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비용, 더 많이 투자해야 더 많은 성과 난다
안전 비용, 더 많이 투자해야 더 많은 성과 난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3.08.0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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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중심 철학 정립돼야 산재율 낮아져
중소기업 근로자 건강 위해 노사정 힘 모아야
[기획인터뷰 2] 이철갑 광주근로자건강센터장

지난 2011년 4월, 인천과 경기 서부, 그리고 광주에 근로자건강센터가 개소됐다. 자체적으로 건강관리를 할 수 있는 담당자와 부서가 마련돼 있는 대기업과는 달리 중소기업, 특히 50인 미만 사업장들은 근로자 건강관리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근로자건강센터는 50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설립된 곳으로, 지금은 전국 10곳에 설립돼 있다.

처음 설립된 근로자건강센터 중 한 곳인 광주근로자건강센터는 지난해 찾아가는 건강 상담을 진행하기도 했고, 올 들어 광산구청과 MOU를 체결해 광산구 환경미화 근로자들의 건강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하남산단에 위치한 광주근로자건강센터를 찾아 이철갑 센터장으로부터 근로자건강센터 운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광주근로자건강센터
도급·하청업체 작업환경 특히 열악해

광주근로자건강센터가 개소한 지 2년여가 지났다. 그동안 어떤 일들을 했는지 소개해 달라.

“50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들의 건강을 관리하기 위해 2011년 3곳에 근로자건강센터를 개소했다. 50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들이 찾아오면 상담해주는 게 출발점이다. 지난 2년 동안 근로자 건강 상담, 그 중에서도 근골격계 질환, 뇌심혈관계 질환, 소음성 난청, 이런 것들에 대한 상담을 주로 했다.

특별히 센터별로 사업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주어진 사업을 계속 하면서도 다른 특성을 내려고 노력했다. 근로자들에게 찾아오라고 하는데, 그게 구조적으로 될 수 없다.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여기를 오려면 근무시간에 오거나 점심시간에 잠깐 와야 하는데, 점심시간은 너무 짧고 시간을 내서 건강 상담하러 온다는 것은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찾아가는 상담을 했는데 찾아다니는 게 일회성이 되더라. 작년에 혈압계 같은 장치를 가지고 점심시간 무렵에 근로자들 많은 곳에 가서 거기서 혈압 측정하고 상담하는 게 굉장히 일시적이고, 숫자 채우기 위한 것이 되더라.”

이철갑 광주근로자건강센터장
ⓒ 광주근로자건강센터
지자체나 기업들과 MOU를 맺어 건강관리를 담당하기로 했는데, 성과는 어떠한가?

“지금도 찾아오게 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능동적으로 기업에 찾아가서 우리가 건강관리를 해주겠다고 설득하고 찾아다녔다. 막연하게 50인 미만 사업장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작업환경이 가장 열악한 곳을 봤더니, 구청에서 위탁한 환경미화원이 있더라. 그래서 광산구청에 찾아가서 이야기했더니, 마침 구청장이 적극 지원해줬다. 광산구청과 MOU를 맺어 광산구청에서는 근로자들이 자기 생일에 한 번 건강 상담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빼고 있다.

또 하나는 호남샤니인데, 어느 사업장이든 작업환경이 특히 열악한 곳은 도급을 주거나 사내, 사외에 하청을 준다. 원청기업은 작업환경 등 문제되는 부분을 외주화하고 자기 근로자들은 더 나은 환경에서 근무하게 한다. 사내하도급 업체 사장은 작업환경에 신경 쓰지 못할 뿐만 아니라 원청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원청기업은 하도급업체 근로자들이 건강해야만 실적이 좋아지기 때문에 설득했더니, 호남샤니가 선뜻 나서준 거다.

다른 기업도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그런 마인드가 아닌 것 같다. 모 기업은 자기들이 다 하고 있다고 하더라. 협력업체 품질관리를 하는 것인데 기본적으로 건설업체가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건설업체는 산재사고가 나면 관급공사 등에서 점수가 깎이는데, 이게 산재를 은폐하는 작용을 한다. 협력업체 품질관리도 마찬가지다. 그걸 원청업체가 건강관리, 작업환경 관리를 해주는 걸로 보고 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협력업체나 하도급업체, 사업장 내에서 더 열악한 곳에서 근무하는 파견·도급업체 근로자들의 건강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신경 쓸 수 있게 해주자는 것이다. 원청업체에서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하지 않으면 어떻게 협력업체가 할 수 있겠는가?

광주의 산재율이 제일 높다고 자꾸 지적받는다. 근골격계 질환 같은 경우 다른 지역보다 산재 승인율이 높은데, 지역의 대기업 때문이다. 하도급업체 근로자들은 산재 신청도 못한다. 대기업 노동조합이 정말 노동조합다운 노동조합이 되기 위해서, 지역에서 생산의 주축인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지기 위해서, 원청기업뿐만 아니라 협력업체 근로자들을 위해 나서준다면 근로자건강센터도 활성화될 것 같다.”

ⓒ 광주근로자건강센터
산재 신청도 알아야 한다

다른 지역 근로자건강센터와 다른 광주근로자건강센터만의 특화된 영역이 있는가?

“광주근로자건강센터는 작업장 단위로, 직종별로 접근한다. 예컨대 시내버스 같은 곳이 그렇다. 최근에는 광주에 8천 명 정도 된다고 하는 콜센터 근로자들에게 집중하고 있다. 콜센터 근로자들은 굉장히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하루에 몇 건 콜을 받았느냐, 몇 건을 처리했느냐를 가지고 실적이 평가된다. 직접 가보니까 아예 그걸 게시판에 붙여놨더라. 성과는 높을지 모르겠지만, 그 자체가 스트레스다.

또 요양보호사도 근골격계 질환에 노출돼 있다. 요양시설에 있는 사람들의 체위변동이나 거동보조에 상당한 힘이 필요하다. 주로 40대 후반의 여성들이 요양보호사로 일한다. 근골격계 질환이 발생하기 쉬운 연령대인데다가, 업무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요양보호사들의 근골격계 질환을 관리하고 있다.

직종별로 보면 요양보호사, 지난해에 했던 시내버스, 그리고 콜센터 근로자들과 환경미화원들을 주로 관리하고 있다. (광주근로자건강센터에서는 최근 학교급식 근로자들의 건강관리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거기에 덧붙여서 최근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게 장기파업을 하고 있는 곳 같은 심리적으로 취약한 근로자들이다. 전주시내버스와 전북고속 근로자들을 위해 전북에도 다녀왔고, 지난해에는 3M과 보워터한라제지 근로자들 상담을 위해 매주 목포와 나주에 가기도 했다. 여수산단 폭발사고 같은 사고 이후에 노출되기 쉬운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이나 NGO 활동가들의 스트레스에 대처하고 해소하기 위해 1박2일 코스로 특별한 프로그램을 마련해서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걸 하니까 다른 센터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기도 한다. 우리는 찾아오는 사람만 상담하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취약한 직종별로 접근해서 그들을 직장 단위로 관리한다. 그래야만 안정적으로 책임지고 관리할 수 있다. 사업방향도 그런 방향으로 하고 있다.”

근로자의 건강을 위해서는 진단과 치료도 중요하지만 예방이 중요한데 예방을 위한 대안은?

“우리나라의 산재통계, 승인된 통계는 왜곡됐다고 본다. 산재는 크게 사고성 산재와 질병으로 나눌 수 있는데, 사고성 산재야 어떻게든 관리하면 된다. 그런데 질병은 발생하면 근로자가 신청해야 승인되든 불승인되든 결과가 나온다. 그래서 산재 승인된 케이스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산재 신청한 케이스가 중요하다. 적어도 산재를 신청했다는 것은 직업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한 번이라도 자각했거나 아니까 신청한 거다. 모르면 신청할 수도 없다. 신청하는 것이 해가 되거나 고용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면 신청하지도 않을 것이다.

대기업에서는 환경관리자나 안전보건담당자가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예방하고 관리하기 위해 상담하거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하지만, 50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사업주가 관심을 가질 여력도 없다. 그래서 근로자건강센터에서 사업장을 방문해 건강관리를 해주겠다고 제안하고 있다.

근로자의 산재 예방을 위해 특수건강검진뿐만 아니라 일반건강검진 결과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개인의 건강정보도 보호해 주면서 문제나 근로자들의 건강을 관리하기 위한 행정적·법률적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지금 근로자건강센터에서 개인의 건강을 관리해줄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 고용노동부와 경총이 자각하고 노동단체도 인정해서 그런 지원체계가 법적으로 마련된다면 근로자건강센터가 하고자 하는 정책적 목표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광주근로자건강센터
대기업 노조, 연대정신 보여 달라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건강을 관리하자면 지역 노사 당사자들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다.

“근로자건강센터는 50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들의 건강관리를 해주기 위해서 정부가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공기관의 성격을 갖는 것이니 적극 활용해 달라고 사업주나 경영자에게 당부하고 싶다. 또 노동조합이나 노동단체는 도급업체나 하청업체, 인력파견업체 근로자들의 건강도 생각하는 연대의 정신으로 원청기업에 요청해서 같이 일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고용노동부나 행정기관에서는 그렇게 하는 사업체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게 아니더라도 인센티브를 주거나 지원해 이런 게 기업 전체에 도움을 주기 위한 거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면 어떨까 생각한다.”

산재 예방을 위해 근로자들 스스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고용노동부는 근로자건강센터를 전국으로 확대하려 하는데 경총에서는 뒷짐 지고 있다. 어차피 예산을 투입해서 성과를 보려 했다면 경총에서도 사업주들에게 근로자건강센터를 적극 활용하라고 홍보도 하고 정책적으로 밀어주어야지, 협조하지 않고 방관자적인 자세로 지켜보거나 성과만 재촉하는 것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개인도 당연히 관심을 가지고 활용해야 하지만 아직 근로자건강센터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에서 광고도 좀 해줬으면 좋겠다. 꼭 50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관심 있으면 이용할 수 있다. 전화나 각 근로자건강센터 홈페이지를 이용해도 된다. 아예 방문하면 더 좋다. 일하면서 궁금했던 것뿐만 아니라 개인의 건강문제, 또는 자녀의 심리적인 건강문제나 교육문제도 관심만 있으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광주근로자건강센터
50억 원 투자하고 성과 내놔라?

우리나라는 경제규모에 걸맞지 않게 산재 발생률이 높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각 나라마다 사회보장 체계가 다르고 제도적인 차이가 있어, 직접적으로 다른 나라의 산재율과 우리나라의 산재율을 비교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전제하더라도 우리나라가 OECD 국가들보다 산재율이 높은 건, 아직도 안전과 보건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 철학에 있다고 본다. 능률과 생산성 위주의 철학으로 빨리빨리, 조급하게 하니까 산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안전을 위주로 생각하게 되면 당연히 ‘안전=비용’이다. 안전에 신경 쓸수록 사회적 비용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똑같은 비용을 가지고 안전하게 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생산성 위주의 철학이 바뀌지 않는 한 절대 산재율이 낮아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산재율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사회가 안전을 중시하는 철학으로 바뀌어야 한다.”

ⓒ 광주근로자건강센터
센터 운영이 안정적으로 되도록 하기 위해서 바라는 바가 있다면?

“근로자건강센터는 고용노동부에서 직업 건강을 담당하고 있는 전문가를 활용해서 근로자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 설립한 것이다. 그런데 자꾸 경총이나 정부에서 생산성을 따진다. 50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는데 나아진 게 뭐냐, 내놔봐라, 자꾸 이러니까 형식적으로라도 결과를 내놔야 한다는 조급증이 있다.

거꾸로 정부가 근로자들의 건강을 위해서 사회적으로 투자해야 할 필수불가결한 비용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사회복지 차원에서 투자해야 한다. 자본이 전체를 다 가져가려 하는 게 아니라 일정한 부분을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

한 센터 당 5억 원씩 10개 센터에 1년간 50억 원 투자하고 성과 내놓으라는 건 우스운 일이다. 더 많은 돈을 투자하면 더 많은 인력과 더 많은 사업비를 써서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고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다.”