 10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됐다”며 반가움을 감추지 못한다.

기념식이 시작되기 전 이성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 역시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나누었다. 이 이사장은 “노동조합 창립 19주년에 처음으로 대동제 행사가 열리는 것은, 구성원들 모두가 공단의 ‘식구’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축하의 말을 건네며 “육체적, 심리적으로 고초가 컸던 공단 구성원들이 1박 2일 동안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파란 하늘을 보며 밝은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고 밝혔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임단협 출정 결의대회를 겸한 간단한 기념식을 마치고 본격적인 행사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첫 번째 순서는 조합원들 모두가 참여하는 명랑 운동회. 기존의 체육대회와는 달리 대부분의 종목이 지역지사 단위로 편성된 조원 모두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힘을 합쳐야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기다란 널빤지에 슬리퍼를 붙이고 다섯 명이 한 조가 되어 반환점을 돌아오는 5인 2각 릴레이 경주라든지, 길게 채워 넣은 풍선 꾸러미를 가랑이 사이에 끼고 달리기, 남성 조합원이 온 몸을 던져 여성 조합원을 보호해야 하는 짝 피구와 같은 종목은 배꼽을 잡게 만들었다. 특히 이벤트 전문가 못지않게 조합원들을 울고 웃기며 능수능란한 프로그램 진행 솜씨를 뽐냈던 사회자가 조합원 중 한 사람이었다는 점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조합원들의 성비가 남녀 반반을 이루고 있는 만큼, 여성 조합원들의 활약도 눈부셨다. 피구나 배구, 발로 던진 슬리퍼를 세숫대야로 받는 경기 등 각 조 여성 조합원들의 실력이 곧바로 조별 결과에 반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흥겨운 운동회가 진행되는 한 편에선 각종 음료와 과일, 팝콘, 와플 등의 간식을 맛볼 수 있는 간이 부스도 운영됐다. 각종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부스도 꾸렸다. 이 역시 여성 조합원들의 취향이 크게 반영된 부분이었다. 과도한 음주 문화를 지양하는 최근의 조직 문화를 반영한 모습이기도 했다.

즐겁게 땀을 흘리고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에는 시원한 생맥주와 함께 뷔페식으로 차려진 저녁 식사를 즐기며 본격적인 단합의 자리를 갖기도 했다. 특히 이 자리에선 초대 공연은 물론, 조합원들로 구성된 밴드의 공연이 펼쳐졌으며, 조합원들의 숨은 장기를 뽐낼 수 있는 노동조합 슈퍼스타K 프로그램도 진행됐다. 이날 심사위원으로 류기섭 노동부유관기관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지부 대표자들이 초빙됐는데, 이들 심사위원의 장기를 보는 순서도 빼놓을 수 없는 백미 중 하나였다.

이튿날에는 아침 일찍 계룡산을 등반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장애를 갖고 있거나 체력이 떨어지는(?) 조합원들을 배려해 공덕사까지 돌아오는 산책 코스와 산 중턱의 남매탑을 거쳐 돌아오는 두 가지 경로를 준비했다. 맑은 산 공기는 물론, 버섯전골과 더덕구이 등 산 중의 진미로 몸 안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한국장애인고용공단지부가 준비한 노동조합 첫 대동제 행사에 끝까지 함께 했던 조합원들은 “신선하고 새로운 시도”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평소 맡은 일에 바빠 눈인사도 나누지 못했던 동료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반가웠다는 이야기도 많았으며, 업무 부담에서 벗어나 하루를 웃고 소리 지르며 보낼 수 있어서 즐거웠다는 평도 많았다.

곳곳에 가족 단위로 행사에 참여하여 시간을 보내는 조합원들도 눈에 띄었다. 노동조합이 사전에 행사 참여 접수를 받으며 세심하게 배려한 덕분이다. 조합원들 중에는 거리상의 문제 때문에 하룻밤 묵어가는 것을 부담스럽게 느끼는 이들도 있었는데, 앞으로는 어린 자녀들을 포함해 가족들과 함께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행사가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밝히기도 했다.

송춘섭 위원장은 “매년 기대되고 외부에서도 주목할 만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노동조합 활동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임금이나 복지는 물론, 조합원들의 휴식과 재충전의 문화도 세심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지부의 조합원 충전 프로그램은 이제 막 발을 내딛었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진화해 나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