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건 없고, 버리긴 뭐하고…임금피크제는 계륵
먹을 건 없고, 버리긴 뭐하고…임금피크제는 계륵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3.08.06 15:18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용안정·고령사회 대비, 시작은 창대했으나
정년보장+성과주의, SC은행 노사의 실험은?
[분석] 금융권 임금피크제 현황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우리 사회에 등장하기 시작한 임금피크제는 노사간 많은 논란을 낳았다. 당장 임금이 줄어들 것을 바라보는 노동자들은 도입을 반대해 왔다. 어찌됐든 금융산업을 중심으로 언론기관, 공공부문, 일부 제조업 사업장에 도입된 임금피크제는 우리 사회에 안착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개선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논란도 결론을 찾은 것은 아니다.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에게 ‘계륵’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는 임금피크제, 특히 금융권을 중심으로 임금피크제의 모습은 지금 어떤지 살펴보았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임금피크제, 2003년 최초 도입

임금피크제란 근로자의 계속 고용을 위해 노사간 합의를 통해 일정한 연령을 기준으로 임금을 조정하고 소정의 기간 동안 정년을 연장하거나 정년 후에 고용을 연장하는 등의 방식으로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기업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수량적 유연화, 기능적 유연화, 임금 유연화 등이 제기될 수 있는데, 임금피크제는 이 중 임금의 유연화에 해당하는 방법이다.

국내에서 임금피크제를 최초로 도입한 사업장은 신용보증기금이다. 지난 2003년부터 이 제도를 도입했으며, 이후 금융기관과 일부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체 임금근로시간 부가조사’에 따르면 100인 이상 사업장의 임금피크제 도입은 2007년 4.4%에서 2009년 9.2%, 2011년 12.3%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정부는 이와 같은 증가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만한 사업장은 이미 제도를 시행 중에 있기 때문에, 현 추세가 지속되든지 완만하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는 의미다.

정부는 임금피크제를 정책적으로 도입·시행하도록 유도해 왔다. 지난 2006년에는 임금피크제 보전수당제도를 도입해 한시적으로 운영했다. 노사 합의로 만 56세 이상까지 고용을 보장하되, 피크 임금보다 10% 이상 임금을 삭감하는 내용의 임금피크제를 실시하는 사업장에는 해당 근로자에게 만 54세부터 최대 6년 동안 한 해에 600만 원, 분기별로 150만 원 한도에서 보전수당을 지원하는 제도다.

그 밖에도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임금체계 개선, 고령자 적합 직종이나 직무 개발, 안전보건 개선 등 고령자 고용을 위한 컨설팅 비용의 80%를 기업체에는 3,000만 원 한도에서, 노사 단체에는 8,000만 원 한도에서 지원하기도 했다.

당초 이 지원 제도는 2008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실시하기로 했으나, 제도 활성화를 위해 이를 상시제도로 변경했다. 2011년에는 임금피크제 보전 수당에서 임금피크제 지원금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또한 중소기업의 경우 피크 임금에서 20% 이상 임금을 감액해야 지원을 해 왔는데, 제도 도입 촉진을 위해 요건을 10%로 완화했다.

정부가 내세운 임금피크제 도입의 명분은 출산율 감소와 평균수명 증대로 인해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돼 노동생산성은 하락하고 있는 반면 임금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어서 인건비 부담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했다는 것이었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의 인력난 해소, 고령자의 고용안정과 노후소득 보장, 고령자 고용에 따른 기업의 인건비 부담 완화 등을 한 몫에 해결할 수 있는 제도라고 강조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 2008년 전국 648개 사업장에 대한 임금피크제 도입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인건비 부담 경감을 목적으로 제도를 도입한 사업장이 59.4%로 가장 많았다. 복수 응답한 제도 도입 목적에는 그 밖에도 고령자의 노하우 활용(50%), 중장년 인력 고용불안 해소(35.4%) 등의 항목이 각광 받았다. 한편 제도 미도입 사업장의 경우 임금피크제 도입 전제 조건인 노사합의의 어려움 때문인 경우가 37.6%로 가장 많았다. 그 밖에도 고령자 적합 직무·직종 개발의 어려움(31.9%), 임금삭감을 우려한 근로자와 노조의 반대(28.9%), 정년 전에 대부분 퇴직하는 현실에서 제도의 실효성 없음(19.5%) 등의 항목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이유로 꼽혔다.

이와 같은 조사 결과는 비교적 제도 도입 초창기에 진행된 것이다. 그동안 제도가 안착해 오면서 새로이 드러난 문제점이나 개선점도 적지 않다. 특히 임금피크제 도입이 활성화됐던 금융계에서는 현재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후선업무인력만 20%? 해당자들 상실감 크다

국내에서 최초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던 신용보증기금, 지난 2003년 7월 제도가 도입됐으니 벌써 10년이 됐다. 조직 내부적으로는 제도적으로 이미 안착해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매년 제도 시행 연수가 쌓여가는 만큼, 의문점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개선할 부분도 점점 더 눈에 띄는 상황이라고 한다.

신용보증기금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이유는 구조조정을 회피하기 위해서였다. 임금피크제를 적용한 정년은 현재 만 60세이며, 55세부터 5년간, 4년간, 3년간에 걸쳐 임금피크제를 적용받게 된다. 5년을 적용받을 경우 매년 임금지급률이 85%-70%-55%-25%-15%로 감소한다. 4년의 경우 85%-70%-55%-40%이며, 3년의 경우 90%-80%-80%이다. 제도 시행이 가장 오래된 사업장이니만큼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인원도 현재 160명으로, 금융권에서는 우리은행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인원이다.

이봉희 금융노조 신용보증기금지부 위원장은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이들이 할 업무가 없다는 점이 큰 문제라고 밝혔다.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2020년에는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이들이 400명까지 늘어나게 된다. 신용보증기금의 전체 임직원 수가 2,100여 명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조직의 20%가 임금피크제를 적용받게 된다.

금융권에서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이들은 후선 업무가 주어지게 된다. 신용보증기금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대부분 채권 회수와 같은 말단 업무라든지 조사서의 감리, 감사, 경영 지도 등의 서포트 업무가 주어진다. 이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조직 안에서 꼭 필요한 것은 맞지만, 그 숫자가 너무 많아진다는 것이다. 더욱 문제되는 것은 금융 공기업의 여건 상 정원에 대한 통제가 가해지는 와중에,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이들이 고스란히 정원에 잡혀 있다는 점이다. 신입 직원을 채용하려고 해도 정원에 묶여 버려 원활한 조직의 세대 교체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문제는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현재 신용보증기금에서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이들은 기금 설립 초창기의 멤버들이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기금 내에서 이들의 승진은 대단히 빨랐다. 대부분 지점장급 이상이었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팀원으로 위치가 격하되면서 느끼게 되는 상실감은 대단히 크다. 오랫동안 상급자로서 일하는 게 익숙한 이들 중에는 실제 업무 과정에서 트러블을 일으키는 경우도 왕왕 있다고 한다. 기업의 대출 지원을 위한 심사 업무를 담당하는 기금은 소위 ‘갑’의 위치로 대우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와 같은 갑 역할에서 말단으로 내려갔을 때 느끼는 괴리감을 어지간해서는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욱이 조직의 기능과 맡은 업무의 특성상 조직문화가 대단히 보수적이고 경직돼 있는 점도 임금피크제 적용 인원들이 적응하기 어렵게 만드는 부분 중 하나라고 이 위원장은 지적했다.

노동조합은 임금피크제를 시작하는 나이를 지금보다 더 뒤로 늦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도의 핵심 기능 중 하나인 고령자의 소득안정 부분을 감안할 때에도 현재의 제도는 매우 비현실적이라는 의미다. 과거처럼 이십대 중반에 가정을 꾸린다고 하더라도 임금피크제 연한이 도래할 즈음이면, 한창 자녀들을 결혼시키느라 돈이 많이 들어갈 시기이다. 또 지금처럼 결혼하는 나이가 늦어진 현실에서는 이제 막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갈 무렵에 수입은 절반으로 뚝 꺾이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점들을 고려해 볼 때,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제도와 달리 임금피크제 도입 나이를 뒤로 늦추고, 제도를 적용 받는 기간을 줄이는 쪽으로 개선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정년은 62세까지, 임금은 실적대로

그런 와중에 지난 4월부터 한국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이하 SC은행)에서는 기존의 임금피크제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정년연장형 은퇴 프로그램이 시행됐다. 이 제도는 시험 운영되는 기간 동안,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개선할 예정이다.

기존의 임금피크제를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해 보자면, 애초의 정년을 보장해 주는 유형의 제도와 기존의 정년을 연장시키는 유형, 그리고 퇴직자를 재고용하는 유형 등으로 나눌 수 있다. SC은행에서 시행하는 이번 제도는 정년을 연장하는 부분의 내용과 개별 직원의 업무 성과를 결합하는 새로운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정년연장형 은퇴 프로그램은 15년 이상 근무하고 만 48세 이상인 부장 이상의 직원들이거나, 15년 이상 근무하고 만 45세 이상인 팀장(4급) 이하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다. 만 54세까지의 직원들만 신청 가능하다.

이들은 정년이 현행 만 58세에서 만 62세로 4년 연장된다. 다만 이들이 받게 되는 급여는 다르다. 매년 주어지는 목표를 달성하느냐에 따라 급여가 달라지며,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도 주어진다.

목표는 신청 당시 급여의 두 배이다. 즉, 신청 당시 연봉의 두 배의 실적을 올린 이들은 목표치를 100% 달성한 것으로 보고 기존 급여를 유지하는 한편, 5%의 인센티브를 적용받게 된다. 목표치의 90% 이상을 달성한 경우에는 현 급여에서 5% 조정된 액수를 지급받게 되고, 기준액도 조정된다. 40% 미만의 실적을 냈을 경우에는 30%까지 급여가 감액된다. 급여 조정액은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것으로 돼 있다.

SC은행의 정년연장형 은퇴 프로그램은 노동조합의 제안으로 시행됐다. 서성학 위원장은 “정년연장을 위한 프로그램 시행이 집행부 공약이었다”며 “기존의 정년보다 4년을 연장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이와 같은 내용을 개별 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있게끔 한 제도”라고 밝혔다.

SC제일은행지부는 임금삭감과 후선발령 업무로 인해 퇴직 압박이 들어오면서 정년 연장은 사실상 비현실적인 부분과 수직적 구조의 보수적 조직문화로 인해 임금피크제 이후 업무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점 등을 기존의 임금피크제가 갖고 있는 한계로 지적했다. 또한 스마트 뱅킹 등 은행 업무의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인력에 대한 필요성이 저하되고 있는 점 등도 기존 제도의 맹점이라고 덧붙였다.

서 위원장은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타행의 경우 강제로 55세가 되면 후선업무로 돌려지는 것”이라며 “결국 퇴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러한 제도가 금융권 정년은 55세라는 말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기존 금융권 구조 상, 평범한 은행원들이 임원으로 승진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인 현실에서, 사실상 오래 버텨야 지점장으로 경력을 마무리한다”며 “자신이 갖고 있는 영업력으로 정년을 연장하여 업무 일선에서 뛸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부는 정년연장형 은퇴 프로그램의 기대효과로 수익구조 및 인건비구조 개선과 경비부담 완화를 통한 명예퇴직의 실질적 폐지 효과, 신규 채용 확대를 통한 젊은 조직화 구현, 각종 후선발령 및 인사제도 개선, 기업의 사회적 이미지 강화, 고용안정화 및 직원 충성도 제고, 인사적체 탈피 및 인사운영 최적화 등을 꼽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성과연봉제 전면 도입을 비롯한 성과주의 문화가 조직 내에서 일반화되지 않도록 노동조합 차원에서의 견제와 감시 역할이 필요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서 서성학 위원장은 “제도 도입 이후 영국의 그룹 차원에서 내려와 노동조합의 압력에 은행이 굴복한 게 아니었냐는 성토가 있었던 만큼 노동자 입장에서 유리한 제도”라면서 “무엇보다 개별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신청으로 운영되느니 만큼, 본인의 판단에 따라서 이를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하면 그뿐”이라고 반박했다.

또 지난 파업 이후 약화된 노동조합이 은행 측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서 위원장은 “파업을 겪으면 전체 직원의 20%에 달하는 860여 명이 명예퇴직을 하는 등 아픔이 있었다”면서 “파업 이후 분위기가 꺾이고 조직력 강화 측면에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부분은 맞지만, 은행 측의 압력이 있었다는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라고 해명했다.

금융노조는 올 중앙교섭요구안에 정년연장 및 임금피크제 시행과 관련된 요구를 담고 있다. 현재까지는 58세를 정년으로 하며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경우 정년을 60세로 규정하고,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지부 단위에서 노사가 별도로 정하기로 돼 있다. 이를 정년 60세 법제화 추진과 발 맞춰, 정년을 60세로 늘리고, 임금피크제는 60세 도달 시부터 국민연금 수급연령까지 시행하는 것으로 바꾸길 원하고 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임금피크제의 역할은 5년의 기간 동안 임금을 끌어내려서 상대적으로 고임금이라고 질시 받는 외부의 시선을 완화하는 정도밖에 실질적인 효과가 없다는 것이 금융권 노동조합 대부분의 시선이다. 다수의 은행에서는 이마저도 외면 받고 있거나, 형식적인 수준에서 시행하고 있는 데 불과한데, 이는 임금피크제 본연의 효과가 낮다는 의미다. 굳이 임금피크제를 시행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해당 연령이 되면 명예퇴직 등을 통해서 직원들이 정리되는데,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겠냐는 반문도 잦았다. 사회구조의 변화 양상, 개별 산업들이 처한 특성이 고려되지 않은 상태서 임금 유연화에만 한 몫을 담당해 온 임금피크제, 앞으로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