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한반도 폭우, ‘장맛비’인가 ‘스콜’인가?
2013 한반도 폭우, ‘장맛비’인가 ‘스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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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8.0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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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 탓 장마 패턴 변해
수증기 유입 많아 폭우 쏟아져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밭에서 완두를 거두어들이고 난 바로 그 이튿날부터 시작된 비가 며칠이고 계속해서 내렸다. 비는 분말처럼 몽근 알갱이가 되고, 때로는 금방 보꾹이라도 뚫고 쏟아져 내릴 듯한 두려움의 결정체들이 되어 수시로 변덕을 부리면서 칠흑의 밤을 온통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다.”
- 윤흥길, ‘장마’ 중에서

두 공기덩어리가 만나 장마 전선 형성

1970년대 발표된 소설 ‘장마’에는 주룩주룩 내리는 비에 대한 묘사가 많다. 완두콩을 수확할 즈음인 6월 말부터 시작된 장맛비는 이야기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그치지 않고 소설 전반의 분위기를 지배한다. 한국전쟁 뒤 한 집안에서 벌어지는 우울하고 슬픈 사건을 소개하기 걸맞은 우중충한 배경인 셈이다.

장마는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두 공기덩어리가 만나서 생기는 동아시아 특유의 기상현상이다. 두 공기덩어리가 만나 생기는 전선(前線)은 두 공기덩어리의 성질 차이가 클수록 강해지고, 이에 따라 비나 폭풍우, 강풍, 천둥, 번개 등의 기상현상을 가져온다. 우리나라 여름철에 주로 영향을 주는 장마는 습기가 많고 뜨거운 ‘북태평양고기압’과 차고 습기가 많은 ‘오호츠크해고기압’ 또는 대륙성고기압 사이에 형성된 전선 때문에 일어난다.

6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는 북쪽으로 올라가려는 북태평양고기압과 오호츠크해고기압의 세력이 엇비슷해지기 때문에 중간에 만들어진 전선이 한 지점에 머물게 된다. 이 장마전선이 동서로 길게 형성되면서 장마전선대를 이루고, 이 전선대를 따라 기압골이 이동하면서 약 한 달 정도 흐리고 비오는 날씨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요즘 ‘장마’, 갑자기 쏟아지는 집중호우 많아

그런데 4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소설에서처럼 장마를 묘사하기 어려워졌다. 요즘 장맛비의 패턴은 며칠이고 계속 비가 내린다기보다 한바탕 폭우를 뿌리는 형태가 많기 때문이다. 낮에는 잠잠했다 밤만 되면 세찬 비가 내려 ‘야행성 장마’라는 별명도 생겼다. 게다가 중부지방이 흐리고 폭우가 내릴 때에도 남부지방은 폭염에 시달리는 ‘반쪽 장마’ 현상도 나타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한반도 기후가 아열대로 변함에 따라 장마의 양상도 변하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특히 한바탕 폭우를 뿌리는 형태의 비는 동아시아 지역의 전통적인 장마가 아닌 열대 지방의 ‘스콜(squall)’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경기도 포천의 한 지역에는 7월 15일 오전 10시부터 1시간 동안 무려 57.5㎜에 이르는 비가 쏟아졌다가 빗줄기가 잦아든 뒤 그쳤다. 그 전날에는 경기도 가평에서 1시간에 91㎜의 비가 1시간가량 퍼붓기도 했다. 한꺼번에 쏟아 부은 뒤 잦아드는 꼴이 열대나 아열대 지방의 게릴라성 폭우와 닮았다.

하지만 스콜과 최근 한반도에 나타나는 국지성 호우는 크게 다르다. 비의 생성 원인이 다르기 때문이다. 스콜은 낮 동안 강한 햇볕을 받아 지표면이 뜨거워지면서 상승한 공기가 만든 비구름이 짧은 시간 동안 강한 비를 뿌리는 현상이다. 반면 최근 우리나라의 국지성 호우는 남서풍을 타고 장마전선에 들어온 고온다습한 공기가 상층의 차고 건조한 공기와 만나 비구름을 만들면서 강하게 쏟아지는 형태다. 스콜은 주로 낮 동안에 발생하는데, 국지성 호우는 밤낮의 구별이 없는 것도 다르다. 오히려 최근 우리나라에 내리는 비의 경우 낮 동안 수증기를 품은 구름이 밤에 비를 내리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 박태진
더워진 대기, 더 많은 수증기 품어… 대기 불안정이 폭우 유발

그렇다고 해도 최근 한반도에 국지성 집중호우가 크게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970년대 7월의 경우 하루에 80㎜ 이상의 비가 내린 집중호우는 연평균 8일이었으나 2000년 들어서는 연평균 20일 정도로 2.6배나 늘었다.

이런 현상은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대기가 머금을 수 있는 수증기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대기에 수증기가 많아지면 불안정해지기 때문에 좁은 지역에 큰 비를 한꺼번에 쏟아 부어 불안정한 상태를 해소한다는 것이다.

북쪽에 있는 찬 공기의 영향도 있다. 찬 공기가 대기 상층부로 불어와 장마전선을 더 불안정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찬 공기는 더운 공기보다 무거운데, 상층부로 유입되면 더운 공기와 자리를 뒤바꾸게 된다. 이 과정에서 대기가 불안정해지고 장마전선은 더 활성화돼 좁은 지역에 비를 뿌린다는 것이다. 특히 남부지방보다는 중부지방에서 집중호우가 더 크게 늘고 있는데, 이는 북태평양고기압이 중부지방에서 북쪽의 차가운 공기와 강하게 충돌하는 게 원인으로 추정된다.

‘장마’가 아니라 ‘우기’ 개념 도입해야 하나?

시도 때도 없이 폭우가 쏟아지는 요즘 날씨를 겪다보니 ‘장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장마전선이 사라진 뒤인 8~9월에도 기후변화로 ‘가을장마’가 찾아오는 등 국지성 호우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기 때문이다. 특히 장마가 끝난 뒤 강수량이 크게 늘어나서 학계 일각에서는 ‘장마’보다 ‘우기’ 개념이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이 조금씩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올해 8월에도 예년보다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는 게 기상청의 전망이다.

여름철 장마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우리나라 기후가 전반적으로 바뀌고 있다. 무더위는 예년보다 빨리 찾아오는데다 더 덥고, 열대야 일수도 늘어났다. 바다 환경도 변해서 식탁에 올라오는 생선도 달라졌다. 한류성 어종인 명태와 대구는 갈수록 줄고, 난류성 어종인 고등어와 멸치, 오징어와 아열대 어종인 농어와 방어는 늘고 있다.

이처럼 기후변화는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와 있다. 남 일처럼 취급하기에는 매일 겪는 날씨가 너무 많이 달라졌다. 현재 닥친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장마’라는 소설 한 편의 분위기를 날씨가 지배한 것처럼 우리 역시 기후와 떨어져 살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