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운동, 공장 울타리 넘어 지역으로
노조운동, 공장 울타리 넘어 지역으로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3.08.06 15:5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금 민주노총엔 ‘소통’과 ‘통합’ 필요
미래전략위 통해 이념과 가치 통일시켜야
[기획인터뷰 1]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 ①

지난 7월 24일 열린 민주노총 59차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신승철 위원장이 7기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이로써 민주노총의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8개월여의 위원장 공백 상태는 막을 내리게 됐다. 신승철 위원장의 임기는 직선으로 8기 임원을 선출해야 하는 내년 말까지 1년 5개월여에 불과하다. 하지만 짧은 임기에 비해 해야 할 일은 많다. 가장 중요한 과제로 대두된 직선제를 준비하는 것부터 당장의 현안투쟁에 대응하고 민주노총에 제기된 여러 혁신 과제를 수행하는 일까지, 신승철 위원장의 어깨가 무겁다. 앞으로 1년 5개월 동안 민주노총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인지, 신승철 위원장의 밑그림을 들어봤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소통과정에 문제 있었다

이번 7기 임원 선거에서 대의원들이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아마도 통합이나 단결이라는 의제를 내건 것이 전체 대의원들에게 통했다고 본다. 현재 민주노총이 제일 필요로 하는 의제이니까.

한 쪽 후보는 정책자료집 등에서 ‘갈 테면 가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다른 쪽은 나중에는 포기한다고 했지만 좌파노총을 만들려고 한다고 인식돼 있었다. 상대 후보들은 통합보다 자기 갈 길을 간다는 이미지가 강했다고 해도 과한 표현은 아닌 것 같다.”

민주노총이 8개월 넘게 위원장을 선출하지 못한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작년에 선거에 들어가면서 통합적인 단일지도력 구축이 제기됐다. 민주노총이 처한 조건과 상황을 봤을 때 그게 맞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었는데, 논의가 모아지는 의사소통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 한 쪽은 독자후보를 아예 내버렸고. 원래 취지와는 어긋나서 선거가 어려워진 거다. 그러면서 편향에 대한 문제가 계속 제기됐고, 선거가 공전하게 됐다. 만약 원활한 의사소통이 됐다면 결과가 그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의사소통 과정의 문제가 마치 정파 간의 극명한 대립처럼 표현됐고 두 번의 대의원대회가 무산되면서 장기화됐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통합지도력 구축에 대해 의지가 강했고, 그것을 추진하려는 노력이 여느 때보다 많았다.

지금처럼 지도부 공백이 길어진 전례가 없으니 그걸 민주노총의 위기라고 이야기할 수는 있는데, 그것이 위기의 본질은 아니다. 물론 내부적으로 문제를 안고는 있지만, 정파적 갈등이 아주 극심하기 때문에 위원장을 뽑지 못하고 8개월이 지났으니 최악 아니냐, 이런 등식이 성립하는 건 아니다.” 

연설 3분만 하겠다

‘미래전략위원회’ 구성을 공약했는데 민주노총 혁신의 방향을 설명해 달라.

“조직 내부에 정파적 갈등, 조직 간의 갈등 등 갈등 요소들이 있다. 그 중에 이념과 가치의 갈등도 분명히 존재한다.

 민주노총 설립 초기에는 민주노조라는 이름으로 별 이견 없이 대의를 중심으로 뭉칠 수 있었고, 민주주의를 열망하던 시기라서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직이 커지고 구성원들의 생각도 다양해졌다. 그런데 우리는 20년 전의 전략과 강령과 전술을 유지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이념과 가치를 통일시켜내는 조직발전 전망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념과 가치를 통일시켜내고 공론화시키기 위한 거시적 전략적 구조가 있어야 한다.

이와 연동해서 어떤 의제들을 중심으로 혁신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병행되어야 한다. 미래전략위원회가 하드웨어적 문제라면 일상적인 혁신에 대한 문제들은 소프트웨어적인 문제다. 아주 미시적으로 들어가서 집회문화의 변화, 대중과의 접촉에 대한 변화,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내용적 민주주의, 민주주의 운영의 변화 같은 것들이 중심이 돼야 한다. 조직적으로 많은 인력을 투입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전략조직화에 대한 입장을 어떻게 가질 건가에 대한 고민도 혁신의 과제 중 하나다.

또 지금은 노동조합 운동이 공장 울타리 안에서만 이야기된다. 하루 24시간 중 공장에 있는 8시간만 민주노동운동을 하는 노동자고 나머지 16시간은 의식도 행동도 다 방치되어도 되는가? 노동자적 의식을 생활공간, 지역공간으로 끌고 나올 수 있는 혁신적 내용들이 담겨야 한다. 귀족노동자라고 이야기하는데 돈을 많이 받아서 귀족이 아니라, 생각과 행동이 분리되기 때문이다. 회사 안에서 작업복 입고 있을 때는 노동잔데, 일상인으로 들어가면 노동자적 의식이 다 해체된 그냥 대중으로 들어가는 구조, 가치와 행동의 불일치를 겪고 있는 구조를 변화 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노동조합 운동이 다양하게 생활공간으로 지역대중과 접근하는, 생활정치, 지역거점 정치활동이 병행돼야 한다.

소프트웨어의 변화에는 여러 가지 사례들이 있겠지만, 당선되면서 ‘3분 넘는 연설을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혁신의 의제 중에 집회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하면서도 행동은 갇혀 있다. 집회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연설을 가장 짧게 하는 거다.

그 이야기를 던졌더니 집회문화를 어떻게 바꾸자는 이야기가 됐다. 참여자가 주인이 될 수 있는 집회를 기획 해보자. 대상화시키지 말자는 거다. 우리 운동의 가장 큰 맹점 중의 하나는 모든 게 다 대상화돼 있다는 거다. 서너 시간씩 동원돼서 남의 이야기를 듣고 박수만 치고 살 수 있느냐. 대중과 유리된 문화 속에 젖어있는 게 아니냐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3분 연설을 던진 거다. 이렇게 하라는 게 아니라 나는 그걸로 집회문화의 변화를 꾀하겠다는 메시지를 준 거다. 그런 작은 변화들이 큰 변화의 단초를 만들어내는 시작 아니겠나?”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공조직의 위상 바로 세워야

7기 임원 선거에서 정파운동의 부정적인 면이 극단적으로 표출됐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정파운동이 가지는 폐해를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지만, 모든 조직에는 이해를 같이하는 의견그룹이 존재하고, 그것이 가진 긍정성은 분명히 있다. 민주노총 안에서 활동가를 양산하고 교육하고 실천하게 하는 역할을 많이 했다. 그런데 의견그룹이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위해서 공조직의 결정을 위반하는 사례들이 생겨났다. 그것이 공조직의 권위를 무너뜨렸다. 그게 이번 지도부 선거과정에서 표출됐다.

그걸 어떻게 극복할 거냐, 소통하려면 존재를 인정하고 그 사람을 파트너로 끌어들여서 조직 구조에 부응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내는 게 제일 중요하다. 다양한 노력을 할 생각이다. 의견그룹과 비공식적 대화 채널도 유지할 거고, 중요사항에 대해서 함께 인식하고 어떻게 싸울 건지 상의하는 일상적 소통구조를 갖는 게 필요하다.

두 번째, 민주노총 내부에서 어떤 투쟁을 결정할 때 당사자들은 강도 높은 투쟁을 원하지만, 처해진 조건과 상황에 따라서 이것을 따르지 못하는 사람들과 조직들이 생길 수 있다. 그동안 이걸 열어주지 않았다. 총파업이 제조업에는 가능한 전술이지만, 사무금융이나 공공부문에는 적용되기 힘든 전술인 줄 알면서도, 가장 강한 전술은 채택했지만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여지를 열어두지 않으니까 실행되지 않는다. 실행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평가나 점검도 없다. 그런 구조가 공조직의 위상을 무너뜨린 거다.

소통과 통합은 정파적 의견을 통합해 내는 측면도 있지만, 공조직의 위상이 제대로 작용하게 하려면 어떤 기준점을 정하고 의견을 통일시켜내는 측면도 있다. 여기에 내용적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는, 의견의 통일을 만들어 내는 과정상의 문제가 중요하다. 운동은 끊임없이 변화를 만들어 내는 과정인데, 형식적 민주주의에 치우쳐서 과정의 문제를 생략하기도 하고, 결과물 중심으로 조직이 운영되다 보니까, 전부 대상화돼 버린 거다. 이걸 통합하려면 함께할 수 있는 목표를 공동으로 토론하고, 자기가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구조화해서 만들어내는 것, 이게 소통과 통합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의견그룹 간의 의견을 나누는 창구를 만들고, 형식적 민주주의를 소통과 통합의 과정으로 만들기 위해 내용적 민주주의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그게 큰 변화를 만들어낼 거라고 확신한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모여 있기 때문에, 굳이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내용에 동의되면 실천해야겠다는 자기 결의를 만들어내고, 그게 자발성과 창발성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큰 변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민주노총이 희망이다

각 사업장의 조합원들은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그리 큰 관심을 보이지는 않은 것 같다.

“조합원들은 임단협이나 자기 권리와 생존권의 문제와 관련된 선거 외에는 별 관심이 없다. 직선으로 해도 관심의 변화는 조금 있겠지만 큰 차이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직선으로 된다 해서 모든 조합원들이 관심을 집중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이 처해진 현재 지형과도 연관이 깊다. 민주노총이 20년 전 이 사회의 변화를 주도 하는 세력으로 서 있을 때는 유일하게 저항하는 조직으로서의 위상이 명쾌했다. 지금은 형식적 민주주의가 이뤄졌다고 하지만, 오히려 민주노총이 끊임없이 싸워왔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곳에서 탄압이 이뤄지고 있고 왜곡하고 호도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왜곡된 것 중 하나가 민주노총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조직들 중 하나에서 문제가 생기면 전부 민주노총의 문제가 된다. 두 번째는 논쟁이 된 과정과 결과만 가지고 이러이러하게 대립됐다고 나간다. 내부의 갈등 요소를 부각만 시켰지 왜 갈등의 요소가 생겼는지,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이야기하진 않는다.

언론이 만든 것 중 하나가 민주노총이 조직된 노동자들의 이익만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아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제일 먼저 조직적으로 제기하고 비정규직을 전략적으로 조직해야 한다고 한 것도 민주노총이고, 비정규직을 조직하기 위해 돈을 넣은 것도 민주노총이고,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제일 먼저 제기한 것도 민주노총이다. 투쟁의 결과물이 없다고 하지만, 민주노총이 제기한 것이 쟁점이 되고 사회에서 공론화되면 그때서야 정치권이 시행하고 자기 치적으로 내걸고 있는 것 아닌가.

 몇 가지 요인으로 인해서 민주노총의 위상이 떨어졌다. 그러나 아직도 현장에 다녀보면 조합원들은 민주노총의 이름에 대한 자부심과 희망을 갖고 있다. 여전히 민주노총은 조합원들에겐 희망이고, 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조직대중이다. 민주노총에는 80만 조직대중이 있다. 좀 더 세밀하게 조직하고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식의 변화를 채택하면 여전히 민주노총은 이 사회의 변화의 핵심에 서 있는 조직이다. 단지 조합원과 활동가들을 대상화시켜내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주체로서 올라갈 수 있는 활동방식과 소프트웨어의 변화는 필요하겠지만, 가능하리라 본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지역본부, 지역사업 중심 돼야

‘투쟁은 산별연맹 또는 산별노조가 하고 총연맹은 정책과 공중전을 담당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총연맹과 가맹조직, 산하조직의 위상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는가?

“민주노총의 원래 조직구조는 가맹조직과 산하조직이 씨줄과 날줄로 이뤄진 이상적 구조다. 일상적인 투쟁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투쟁은 산별이 하는 게 맞다. 가맹조직은 현안투쟁에 집중하고, 좀 더 근본적인 문제, 노동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무너뜨리고 탄압받는 상황에 대해서 민주노총이 대응해야 한다. 그게 공중전이라고 표현되는 대국민여론이든 정책적 내용을 제출하는 문제든 그건 총연맹이 해야 하는 문제다.

지역본부는 예산이 없고 사람이 부족한 것도 문제이지만 여전히 패권 중심으로 운영이 되기 때문에 더 어렵다. 혁신은 파격과 상상력인데, 전환이 필요한 시기가 온 거다. 지역본부가 정치세력화의 문제에 있어서, 생활정치, 지역정치 문제를 공장 밖으로 끄집어내는 주체가 돼야 한다. 그것이 생협이든 교육생협이든 생활공동체든 미조직노동자조직화사업이든, 지역을 거점으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지역본부가 주관하고 주도하게 해야 한다. 진짜 어려운 사업장들의 투쟁이 지역본부로 몰려서 이것을 분리하기 쉽지는 않다. 1년 5개월 동안 전 지역본부를 그렇게 전환시키기도 어렵다.

하지만 정치세력화와 지역 근간 생활정치, 지역정치에 바탕을 둔 노동조합을 끌어내기 위해서, 해당 본부장과 합리적인 운영을 충분히 이야기하는 전략적 거점을 마련할 것이다. 1년간 그런 노력을 하면 성과가 나오기 시작할 거라고 생각한다. 모범을 만들고 그 모범을 전파하고, 안 된 사례들은 평가해서 왜 안됐는지 검토하고, 이런 변화의 과정을 공유하면서 계속 노력하면 지역본부의 위상도 설 것이라고 본다.”

<② 공조직 중심 운영이 원칙>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